12월 9일 대강절 둘째주간 월요일
말씀제목
어디라도 좋습니다
성경말씀 창세기 13장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묵상본문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시는 장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 12:1)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일흔다섯일 때입니다.
'지금 네가 살고 있는 곳'에서 하지 않으시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 점에서 각각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고향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모든 것을, 친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의지하는 마음을, 아버지의 집은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말씀 한 구절로 인해 누구든지 복의 근원으로 살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들이 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길을 떠난 아브라함은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함께 떠난 조카 롯의 가정과 갈등을 빚게 된 것입니다. 서로의 소유가 많다 보니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이처럼 지나친 소유는 함께 사는 삶을 방해합니다.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은 짐승들에게 먹일 물과 풀을 두고 다투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서로 다투는 것보다는, 땅이 넓으니 떨어져 지내자고 하면서 롯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 13:9)
아브라함의 제안을 들은 롯은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본 뒤 물이 넉넉한 요단 들판이 있는 동쪽을 향해 떠납니다. 눈을 들어'라는 말은 '심사숙고하다'라는 뜻입니다. 롯이 동쪽을 선택하여 떠났으니 아브라함에게 남은 방향은 서쪽, 롯이 바라보고도 선택하지 않은 곳뿐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이 나이가 더 많으니 어린 조카 롯에게 좋은 쪽을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브라함에게는 롯이 갖지 못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외부적인 조건보다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땅이 최선의 땅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알았던 것이지요. 아브라함과 롯은 함께 살아왔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했고, 롯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브라함과 동행'했을 뿐입니다.
삶을 규정하는 것 가운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믿음이 있나요?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시공간을 최선의 최고의 땅으로 여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묵상기도
지역, 학군, 교통 등 우리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에게 바른 믿음을 주셔서 주님과 함께하는 그곳을 최선의 땅으로 여기게 하소서. 그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오니 오셔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