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7 05:25
"우리의 대북 휴민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
장성택 사건을 계기로 본 휴민트의 세계
2006년 가을, 함경북도 길주군의 한 야산. 젊은 남자 하나가 석양의 어스름 속에서 조심스럽게 바닥의 흙을 긁어내고 있었다. 또 다른 남자 한명은 옆에서 소형 캠코더를 들이댔다.
그해 10월9일, 북한은 핵실험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의 정보기관들은 관련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숨가쁘게 움직였다. 그 즈음 핵 실험장 주변을 서성인 정체 불명의 남자들은 바로 중국 내 한국 블랙(black)요원의 지시를 받은 탈북자 출신 공작원들이었다. 이들이 채취한 흙과 물은 며칠 뒤 북ㆍ중 국경을 넘어 우리 측 요원에게 전달됐다. 핵실험 현장 주변에서 가져왔다는 근거로 현장을 찍은 동영상 파일도 함께 건네졌다.
얼마 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은 북한 핵실험의 규모와 핵 물질 성분을 분석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한다. 그는 그러면서 “핵 실험장 근처 시료를 우리 휴민트가 직접 가져와 분석했다”는 자랑을 곁들인다.
이상은 지금도 북ㆍ중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다는 대북(對北) 휴민트(humintㆍ인적 정보)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북한에서 최근 이뤄진 장성택 숙청과 사형집행을 계기로 우리 정보기관의 휴민트 활동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국정원은 장성택 숙청 사실을 비교적 신속하게 파악했다. 그 과정에 휴민트가 한 몫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은 지난 13일 “그 동안 국정원의 대북 휴민트가 거의 말살되다시피 했는데 다시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북한 움직임을 실시간 체크하는 우리 정보기관의 휴민트망(網)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 정보기관은 북한 권부의 어디까지 접근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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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기 국회정보위원장이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장성택 사형집행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대북 휴민트의 8할은 탈북자휴민트는 인적정보이다. 인간을 통해 얻는 모든 정보를 말한다. 당연히 스파이 활동도 포함된다. 상대적인 개념이 기술정보, 테킨트(
techint· Technical Intelligence Collection)이다. 전화 도청 정보, 정찰기를 통해 얻게 되는 영상 정보 등이다. 1999년 당시 국정원장 천용택은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오프’를 전제로 이런 얘기를 꺼낸다.
“김정일이 스위스에 있는 애인과 밤에 무슨 얘기를 하는 줄 아나. 무슨 옷을 입고 있느냐, 샤워는 했느냐며 시시콜콜하게 묻는다.” 전화를 도청해 얻은 정보, 테킨트다. 테킨트와 휴민트가 취합돼 대북 정보가 완성된다.
대북 휴민트는 한계가 있다. 다른 외국의 경우 신분을 감춘 블랙 요원들은 물론, 신분을 드러낸 화이트(white) 요원들이 활동하며 정보를 캐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선 화이트는 물론, 블랙의 활동도 제한적이다. 때문에 “현재 대북 휴민트 정보의 8할은 탈북자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중국에는 한국 정보기관은 물론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정보장사를 하는 탈북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 사진ㆍ 동영상을 찍어오고 장마당 정보를 수집하는 비교적 단순한 일도 하지만 북한 권부의 움직임 등 고급 정보를 가져오기도 한다. 탈북자들 가운데 북한 상류층과 접근 경로를 갖고 있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휴대폰을 통해 북한 내부 취재원들과 접촉한다고 한다.
‘한국 정보기관이 정보 제공의 대가로 내놓는 돈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적기 때문에 좋은 정보가 한국으로 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일본 내각조사실이 건네는 정보료가 한국 국정원의 그것보다 3~5배 비싸다는 것이다. 열린북한방송 대표를 지냈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정보는 돈인데 돈을 풀지 않으니 우리의 대북 휴민트가 약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국정원 관계자는 다른 얘기를 했다. “수만명의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왔다. 국정원이 이들을 다 조사했다. 국정원으로선 탈북자 정보가 아쉬울 게 없다. 일본의 경우는 정보가 부족하니 비싼 값에 이것 저것 다 사는 것이다.”
탈북자 정보 가운데는 왜곡되거나 조작된 것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북ㆍ중 접경지대에선 ‘조선인민국 총정치국 기밀’ 등의 도장이 찍힌 문건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은 돈을 노리고 제작한 위조품이란 게 국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탈북자 정보는 ‘크로스체크’가 필수라고 한다. 핵실험장 인근에서 가져왔다는 시료의 경우도 여러 경로를 통해 크로스체크가 이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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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신의주의 압록강변에서 놀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
북한 고위층에 심어둔 스파이는 없을까 탈북자 정보로는 북한 권부의 내밀한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우리 정보기관이 북한 고위층에 심어둔 휴민트, 다시 말해 ‘스파이’는 없는 걸까.
2008년 9월은 김정일 뇌졸중 발병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외적으로 그의 건강에 촉각이 곤두서 있던 시점이다. 그 즈음 한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혼자 양치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경과가 괜찮은 것 같다”고 얘기한다.
국정원이 발칵 뒤집혔다.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뒷날, 당시 상황과 관련해 “그 정보는 휴민트를 통해 입수한 것”이라며 “청와대에서 뭣도 모르고 떠드는 바람에 북한이 관련자 색출에 나섰고, 우리 휴민트 활동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우리도 북한 권부의 움직임을 근접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휴민트가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국정원 고위직 출신 인사의 말이다.
“당연히 북한 고위층 인사를 포섭해 놓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일을 하라고 정보기관이 있는 것이다. 국정원이 북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모른다고 질타도 받지만 파악하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오히려 모른다고 질타당하는 게 국정원 입장에선 속이 편하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 결이 다른 얘기를 했다. “북한 권력 핵심 인사들의 움직임은 여러 다리를 건너 온 정보로 알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 핵심 인사의 운전기사의 친구가 얘기하는 것이 들어오는 식이다. 큰 기대를 안하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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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1월25일 생포된 공비 김신조가 동료들을 사체를 확인하고 있다.
1980년대,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우리가 북한 정권 핵심에 심어둔 스파이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1968년 1ㆍ21사태 당시 남파 북한군 가운데 2명이 북한으로 돌아가 고위층이 돼 남한의 고정 간첩 역할을 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도 있다.
당시 김신조만 생포되고 나머지는 사살됐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2명이 더 생포돼 전향했으며 ‘김일성에게 접근할 만큼 출세하라’는 지시를 받고 북으로 돌아가 북한군 상장(중장)과 중장(소장)으로까지 진급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신분이 탄로 나 사형에 처해졌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는 북한군 출신 탈북자가 최근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권부 내에 남측이 직접 심어 놓은 고정간첩이 있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 권부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봤다”고 말하는 국정원 출신 인사들은 적지 않다.
진보정권 10년동안 휴민트가 붕괴했다?1990년대 초반까지 대북 휴민트 활동이 활발했다는 것은 곧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북 휴민트가 붕괴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98년 4월 김대중 정부는 국가안전기획부를 대대적으로 물갈이한다. 한 관계자는 “그해 8개월 사이에 900여명의 안기부 직원이 옷을 벗으면서 수백 명의 북한 담당 인력도 함께 사라졌다”고 했다.
남한의 안기부에서 물갈이가 벌어지던 그해 말, 북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100여명의 군 장성과 150여명 당 간부들이 보위부에 체포돼 일부는 사형됐다”는 요지의 증언이었다. ‘남한 정권이 북한 사람을 고용했던 자료를 북조선에 넘겨줘 잡은 것’이란 설이 돌았다. 권영세 주중대사는 국회 정보위원장이던 2011년 언론 인터뷰에서 “휴민트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 많이 무너졌다”며 “우리 쪽에서 (북한 내) 우리 정보망을 북측에 의도적으로 노출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북측에 명단을 넘겨 대북 휴민트가 붕괴됐다는 얘기는 소설 같은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국정원 관계자들이 많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국정원장을 지낸 김성호 전 원장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기간 휴민트 활용이 이전보다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대북 휴민트가 붕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대북 휴민트가 더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됐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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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 전경
우리 요원을 직접 북파하지는 않나?북한 인사를 포섭하거나 탈북자 정보를 활용하는 것 말고 우리 공작원이 직접 북한에 가서 정보를 캐오는 일은 불가능할까.
‘흑금성’이라 불렸던 이중간첩 박채서씨의 2011년 재판과정에서 우리 군의 북파 공작과 관련된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박씨는 변호인을 통해 “비교적 근래까지도 직접 국군정보사가 북한 현지에 우리 요원을 들여보내는 공작을 해왔다”며 “1999년 현역 영관급 장교 4명이 중국과 북한 국경에서 북측에 체포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2005년 작계 5027등 군사기밀을 대북 공작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북측 인사에게 건넨 혐의를 받고 기소된 박씨는 ‘북한이 오래 전에 작계5027을 입수했기 때문에 자신은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펴기 위해 이 같은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정보장교 등 블랙(black) 요원들이 정보를 빼내기 위해 북한에 직접 들어 갔다는 것은 현실을 모를 뿐 아니라 근거가 박약한 얘기라는 지적이 있다.
한 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우리 요원들의 활동은 주로 중국 현지에서 포섭한 북한 출신 공작원에게 임무를 주고 투입시킨 뒤 해당 공작원이 받아온 첩보를 본부로 보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 요원을 북한으로 보내 무슨 고급 정보를 가져올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우리 정보기관의 대북 휴민트 활동은 도대체 어느 수준에 와 있는 걸까. 90년대 초반 당시 안기부에서 휴민트 관리를 했던 고위직 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엄청난 휴민트 활동의 성과가 그 동안 많았다. 상상 가능한 것은 물론 상상을 초월한 것까지 다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 내용은 남북 통일이 되면 공개될 수 있겠지만 그 전에는 절대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서울 현충원에 잠들고 있는 호국영령들이여 ! 김대중 잡귀를 김일성이가 있는 북한으로 내 쫒아버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