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는 휑했다. 이름도 낯설었다. 고인 이름 옆 괄호 안의 '너훈아'란 이름이 없었다면 알아볼 수도 없었다. 13일 오후 서울 순천향대병원 빈소에 들어섰을 때 노래하고 있는 모습의 그의 영정이 반겼다.
지난 12일 간암으로 숨진 모창 가수 너훈아(본명 김갑순·57)는 '짝퉁 나훈아'로 살았지만 그의 삶은 진짜였다. 빈소엔 코미디언 이상용·엄용수·이용식과 트로트 가수 장윤정·박현빈이 보낸 조화가 있었다. 누군가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1994년 청량리에서 3시간 동안 사회 보시면서 선친의 회갑 잔치를 빛내주시던 고마움에 감사드리며, 하늘나라에 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13일 오후 서울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의 너훈아 빈소를 찾은 또 다른 나훈아 모창 가수 나운아(본명 김명창·60)가 조문하고 있다. /윤동진 객원기자
패튀김, 태지나, 나운하, 니훈아, 나운아 등 다른 모창 가수들의 이름도 방명록에 있었다. 빈소엔 태지나(본명 윤찬·50)가 삼베 띠를 팔뚝에 두르고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형은 짝퉁이란 말을 진짜 싫어했어요. 인천 스탠드바에서 사회 볼 때 관객들 웃기려고 '짝퉁 나훈아'라고 소개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엄청 삐쳤더라고요."
그가 처음부터 너훈아였던 건 아니다. 충남 논산에서 농사짓고 살던 너훈아는 소 판 돈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중국집 배달부로 일하며 돈을 모았고 일이 끝나면 한강으로 달려갔다. 목청을 틔우려고 소리를 질러댔다. 1989년 본명으로 '명사십리'라는 음반을 냈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낙담한 그는 고향에 내려가 돈을 모은 뒤 다시 상경했다. 그때 수중에 7만6000원이 있었다. 밤업소에서 노래를 하다 코미디언 고(故) 김형곤을 만났다. 김형곤은 첫눈에 "나훈아랑 판박이네, 너훈아 해라"고 했다. 다른 모창 가수 '조영필'과 함께 무대에 섰다. 너훈아의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의 강점은 얼굴이었다. 동생 김철민(46)씨는 "나운하는 경상도 출신이라 목소리가 굉장히 비슷한 반면 형님은 얼굴과 표정이 주 무기였다"고 했다.
충무로 길거리에서 "차 한잔 하자"며 말을 걸어 결혼까지 한 아내 김근해(45)씨가 매니저 역할을 하며 23년간 살아왔다. 1990년대 초 서울 합정동에 살 때 너훈아는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할까 봐 장롱 속에서 노래 연습을 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장롱 한 칸을 통째로 비워줬다. 빈소에서 만난 아내 김씨는 "가짜지만 진짜처럼 노래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한 달 100회 넘는 행사를 뛰었어요. 병상에 있던 작년 12월 24일에도 은평구 복지관에서 와달라고 해서 옆구리에 링거를 매달고 갔어요." 너훈아는 그때 복지관에 가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진짜 나훈아는 이런 데 못 오잖아. 나를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로 된 거야.
" 2008년 나훈아가 루머를 해명하며 바지를 벗어 보이려 했던 기자회견장 한구석에 너훈아도 있었다. 그는 이날 나훈아의 모습을 보고 "내가 바지를 벗고 싶었다. 나는 가짜라서 괜찮으니까"라고 가족에게 말했다. 이날 오후 5시 너훈아는 비로소 김갑순이 되어 관 속에 들어가 누웠다.
그의 애창곡은 '잡초'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의/ 이름 모를 잡초'처럼 살았다. 가족은 "나훈아 이상으로 열심히 살다 갔다. 자랑스러운 남편이고 아빠였다"고 말했다.
첫댓글 흠-그랬군요. 누구나의 삶은 절절한 거죠.
가짜지만 진짜처럼 노래하고 그렇게 살다 간... 진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간 사람이죠!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