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귀농한 젊은 부부가 우리 집에 들렀는데 새댁 눈길이 다르다. 문하나, 벽장 하나 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물었더니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집터를 발견했단다. 거의 계약 직전이라면서 “설계도까지 그렸다니까요!” 그러면서 자기들이 짓고 싶은 집을 들려준다. 지금 꿈에 부풀어 그리는 집 그림이 실제 집으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을 했으니 언젠가 맨땅이었던 곳에 그이들의 보금자리가 생겨나리라. 머릿속 그림이 뼈와 살을 가진 집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아파트에서 살던 우리 식구가 귀농해 시골 빈집을 빌려 살기를 4년. 그 사이 터를 구하고 준비기간만 2년 끝에 집을 지었지. 그때만 해도 집짓기는 모두 손수 할 자신이 없어, 부분부분 전문일꾼의 손을 빌려가며 지었다. 뒤이어 남편이 손수 광을 혼자 지었고. 몇 년 뒤 큰애와 함께 아래채를 지어 지금의 우리 집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가 집을 지어보고 남이 집짓는 걸 보면서, 집이야말로 집주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스며있다는 걸 알았다. 말로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도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의 내면에 깔린 욕구가 기초 하나에서부터 문짝의 손잡이 하나에서까지 드러난다. 콘크리트 집을 짓는 사람과 흙집을 짓는 사람이 가진 문화와 욕구가 같을 수 없으리라. 또 돈을 주고 다 지은 집을 사는 사람과 어찌됐든 자기 손으로 뚝딱뚝딱 집을 짓는 사람이 같을 수 없다. 시골서 산 덕에 한번도 건축 일을 해 본 적이 없던 사람도 손수 집을 짓는 걸 여러 번 지켜보았다. 전문 일꾼이 아닌 보통 사람이 손수 지은 집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자기 나름대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살리려고 한다. 그 결과는 좋게 말하면 독창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설프다. 전문가가 달리 전문가인가. 집 하나에도 그동안 쌓인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전문 영역이 있는데, 주먹구구로 손수 짓다 보니, 몰라서 못하고 알고도 괜찮겠지 하고 넘어갔다가 후회하는 일이 없겠는가. 하지만 나는 결혼해 가정을 꾸린 젊은이라면 부부가 힘을 모아 한번 집을 지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 사람 인생에서 진정한 창조물이 몇 개나 되겠나. 자식, 집....... 자급자족 가운데 손수 자기가 살 집을 짓는 일. 이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몇 안 되는 창조활동이라 생각한다. 무에서 유를 세우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자식을 기르며 살 수 있는.
집터 집을 지으려면 먼저 터가 있어야 한다. 한데 시골서 터를 구하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도시와 달라 부동산거래소가 활발하게 움직이거나 매물이 많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입에서 입으로 소개를 받아야 할 때가 많다. 또 맨땅은 집을 짓기에 적당한 터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하다. 시골서 집터를 구하는 일은 그래서 신랑감을 구하는 일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전망 좋고 햇살 좋고 게다가 땅값마저 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게 내 조건에 맞는 땅을 찾는 일은, 학벌 좋고 집안 좋고 인물에 성격까지 좋은 사람을 찾는 일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가리고 따져서 고르고 골라도 막상 결혼해 살아보면 엉뚱한 사람이더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집터 역시 마찬가지다. 사기 전에는 몰랐던 흠이 하나둘 밝혀질 밖에. 그 흠을 보듬어 안고 터에 맞는 집을 짓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집터는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집터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무얼까? 나는 ‘물’이라고 생각한다. 수돗물을 먹는 것과 달리 시골에서 살아보면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그래서 나는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진 집이 가장 부럽다. 그 다음이 지하수인데, 이건 잘 생각해 보는 게 좋다. 관정이란 자연스런 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밖에 다른 건 다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전망 좋은 터는 바람이 세기 쉽고, 햇살 좋은 터는 넓기가 어렵고, 좋은 땅은 비싸기 마련이다. 전기와 전화를 끌어들이기 어려운 산 속에 집을 짓는 사람을 보았는데, 태양광으로 발전을 하고 손 전화를 쓰면 되더라. 하지만 물이 마땅치 않다면 사람이 살 수 없다. 시골에서는 인공보다 아직은 자연의 힘이 더 크다는 걸 잊지 말자. 자연에서 집을 새로 지으려면 그 터를 닦은 뒤 일년 이상 관찰한 뒤 집을 짓는 게 좋다. 장마도 겪고, 겨울에 땅이 얼었다가 녹는 것도 겪어 봐야 한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초니까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반석은 아니더라도 터를 닦고 일년 정도 겪어보면 거기가 집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작지만 옹골찬 그 다음으로 설계가 들어가야 한다. 집 설계를 집주인의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지으려면 집을 한 평 늘이는데 그만큼 등짐을 질 일이 늘어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큰집을 좋아하지만, 자연에서 단독으로 집을 짓고 살려면 집이 크면 그만큼 애를 먹는다. 게다가 우리 동네처럼 일년에 반이 겨울인 산골에서는 난방 문제가 장난이 아니다. 시골집이라는 게 허허벌판에 서있는 집이라 아무리 단열을 한다고 해도 사방으로 열을 뺏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집은 작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욕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버리고 버려서 되도록 작게. 작지만 옹골차게. 생태건축을 하면 더욱 그렇다. 흙집에서 살아보니 집이 살아있는 생물이나 마찬가지다. 벽이나 나무기둥을 벌레가 파먹지를 않나, 비어놓은 방에 쥐가 주인 행세를 하지를 않나, 처마 밑에 말벌이 집을 짓지를 않나……. 한 식구처럼 살면서 집주인이 그때그때 돌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태건축일수록 집주인이 손수 짓는 게 좋겠다. 그래야 끊임없는 하자보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생태건축 집은 늘 공사 중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이니까 말이다. 집이 옹골차려면 지붕이 중요하다. 지붕으로 열을 많이 뺏기기 때문이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니까. 다락방을 설치한 집에 겨울에 가 보라. 겨울에는 거실에서 사람이 살기 어렵다. 잘 모르면 옛 어른들이 그 고장에 지은 집을 잘 보고 그 원리를 따르는 게 비결이다. 우리 옛집에 다락은 부엌 위에만 설치하고 다락과 집 사이에는 문을 꼭 해 달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 이렇게 옹골찬 집을 지으려면 자기 욕구를 잘 다스려 욕심을 최대한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본 뭐도 넣고 싶고, 저기서 본 뭐도 하고 싶은데, 공사기간과 돈은 빠듯하기 마련. 그러면 하나를 얻는 대신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대충하고 눈에 보이는 건 잘하고 싶은데, 눈에 보이는 건 나중에 바꿀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건 평생 가더라. 생태건축도 요 몇 년 사이 눈에 뜨게 발전을 했다. 더불어 기술이 있어야만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도 자기 집을 손수 짓기 시작 했다. 수입기계를 포장했던 나무들을 재활용한 목조주택(?), 흙을 쌀부대나 양파 망에 넣어 척척 쌓아올리는 흙부대집http://cafe.naver.com/earthbaghouse도 있다. 또 볏짚을 쌓아짓는 스트로베일하우스http://cafe.naver.com/strawbalehouse도 있고, 돌이 많아서 돌을 척척 쌓아 집을 지은 이야기를 <귀농통문>에서 본 적도 있다. 화전민들이 산골에서 나무를 우물 井 자로 쌓아올려 지은 귀틀집 역시 어렵지 않게 지을 수 있고, 비닐하우스를 뼈대로 하고 조립식 자재인 샌드위치판넬을 세운 세모모양의 집을 본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빈 터에 집을 지을 때, 먼저 아래채를 원룸으로 하나 짓고, 거기 살면서 시나브로 본채를 지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더라.
날이 쌀쌀해지니 저녁이면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자려고 누우면 등짝이 따끈따끈하고, 연한 재 내음이 난다. 도시 살 때는 아파트 수도꼭지 하나도 전문가의 손을 빌어 갈아 끼던 우리가 주먹구구지만 손수 집을 짓고 산다. 남편의 팔뚝 근육으로 만들어준 이 집에 사는 맛은? 비밀이다. 다만 이게 빠지면 자급자족은 고무줄 없는 빤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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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러게 말예요. 지도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전국의 전원주택을 뒤져왔는데요. 아니 뭔 집들을 그렇게 궁궐처럼 어마어마하게 지었나 몰뤄요. 막 2층에 3층에... 한때 전원주택 붐이 일어 전 국토에 너도나도 얼마나 얼마나 지어놨는지 공급과다인 거 같아서요 나까지 새로 지어 보탤 게 아니라, 적당히 외진 곳에 쪼매한 거 하나 사거나 빌리는 게 좋겠다 싶어서.... 암튼 시기적으로 아직 이른 거 같아 전원주택은 보류. 그래도 내년 봄부턴 아주 작은 농사라도 짓게 될 거 같아요. 열망하라~ 이루리라~ ㅎㅎ~ 으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