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불 -
☆ 2014년 가해 1월31일 (백)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설
[청주] 복을 빌어주는 사람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민수 6, 22 - 27
† 제2독서 : 야고 4, 13 - 15
† 복음 : + 루카 12, 35 - 40
오늘 전례
▦ 오늘은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축복하시는
주님에 관하여 듣습니다. 올 한 해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풍성한
축복을 내리고자 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는 올바른 태도는 감사드리며
그 축복을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삶을 다짐하며 주님의 축복을 청합시다.
★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시리라 이르신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지켜 주실 것이며 은혜와 평화를 베푸실
것이다(제1독서).
★ 야고보서는 인간의 오만에 대해 경고한다. 생명은 한 줄기 연기와 같아서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서 좋은
일을 해야 한다(제2독서).
★ 주인이 언제 오든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종은 행복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생각하지도 않은 때 올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제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설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명절입니다. 추운 날씨로 얼어붙은
마음도 조금씩 온기를 찾고, 어렵게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처지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설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연말연시의 바쁜
분위기에 휩쓸려 제대로 하지 못한 신앙생활의 다짐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 해의 시작을 또다시 할 수 있는 선물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고 감사합니다.
새해의 신앙생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다가 지난 가을의 사제 연례 피정을
지도하신 신부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표상들인 소금과 누룩의 공통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선(善)을 이루고 난 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사라질 줄 안다는 사실입니다.
소금은 맛깔스러운 젓갈을 가능하게 하지만 거기에서 더 이상 흰 소금의
형체를 볼 수 없습니다. 먹음직한 빵과 떡을 위해 사용된 누룩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선 자체를 보는 것으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보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요.
신학생 시절 어떤 책을 읽다가 꽃이 아니라 뿌리와 거름이 되어 주는 삶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꽃이 되어 느끼는 흐뭇함에 많이 젖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저에게 채찍을 가하는 게 있습니다. 이 명절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들을
기쁘게 하는 데서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의 덕이 곳곳에 묻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분들에게서 기운을 얻어, 보이지 않는 소금과 누룩과
거름의 삶을 배우는 것을 올해의 결심으로 삼아 봅니다. 교우님들도 넉넉한
명절을 보내시는 가운데 나름대로 좋은 결심을 하시기를 빕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복을 빌어주는 사람 |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1월31일 설 (구정) 명절 미사
(루카12,35-40)
복을 빌어주는 사람
구정 명절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복을 풍성히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설은
본디 신일(愼日)이라고 하여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데에 근신하고 조심하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이날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합니다.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설빔을 해 주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큰절을 받고 세뱃돈을 주며 가정의 화목과
평화, 부와 안녕을 기원하였고 한 해를 살아갈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
덕담은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축원의 말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덕담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2014년의 모토를‘사랑에 사랑을 더하여’로 정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다시 한 번 더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지난 설 명절에 하느님의 복을 풍성히 받으시길 기원하며‘통통,
통통’복을 받으시라고 했습니다. 1.의사소통, 2.운수대통, 3.만사형통.
4.쓰레기통입니다. 서로의 의사소통을 잘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가족은 물론 이웃과도 통해야 합니다.
잘 통하면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아픕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과의 소통을 잘하시길 빕니다. 하느님과 잘 통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립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사람에게 열어주신 길에
장애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가는데
있어서 하는 일 마다 잘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좋은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모든 것을 담고 품는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되시길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예전에는 세뱃돈과 설빔을 받는 기쁨이 있었는데 지금은 서로의 만남에
의미를 두고 고향을 찾게 됩니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병이 생기기도
했지만 고유명절은 그래도 가족의 유대관계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명절이 되면 도심으로 나가있던 삼촌과 누나를 기다렸습니다.
명절에는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용돈을
얻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물이나 돈의 액수가 줄어들면
마음속으로는 서운해 하였습니다. 그저 공짜로 받는 주제에 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크게 받으면
다음에 받을 때는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게 되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받았으나 감사할 수 없으니 줄때도 잘 줘야 하고 받을
때도 잘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공짜로
언제든지 주십니다. 알맞게 주십니다. 그러나 내 잣대로 재고는 받았네, 못
받았네 하면서 투덜댑니다. 그러나 분명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알맞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지금 받은 것에 감사하면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이 또
주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명절의 의미는 바로 감사하는 생활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방문하여 조상들을 기리며 차례를 지내고 부모형제, 친척과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은 감사드림의 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에게는 감사의 원천인 하느님께로 먼저 눈을 돌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두를 마련하시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혈족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하느님의 작품이요, 사랑받는 존재이고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 민수기(6,22-27)를 보면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빌면 주님께서
몸소 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복을 받는 일은 먼저 복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달라고 하기 전에 이웃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베푸는 몫을
차지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명절의 두 번째 의미는 복을 빌어주는 생활입니다. 어르신께 세배를
하면서 한 해의 건강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덕담을 받고 이웃형제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인사하는 것이 오늘 하루만의 인사
치례가 되어서도 덕담으로 끝나서도 안 되겠습니다. 복을 빌어주는 만큼
삶의 모범으로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복을 받는 사람도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축복하는 삶, 생활로써 복을 함께 나누고 지켜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키워갈 때 우리 주변은 더욱 빛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는 아름다운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감사와 축복의 날에 주님께서는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12,40)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을 켜고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종처럼
감사와 축복으로 매일을, 순간순간을 늘 깨어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상을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며 이웃과 더불어 만남을
기뻐하는 날, 정월 초하루! 모두 모두 주님의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옛날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
1편인 홍범(洪範)에 나오는 오복(五福)을 보면, 오복의 첫 번째는 수(壽)로서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의 복(福)을 말했고, 두 번째는
부(富)로서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부(富)의 복(福)을
말했으며 세 번째로는 강령(康寧)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福)을 말했습니다. 또, 네 번째로는 유호덕
(攸好德)으로서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福)을
말했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고종명(考終命)으로서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福)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큰 행복으로 여겼던 이 오복(五福)을 염원하기 위해 새
집을 지으면서 상량(上梁)을 할 때는 대들보 밑에다가 "하늘의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 세계엔 오복을 갖춘다"는 뜻의 "응천상지삼광
(應天上之三光)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는 글귀를 써 넣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서민들이 원했던 또 다른 오복(五福)으로는 1. 치아가 좋은 것
2. 자손이 많은 것 3. 부부가 해로하는 것
4.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5. 명당에 묻히는 것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 세상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았다 해도 일시적입니다. 믿는이들은 영원한 복을 추구합니다. 참으로
복 중의 복은 하느님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복을 주관하시고 천상의 복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세성을 넘어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복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기뻐하십시오, 이미 하느님을 차지하시고 섬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복을 결코 잃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신명기에는 “너희가 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내려 너희
머리위에 머무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 안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광주리와 반죽통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올
때에도 복을 받고 나갈 때에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28,2-6).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복을 받으시길 희망합니다.
시편에서는“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시편1,1-3).고 하였습니다. 만사형통하려면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시편저자는 말합니다.“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님은 도움이며 방패이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어 복을
내리시리라. 이스라엘 집안에 복을 내리시고 아론 집안에 복을
내리시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낮은 사람들에게도 높은
사람에게도 복을 내리시리라. 주님께서 너희를, 너희와 너희자손들을
번성하게 하시리라. 너희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분께”(시편115,11-15). 복을 주시는 분은 주 하느님이심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복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복을 충만히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명절귀신
명절 때 쫄쫄 굶은 조상 귀신들이 모여
서로 신세를 한탄했다.
씩씩거리며 한 조상귀신이 말했다.
“설날 제사 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가보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처갓집에 갈 때 차 막힌다고,
새벽에 벌써 지들끼리 편한 시간에
차례를 지내버렸지 뭔가?
가보니 설거지도 끝나고 다 가버리고 없었어,”
두 번째 분통터진 조상귀신이 말했다.
“자넨 그래도 나은 편이여,
나는 후손 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었더라구.
알고보니 해외여행 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거길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누?”
아까부터 찡그리고 앉은 다른 조상귀신,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 죄다 상해서 그냥 물만 한 그릇 먹고 왔어."
뿔난 또 다른 귀신,
"나쁜 놈들!
호텔에서 지낸다기에 거기까지 따라 갔더니
전부 프라스틱 음식으로 차려서 이빨만 다치고 왔네."
열 받은 다른 조상귀신이 힘없이 말했다.
“난 말야. 아예 후손 집에 가지도 않았어.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나도 힘들게 후손 집에 갈 필요없이
편하게 근처 PC방으로 갔었지.”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상을 받았나?”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잖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가입을 하노?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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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망할 놈들!”ㅎㅎㅎ
@@ 설날 속터지는 女子들 한탄!!.
1. 엎으러지면 코 닿을것 같이 가깝게 살면서도 명절 때 면 꼭 늦게 오는
동서.
2. 형편이 어렵다며 늘 빈손으로 와서는 지그집에 갈때는 이것저것
싸가는 동서.
3. 온몸이 쑤셔서 한 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눈치 없이 고스톱을 계속 치고 있는 남편.
4. 술이 잔뜩 취했으면서도 안 취했다고 우기면서 가는 손님 붙잡는 남편.
5. 시댁에는 금방 갔다 오면서 친정에 일찍 와서는
이 참견 저 참견하는 시누이.
6. 넓은 마당에서 잘 뛰어 놀다가 꼭 부침개 부칠때 와서는
식용유 뒤엎어 놓는 철없는 조카.
7. 기름 냄새 맡으며 간신히 부쳐놓은 부침개를 날름 집어
먹어버리는 시동생.
8. 며느리는 친정에 안 보내면서 시집간 딸은
빨리 안온 다며 찻길 막힌다고 빨리 오라고 전화하는 시어머님.
9. 시댁에는 30만원, 친정에는 10만원으로 차별하는 남편.
10. 시집에 늦게 와서는 '동서 수고한다.' 는 말 대신 '아직도 일하고 있어!
하며 큰소리치는 형님.
11. 막상 가려고 하면 '한 잔 더하자'며 술상 봐 오라는 시아버님.
@@ 마누라의 3金 ? 현금, 지금, 입금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다.
돈을 상징하는 황금.
음식을 상징하는 소금.
그리고 시간을 상징하는 지금. 이 세 가지다.
남편이 마누라에게 이 말이 너무 멋있어서 문자 퀴즈를 냈다.
“여보야… 세상 살아가는 데 중요한 3가지 금을 뭐라 생각하노??”
잠시 후 마누라한테서 답문자가 왔다. “현금, 지금, 입금.”
이 문자를 보고 남편이 허덕거리며 다시 문자를 보냈다.
“방금, 쬐금, 입금.”
말 중에서 가장 빠른 말 ? 주말 !
▲ 리더십이 있는 말 : 카리스馬
▲ 특히 일본에서 인기 있는 말 : 욘사馬
▲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말 : 오바馬
▲ 여름 되면 오는 말 : 장馬
▲ 폭탄 맞은 말 : 히로시馬
▲ 왜적 물리치는 데 일조한 말은 : 행주치馬
▲ 고민에 쌓인 말 : 딜레馬
▲ 엄마 말을 두 자로 : 맘馬
▲ 길을 잃은 엄마 말을 사자성어로 : 맘馬미아
▲ 조폭 두목이 타는 말 : 까불지馬
▲ 말 중에서 가장 빠른 말 : 주말(금방 지나가 버리죠)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올 새해에는 핑계를 대지 않는 나를 만들어 봅시다.
먼저 사랑하는 새벽님들께 새해 인사부터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올해에는 하고자 하시는 모든 일이 잘되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있을 때에는 따뜻해서 그랬는지 몸이 무척 좋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저께 오후부터 몸살과 오한으로 감기가 더
심해졌습니다.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떨어질 감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길게 갑니다. 여러분들도 감기 주의하세요.
아무튼 이렇게 감기몸살로 힘든 상태였지만, 어젯저녁에 초등학교 때
성당 친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실내 온도를
높여도 으슬으슬 추운데, 밖은 얼마나 추울까를 생각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감기 핑계를 대고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저
생각한다고 제가 사는 답동 근처에 모인다니 안 나갈 수가 없었지요.
결국 두꺼운 옷을 한 벌 더 껴입고, 털모자에 목도리 그리고 장갑까지 끼고
단단히 무장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춥지 않습니다. 오히려
얼굴에 닿는 찬바람이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식사만 하고 얼른 제 방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옛 친구들과의 만남을
오랜만에 가질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포기를 했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쉽게 포기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에 반해 포기하지 않으면 결과가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 모두는 한 살을 더 먹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나이 먹는 것을 반갑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이유에 ‘나이’를 하나 더 추가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없어.”
우리 모두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늘 나라라는 최종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최종 목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나이 들어서, 아파서 등등의 이유를 들어서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서 준비할 때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하느님 나라에 더욱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할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날과 그때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올 새해에는 핑계를 대지 않는 나를 만들어 봅시다. 즉, 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기에 급급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만들어
주님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서설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길 오늘 새해에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간절히 원했지만 무엇도 얻지 못했대도 상관없다. 그것도 하나의 인생이
된다(김연수).
이렇게 날이 흐린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이럴까요? 해는 반드시
뜹니다. 포기마세요.
포기 기념일
언젠가 정호승 시인의 글을 읽는데, 글쎄 12월 31일을 자신의 실패
기념일로 삼는다는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저는 저의 실패를 기념합니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 해의
실패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제 인생 전체의 크고 작은 실패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합니다. 실패를 기념하는 12월이
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1월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실패를 기념하는
일이 곧 성공을 기념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읽으면서 지난 시간의 실패를 기억하여 봅니다. 그러면서
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새해를, 새날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올 새해에는 실패의 숫자를 더욱 더 줄여 나갈 것을
다짐하여 봅니다.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기타] 행복한 힘 얻으시는 명절이기를 기도 드립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지혜의 완성은 구체적인 삶입니다.'
2014년1월31일 금요일 ‘설’ 복음묵상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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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인가 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기에 끝을 아름답게 맺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이 없다.
하지만 희한하리만치 알면서도 제대로 살지를 못한다.
모든 것은 한평생 진행형일 수밖에 없나 보다.
훗날의 시간은 현재가 되어봐야 깨닫게 되는 우리의 어리석음.
과연, 우리의 어리석음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설날이다.
한(恨)도 많고 정(情)도 많고, 아픔도 많고 죄도 많았던 민족.
쇠심줄처럼 질긴 그 사연 많은 민족의 설날이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부자 되세요”라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인사말이
덕담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돈으로, 권력으로 치장된 배부른 송장들의
구역질 나는 향연이 아니라, 힘내라 토닥여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보듬어
주고 어깨동무 그리워하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배고픈 이웃 생각에 따스한
밥 한 술 뜨기가 미안해하던 그런 고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 불의가 그
극을 달려도, 선한 양심들의 의기투합을 끝없이 보여준 역사를 망쳐서는
안 된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지 230년,
조선팔도 순교자의 피가 산하를 흐르고 있고, 그 넋이 살아있다.
올바른 세상을 위해 죽음을 마다 않았던 숭고한 영혼들을 가진 민족.
그들의 피, 그들의 얼을 더 이상 더럽혀서는 안 된다.
이 설날,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
못된 인간들이 나라 망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선한 사람들이 선한 마음 많이 보일 수 있어서 인정이 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성실하게 일하고 땀 흘리는 이들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민족이 화해하고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기심 때문에 온갖 구실 붙여대며 편을
가르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뒤틀린 민족주의, 국수주의,
차별주의가 없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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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인사 올립니다. 가족, 이웃들과 잘 보내시고 행복한 힘 얻으시는
명절이기를 기도 드립니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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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수도회]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 준비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1월31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설
루카 12,35-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 준비>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 설입니다. 우리만 그런가, 봤더니 우리보다 더
설을 챙기는 국민들도 있더군요. 이웃나라 중국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땅덩이가 좁아 아무리 멀어봐야 7시간 8시간이면 고향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워낙 넓다보니 오기가 고향인 사람은
고향 집에 도착하려면 2박 3일이 걸리기도 한답니다. 어떤 부부는
고향가는 차표를 끊지 못해 오토바이에 가득 선물보따리를 싣고, 거기다
아이까지 끼워 태우고 15시간을 달려 도착했다고 자랑합니다.
부모형제와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이 얼어붙은 수천수만리
귀향길도 녹여버리는군요. 짧은 연휴로 인해 ‘설설 기는’ 귀향길이지만
안전하게 도착해서 ‘설설 끓는’ 고향집 아랫목의 행복을 만끽하길 바랍니다.
설을 맞아 조상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올릴 때 마다 읽게 되는 복음은
‘충실한 종’의 비유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종이란 사람이 술에 잔뜩
취해 쿨쿨 자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종이란 사람이 주인이
돌아왔는데 쿨쿨 자고 있다가 문을 마구 두드려야 마지못해 일어납니다.
머리는 봉두난발입니다. 옷차림은 속옷 바람입니다. 그런 종의 모습을 본
주인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종은 주인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힘과 능력이 주인을 향해 초점이 맞춰져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주인을 위해 온전히 내어놓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자세는 어떠해야할까요? 예수님께서 명확히 종이 지녀야 할
태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허리에는 띠를 매어라. 손에는 등불을 들고
있어라. 주인이 돌아오면 즉시 문을 열어줄 수 있도록 문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이어서 비유의 결론으로 준비되고 충실한 종의 태도를 ‘마지막 때’
‘주님의 날’에 그대로 적용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언젠가 형제들과 야외로 소풍갔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잘 준비하겠지,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대표되는 형제에게 살짝 부탁을 했습니다.
“워낙 숫자가 많으니 가서 점심해먹을 도구들 잘 챙겨라. 필요하면
리스트도 좀 만들어서 차질 없게 잘 준비해야 된다.”
대답은 시원시원했습니다. “예! 신부님,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완벽하게
준비해 가겠습니다!” 그러나 웬걸, 막상 소풍 장소에 도착해서 잘 놀다가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보니 정말 웃겼습니다. 휴대용 가스렌지며, 수저며
식기, 라면, 찬밥, 김치 다 잘 챙겨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냄비를 안 가져온 것입니다. ㅋㅋㅋ 그날 저희는 점심으로 생 라면 하나씩
깨뜨려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잘 준비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해 정성을 표한다는 것입니다. 잘 준비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해 예의를 갖춘다는 것입니다. 잘 준비한다는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을 위해 뭔가 잘 준비할 것입니다. 그분을 위해
최대한의 정성을 드리고 예의를 갖출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러 주일
미사에 갈 때는 가장 깨끗한 A급 정장을 입고 갈 것입니다. 봉헌금을 낼
때에도 순간적으로 지갑에서 꺼내 성의 없이 봉헌 바구니를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돈으로 정성을 다해 바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완벽함을 바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양한
한계와 결핍 속에서도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고자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을 어여삐 여기실 것입니다.
언젠가, 머지않아 직면하게 될 하느님의 현존 앞에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서울] 설
2014년 가해 1월31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오늘은 우리 민족 커다란 명절인 설날입니다. 설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배, 설빔, 제사, 민속놀이,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귀성 길의 긴 차량들 등이 떠오릅니다. 설날에는
어른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듬뿍 담긴 덕담을 듣기도 합니다.
어릴 때, 미술 시간이 생각납니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물감을 가지고
미술시간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저는 미술 실력이 워낙
없어서 곧잘 그림을 망치곤 했습니다. 도화지는 없고, 그림은 망치고 참
난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 옆에 있던 부자 집 친구가 자신의
스케치북에서 도화지를 한 장 주면 고맙게도 다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그 친구를 생각하면 그 따뜻한 마음 씀에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한해를 덤으로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난 한해 인생의 그림을 성공적으로 그렸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지난 한해 시작부터 인생의 그림을
망치고 후회와 번민 속에서 한해를 마쳤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잘 그리던 인생의 그림이 끝에 가서 그만 엉망이 되어버린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에게 새로운 한해라는 힌 색의
도화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하느님의 배려와 따뜻하신
사랑에 감사를 드리면서 새로운 한해 열심히 인생의 그림을 그려야겠습니다.
사랑이라는 색을 칠하고, 믿음이라는 색을 칠하고 희망이라는 색을 칠해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예전에 황희 정승이 젊었을 때 길을 가다가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를 보고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저 논에 지금 누런 소와 검은 소가 있는데
어느 소가 더 일을 잘 합니까! 그러자 그 농부는 황희 정승을 소들이 보지
못하는 숲속으로 데리고 가서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하긴 합니다. 하지만 검은 소가 들으면 속이 상할 것
같아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황희 정승은 그 때 그 농부의 이야길 듣고 평생 지키고자 다짐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할 때는 신중하게
하고 될 수 있으면 남의 이야기를 특히 남의 허물과 탓을 이야길 할 때는
더욱 조심하고 신중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황희 정승은
그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졌기에 오랜 동안 정승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스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새해에는 남의 탓과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기 전에 좀 더 신중할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 남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더욱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설날은 돌아가신 분들과 우리와의 관계
2014년 가해 1월31일 설
설날은 돌아가신 분들과 우리와의 관계
설날이면 음식장만, 차림, 제사, 세배문제, 세배 돈, 선물, 덕담, 할 일들.
인사말 나누기와 의견교환, 놀이, 귀성길, 아무튼 신경 쓸 일 참 많습니다.
그러고도 끝나면 후유증까지 생각할 문제이고 그 외 뒤처리들이 있습니다.
잘 준비된 즐겁고 만족한 설날이기를 바랍니다. 설날 핵심은 조상이지요.
핵심은 돌아가신 분들과 우리와의 관계유지라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고요.
이 세상과 저 세상과의 연결을 인정하는 민속설날이라는 점을 명심합시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9~40)”
-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도회] 참 삶은 무엇인가?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1월31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설
민수6,22-27 야고4,13-15 루카12,35-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참 삶은 무엇인가?
오늘은 1월 마지막 날이자 정월 초하루 설날입니다.
새삼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들에겐 매일이 새해 첫날입니다.
축복의 태양 환히 떠오르는 새해 첫날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답게 살기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심지어는 사람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인간상품화시대에 살고 있는 척박한 세상입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물음을 늘 화두처럼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몇 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피겨스케이팅 여왕인 김연아(스텔라)
가 2013년 12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경기 중 외국 해설자와 한국 해설자의 관심사의 차이입니다.
-외국 : "나비죠? 그렇군요.
마치 꽃잎에 사뿐히 내려앉는 나비의 날갯짓이 느껴지네요."
한국 : "저 기술은 가산점을 받게 되어 있어요.".
외국 : "은반 위를 쓰다듬으면서 코너로 날아오릅니다.
실크가 하늘거리며 잔무늬를 경기장에 흩뿌리네요."
한국 : "코너에서 착지자세가 불안정하면 감점 요인이 됩니다."-
한국인들이 평소 우습게 생각해 마지않는 중국 해설자의 표현입니다.
"강철 나비…천 번의 도약은 바로 이 한번을 위한 비상이었습니다."
똑같은 사실에 대한 해설이 어쩌면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경기의 아름다운
과정보다는 온통 등수와 점수에만 관심이 가있는 한국해설자들이요
바로 이게 극심한 경쟁 풍토 중에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다중지능이론 창시자인 세계적인 석학,
하버드대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의 인터뷰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가 하는
행동을 봅니다. 부모가 “나는 정말이지 네가 행복하기 바란다.”고
말하면서 돈에 더 관심을 가지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돈이구나.’라고 배워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어른들이야말로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책에서 뭐라고 하는가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자기가 보는 어른의 모습으로 자랍니다.-
참 엄중한 진리가 ‘보고 배운다.’ ‘보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이웃들의 삶의 모범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주교님의 고백 한 대목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온 가족이
앉아서 손잡고 서로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가정기도문을 바쳤어요.
그것을 끝내야지만 각자 방으로 공부하러 가곤 했습니다.
그런 신앙의 전통 때문에 주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모두가 삶의 모범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예화들입니다.
이런 삶의 모범을 보고 배워가면서 사람이 되어 감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참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묵상입니다.
첫째, 품위 있는 삶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입니다.
‘사람답게’ 좀 막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때 품위 있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이기에 존엄한 품위를 지녀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하느님의 복이 우리 삶을 품위 있게 합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당신 자녀들에게 축복하시는 일입니다.
비상한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있음이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사제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지켜 주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평화를 베푸십니다.”
이런 주님의 축복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유지하며 무욕의
삶을 살게 합니다.
둘째, 겸손한 삶입니다. 겸손한 삶이 아름답습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 덕이 겸손입니다.
영성의 진위를 확인하는 잣대 역시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랑, 겸손한 믿음입니다. 겸손이 들어가야 진짜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알아 갈수록 겸손입니다.
자기를 몰라 남 판단의 교만입니다.
야고보 사도 역시 제 분수를 알아 겸손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백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과 함께 겸손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일뿐입니다.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 살아도 무의미와
허무의 심연은, 블랙홀은 늘 곁에 있습니다. 겸손히 주님과 함께 살아야
무의미와 허무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습니다.
셋째, 깨어 있는 삶입니다.지금 여기 깨어 있는 삶이 참 삶입니다.
과연 하루 중 온전히 깨어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참 중요한 수련이 깨어 있음의 수련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 역시
궁극으로 목표하는바 깨어 있는 삶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죽음을 날마다 눈 앞에 환히 두라.'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깨어 주님을 맞이하듯 날마다 깨어 죽음을 눈 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역시 오늘 복음에서 우리 모두 깨어
살 것을 촉구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집중입니다.
깨어 있을 때 마음의 순수입니다. 환히 깨어 있을 때 유혹도, 근심걱정도,
나쁜 생각도, 병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육신은 잠들어 있어도 영혼의
등불은 늘 켜놓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 삶은 품위 있는 삶, 겸손한 삶, 깨어 있는 삶입니다.
옛날 공부는 동서를 막론하고 참 사람이 되는 공부였습니다.
성인이 되는 공부, 군자가 되는 공부였습니다.
우리 역시 무엇을 '하기 위해(to do)'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to be)' 수도원에 왔습니다.
수도자는 물론 믿는 사람 모두의 유일한 목표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깨어, 품위 있게, 겸손하게 사는 것입니다.
흡사 겨울나무들이 품위 있고, 겸손한, 깨어 있는 삶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며칠 전 써놓은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라는 시를
나눕니다.
나뭇가지들/본질만 남기고
모든 것/다 비워내
하늘로/가득 채운
텅 빈 충만의/겨울나무들
더 바랄 것이/무엇이겠는가?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앞에서 깨어,
겸손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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