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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 대통령은 다리가 길어서 롱 다리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대통령의 보좌관들은 사람의 다리 길이에 대해서 격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다리 길이는 얼마나 긴 것이 가장 적당한가? 하는 것을 가지고 격론을 버리는 것입니다.
“키가 커 보이려면 무조건 다리가 길어야 해.”
“아니다. 다리만 길어서 뭘 하냐? 상체 길이와의 균형도 맞아야 하는 것이야.”
등등 갑론을박하던 보좌관들은 링컨 대통령께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각하! 사람의 다리는 얼마 정도가 가장 적당할까요?”
링컨 대통령은 보좌관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다리는 말일세. 자신의 몸뚱이에서 땅에 닿을 정도의 길이가 가장 적당한 길이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다리가 가장 적당한 다리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걸작품 중에도 걸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가장 좋게, 가장 완벽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들을 가장 완벽하고 멋지고 예쁘게 만들어주신 하늘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4.
우리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정결 예식을 위하여 준비된 돌항아리에 채워진 물을 가지고 가장 좋은 최상품의 포도주를 만들어주시는 이적을 베푸신 이후에 가나를 떠나서 가버나움으로 가셨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이라는 마을로 들어가셨는데, 거기에서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왜 가버나움에서 오래 계시지 못하고 며칠밖에 계시지 못하였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하신 3대 절기,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얼굴을 뵈어야 한다.
3대 절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얼굴을 뵈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도 유대인이셔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셔야 한다.
유월절이나 칠칠절이나 초막절에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다른 때에도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갈 수 있으면 너무 좋은 일이지만, 성전으로 올라가는 일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모일 수 장소는 회당과 성전이라는 두 장소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일 수 있는 회당은 10이라는 하나님의 숫자가 채워지는 민얀(Minyan)의 조건 곧 성인식을 한 유대인 남성 10명만 모이면 회당을 세울 수 있고, 회당에서 토라를 낭독하고 기도문을 낭독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일반적인 안식일이나 여타 절기에는 회당에 모여서 토라와 기도문을 낭독하면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만, 동물의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 드려야 하는 장소는 회당에서는 할 수 없다.
제물을 올려드리면서 제사 드리는 일은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회당은 지역과 마을마다 있을 수 있지만, 성전은 오직 예루살렘 성전 하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응당히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 드려야 하는 3대 절기는 농사철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농사 때문에 한창 바쁠 시기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다녀오게 되면 농사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산해드린 공회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하루 상간으로 다녀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백성들은 1년 3차례 3대 절기를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와서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 드려야 한다. 그러나 하루 상간으로 다녀갈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에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서 한 차례만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와서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 드리라고 정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칠칠절, 초막절보다는 유월절에 올라와서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 드릴 것을 결의하게 되었다.
산해드린공회에서 정한 규례에 따라서 전국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은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이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하시던 유월절에는 170만 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으로 운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대대적으로 유대인들이 대이동을 해야만 하는 유월절에는 예수님도 어김없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유월절 제사를 드리고 유월절 만찬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갈릴리지역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도보로 걸어서 여행해야 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꽤 많은 시일이 걸려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나 혼인잔치를 마치고 잠시 가버나움 동네에 가셔서 머물다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며칠 동안 가버나움에 머무셨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4-5일 동안, 아니 2-3일 동안 머무셨는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머무셨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오랜 시간이 아니라, 2-3일 동안이라도 머무시다가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셨다. 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서 며칠 동안 머물러 계시던 동안에 어떤 일을 하셨을까?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이후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기 전에 가버나움 동네에서 며칠 동안 머무셨다는 기록은 오직 오늘 본문에만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공관복음서에서는 전혀 기록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머무는 며칠 동안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없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유월절 절기를 지킨 이후에, 다시 갈릴리 지방으로 돌아왔을 때, 가버나움 동네에서 1년 가까이 지내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많은 이적을 베풀면서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며칠 동안 가버나움에서 머물면서 어떤 사역을 감당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며칠 동안 머무시는 동안에 무언가를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하셨다면 어떤 사역을 감당하셨을까?
D4.
① 메시야의 사역을 준비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녀오신 후에 근 1년여 기간 동안 가버나움에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신다.
예루살렘 성전을 다녀오신 후에 1년여 기간 동안 가버나움에서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잠시 가버나움에서 머물면서 메시야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1년 동안 머물러야 할 거처도 마련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하여 사역의 방향과 같은 청사진을 그리면서 며칠 동안 가버나움에서 지내는 것이다.
누구든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그에 대하여 준비를 잘 해둬야 한다.
직장생활도 아니 아르바이트하는 것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준비된 능력이 있을 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맡겨주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도 철저하게 준비해 둬야 한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감동과 감격이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말씀도, 기도도, 찬송도 잘 준비되어 있어야 예배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준비를 얼마나 잘 해두는가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업적을 거두고 승리할 수 있는가 하는 판가름이 결정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다.
철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 업무, 영역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처소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다.
② 가버나움 사람들에게 믿음의 길을 열어주시는 예수님.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앞으로 가버나움 동네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시기 위하여 얼마 동안 가버나움 동네에서 머물고 계시는 것. 그 자체가 가버나움 사람들에게는 큰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하여 수차례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언약해 주신 바로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동네에 찾아오시는 것이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신다.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주시는 빛이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신다.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 예수님께서 찾아오신다.
그야말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가버나움 동네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비록 오래 머무시지는 못하시지만, 잠시 잠깐이라도 머물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것. 그 자체가 가버나움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은혜와 축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어떤 정치가나 장관이 우리 마을에 잠시 잠깐이라도 다녀가는 것 자체가 크나큰 영광이라고 온통 메스컴을 통해서 떠벌리지 않던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다녀간다고 하면 온 동네가 난리법석을 떨지 않는가?
관광지를 가보면, 아니 어느 식당만 가더라도 “000가 다녀간 곳”이라고 큰 팻말을 붙여놓고 홍보하지 않던가.
“000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라고 하면서 홍보하면서 큰 상품이나 되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닌다.
북한에서는 김씨3부자가 현지 지도하러 한 번 다녀가는 것을 큰 영광이라고 호들갑을 떤다고 한다.
김씨3부자와 사진 한 장이라도 같이 찍으면 1호 사진이라고 하면서 가문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가보, 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여긴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창조주이신 예수님, 메시야이신 예수님, 빛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걸어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우리 집이나 일터나 사무실이나 교회나 동네로 찾아오신다면 얼마나 큰 광명이요 영광이요 축복이겠는가?
더욱 우리 집이나 일터나 사무실이나 교회에서 며칠 동안 머물다가 가신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축복이겠는가?
아마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빵빵 부를 것이다.
아마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화로, SNS을 통하여 문자로, 카톡으로, 페이스북으로, 카카오스토리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랑하기에 바쁘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찾아오셔서 며칠 동안 머무시는 것은 가버나움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와 축복으로 찾아오는 사건이다.
그래서 가버나움 사람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추앙하고 믿고 영접하고 예수님의 사람들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로 새워져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직접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의 메시지를 자신들의 두 귀로 들을 때, 가버나움 사람들은 감격하고 감동하고 감격하고 감동하면서 울고 웃고 좋아라, 행복감에 흠뻑 빠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동네 사람들에게 큰 은혜와 감동과 감격을 베풀어주시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을 수 있는 믿음의 디딤돌, 징검다리를 놓아주시기 위하여 가버나움에서 며칠 동안 지내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교회와 가정과 생업터전과 우리나라로, 우리 대전으로, 우리 동네로 찾아오신다.
우리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시기 위하여, 우리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서 거룩하고 원대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구원의 포부를 우리들과 함께 동역해 가시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머물면서 우리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가신다.
L4 & B4.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며칠만 계셔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일어난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 변화의 역사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아주 잠깐의 시간으로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4-5일 아니 2-3일이라도 우리들과 함께 머무시려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와 생업터전으로, 우리 동네로 찾아오신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로 찾아오신다면 우리들은 그야말로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하여 우리 예수님을 맞이하고 영접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동네로 찾아가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반드시 찾아오실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으로 제자들을 거느리고 가버나움으로 찾아가셨지만, 우리들에게는 반드시 영의 몸으로 천군 천사들을 대동하시고 우리들에게로 찾아오신다.
반드시 영의 몸으로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머물고 우리들에게 하늘나라의 진귀하고 신령한 말씀을 전해주시고,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시고, 감격을 주시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로 세워가실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어떤 마음의 자세와 태도로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까?
① 우리들의 모든 것들을 내어드리는 헌신의 자세로 예수님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의 모든 부분에 주님 되심의 자격으로 찾아오고 싶어 하신다.
우리의 인격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손과 발에도, 우리의 살과 피부에도, 우리의 뼈에도, 우리의 얼굴에도, 우리의 입술에도, 우리의 귀에도, 우리의 코에도 주인의 자격으로 찾아오고 싶어 하신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의지에도, 우리의 학문과 지식에도, 우리의 뇌리에도 주인의 자격으로 찾아오고 싶어 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모든 것들, 하나도 빼놓거나 숨기거나 거짓 없이 다 내어드리면서 ‘우리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부분에 온전한 주님의 자격자로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라는 신앙의 고백을 드리는 자세로 예수님을 맞이하여야 한다.
②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복음을 묵상하고 사랑하고 자랑하는 맘으로 예수님을 맞이해야 한다.
개혁교회 신앙인들은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음의 대상으로 고백하며 사는 신앙인들이다.
샤마니즘, 토템이즘과 같은 무속신앙과 전통과 결탁된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WCC처럼 종교통합, 종교다원주의라는 미명 아래 혼합주의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로마 카토릭교회의 잘못된 교리와 교회력을 마치 예수님을 향해서 절대적인 신앙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수용하면서 교회의 전통을 따라가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었던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음의 대상으로 고백하며 교회의 순결성과 거룩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3가지와의 치열한 영적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내야만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첫째는 우리 한민족의 심령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샤마니즘, 토템이즘과 같은 무속신앙 세력, 민속전통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해마다 00해, 00띠 이야기하는 것은 토템이즘에 의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깊은 심령 속에 꽈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는 이 무속신앙이라는 것은 가나안 땅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과 그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를 반드시 쫓아내라고 선포하신다.
둘째는 로마 카토릭교회의 잘못된 교회력과 교리를 그대로 흡수하여 따라가려는 교회 전통을 앞세우는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특히 부활주일 전에 사순절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내세워서 지키는 것은 이방종교인 바벨론전통종교를 그대로 흡수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로마카토릭교회 세력이 바로 인본주의, 헬레니즘이다. 세상의 권력들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속화, 권력화하려는 헬라사상, 로마사상에 근거를 둔 것들이다.
셋째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허물과 실수의 틈을 타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온갖 종류의 이단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내야만 한다.
이런 암적인 세력들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반드시 주님의 몸된 한국교회가 이겨내려고 한다면 다시 한번 더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와야만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올바르게 배우고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성경을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영적인 리더쉽들, 목회자들, 신학자들이 성경을 올바로 배워야 하고,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
영적인 리더쉽들, 목회자들이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전하지도 못하는 어리석음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후죽순처럼 이단 세력들이 독버섯처럼, 암세포처럼 돋아나고 생겨나는 불행한 현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을 우리의 전 영역에 주님으로 맞아드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전 영역에 머무실 수 있는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은 성삼위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배우고 알아야 한다.
우리들은 하늘 아버지에 대해서도 올바로 배우고 알아야 한다.
우리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올바로 배우고 알아야 한다.
우리들은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올바로 배우고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성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만큼 우리의 믿음의 수준도 향상되고 자라고 성숙해질 수 있다.
오늘 우리들이 뼈저리게 느끼고 고백해야 하는 믿음이란 우리 주님을 마음을 다하여 맞이하는 것이다.
주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주님의 두 손을 맞잡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이 가시밭길과 같은 험난한 삶이 되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이 챙겨야 할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