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궁도의 세계화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06-01-21
한국 궁도의 세계화
국궁이 우리 민족의 전통무예이며, 정신적인 가치창출을 위한다면, 전통과 문화적 이미지와 어울리는 복식 착용과, 전통 의식을 갖춘 경기진행이 필요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제일먼저 궁도의 의식화와 대중화를 위한 기반확대 조성이 요구된다. 전통이란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조성이 필요하며, 원한다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하며, 반대로 궁사의 우아한 궁체와 묘미를 관전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도가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있다면 더할 수 없다 하겠다. 일본의 쓰모(민속씨름), 몽고의 나담축제를 통한 마술이나 궁도는 마치 민속적이면서 성스러운 의식을 가미하고 있다. 우리의 국기인 씨름이 전통스포츠로 정착하기 위하여 노력한 씨름계의 사례를 통하여, 국궁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씨름계는 제일먼저 선수와 임원들 복식을 통한 의전에서 시작하여, 각종 용어의 정립을 비롯하여, 경기규칙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통하여 학교스포츠로 발돋움하여 학술화와 함께 후진양성을 위한 체계를 갖추었으나, 우리의 국궁은 아직 아무런 준비조차 않고 있다. 몽고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한 조선조 4대 군왕이었던 세종대왕은, 몽고의 120년간의 침탈로 인하여, 철저히 멸실되어 사라진 우리의 전통문화는 물론, 민족혼이 깃든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하여 노력한 군왕이었다.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우리보다 주변국의 기록된 역사서에서 찾아야 할 정도로, 너무나 철저히 파괴된 역사에서, 민족의 얼이 스며있는 전통문화의 맥을 많이 되찾기는 하였지만, 무예관련 분야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목판본 4권 4책으로 정조에 의해 편찬의 방향을 잡은 후, 이덕무와 박제가에게 명하여 1598년(선조31) 한교(韓嶠)가 편찬한 무예신보 내용을 합하고,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단병기법에 대한 내용을 추가한 병기의 사용기술을 그림을 통하여 전투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만든 군사전투 교련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놓고, 200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 마치 우리의 전통무예로 둔갑하려 하고 있음에 반해, 우리의 국궁은 아직 일제 식민시대의 잔재조차 털어내지 못한채, 변질과 왜곡된 내용을 정립하려하고 있다. 서구의 츄리닝(Training) 복장에, 일본 무예문화의 정간(正間)배례 문화, 일장기 과녁을 비롯하여, 사두, 사범 등의 제반 용어가 모두 일본 문화의 잔재임에도 청산치 못하도록 방치하기 위하여 이 땅의 국궁을 문맹화 하였다고 본다. 자국의 역사와 문화적인 기록을 중시하는 일본은 원래가, 우리의 문화를 전수받아 온 나라였으나, 오늘날 자신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정도로 강하고, 무예문화는 일본의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국기로 장려하고 있다. 일본이 국기로 내세우고 있는 무예로 궁도, 검도, 유도를 三武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외에도 일본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 민속씨름인 스모가 있다. 일본의 궁도(弓道-큐도)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1949년에 일본 큐도협회 창설과 함께 스포츠로 변신하면서 새로운 변신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변신이란, 자국 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으로, 3대 국기종목 모두가 일본을 알리는 전통문화로 국제적인 발판마련을 통하여 위상을 갖추고 있다. 일본의 전통무예에 대한 적극적인 행보와 함께, 국민스포츠로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생활스포츠로 학교 과외활동 스포츠로 장려하였다. 초기 ‘큐도(弓道)’ 시합에서 선수들은 28 - 60미터정도 떨어져 있는 과녁을 향해, 약2.21미터 길이의 나무와 대나무를 붙여서 만든 개량활을 사용하였는데, 이 활의 이름을 우리처럼 개량궁이나 카본궁이라는 비하적인 표현대신 당시 일본 천황이 사용하던 연호를 붙인 소화(昭和)의 화를 국함(國銜)으로 삼아 和弓이라는 일본 전통 궁과 같은 이름으로 사용케 하였다. 아울러 당시로서는 적중력에 중점을 둔, 양궁과의 차이점을 두기 위하여 일본 ‘큐도(弓道)’는 사격종목군의 점수제가 아닌, 무예의 자세(形)인 사법8절을 통한 절도있는 자세에 비중을 두는 정신 스포츠로 운영하였으나, 점차 궁사의 기량이 향상되면서 현재는 자세와 함께 적중력을 가미한 동양의 신비한 스포츠로 발전하면서, 용어도 동양궁(Orient Archery)이라 하지 않고 규도(弓道)라는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국제적인 입지를 강화하고 있으며,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85-1333년)에 시작하여, 아직도 카마쿠라(동경에서 기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의 ‘츠루가오카 하치만구’(鶴岡八幡宮) 신사에서,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야부사메’라는 마상궁도를 전통스포츠로 정립하여 일본에서는 최고급 스포츠라기보다는 신분을 과시하는 스포츠로 정립하였다.
일본 카마쿠라의 야부사메(마상궁술)는 관중(的中)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정신적 전통 의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우리도 말을 타고 활을 쏠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용어를 비롯하여 복장을 통하여 보여 지는 내용이 우리의 전통 마술(馬術)이 아닌, 서양의 승마장인 것이라는 점이며, 우리의 전통 마술에서 사용하는 말이 조랑말이라는 어이없는 강론을 펼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우리의 전통 역사성에 대한 학술적 정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국기제정과 함께 ‘큐도’의 국민스포츠로 장려하기 위해 학교체육 프로그램의 일환인 과외활동교육에서 시작하였지만, 저변 인구수가 10만명 정도라 하였다. 현재 일본은 국기인 궁도의 체험학습을 위하여, 궁도장마다 모두 연습용 화궁 지원을 통하여, 교육과 저변확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일본 화궁의 세계화를 위하여 학술적인 사업을 문부성이 지원하고 있으며, 계층별 경기의 생동감을 높이기 위하여, 계층별 사거리를 양궁과 같이 다양화하는 조치와 함께, 해외지역에서도 자국민이 거주하는 지역에 화궁장을 만들어 놓고 세계인을 위한 보급과 저변확대를 위하여 교습서를 비롯하여, 공인사범 파견 등을 통하여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인의 자국 전통문화 보급에 비해 늦기는 하였지만, 우리 교민 또는 우리 고려궁을 다룰 줄 아는 외국인들에 의해 우리의 국궁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문제는 우리의 활을 가르치는 방법이, 다른 나라 활과 비교하여 성능은 물론 사법의 오묘한 과학성에 비해 가르치는 방식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수한 고려궁에 대한 호감과, 엄지손가락 만으로 강한 활을 부드럽게 쏠 수 있다는 사법에 대하여, 방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원리를 설명하여야, 우리 활에 대한 우수성에 매료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우리의 전통문화인 국궁의 저변확대를 위한 정책적인 단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부터 고려궁을 국궁에 입문하려는 일반인은 물론 학교 동아리 스포츠로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문화의 맥을 함께할 수 있는 전통 국민스포츠 보급을 위한 방안과 함께, 우리의 사법에 대한 학술화를 통하여 학교체육 스포츠로서의 학문적 기반조성 준비가 필요하다. 엄지손가락을 이용한 사법에 대한 명칭도 조선사법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부여하여 우리의 국궁용어의 홍보와 함께 논리적인 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일본 쓰모는 서양의 레슬링과 동류이지만, 일본의 국기적인 전통스포츠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스모(相撲)에 대한 내용을 통하여, 우리 국궁이 전통문화로서의 가치창조를 위하여 어떨게 하여야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살펴았다. 고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마와시’(回し-샅바)와 ‘오이초’(은행잎으로 올린)라고 불리는 독특한 머리 모양과 함께 스모는 ‘도효’(밀집으로 만든 높은 경기장)와 순위 제도 등의 전통적 관습을 따르고 있는 종교적 의식과 결합되어 있다. 스모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0-1868년)에 와서야 전문 스포츠가 되었으며, 현재 스모는 아마추어 협회뿐 아니라, 고등학교와 대학의 부서 활동으로 독점적 남자스포츠로, 국제적 관전스포츠로 잘 알려져 있다. 선수층에 대한 기준의 폭도 인종에 구별을 두지 않고 있어, 세계 각 나라별로 전문 스모선수가 출현하여 현재는 국제적인 스포츠로 부각돠고 있다. 스모 경기의 목표는 선수들이 상대방을 ‘도효’ 밖으로 밀어내어 발바닥 외의 몸 일부를 만지게 하는 것이다. 경기장 중앙에서 시합이 붙기 전에 두 명의 선수들은 두 팔을 벌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쪼그려 앉아서 상대편을 노려보는 의식을 치르며, 경기장을 정화시키기 위해 한 움큼의 소금이 허공에 뿌리는 이러한 워밍업이 끝난후 시합은 몇 초안에 끝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떤 선수들은 몇 분이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시합을 끝내기 전에 휴식시간을 갖기도 한다. 스모의 승부기술은 70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상대방을 던질 수 있는 허리띠의 손잡이를 사용하여 링 밖으로 밀거나 들어올리기, 공격하는 동안 가장자리로 재빨리 뛰기, 상대방이 균형을 잃도록 손바닥으로 치기, 상대방을 링 밖으로 던지기 위해 넘어지기 전에 가장자리로 파고들기 등이 있다. 스모는 위엄과 침착함으로 특히 존경을 받는다. 심판의 판정에 대한 항의나 형편없는 스포츠 정신 등은 용납되지 않는다. 상체를 손바닥으로 치는 것은 허용되나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등의 행동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리고 시합이 계속 대등하게 진행되어 심판의 판정으로 승자가 가려지더라도 승자 혹은 패자는 항의할 수 없으며 미소나 찡그림 이상의 표현을 해서도 안 된다. 스모의 등급에는 내림차순으로 ‘요쿠즈나’(그랜드 챔피언), ‘오제키’(챔피언), ‘세이키 와케’(주니어 챔피언)가 있다. ‘요쿠즈나’는 스모의 영구적인 순위이다. 요쿠즈나 선수들은 결과가 좋지 않은 시합으로 인해서 강등되지는 않지만 그들의 지위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지 않게 되면 은퇴해야 한다. 스모의 대중적 인기는 열렬한 팬이었던 히로히토 천황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1955년 5월의 토너먼트 대회를 시작으로 히로히토 천황은 동경에서 열리는 각 경기에 하루씩 꼭 참석하여 귀빈석에 앉아 관람하곤 하는, 이러한 관습은 다른 왕족들에게도 계승되어, 외교사절이나 방문인사들도 종종 스모경기에 초대받는 스모는, 현재 많은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어, 1960년대 이래로 미국과 캐나다, 중국, 한국, 몽고, 태평양의 통고 등의 젊은 레슬링 선수들이 스모를 배우러 일본으로 왔는데 그 중의 일부는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성공한 대표적인 선수로 1993년 하와이에서 온 미국인 ‘아케보노’는 ‘요코즈나’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하여 정보화 사회에서 전통문화의 국제화는 지식창출을 통하여 이루어진 결과이며, 국제화할 수 없는 문화는 도태되어 사라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사법무예보통지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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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