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ss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에서는 참전 군인을 정치· 행정 영역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제도화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들을 새로운 엘리트로 규정했고, 실제로 참전 군인을 핵심 인재로 육성하는 국가 프로그램까지 출범시켰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이미 대통령 행정실과 연방 정부, 지방 정부의 주요 직책에 진출하고 있으며, 이들을 육성하는 제도 역시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참가자들은 실제로 어디에 배치되고 있을까? 더 나아가 러시아는 왜 참전 군인을 새로운 권력 엘리트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일까?
◇전쟁 영웅을 국가 엘리트로:'영웅의 시대' 프로그램의 탄생
'영웅의 시대'(Время героев)는 우크라이나 전쟁, 즉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과 참전 용사를 공공 부문 관리자로 양성하기 위해 출범한 대통령 주도의 인사· 간부 양성 프로그램이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 2월 29일 연방 의회 국정연설에서 이 프로그램을 처음 발표했다. 그는 "진정한 엘리트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이라며 "기업인이나 기존 관료보다 전쟁을 경험한 군인들이 앞으로 러시아를 이끌어갈 새로운 엘리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튿날인 3월 1일부터 대통령 프로그램 '영웅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러시아 대통령 산하 국민 경제·공공행정 아카데미의 고등 공공관리 학교가 운영하며, '세네쥐(Сенеж)' 관리 워크숍에서 축적된 인재 선발과 교육 경험도 활용하고 있다.
'영웅의 시대' 프로그램 이미지(엠블렘). 국가(국립)고위교육과정(학교)으로 규정돼 있다 /사진출처:홈페이지
지원자는 '영웅의 시대' 홈페이지에서 에세이를 작성하고 관리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을 치른다. 일부 지원자는 추가 면접을 거친다. 최종적으로는 관리 경험과 리더십 잠재력, 군 공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교육 대상자로 뽑는다.
선발된 참가자들은 약 2년 동안 국정 운영과 지역 행정, 경제·재정, 디지털 행정 등을 교육받는다. 교육 과정에는 현장 실습과 멘토링도 포함된다. 연방 장관과 대통령 행정실 관계자, 연방 주체 수장(지자체 단체장) 등이 멘토로 참여하며 참가자들은 정부 부처와 지방정부, 국영 기업 등 주요 공공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다.
선발 경쟁도 치열했다. 2024년 출범한 1기에는 6만 5천 명 이상이 지원했지만 최종 선발된 인원은 83명에 불과했다. 2025년에는 2만1,644명이 지원했는데, 85명이 2기 참가자로 선발됐다.
'영웅의 시대' 프로그램은 참전 군인에 대한 지원이나 보상에 그치지 않는다. 선발과 평가, 교육, 멘토링, 공직 진출을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보훈 정책과 차이가 있다. 국가가 참전 용사를 직접 선발하고 교육해 정치·행정 인재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러한 방식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중앙 프로그램을 본뜬 자체적인 참전 용사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여러 지역에서 잇따라 출범하면서 '영웅의 시대' 모델은 러시아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유대인 자치주의 '힌간의 용맹'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영웅의 시대' 등과 같이 명칭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운영 방식은 중앙 프로그램을 모델로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만든 인재 양성 체계가 지방 정부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참전 군인을 정치·행정 엘리트로 육성하는 제도가 러시아 전역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훈장에서 직책으로:1기 참가자들은 어디로 갔나?
그렇다면 '영웅의 시대'는 실제로 새로운 국가 엘리트를 만들어 내고 있을까?
2025년 12월 푸틴 대통령은 매년 연말에 진행하는 '국민과의 대화(및 기자회견)'에서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근황을 직접 소개했다. 그는 "(참가자) 일부는 연방 정부 부장관과 연방 주체 주지사가 됐고, 대통령 행정실과 국영기업에서 근무하는 참가자도 있다"며 "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를 내렸다.
실제로 1기 참가자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아르툠 조가는 연방 우랄관구 대통령 전권 대표로 임명돼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를 연결하는 핵심 직책을 맡고 있다. 예브게니 페르비쇼프는 탐보프주 주지사 권한대행을 거쳐 주지사에 당선됐으며, 알렉세이 콘드라티예프는 쿠르스쿠주(州)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2026년 6월에는 1기 수료생 스뱌토슬라프 하리토노프가 로스토프주(州) 농업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영웅의 시대' 프로그램 출신 인사들이 주지사나 대통령 전권 대표와 같은 고위직뿐 아니라 지방 정부의 고위 실무진으로도 진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다른 사례는 유대인 자치주 주지사 권한 대행으로 임명된 마리야 코스튜크다. 그녀는 1기 참가자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 책임자였다. 참가자의 발탁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프로그램에 관여한 인사가 지역의 최고 행정 책임자로 기용됐다는 점에서 '영웅의 시대' 프로그램의 정치적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9월 총선을 통해 의회(국가두마, 하원)에 진출한 '영웅의 시대' 1기 출신 블라디슬라프 골로빈/사진출처:vk
이러한 인사는 몇몇 인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6년 2월 기준, 1기 참가자 가운데 70명 이상이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후속 인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웅의 시대'가 단순한 시범 사업을 넘어 참전 용사를 국가의 정치·행정 인재로 편입하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이러한 방식으로 참전 용사를 새로운 국가 엘리트로 충원하려는 것일까?
◇훈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영웅의 시대' 프로그램을 참전용사 지원 정책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존립과 미래를 결정하는 역사적 과업으로 규정해 왔다. 이러한 인식 아래에서 전쟁 참여 경험은 단순한 군 복무 경력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헌신했다는 상징적 자격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참전 경험이 국가와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증표이자 정치 및 행정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자격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영웅의 시대'는 이러한 참전 경험의 상징적 가치를 실제 정치·행정 영역으로의 진출을 연결하는 제도적 통로라고 볼 수 있다. 참전 용사에게 명예와 보상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직접 선발하고 교육해 국가의 관리 인력으로 편입한다는 점에서다.
동시에 이 프로그램은 전쟁 이후 달라지고 있는 러시아 엘리트 충원 방식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그동안 행정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를 적극적으로 등용하며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왔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는 전문성과 관리 역량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봉사와 체제에 대한 충성도 중요한 인사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존 관료 엘리트가 곧바로 참전 용사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는 기존 관료제의 교육과 평가, 멘토링 체계에 참전 용사의 전쟁 경험과 충성 서사를 결합해 새로운 인재 풀을 만들고 있다. 참전 용사에게 별도의 행정 교육을 제공한다는 사실 역시 전쟁 경험만으로 복잡한 국가 운영을 담당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장기적으로 성공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전장에서 발휘한 용기와 지휘력이 곧바로 행정 능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정치적 상징성과 충성심만으로 복잡한 국가 운영을 수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새로운 엘리트'라는 표현에도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일부 참가자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부터 군과 지방 정부, 의회, 공공기관 등 국가 권력과 일정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웅의 시대' 프로그램을 기존 권력 구조와 무관한, 완전히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오히려 전쟁 경험과 충성의 서사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아 기존 인력을 선별적으로 권력 구조 내로 편입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결국 '영웅의 시대' 프로그램의 핵심은 참전 용사에 대한 복지나 보상 그 자체가 아니라 전쟁 경험을 정치적, 행정적 자격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러시아에서 전쟁이 더 이상 전선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 엘리트를 선발하고 육성하며 이들의 권력 진출을 정당화하는 기준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 유능한 행정가를 길러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푸틴 체제가 전쟁 경험을 충성과 명예, 교육과 승진의 언어로 연결해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참전 군인에게 수여된 훈장은 더 이상 군 경력의 종착점이 아니다.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