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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요 7:37-39)
지난 주에 이어서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 성전의 동쪽 바깥문 밑으로 흘러나와 점점 깊어지면서 계속 동쪽으로 흘러 황무지인 아라바골짜기를 거쳐 죽음의 바다인 사해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물이 가는 곳마다 살려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황무지가 옥토로 바뀌고 죽음의 바다인 사해까지 살아나 물고기가 뛰어노는 생명력이 넘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저 받기만 하고 흘러보내지 못하는 사해바다가 아니라 갈릴리 바다처럼 흘러보냄으로 생수의 강의 흘러넘쳐 생명이 넘치는 양문교회와 성도, 그래서 여러분 모두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생수의 강이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에 푹 젖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 만 아니라 그 은혜를 흘러보내어 이웃을 살리는 생수의 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지난 주에 인천에 있는 영성훈련학교를 다녀왔습니다. 600여명의 성도들, 그가운데는 목사님과 사모님들, 장로님, 집사님들이 함께 모인 집회였습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영성훈련은 밤 12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스케줄에 의해 몇 번의 집회를 갖는 것이 아니라 밥먹는 시간 외에는 전부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는 시간입니다. 또 그 교회당은 의자가 없었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데 육신적으로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저는 목감기까지 걸려 큰 소리로 기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인 성도들의 기도소리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매 시간마다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사탄의 진을 깨트리고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불을 사모하는 특별한 집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양문교회가 생수의 강이 되어 성령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로 변화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여주셨고 그곳에 참석해서 먼저 은혜를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갈급한 자에게 부어 주십시다. 갈급함이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고 있습니까? 영혼이 건강하다면 당연하게 갈급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건강한 육체는 밥을 먹지 않으면 금방 배가 고픕니다. 육신의 양식을 갈급해합니다. 만약 밥을 먹지 않는데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병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더욱 깊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발목으로 출석하는 은혜, 무릎으로 기도하는 은혜, 허리로 섬김을 실천하는 은혜. 그래서 병든 사람, 어둔 세상을 살리고 고치는 이 귀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너희는 목마른 자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목마른 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이런 목마름을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는(암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서 목마르게 살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영혼이 목마른 줄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영혼의 갈증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욕구를 충족하면 만족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병사들이 사막에서 죽었습니다. 영국의 병사들이 사막을 걸어가는데 목이 너무 말랐습니다. 그러다가 그들 눈에 신기루가 보였습니다. 저 사막 끝에 강물이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심으로 그곳에 뛰어가서 첨벙첨벙 물속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한껏 물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다 죽었습니다.
얼마 후 정찰대가 그들을 찾았는데 그 병사들은 모두 목에 모래가 가득 차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모래를 물인 줄 알고 마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생명수가 아닌 것을 생명수인 줄 오해하고 그것을 마시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영혼의 목마름으로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 전에 세계적 대부호였던 미국의 하워드 휴즈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1905년에 태어나서 71세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영화사, 방송국, 항공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가진 대기업의 총수였습니다. 한때 헐리우드 영화배우들과 수많은 염문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휴즈는 대인기피증이 심해 은둔생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45세 때부터 완전히 외부와 단절하며 숨어 지냈습니다. 말년에는 비밀리에 여러 나라를 수시로 옮겨 다니며 무균실을 만들어 외부와 차단하고 그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해치지 않을까'하는 노이로제에 걸려 의심하며 계열사 사장들에게도 전화나 마이크로 지시하고 직접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잠도 자지 않고 며칠씩 연구에 몰두했으며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 의심하여 지나치게 적은 음식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쇠약해져서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그는 닭고기와 쥬스만 마셨으며 이발사를 두려워하여 머리를 길게 기르고 손톱도 깎지 않고 짐승의 발톱처럼 긴 상태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가용 비행기로 병원에 가다가 죽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많은 아내들과 자식들이 있었지만 그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가 남긴 재산은 당시 최고 금액으로 2조 4천억원이었는데 남은 가족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휴즈는 숨을 거두기 전에 반복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Nothing, Nothing' 즉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없다. 헛되고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의 허무한 삶의 대표적인 말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손꼽을 만한 부자였지만 그가 죽을 때 남긴 말은 '헛되고 헛되다'는 말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누구의 이야기입니다. 전도서에 나오는 솔로몬왕의 고백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취하여 보았는데 해아래있는 모든 것은 다 헛되다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져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으나 그것은 물을 채워 놓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 인생들에게 '너희는 목마른 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돈이 있어도 목마르고 지위가 있어도 목마르고 권세가 있어도 목마르고 쾌락을 가져도 목마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체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느끼든 느끼지 않든 내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도 영혼도 갈급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영혼의 갈망을 육체가 원하는 것을 채운다고 만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게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쾌락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풍요로운 삶을 즐기고 온갖 과학적인 이기를 누리고 있어서 외형적으로 볼 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 내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이것들은 참된 행복의 양식도 아니고 삶을 배부르게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마음의 영양실조에 걸리고 죄책과 정죄감, 허무와 무의미, 죽음과 미움, 공포, 열등의식, 좌절감 속에서 날마다 고통당하며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려고 사람들은 온갖 정열을 다 쏟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점쟁이 숫자가 3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구 160명당 한 사람이 점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쟁이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그곳을 찾아가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이렇습니다. "답답해서 갑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안타까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남녀노유를 가리지 않고 술, 마약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을 뉴스에서 듣고 있습니다. 청소년들까지 마약을 섭취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심각한 상태가 분명합니다. 나이트클럽이나 락카페에서 많은 젊은 남녀들이 밤새도록 몸을 흔들어대고 괴성을 질러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하는 것이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영혼의 갈증으로 인한 육체의 몸부림입니다.
아모스 8:12,13절에 나오는 예언을 보는 듯합니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이 현실은 비틀거리는 상황이요, 피곤한 상황이요, 목마름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목마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목마름은 세상의 그 어떤 물질로, 명예로, 권세로 채울 수 있겠습니까?
2.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37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돈에게 가라. 지위나 명예에게로 가라. 권세에게로 가라. 세상 쾌락으로 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만이 우리 인생들의 목마름을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2절에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지위나 명예나 권세 관계없이 부귀가 있든지 없든지 관계없이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돈없는 자도 와서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갈증을 깨닫고 주님으로 인하여 그 목마름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값을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생명수를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사먹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너무 쉬우니까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말 소중한 것으로 돈으로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돈으로 살수 있겠습니까?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주께로 나아오는 자, 곧 주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내 영혼의 갈급함을 알고 주님께 나아오는 자가 바로 믿는 자입니다. 주님께 나아와서 믿음으로 간구합니다. 그냥 가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갈망이 있는 사람, 자신의 갈급함을 아는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갈망은 부르짖음으로 바뀝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음이 믿음입니다. 갈망이 없는 사람은 부르짖지 않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부르짖지 않습니다. (약 4:2)"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요즈음 여러분에게 영혼의 갈망이 있습니까? 하나님앞에 나아와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반드시 들어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구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구하면 주실 것입니다. 부족함이 있습니까? 구하십시오.
구하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한 만큼 얻을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십시오, 금요성령기도회에 나와서 부르짖으시오. 가만히 있으면 속에서 응어리져서 병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아와서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생수의 강을 접하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주님께서는 37-38절,"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배라는 말은 우리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즉 깊은 영혼 속에서 생수의 강물이 넘쳐 납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넘쳐 나오는 강물이 아닙니다.
우리 뱃속에서 넘쳐 나옵니다. 머릿속에서 우리가 의심하고 궁금해하고 연구해서 나오는 생수의 강이 아닙니다. 뱃속에서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저는 저와 여러분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기쁨, 감사, 찬양, 축복을 누리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에 임한 성령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날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강은 바로 구원의 강인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강물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는 사람들입니다.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쓰임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일에 쓰임받는 사람은 남도 죽이지만 자기 자신도 죽는 어리석은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닙니다. 남을 살리는 일에 온전히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배속에서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성령의 능력이 흘러 나와서 나를 만나는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생명을 살립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그 배에서 말씀이 충만하고 그 배에서 말씀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묶고있던 모든 죄악의 사슬에서 풀고 우리를 자유케하고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롬 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러분속에 흐르는 생수의 강이 구원의 강물이 되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강은 치료의 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치료의 강이 넘쳐 흐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치유의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사복음서를 읽어 보십시오. 주님은 병든 자를 지켜보는 분이 아니십니다. 고치고 싶어하십니다. 온전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병든 자를 찾아가서 "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주님은 그리고 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주님의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주님의 능력으로 치료받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속에 생수의 강이 넘쳐날 때 우린 모든 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생수의 강은 능력의 강입니다. 성령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은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속에서 우리를 감동하시고 우리를 감화시키시고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믿지 못하고 우리가 순종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소멸되고 성령님이 탄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눈을 뜨세요. 우리가운데 계신 성령님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앞에 있는 요단강이 갈라지고 우리앞을 가로 막고 있는 여리고성이 무너지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수의 강입니다. 생수의 강은 힘이 넘칩니다.
모든 것을 살립니다. 죽은 것을 살립니다. 병든 것을 치료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내 속에서 흘러넘쳐서 내 주변을 적시고 내 가정을 적시고 내 이웃을 적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가만히 앉아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감동하시는 대로 우리가 순종할 때 성령님은 기뻐하십니다. 성령이 기뻐하실 때 나도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영혼의 갈급함을 깨닫고 성령님을 사모하십시요, 성령은 사모하는 자들에게 역사하십니다. 사모함으로 기도하고 사모함으로 말씀을 듣고 사모함으로 순종할 때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의 배속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어질 때 비로소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에 제자들은 한 마디로 무력했습니다. 아무리 결심해도 그 결심이 소용없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그때뿐입니다.
그 때는 좋은 데 실제 삶의 현장에 가면 전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십자가의 고난이 다가오자 다 도망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함을 받자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기 시작하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듣는 자들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갈망하는 것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실 뿐 만 아니라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살고 우리의 가정을 살리고 우리의 이웃을 살리고 우리 교회를 살리는 생수의 사람으로 온전히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