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과의 시조, 영일회(營一會)를 소개합나다.
오늘날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의 전신은 상과대학이다. 1946년 서울대학교 발족 시 상과대학은 상학과, 경제학과로 출범하였고 1959년 무역학과가 신설되어 3개학과로 유지되어 오던 중 1961년 5.16 군사혁명으로 1962학년도부터 학제에 변화가 있었다. 입학정원이 40% 감축되고 기존 3과 외에 경영학과가 추가로 신설되었다. 1962년도 상과대학 입학 정원은 190명(상학과 75명, 경제학과 50명, 무역학과 20명에 신설된 경영학과 45명)이었다. 종전 320명(상학과 150명, 경제학과 150명, 무역학과 20명)에서 190명으로 40%나 감축되었다. 그 후 국방부 위탁교육생 7명이 경영학과에 추가로 배정되어 경영학과 입학 인원은 52명이 되었다. 1962년도에 신설된 경영학과 52명의 입학동기생(1기생) 모임이 바로 영일회(營一會)이다. 한국의 경영학은 1960년대 이전에는 이렇다 할 독자자적인 발전을 못한 채 일본에서 교육받은 학자들에 의해 독일의 경제경영학을 원용, 교육했으나, 6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각 대학에서도 선진 미국의 경영학을 도입, 경영학 강의가 이루어졌다. 서울대학에도 1962 학년도에 상과대학에 경영학과가 개설된 것이다. 경영학과가 새로 신설되면서 이듬해인 1963년도에 학술연구기관으로서 상과대학 부설 한국경영연구소도 새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5년 뒤 1968년에 경영대학원이 개원하게 되었다. 그 뒤 1975년 3월 관악캠퍼스로 이전과 함께 학제 개편에 따라 상학과는 경영학과에 통합되고, 경제학과와 무역학과는 사회과학대학으로 통합 출범되어 경영대학에서 분리되었다. 상과대학은 경영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따라서 경영대학은 경영학과 단일 학과로 분리 독립하였다. 1962년 당시 상과대학 교사는 성북구 종암동(현 서울대 사대부설중)에 위치했다. 신설 경영학과가 등단함으로써 상과대학 내에서도 은근히 주도권 경쟁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학과는 기존의 기득권을 강조하며 우리가 본과(本課)라고 했고 경제학과는 상대의 진과(眞課)는 역시 경제학과라고 주장했다. 또 이제 상과대학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다 라는 것이 경영학과의 주장이다. 과별 학생 수가 적어짐으로써 과별 단체모임도 생기기 시작했다. 경영학과의 영일회(營一會), 무역학과의 상무회(商貿會)가 그것이다, 특히 경영학과는 45명이라는 단출한 학생 수로 야외 소풍행사도 가졌는데 하루 종일 무단으로 수업에 불참하는 사건이 발생해 화젯거리가 되었다. 학과 시간에 수업을 단체로 빼먹고 태능에 있는 서울여대로 봄소풍을 갔던 것이다. 학교 당국에서는 학장까지 보고되어 당시 최문환 학장이 서울여대까지 찾아 나서고 야단을 쳤다는 내용이다. 이를 증명하는 사진 한 장이 2012년 3월 힐튼호텔에서 있은 입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공개된 것이다. 더구나 150명이나 되는 오상회 부부 모임이어서 한바탕 웃음꺼리가 되기도 했다.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우리 상과대학 연애선수야!”마치 교가나 응원가인양 열심히 불러대던 학창시절의 낭만을 보는 것 같다. 60여년이 지난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이다. 영일회는 경영학과 1회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으로 결속력이 강하고 활동적 성향으로 20회 동기(오상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5월1일 교대역 부근에서 15명이 참석하여 영일회 정기모임을 가졌는데 1962년 입학 후 62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의미가 새로웠다. 60년대 당시는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산업화 초기 단계이므로 졸업 후 동기생 대부분이 산업계로 진출해 경제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고 관계에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구제금융 신청으로 유명세를 탔던 임창열(林昌烈) 전 경제부총리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한철수(韓哲洙)대장 등이 영일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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