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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제6강
지혜자의 교훈이 생명샘이다
말씀 / 잠언 12,13장
요절 / 잠언 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미국의 유명한 강연자인 지그 지글러 박사가 어느날 뉴욕 지하철을 타러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데 어떤 거지가 연필을 들고 1달러만 달라고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지글러 박사는 1달러를 던져주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 말했습니다. “아까 준 1달러만큼 연필을 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구걸한 것이 아니고 돈을 받고 정당하게 물건을 판 것입니다. 작지만 분명 사업을 한 것입니다. 이 말 명심하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거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거지가 아니라 사업가구나.” 지글러 박사의 ‘당신은 사업가다’라는 말 한마디에 그의 자화상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그동안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 거지라는 자아 인식을 가지고 살았는데 사업가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고 열심히 사업을 해서 후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지글러 박사를 찾아왔더라는 것입니다. 지글러 박사가 1달러를 주면서 거지 취급하지 않고 “당신은 사업가야” 했던 그 말 한마디가 양약이 되어 그의 마음에 실패 의식과 열등감과 내면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사업가로 변신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말은 어떻게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듣는가도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말을 잘 듣는 지혜와 말을 잘하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더불어 경제생활에 대한 지혜를 말씀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말을 잘 듣는 지혜
12장 1절을 보십시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인간은 타락한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온갖 죄와 욕심이 그 사람을 삼키고 결국은 괴물이 되게 만듭니다. 사람은 다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훈계(discipline)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그 말씀 앞에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징계(correction)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와 선생은 자녀와 제자들을 훈계하고 징계합니다. 훈계는 책망하고 훈련하여 연단하는 것입니다. 징계는 삶을 올바르게 교정해 주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훈계든 징계든 그것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칭찬은 달지만 훈계와 징계는 쓰기 때문입니다. 책망 듣고 훈련 받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훈계와 징계를 잘 듣고 받아들여 순종하면 양약이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그러나 훈계 받기를 싫어하고 반발하면 그에게는 더 이상 누구도 훈계해 주지 않습니다. 징계를 싫어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짐승’에 해당하는 원문은 ‘이성이 없는 멍청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훈계받고 징계받는 것을 싫어하고 반발하면 ‘생각 없는 사람’ 속된 표현으로 ‘골 빈 녀석’이라는 말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훈계해 주는 것은 나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에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제 어린 시절도 돌이켜 보면 부모님과 선생님이 끊임없이 훈계하고 징계하셨습니다. 버릇없는 행동, 나쁜 행동을 할 때는 가차 없이 훈계하시고 징계의 회초리도 드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향한 부모님과 선생님의 사랑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훈계와 징계를 잘 받아들일 때 우리의 인격과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13장 24절도 보십시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여기 ‘매’는 훈계를 의미합니다. 매는 ‘양을 치는 목자의 지팡이’를 가리키는데, 양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 ‘톡톡’ 쳐서 올바른 길로 가도록 교정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또 여기 ‘근실히’는 ‘어려서부터, 일찍부터’라는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일찍부터 올바른 길로 가고 올바르게 행하도록 훈계해야 합니다. 부모와 선생의 훈계가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잘 받아들일 때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징계와 훈련, 연단의 손길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훈계와 권고의 말씀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훈계와 징계, 즉 삶의 연단과 교정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은총을 받는 삶이 됩니다(12:2). 그러나 반대로 자기 본성대로 살며 악을 도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악을 도모하는 사람은 굳게 서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악인의 삶은 당장 화려하고 힘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쉽게 흔들리고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 등 훈련을 받아들여 회개하고 올바르게 살고자하는 믿음의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12:3).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푸르르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12장 4절을 보십시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여기 ‘어진 여인’이라는 말의 원문은 ‘강한, 유능한, 덕이 있는(graceful) 여인’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런 아내는 이스라엘의 남편들에게 있어 면류관이었습니다. 남편의 위상을 높여주고 도움을 주기에 남편들의 자랑이었습니다. 반면 ‘욕을 끼치는(disgraceful) 여인’은 남편에게 뼈를 썩게 하는 것과 같은 고통의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어떤 배우자를 얻는가가 중요합니다. 러시아 속담에 ‘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자를 얻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잠언은 ‘어진 여인’을 얻는 것이 남편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배우자가 되어야 하는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혜롭고 덕이 있어 배우자의 면류관이요,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 우리는 서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와 훈련을 받아 선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훈계의 말씀을 좋아하고 훈련을 기꺼이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13장 18절을 보십시오.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했습니다. 겸손하게 경고와 훈계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존경과 영광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훈계를 멸시하고 저버리는 사람은 결국 궁핍함과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12장 15,16절도 보십시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훈계나 권고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가 올바르다는 고집과 거만함이 있습니다. 자기 의와 자기 생각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과 행동을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훈계하고 충고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럭 화부터 냅니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 자기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나기 때문입니다. 열등감이나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면 권고나 훈계를 모욕으로 듣기 쉽습니다. 그것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지혜롭다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미련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참고 지혜자의 권면과 충고를 받아들입니다. 훈계와 권면, 훈련을 받아들여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훈계와 권고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연습을 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10).” 이것이 그의 삶의 십팔 번이었습니다. 그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했을 뿐만 아니라, 들은 말씀을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달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사무엘은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출하고, 견고한 반석 위에 다윗 왕국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평소에 하나님의 훈계와 권고의 말씀을 잘 듣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경청’이라고 하죠. 잘 들을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순종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매주 주시는 주일 말씀, 또 매일 주시는 일용할 양식 말씀에 귀 기울여 경청하고 순종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선으로 여기고 잘 듣고 순종할 때 잠언의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 말을 잘하는 지혜
지난 주일에 이어 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2장 5,6절을 보십시오.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무슨 생각과 말을 하느냐가 의인과 악인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마12:36,37).
12장 14절도 보십시오.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여기, ‘복록’은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열매 맺는 말을 하여 좋은 것을 넉넉하게 얻으며 자기가 손수 일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 열매 맺는 말을 하면 좋은 것을 넉넉하게 받는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말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에는 열매 맺는 말도 있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무의미한 말, 해로운 말도 많습니다. 우리가 열매 맺는 말을 해야 좋은 것을 넉넉하게 얻게 됩니다. 열매 맺는 말은 영적인 말, 덕이 되는 말, 진실한 말, 남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입니다. 열매 맺는 말이라고 한 것을 보면 말은 땅에 심겨지는 씨앗과도 같습니다. 우리 말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기 전에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열 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여 백성들을 낙담시켰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말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울며 하나님을 대적하자,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음 세대들이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14:28).”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 대로 행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한 것들이 그대로 씨가 되어 좋은 열매든, 나쁜 열매든 그에 응당한 열매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12장 18,19절을 보십시오.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화가 난다고 해서 함부로 저주와 독설을 쏟아부으면 그 말들은 칼로 찌름같이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와 생채기를 남깁니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말은 비수가 되어 마음에 깊이 꽂히게 됩니다. 반면, 지혜로운 말은 양약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 ‘양약’을 영어성경에는 ‘heali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지혜로운 말은 상처를 치료하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또 진실한 말은 영원히 보존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언어, 믿음의 언어, 소망의 언어, 지혜의 언어, 힘과 격려의 언어가 가득 차 있을 때 그 말이 한 사람 안에 심겨지게 되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보존되고 영원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거짓된 말은 눈 깜짝할 동안만 있다가 풀의 이슬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13장 3절도 보십시오.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지만 입을 함부로 여는 사람은 자신을 파멸시킨다.” 어떤 사람은 함부로 입을 열어서 남의 흉을 보고 비난합니다. 그러면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와 결국은 자기를 파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말을 아끼고 절제하면 자기 생명을 보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은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12장 20,22절을 보십시오.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악한 말과 거짓된 속이는 말은 악한 마음에서부터 나옵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6장 4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마음으로부터 말이 나오기에 내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훈계와 권고의 말씀으로 우리 내면과 생각이 변화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우리가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하면서 말을 해야겠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셋째, 경제생활의 지혜
경제생활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12장 9절을 보십시오.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계속해서 의인과 악인,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남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겸허한 위치에 둔 사람입니다. 그는 외적으로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높임 받고자 하지 않는 겸허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종을 부릴 만한 경제적 지위와 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가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허영이나 과시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가난한 셋집에 살면서도 과시하기 위해 에쿠스나 벤츠를 타고 다니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허세를 부리다가 핍절하게 됩니다. 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요즘은 남에게 보이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외적인 화려한 삶을 사진으로 올리며 만족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허영과 허세로 하는 것이라면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헛된 허영과 사람의 인정과 시선을 내려 놓는 사람이 삶의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천하게 여김을 받아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하고 만족하고 수고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12장 24,27절은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이야기입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13장 4절도 보십시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사는 길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반면, 게으른 사람은 남의 부림을 받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사냥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냥감이 있어봤자 소용없습니다. 눈앞에 좋은 것을 갖다줘도,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으로는 원하여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한 번뿐인 삶을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우리 마음과 또 외적으로도 풍족함을 얻고 누릴 수 있습니다.
13장 7,8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부자인 체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고 가난한 체하지만, 재물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열등감으로 부자인 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반대로 재물이 많으면서도 가난한 체하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재물이 많다고 부자인 체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난한 체하면서 부자로서의 마땅한 역할을 하지 않고 움켜쥐고 나누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못한 삶입니다.
또 재물은 협박을 받거나, 또는 생명 위기의 상황에서 자기 생명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협박을 받을 일도 없습니다. 재물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물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재물로 인해 유익이 있지만 재물로 인해 해로움도 있습니다. 재물로 생명을 구하기도 하지만, 재물로 세상을 탐닉하다가 마음이 부패해지기 쉽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와 가르침의 말씀을 따라 부지런히 일하여 재물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재물을 얻은 사람은 가진 재물을 이웃과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잠언의 재물에 관한 핵심 말씀입니다.
13장 12-19절은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비결입니다. 13장 12,19절을 보십시오.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 살맛이 납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생명나무와도 같습니다. 또 소원이 이루어지면 마음에 달다고 했습니다(13:19).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소원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잠언은 말씀합니까? 13장 13,18절을 보십시오.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 즉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상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훈계와 경고와 징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존영,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또 13장 14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이 생명샘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한 지혜자의 가르침을 잘 경청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소원을 이루고, 살맛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과일나무에 물을 줄 때에, 나무에 바로 물을 주지 않고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고랑을 파서 그곳에 물을 준다고 합니다. 나무에 바로 주면 빨리 물을 공급받아 나무에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무에서 좀 떨어진 고랑에 물을 주면, 살기 위해 스며든 물을 찾느라 뿌리를 뻗고 깊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러면 웬만한 가뭄과 비바람에도 견디는 건강한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소망을 더디 이루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로, 훈계와 징계 등 여러 인생 훈련을 영접하고 경청하고 잘 받는 사람들로 빚어가십니다.
여러분! 생명나무, 또 생명샘과 같이 우리 인생을 살맛 나게 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 권고의 말씀을 겸손히 잘 경청해야겠습니다. 말도 의인의 말, 진실한 말, 지혜로운 말, 믿음의 말,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경제 생활도 허세부리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해 재물을 모으고, 또한 얻은 재물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렇게 지혜자의 교훈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삶은 하나님께 은총을 받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이 주시는 상과 좋은 것들로 풍요롭고 만족하는 삶, 하나님과 사람에게 존귀와 영광을 받는 삶, 오늘 잠언이 약속한 이와 같은 살맛 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