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몰고 온 비는 비정하다. 카눈은 제주도를 엉망으로 만들고 매우, 천천히, 우리나라를 관통하며 북상 중이다. 강력한 비바람에 대비하라는 뉴스 속보가 끊이지 않는다. 도심에는 천변 산책을 삼가고, 강변과 지하차도에 차량 진입을 통제한다는 안전 문자가 수십 통 쌓인다.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귀가를 재촉하는 태풍의 위세는 대단하다. 전국을 폭풍으로 휩쓸면서 강력한 피해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사십 년 전 여름에도 태풍이 왔고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어머니와 새벽기도를 나섰다가 물이 불어난 화지사 계곡을 건너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되돌아가는데 산길에서 미끄러졌다. 웅장한 물소리에 거부할 수 없는 힘에 눌린 패배의 하루로 남은 기억이다. 스무 살 꽃다운 청춘이었던 나는 누군가의 슬픈 영혼이 내 몸에 들어와 울다 지친 듯 나만의 아픔을 새기며 견디고 있었다.
오래 몸이 아팠다. 대학병원에서 수술했지만, 병이 재발하여 한의원 치료를 겸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알아 온 정보인지 모른다. 민간 조약에 의존하고 심지어 굿까지 했는데도 몸이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막내딸이 아프니 집안 분위기가 우울의 끝을 달릴 즈음 어머니는 집을 팔았다.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무화과나무가 있는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집 근처 오래된 절이 있는데 좋은 기운을 가진 곳이라 정성 들여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룬다는 귀한 정보를 얻어오셨다. 바깥세상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경제 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변화에 편승하라 부추기는 시기였는데, 어머니는 오롯이 자식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셨다.
새벽기도를 다녔다. 어머니와 함께 어둑한 새벽에 집을 나선다. 도로에는 어쩌다 지나가는 한두 대 자동차뿐이었다. 인적 없는 길을 십여 분 걷다가 절 입구에 들어서는데 해 뜨기 전 그림자로 보이는 뒤엉킨 잡목 숲이 무서웠다. 좁은 산길을 걸을 때 일찍 일어난 새들의 소란한 소리를 들으면 일부러 내가 새의 단잠을 깨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 인생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세상살이에 질려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에 끌려다니면서 건강회복을 위한 희망은 가질 수 없었다. 몸 상태는 심란하여 눈물보다 한숨이 먼저 나와 두 입술을 깨물었다. 무조건 기도를 올리겠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대웅전 가는 길은 외길이다. 어머니를 따라 걸었다. 구구구 우는 산비둘기 소리가 무섭고, 바람에 나부끼는 댓잎 소리에 깜짝 놀라 순간 얼음이 되었던 내가 믿을 사람은 오직 어머니였다.
깨끗한 무화과 몇 알을 불전에 올리고 절하는 법을 배운 날, 부처님 전에 엎드려 원망을 늘어놓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어머니께 왜 나를 낳았냐고 따져 묻었던 불효가 극에 달했던 과거를 용서해 달라고 참회했다. 그러다가 천일기도를 올리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온전히 건강해지고 싶었다. 매일 부처님 앞에서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떼를 썼다.
어느 겨울이었지 싶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법당에 앉아 어머니와 나는 초와 향이 타는 고요한 시간을 함께 나누며 기도의 힘을 믿기로 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두 번 지나고 기약 없이 다가오는 봄을 맞으며 게으름이 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새벽기도를 그만두겠다는 말만은 어머니께 드릴 수가 없었다.
훌쩍 사십 년이 지났다. 화지사를 찾아간다. 생각해 보니 화지사에 다시 갈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의 기도가 통했던 것이리라.
화지공원이라 적힌 안내석이 우람하다. 동래 정씨 문중에서 부산 시민을 위해 선산 전체를 개방하여 화지 공원이라 명명하였다. 화지사는 부산 양정동 469번지 화지 공원 안에 있는 고려 시대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영호암, 만세암, 정묘사로 불린다. 그동안 숲을 반듯하게 잘 관리해서 도심공원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현장학습장이면서 동시에 마을 주민들에게 쉼터로 자리 잡았다.
정문을 통과하니 시야가 확 트인다. 환하게 넓은 자갈밭이다. 잡목은 아름드리 숲으로 변신하여 정갈한 나무 사이로 잔디밭이 보이고 초록의 생기가 넘쳐난다. 과거 새벽기도를 다니면서도 보지 못했던 배롱나무가 눈에 띄었다. 팔백년 동안 문중 선산을 지켰다는 배롱나무는 무덤을 지키는 호위무사 같았다. 백일동안 핀다는 목백일홍을 왜 나는 이제야 보게 되었을까? 그때 보지 못했던 나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배롱나무는 세상 풍파를 겪고 껍데기는 모두 버린 속살만 남은 나무였다. 자식의 목숨을 지키려 애간장이 타는 어머니같이 겉치장할 여유조차 없는 나무였다. 가식 없는 맨살로 자식의 고난을 막아내려 기도를 올린 어머니의 소원이 꽃을 피운 모습이었다. 배롱나무는 땅 밑 깊이 뿌리를 내리고 단단한 마음으로 조상을 기리고 자손들의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뜻을 가진 나무였다. 다만, 어머니와 나는 삼년 동안 무덤 쪽 길을 모르고 외길로 다녔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한 나무였다.
홀로 걷다 멈칫 개미가 오르내리는 돌 담벼락을 바라본다. 한갓 작은 미물이라 여겼던 개미도 바쁘다. 나는 어머니가 이어준 사랑의 끈을 놓지 않은 덕분에 살아왔으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제야 선명하게 보이는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되었으니. 어머니에게서 독립한 개체이므로 열정을 가지고 조금 더 바쁘게 살아가야 하겠다.
녹음 짙은 산길을 여유 부리며 걷는다. 대나무 편백 소나무가 울창한 숲에 정적을 깨트리는 소리. 드문드문 까마귀와 까치, 휘파람새, 계곡의 물소리는 생명이 살아있다고 알리는 따뜻한 노랫소리다. 숲 사이 들어온 직선 빛과 편백의 은은한 그늘이 만들어낸 순수한 공간을 지나 수련 연못 앞에 선다. 초파일 연꽃등이 굳건하게 달려있는 소담한 화지사가 보인다.
산신각에서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나를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