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나의 변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집중적으로 전하신 곳이고, 그곳을 거점으로 주변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셨던 곳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말씀은 그 즉시 병자들의 치유, 장애인들의 온전한 회복, 더러운 영들로부터의 해방, 슬픔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 오천 명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모든 것을 목격했던 모든 사람들은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과는 다르게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탄하며 좋게 말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하느님 나라가 곧 임할 것으로 믿었고, 어떤 이는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났다고 소리쳤으며, 예수님의 말씀과 손길에서 전해진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에 큰 감동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행복해했습니다. 즐거워했습니다. 찬양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불행하여라!(Οὐαι)”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Horror-Calamity 털이 곤두설 정도로 큰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는 불행’라는 뜻이고, 둘째는 ‘Alas 너무나 슬프구나! 안타깝고 가엾구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담아 고을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이라 보면 맞을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분, 살아서 나와 함께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행과 안타까움, 믿음으로 그분을 나와 세상에 영접할 수 있는 진실,은총으로 모든 것이 새로워져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통과 슬픔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개(Μετανοια-悔改)란, 단순히 지은 죄를 밝혀내어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죄악으로 향하던 길을 돌려서 전능하시고 자비하시며 사랑 자체이신 분께서 나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심을 믿고, 그렇게 믿어서 은총으로 참 행복과 기쁨과 생명을 얻는 구원을 얻는 결심이며 실천인 것입니다.
가장 큰 고통과 슬픔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를 잃은, 자식을 잃은 고통과 슬픔이겠습니까? 과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고통과 슬픔은 이미 보고 듣고 체험하여 밝혀져 알게 된 행복과 기쁨과 생명의 길을 그저 겉으로만 머리로만 즐기고, 정작 온 삶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아, 결국에는 눈 뜨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 죽음으로 떨어져,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움의 고통과 슬픔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바로 그 슬픔과 고통을 하느님 나라의 충만한 진리와 일들이 전해진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는 그저 머리로 공부하여 즐겁게 깨닫는 재밌고 유명한 책이 아니라, 은총으로 보고 들은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내 삶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진실이며 사실이 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내 안에 변화-회개를 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즐기기만 한다면 바로 그 즐긴 말씀과 성사들이 우리의 심판 주제가 될 것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 점을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