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생각의 무력
나는 책을 덮었다. 2주를 걸쳐 읽은 1984를 방금 막 끝낸 상황이었다. 1984의 2부와 3부를 읽으며 내 머릿속에는 주인공 윈스턴이 세뇌당하는 장면들로만 가득차게 되었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이것이 이 책의 결말이다. 웬만한 열린결말보다도 훨씬 속 터지는 결말이다. 감시와 통제로 유지되는 사회, 복종과 증오와 분노의 감정만이 허락되는 사회, 그 밖에 생각 그리고 쾌락과 성욕은 이단자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이단자로 대항하는 우리의 주인공, 윈스턴. 그가 책의 괜찮은 결말을 지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러한 사회를 타파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었다. 하지만 허망하게도 그는 당에게 복종하고 빅브라더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총살당한다.
“’그게 정말 있군요!‘ 윈스턴이 소리쳤다. ’아닐세! …. 재일세, 알아볼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재. 먼지이지. 그런건 존재하지 않네. 전에도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지.‘ ’존재합니다! 존재해요! 기억 속에 존재한단 말입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당신도 그걸 기억할 겁니다.‘ ’나는 그걸 기억하지 못하네‘….. 윈스턴은 완전히 무력감에 빠졌다.”
“’혹시 기억하고 있나? 일기에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다.’라고 쓴 걸 말일세‘ ’네‘…..‘지금 내가 몇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나?’…..‘네 개입니다‘ ’그럼 당이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라고 말하면 몇개가 되지?‘…..‘네 개입니다! 네 개가 틀림없잖습니까? 네 개입니다!‘….. ’이보게, 윈스턴. 때로는 그게 다섯일 수도 있네. 셋일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한꺼번에 세 개도, 네 개도, 다섯 개도 될 수 있다네.‘…. ’윈스턴, 내가 지금 손가락을 몇 개 펴고 있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여섯개인지…. 정말 모르겠으니깐요.‘“
”’빅브라더가 존재합니까? ….’제가 이렇게 존재하듯 존재한다는 겁니까?‘ ‘자네는 존재하지 않네 윈스턴’“
윈스턴은 고문을 받으며 개조당하고 세뇌된다. 위에 것은 그 가운데 심문관과 말한 내용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몰입하여 읽었다. 그리고 결국 믿어왔던 윈스턴마저 성공적으로 세뇌당한다는 결말을 보았다. 그러고 나니 윈스턴과 함께 나조차도 세뇌가 된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둘 더하기 둘이 무엇이라 물으면 다섯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존재와 기억들에 회의감이 들기까지 했다. 순간 나는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1984에 나오는 집단주의가 과연 나쁜걸까? 모두가 무지와 세뇌 속에서 아무런 회의도 느끼지 못한다면, 모두가 그 상태로도 만족한다면, 어떤 이유로 그들의 세상을 파괴시킬 수 있지? 집단주의가 비인간적이기에 나쁘다? 그럼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지? 인간적이란 것 또한 내가 그저 학습한 영역이 아니던가?‘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번져갔다. 그리고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양치를 했는데 겅 거울에 비친 내가 너무나 이상했다. 손 동작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엔 나의 존재와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과거의 존재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칫솔과 치약 세면대와 욕조. 눈으로 볼 수 있었고 만져지는 것들이었다. 나는 나의 감각들로 존재를 인식했다. 손을 떼고 눈을 감았다. 자, 그럼 이제 저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내 기억 속에서 저것은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얼마나 정확할까? 내 기억 속에서 네모였던 세면대가 눈을 떴을 땐 하트모양일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물론 이렇게 혼란스러운 의문들은 아침밥을 먹고 난 후면 완벽히 사라져있을 것이다. 나는 바보인가?
그 많은 물음표에 하나하나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창조주 혹은 신이 나에게 진리를 조목조목 새겨주지 않는 한 그저 인간인 나는 사소한 질문에도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럴 때면 나는 인간의 유한함과 무력함을 느낀다. 누가 인간의 사고가. 생각이, 이성이 위대하다 했나? 인간의 존엄성을 단지 이성의 힘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 했나? 나는 그 말엔 100%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성과 합리성만으로는 우리는 여전히 얄팍한 껍데기일 뿐이다. 지난 주 1984의 초반부를 읽으며 나는 생각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썼었다. 하지만 일주일만에 곧바로 그 반대의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나 인간의 생각은 무력하다.
이 글에 어떠한 결말도 내기가 힘들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리가 있기를 희망하는 것 밖에는 없다. 인간이 아무리 무력하고 나약하대도 희망이 있고 빛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어딘가엔 분명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이러한 인간이라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하늘을 보고, 땅을 밟고, 주변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고통과 기쁨 사이에는 분명 좋고 나쁜 것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일단 오늘은 여기서 생각을 멈추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