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7일(월)
창세기 36:1-43
에돔 왕국의 기원과 발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술된 족보는 언제나 저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더구나 에돔의 족보라니? 이전에 소개되었던 이스마엘의 족보보다 훨씬 길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왜 하나님은 족장들의 족보 외에 이스마엘이나 에서의 족보를 기록해 두셨을까요?
문득 어머니 리브가의 태 중에서 두 민족이 나뉘리라는 예언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에돔 민족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도 그리스도인만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요, 삶의 방식인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언약을 맺으셨다고 해서 에서를 버린 것은 아니시기에, 에서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기억합니다.
에서와 야곱이 소유의 풍성함으로 인해 서로를 용납할 수 없게 된 부분은 안타깝습니다. 단지 목초지의 결핍만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마음으로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에서가 가족과 재산을 이끌고 세일산으로 가게 된 것은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로 떠났던 롯을 떠오르게 합니다.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에서의 후손 가운데 하나님께서 대대로 싸우시리라고 천명하셨던 아말렉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더욱 아쉽습니다.
또 에서의 후손 가운데 큰 힘을 가졌던 여러 명의 족장들이 나오고, 심지어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던 왕이 있기 전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창세기를 저술했던 사람은 이스라엘에 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라는 뜻인데, 창세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실제 창세기를 기록했던 시기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문명의 융성함을 드러내더라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의 길을 걸으려는 백성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차이라는 것이 단지 신념의 차이나 재화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려는 신앙관의 차이이기에 더욱 그 간격이 크게 느껴집니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귀히 여기고, 매일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저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오늘은 문지성결교회에서 목회자 건강검진을 받도록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해 이렇게 귀한 일로 도와주시니 감사이고, 감격입니다.
그 덕에 지방회에 속한 작은교회 목사님들이 해마다 큰 유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베풂이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저도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며 살아야 될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