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전무실에 가서 어제 민원인과 접촉한 결과를 보고했다.
전무는 잘했다고 하고 다음에 만날 때는 가능하면 대화 내용을 녹음하라고 했다.
그래야 민원인이 나중에 다른 소리를 못 한다고
보고를 마치고 전무실을 나와 자리에 돌아와 앉으려는 데 최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니 처음에 비서실로 걸어 신원을 밝히지 않고 사장을 바꾸라고 몇 번 전화해, 처음에는 사장님이 바빠 전화를 바꿀 수 없다고 대답하던 비서실에서 자꾸 전화하는 최씨에게 전화에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물어보고 진천 현장 공사 일로 그런다는 대답을 듣고 지소장한테로 전화를 돌려주었다.
그러나 진천 공사 일로 어떤 사람이 전화했다는 비서의 말을 들은 지소장은 그 전화를 곧바로 기철에게로 연결시키라고 했고
기철이 전화를 받게 되었다
“여보세요?”
하고 대답을 하자
“사장입니까?”
하고 묻는다.
그 말소리로 최씨인 것을 눈치를 챘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누구신데 사장님을 찾으십니까?”
하고 되물었다.
최씨도 전화를 받은 사람이 기철인 것을 알았겠지만 모르는 체하고
“사장을 바꿔.”한다.
“누구신지 알아야 사장님한테 알려드릴 것 아니에요?”
“바꾸면 알 테니까, 당장 바꿔!”
“그렇게는 안 되죠. 신원도 밝히지 않는 사람을 사장님한테 연결했다가 나중에 나만 혼나라고요.”
“사장 친구야 바꿔.”
최씨도 지지 않는다.
최씨 인줄 뻔히 알고 있는 기철이 그런다고 바꿔 줄 리가 없다.
“사장님과 어떻게 친구가 되시는데요?”
“사장과 친구면 친구지 어떻게 되는 친구가 어디 있어.”
“이것 보세요, 최씨! 최씨도 전화 받는 사람이 나인 줄 알고 나도 전화 건 사람이 최씨인 줄 아는 데 그만 하시고 전화 건 용건이나 말씀하시죠.”
더 이상 뻔한 걸 가지고 말씨름하는 것은 소모전이라 생각하고 기철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는 할 말 없으니 사장 바꿔.”
최씨의 대답이다.
“우리 사장님은 바쁘셔서 최씨를 만날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최씨 문제는 사장님이 모두 내게 일임했으니 할 말 있으면 나하고 하세요. 무슨 일 때문에 전화했어요? 모든 이야기는 어제 다 한 것으로 아는데.”
“너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이렇게 나오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그러십니까?”
“좋아! 지금 당장 감사원으로 고발장을 보낼 테니, 그렇게 알아.”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우리도 검찰에 고발할 테니. 내 보고를 받고 아마 우리 변호사들이 지금 준비하고 있을 걸요.”
기철은 있지도 않은 일을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서너 시간 뒤에 최씨가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직접 박과장을 찾았다.
기철이 전화를 받자
“박과장 우리 좋은 게 좋은 것 아니요? 다시 만나서 이야기 합시다.” 한다.
기철은 자기의 작전이 맞은 것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은 게 좋은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언제 만날까요?” 했다.
실은 그동안 기철이 위험을 무릅쓰고 좀 강하게 나간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만들기 위해 최씨가 이렇게 숙이고 들어오길 기다린 것이고 또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데 너무 상대를 화나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만나자는 약속에 응했다.
“오늘 저녁 지난번 만났던 곳에서 만나지.”
“지난번엔 제가 내려갔으니까 이번엔 서울로 올라오시죠?”
“답답한 쪽은 그쪽인데 왜 나보고 오라 가라 해. 박과장이 내려와.”
“이것도 일종에 협상인데, 협상은 공평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 지난번엔 내가 내려갔으니, 이번엔 최씨가 올라오시는 게 맞잖아요.”
“협상은 무슨, 나는 올라갈 수 없으니, 박과장이 내려와.”
“너무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럼 나도 안 내려가요.”
잠시 침묵을 하고 있던 최씨가
“사정이 있어 그러니 박과장이 내려와.”한다.
“사정은? 무슨 사정이요?”하고 박과장 시큰둥하게 말하니
“이런 말까지 하여야 하나?”
하고는 다시 조금 뜸을 들인 후 최씨는
“실은 내가 몸이 안 좋아 차를 못 타. 그러니까 지난번 만난 곳에서 지난번과 같은 시간에 만나자고. 미안해.” 한다.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이 기철이 또 부천으로 내려갔다. 부천에 가기 전에 전무의 말이 생각나 동대문 시장에서 소형 녹음기를 사가지고
그날 저녁 지난번 만난 부천 다방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기철을 보자 최씨가 말한다.
“내가 오죽하면 이런 짓을 하겠어. 박과장은 잘 모르겠지만 진천에 있을 때 터널에서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회사에 보상해달라고 했더니 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지병이라고 들어 주지 않더라고, 그래서 아픈 허리를 무릅쓰고 몇 번 더 일하러 나갔지. 결국 허리가 아파 일을 할 수 없게 돼 산업재해로 보험처리라도 해 달라고 몇 번 부탁했지만, 거절을 당했어. 그렇게 그곳을 떠나 아픈 허리를 치료하느라고 조금 가지고 있던 돈도 다 쓰고 지금은 빈 털털이가 되어 아는 친지 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데 눈치가 보여 그곳에도 오래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오늘 몸도 안 좋지만, 차비가 없어서 서울에 올라갈 수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박과장이 회사에 잘 말해서 보상을 받게 해줘.”
“나도 현장에 있을 때 최씨가 몇 번 사무실로 찾아와 떼를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공사 과장의 말로는 최씨의 병은 현장에서 다친 것이 아니어서 산재보험 대상이 안 된다는 말을 하더군요. 병원에서도 오래된 지병이라고 진단이 나오고.”
“그건 그놈이 보상해 주기 싫어서 한 말이야. 나 정말 터널에서 일하다 다쳤어.”
“그럼, 병원에서 거짓말을 했단 말입니까?”
“의사 놈이 공사 과장인가 무언가 하는 놈과 짠 거야.”
“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정말이라니까.”
“정말은 무슨 정말.”
“참 답답하네. 박과장도 내 말을 못 믿는군.”
최씨는 참으로 뻔뻔하다 그러니까 이런 짓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장난을 하세요?”
“장난이라니 이게 왜 장난이야? 나로서는 중대한 일이야. 국가 공사에 부실을 방지하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기도 쑥스러운지 피식 웃는다.
“참! 대단한 애국자 났네요.”
“그렇게 봐주면 고맙고.”
이렇게 말씨름만 하면 또 둘이가 서로 평행선 만 달릴 것 같아
“그래 어쩌자는 거예요?”
하고 기철이 말했다.
위에서도 보상 운운했으니 최씨의 목적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기철이 먼저 돈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허리가 안 아파 막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나도 이런 짓 하지 않아. 지금도 겨우 걸어 다닐 정도고, 무서운 짐은 들지 못해.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돈은 없지. 허리가 아파 일도 할 수 없지. 이렇게 생계가 막연해지니까 나를 다치게 하고도 아무 보상을 해주지 않은 대영건설이 밉고 원망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터널을 조사해서 사진을 찍은 거야.”
최씨의 말을 들으며 기철은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차라리 돈이 필요해서 대영을 협박해 돈을 좀 뜯어내려고 한다고 솔직히 말하면 최씨가 덜 간악해 보일 것 같다.
“그러니까 고발하지 않는 대신 돈을 좀 달라는 말씀인데 그것은 내가 결정할 사항은 못 되는군요.”
그래서 기철이 이렇게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회사에서 모든 것을 박과장에게 일임했다더니.”
최씨의 소리가 높아진다.
“그것은 현황을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것이지 돈을 준다, 못 준다는 결정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잖아? 회사에서 내용을 몰라서 내용을 파악하라고 해. 뻔한 것 가지고.”
“무슨 이야기가 달라져요?”
“이거 무엇 하자는 거야. 그만두지. 나도 생각을 바꿀 테니까.”
최씨가 드디어 화를 낸다.
최씨의 화를 돋구어야 사태가 좋아질 것 같지 않아
“참 성질도 급하시군요. 내가 오늘 최씨와 나눈 이야기를 윗분들께 보고하면 윗분들이 무슨 결정을 할 것 아닙니까.”
하고 달랬다.
“당신 지금 나를 데리고 노는 거야?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면 큰코다쳐. 나도 혼자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혼자가 아니라니?”
어쩌면 그럴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던 기철이 놀라는 척하고 묻자, 최씨는 당황하는 것 같다.
화가 난 김에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한 것을 후회하는 것 같다.
“혼자가 아니라면 계획적이었다는 말이 되는데요.”
“계획은 무슨----.”
말을 잘못하고 기가 죽은 최씨는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이 계획적으로 이 일을 꾸몄다는 말이군요.”
기철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런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를 둟고 사진을 찍고 하려면 한 사람이 하기는 어렵잖아.”
“그래서요.”
“두어 사람이 같이 했어.”
“처음부터 몇 사람들이 계획을 하여 공사를 그렇게 해 놓고 공사가 끝난 후 그것을 빌미로 회사를---”
“그런 것이 아니야. 어쩌다.”
“무어가 그런 것이 아니에요. 모두가 계획적이죠. 그리고 이 문제는 최씨하고만 해결할 문제가 아니군요.”
“그렇지는 않아. 모두 나에게 맡겼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윗사람에게 잘 보고해 줘. 다른 사람이 불만 갖지 않도록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주면 문제가 잘 해결 안 될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기철은 너희가 계획적으로 한 일이니까 돈을 주더라도 많이는 못 준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당신들이 계획적으로 한 일이라는데 초점을 맞췄는데 최씨는 역으로 아는 사람이 많으니, 돈을 많이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기철이 최씨에게 당한 것이다.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밝히며 일시적으로 기가 죽은 것같이 한 행동은 위장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말을 할수록 기철은 최씨가 가증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기가 기선을 잡은 것 같다가도 끝에 가면 자기가 최씨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밸이 꼴려 그냥 뛰쳐나오고 싶지만, 회사에서 맡긴 책임이니 그럴 수도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돈을 주고 안 주는 것은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최씨가 한 말을 윗분들께 보고는 해보지요.”
섞은 감자 씹은 인상이 된 기철이 겨우 말을 했다.
그 모양을 보고
“잘 부탁해.”
하는 최씨는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내 손바닥 위에 있어 하는 뜻의 엷은 미소를 짓는다.
그날은 그렇게 하고 헤어졌고, 다음날 전무에게 보고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잘읽었습니다
지키미님!
무혈님!
보길도님!
감사합니다. 무척 덥지요.더위 잘 넘기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