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자본 주의 꽃 이라 한다.
생산을 하는 기업의 돈 줄 이기때문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혈액과 같다.
그런 주식 시장을 주가 조작 세력들이
망치고 있다.
코스닥 상장 기업의 90% 이상 종목이
주가 조작 세력에 의해서 한 번 이상
털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코스피 중,소형 종목들도 거의 비슷하다.
공매도 라는 개념을 이해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주가 조작 세력이 존재
한다는 것을 눈치채기 까지는 더 긴
세월이 걸렸다.
'상 따'는 주가 조작 세력에 편승 하는
투자 방법이다.
오전 10시 이내에 매수 거래량 쌓이는
종목은 그 다음 날 갭 상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오전12시 이내 마감 종목은 다음 날
10%이상 수익 낼 기회를 주었다.
설사 상한가 풀려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도 물타기로 대처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없었다.
코스피,코스닥에서 상한가 30~40개
일 때 그 중에서 골랐다.
부실주는 제외하고 첫 상한가 15%일 때
투자 방법이다.
부실주를 제외하는 이유는 두 번째 상한가
치는 날에 거래정지 되어서 상장 폐지된
경우를 봤기때문이다.
총 주식 수 천만 주 아래 종목은 한 번
상한가 치면 아주 강하게 올랐다.
대표적 자산주 충남방적은 7번 상한가
치기도 했다.
그런데 15%상한가 제도가 30%상한가로
바뀌면서 상한가 종목 수가 너무 적었다.
거의 실패한 적 없는 투자 방법 하나가
쓸모가 없어졌다.
유사한 투자 방법이 개발 되었는데
수익을 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후방 남원의 독립 부대에 배치 되어서
갓 상병을 달았을 때 부대에 탈영병이
발생 하였다.
신병 이등병이 저녁 무렵 사라진 것이다.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신병은 다행히 총기는 휴대 하지 않고
탈영 하였다.
그 신병은 전투복 차림으로 남원 역에서
얼쩡거리다가 계급과 차림새를 수상하게
본 경찰에 체포되어 부대로 인계 되었다.
그당시 서울대 출신 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두 번째 휴가 때 우연히 함께 휴가를
가게 되어서 최 일병 호구 조사를 해봤더니
서울대 해양학과 출신 이었다.
서울 토박이 였고, 그 당시 집에 식모가
있었다고 했다.
요즘은 세련되게 가사도우미 라고 한다.
첫 탈영병 사건으로 부대가 어수선 했다.
다음 날 대대장실 앞에 고급 승용차가 보였다.
최이병의 부모가 서울에서 자가용 타고
온 것이다.
그 당시 자가용은 흔하지 않았다.
사돈에 팔촌을 둘러봐도 자가용 가진
사람이 없을 때 였다.
그러면 최 이병은 영창 갔을까?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상한 가의 비밀과 군대 이야기!
차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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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06 18:4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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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시절 자가용 타고 올 정도라면 아들 영창 안 보낼 정도의 빽이나
자금을 들고 왔을 듯합니다 모르긴 해도,
차트인님 덕분에 삶의 방 주식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배우실 듯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
네,맞습니다.
최 이병은 영창 가지 않고,
대대장 당번 병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국방부 높은장군 빽이 있었을거 같네여
네,맞습니다.
그당시는 줄,빽이 통하던
시절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