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민족과 사회에 내린 처방을 중국에 가져오면 대체로 병을 근치할수 있다. 한국인들처럼 분연히 전진하고 큰 힘을 들여 사회제도 메카니즘중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이런 저런 불합리한것을 개변한다면 중국인의 성격기질에 근본적인 개변을 가져올수 있을것이다. 국민성을 반성하는 노력은 응당 최종 제도와 경력에 대한 반성으로 귀결되여야 한다. 중국이 진정으로 세계에서 우뚝 서있게 된다면, 성공, 공평과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다 앞가슴을 활짝 펼칠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중국인들은 다시금 춘추시대의 굴강함과 당나라시기의 자신감을 되찾을수 있을것이다. 그렇게만 할수 있다면 당당한 대국의 인민이라는 감각을 되찾을수 있을것이다.
사람을 놀래우는 류실
개혁개방이래 우리 위대한 조국은 놀라운 속도로 부강을 행해 매진하고 있다. 몇천년이래 중국은 그 어느때도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 속도를 자랑할수 있는 충분한 리유가 있다.
그러나 현대화로 진군하는 도중에 우리는 많은것에 대하여 소홀했다. 그중 가장 우려되는것은 몇천년간 루적된 중화민족의 거대한 문화재부가 우리 수중에서 신속하게 류실되고 있다는 이 사실이다. 모종 시점에서 볼때 우리가 상실한것은 가능하게 우리가 얻은것보다 더 많다고 말할수 있다.
력사적으로 유전된 국보가 날이 갈수록 해외로 많이 류실되고 있다. 미국 최대의 박물관 대도회박물관에 수장한 동방문물중 대부분은 중국에서 건너간것이다. 미국 각 박물관의 중국 돌조각은 고궁의 돌조각보다 더 많다. 세계 47개 국가의 200여개 박물관에 백만건이 넘는 중국문물이 수장되였다. 이것은 우리와 우리 후대가 선인들이 남겨 놓은 보물을 구경하려면 불원천리 바다를 건너가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영국 문물브로커들의 주택에는 중국지도를 걸어놓는다. 중요한 고고 문물발견지점을 표시한 지도이다. 이것은 마치 '작전지도'와 상사하다. 하남, 산서, 섬서 등 문물대성에서는 대중적인 문물 도굴과 문물매매가 이미 하나의 업종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최근 몇년간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고분 도굴사건만 해도 10여만건이나 된다. 그들에 의해 파괴된 고분은 무려 20여만개나 된다. 지어는 관리자가 있는 지상문물도 재난을 피면하지 못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것은 룡문석굴 당나라 입불과 감숙 11층 높이로 제작한 송나라 석탑, 그리고 수많은 돌조각 사진이다. 이런 물건들이 아주 순리롭게 대부분 외국박물관으로 ‘흘러나갔다.’ (2003년 2월 27일 ‘남방주말’ 참조)
문물을 도굴하고 밀수하는 자들은 물론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저주하고 증오하며 법률에 따라 징벌해야 하는 대상이다. 이들의 존재는 한 국가의 법치현상을 설명하는것이지 문화현상을 설명하는것이 아니다. 하다면 보통 대중은 또한 이런 문화유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 나라 장성학전문가 동요회의 소개에 따르면 중화민족정신의 상징인 만리장성은 지금 3분의 1은 완정하고 3분의 1은 파손되였고 나머지 3분의 1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피로했다. 일부 풍경구역은 관광지로 개발하여 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황페한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북경시 교외의 한 산등성이에 고고학적으로 연구가치가 아주 큰 명나라 장성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벽돌을 다 뽑아가고 그 구덩이는 식수에 썼다. 산서 어느 한 촌의 두 벽돌공장을 하나로 합치기로 했는데 그 중간 통로에 놓인 장성이 문제로 되였다, 촌장의 한마디 명령에 따라 이 력사유산은 순식간에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사후에 벌금 200원으로 이 사건을 종결지고 말았다. (인민 사이트)
고분 도굴자들에게는 중형을 가하지만 촌장이 장성을 허물었는데도 약간의 벌금으로 그만 두었다. 그러니 시장이나 현장들이 옛 성터를 파괴하는것은 외려 광명정대한 일로 되였다. 호북 번양시에서는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의 예서성벽을 허물었다. 절강 주산에서는 정해 옛성터의 력사가구역과 고대주택을 허물었다. 복주의 '삼방칠항'은 상업거리로 탈바꿈했다. …… 세계 저명한 건축대사 베뤼밍은 북경 고성은 세계에서도 유명하다. 많은 아름다운것들이 지금은 볼수 없게 되였으며 아무런 미감도 없는 새 건물에 가리워졌거나 파괴되였다고 한탄을 금치 못했다. ( ‘인민일보 해외판’ 2002년 2월 19일)
유형문물의 류실과 비교할때 무형문물유산의 훼멸은 더 한심하다. 그러나 대다수 독자들은 ‘무형문화유산’이라는 명사도 근본 들어보지 못했을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무형문화유산이란것은 로신의 필끝에 보여준 ‘사시’, ‘오창회’같은것이다
즉 ‘봉건미신’색채가 가득한 ‘사신회’, ‘궂걸이’와 같은것 그리고 우리가 어릴때 보았던 꼭두각시같은것이며 과거 농촌에서 설을 맞이할 때 집집마다 빼놓을수 없었던 전지와 연화이다. 혹시 많은 사람들은 이것도 문화유산인가 말할것이다. 우아한 전당에 오를수 없는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물을것이다. 이런 물음자체가 바로 중국 무형문화유산이 거대한 위험에 봉착했다는것을 설명해준다.
다른 한 의미에서 볼때 이와같은 무형문화유산은 장성이나 고궁보다 더 중요한 민족재부이다. 장성과 고궁은 옛 문명이 남겨준 껍데기이다. 이것은 박물관의 공룡표본처럼 실용성을 상실한 죽은것이다. 그러나 회곡, 양걸, 전지, 자수와 같은것은 살아있는 문화이며 오랜 동방문화의 독특하고 우미하고 신비함을 집중적으로 체현한것이다. 이런것이 있기 때문에 중국인은 중국인으로 되는것이다.
중국의 무형문화유산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풍부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그러나 신속하게 발전하는 경제와 더불어 민간예술인이 급속하게 소실되고 민간문화형태가 신속하게 소망되고 있으며 민간예술이 날따라 쇠락되고 있다. 촌마다 진행하던 명절경축활동도 이제는 이를 주도하는 사람이 없다. 류행가곡이 지방 민가를 대체했으며 만화가 민간이야기와 꼭두각시를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 농촌아가씨들은 누구나 다 수를 놓을줄 아는데 지금 농촌아가씨들이 시집을 갈때면 전통시장에 가서 싸구려 방직품을 사서 대체한다. 중앙미술대학 원 민간미술연구실의 주임 근지림은 지난 세기 80년대초기 자기가 섬서성 북부 요동에서 집집마다, 가는 곳마다 민간전지를 걸어놓고 붙여놓은것을 보았는데 20년후에 그곳에 가보니 전지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전지를 대신한것은 세계 모델사진들이였다고 구슬픔을 숨기지 못했다. 지난 세기 80년대초기 안채현에 40여명 민간전지대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다 사망하고 몇명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도 년세가 높아서 전지작업을 할수 없으며 지어 어떤 로인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근교수는 민간전지가 소실되는 속도를 두고 ‘하루 밤 봄바람이 불더니 천지간의 오얏꽃이 다 떨어졌네’라는 시로 형용했다.
전문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하루를 지내고 나면 한가지 민간문화가 소실된다는것이다. 그 멸망속도는 생물물종의 멸망속도보다 더 빠르다. 그 후과는 생물물종의 멸망과 같이 엄중하다. 조상들이 물려준 천태만상의 민간문화와 만년을 이어온 향토예술 그리고 민속기물이 아직 완정한 기록과 보존을 남기기도전에 소실되고 있다. 이런 문화가 소실되면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다. 근교수는 이렇게 내려가다간 중화민족 근 8000년 민족민간문화는 단렬될 위험에 봉착하게 될것이라고 우려를 금치 못했다. (‘중국교육보’에서)
‘제것은 몽당비도 소중이 여기고’ ‘작은 일도 크게 만드는’ 한국인
중국의 풍부한 문물과 비할때 한국의 문물은 많은 축이 못된다. '해동소국'으로 이름난 한국은 경제문화가 장기간 중국보다 락후했다. 때문에 고적의 규모나 차원을 볼때 중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한 문물보유의 차이는 결코 적은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처럼 많지 않은 밑천이지만 그것을 너무 소중히 여긴다.
서울에는 고궁이 다섯곳이나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와 덕수궁이다. 그런데 이 다섯곳의 고궁을 다 모아 합쳐도 북경 고궁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얼핏하면 세계에서 자기네 무엇무엇이 으뜸이라고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이런 한국인들도 자기네 궁궐은 고궁의 화장실보다도 작다고 자조한다. 그러나 손바닥만한 이 작은 지방이지만 한국인들은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모른다. 가는 곳마다 질서가 정연하고 가는 곳마다 쓰레기 한점 없다. 창덕궁을 보더라도 궁내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객이 단독으로 입궁하여 유람하는것을 금지했다. 관광객들이 일정한 수에 도달하면 가이드가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입궁전에 주의사항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각가지 엄격한 요구를 제기한다 군입질을 해서는 안되며 담배를 피우면 안되며 잡것을 함부로 버려서도 안된다는 등 주의사항이다. 궁내에서는 자그마한 종이쪼박도 볼수 없으며 그 어느 구석에도 가래흔적이 없다. 크지는 않지만 록지는 정성들여 설계하고 관리한것이 한눈에 즐거움을 함뿍 심어준다. 이에 대비하여 볼때 중국의 고궁관리는 너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어느 핸가 고궁을 유람했는데 나는 손님들이 작은 칼로 태화전 궁문의 금룡을 긁는것을 보았다. 금분을 가져가려고 한것이다. 그는 십여분이나 애를 썼지만 조금도 긁어내지 못했다. 그 넓은 곳에 그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의 관광지는 많고 많다. 사람들은 관광지 도처에 페지가 날리고 있는것을 보게 된다. 북경 팔달령, 모전곡 장성은 류람객이 너무 많아 장성의 어떤 벽돌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장성벽에는 가는 곳마다 ‘이곳은 다녀갔노라’란 글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또 장성앞뒤가 쓰레기천지이며 떠들썩한 상업가의 싸구려소리와 자동차의 폐기 등이 장성의 정체적인 용모에 흙칠을 하고 있다.
중국의 관광지는 많고 많다. 사람들은 관광지 도처에 페지가 날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북경 팔달령, 모전곡 장성은 유람객이 너무 많아 장성의 어떤 벽돌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장성벽에는 가는 곳마다 “이곳은 다녀갔노”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또 장성앞뒤가 쓰레기 천지이며 떠들썩한 상업가의 싸구려소리와 자동차의 페기 등이 장성의 정체적인 용모에 흙칠을 하고 있다.
원래 서울 덕수궁 담벽 밖은 번화한 대통로였다. 다른 한쪽은 정부기관과 오피스텔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은 이 작은 덕수궁을 보호하기 위해 빌딩을 다 허물고 대통로를 따로 냈다. 그리고 원래 대통로자리를 잔디밭으로 만들었다. 서울의 거리를 다닐 때 황금지역의 고층빌딩이 즐비한가운데 한 옛 성문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절당이 있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고층빌딩은 이런 력사유물을 멀리 떠나 일떠섰다. 길도 이 고대건물을 보호하는 취지에서 따로 냈다. 문화와 상업이 함께 어울릴 때 이렇게 문화의 독존을 만끽할수 있다.
한국인들의 문물보호 열정은 나라가 크고 물산이 풍부한 중국인들에게 괜히 작은 일을 크게 벌린다는 인상을 줄수도 있으며 세상소견이 좁다는 인상을 줄수 있다. 한국에서는 별로 눈에 띄이지 않는 자그마한 도자기 유적이나 볼품없는 자갈돌로 쌓은 옛 성벽이나 작은 암자같은것도 다 국가에서 보호하는 유형 문화재산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 일단 “유형문화재산”으로 규정되였으면 국가에서는 대거 토목을 움직여 기념관을 짓고 보호한다. 한국을 방문한 많은 중국인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런바 “중요문물유적지”를 관광하게 되는데 정작 그곳에 가보면 자그만한 정자 하나가 있는가 아니면 큰돌 한짝이 있을뿐이다. 그리하여 실망의 고개를 흔든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런 문물을 얼마나 애호하는지 모른다. 20세기 80년대 이화녀 대의 한 교수가 강원도에서 우연히 풍경이 아름다운 계곡을 발견했다. 그 산에는 하도락서(河道洛書 )와 복희선천 팔괘도(伏?先天八卦?)라고 새긴 석각유적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즉시 한국을 흔들어 놓았다. 고증한 결과 이곳은 한국 고대 한 리학가가 은거했던 곳이다. 당지 사람들이 우선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유적지를 아주 정성껏 보호했다. 수학대학과 연구기구에서는 대량의 고찰과 연구를 진행했다. 정부도 이에 대하여 아주 중시했다. 정부에서는 거금을 투입하여 지리 원 형태를 유지하는 기초에서 적당하게 개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하여 원래 아무런 이름도 없던 이 계곡이 지금 한국 북부의 저명한 풍경 명승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그곳을 공운구곡(谷云九曲)이라 이름했다.
문화보호와 문물보호는 등호되는것이 아니다
문물유적에 대한 보호보다 한국은 비 물질적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더 유명하다.
한국에 가서 관광할 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문물고적이 아니라 각가지 민속문화전사이다.
서울에서 당신은 각양각색의 민속박물관을 볼수 있다. 국립민속 박물관을 볼수 있다. 국립민속 박물관에는 한국의 의, 주, 행, 농업, 수공업, 오락, 혼인초상, 제례 등 각종 민속장면과 실물을 볼수 있다. 이밖에 지구촌 민속박물관 비단자수박물관, 한국화페박물관, 농업박물관, 김치박물관, 도자기민속박물관 등등 한국인의 독특한것이면 다 박물관이 있다. 이런 박물관에는 실물을 진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표현을 보여준다. 례하면 경복궁에서는 매일 오전과 오후에 궁문을 여는 의식이 있다. 모든것은 대 고대의례 그대로 진행한다. 복당으로부터 도구에 이르기까지 다 원래의 면모를 살렸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고대의식을 모방하여 진행하는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일년 사계절 다 각양각색의 경축활동을 거행한다. 이런 명절경축활동은 대체로 두가지 형식으로 나뉘여 있다. 한 형식은 민간적으로 대대손손 전해 내려온 마을 민속이다. 이것은 중국의 양걸춤이나 룡주시합과 비슷하다. 중국사회에서는 이런 민간명절 경축활동이 이미 거의 시들어가고 소실 되였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얼마나 신이 나게 진행하는지 모른다. 규모도 크거니와 또한 완전히 자발적이다.
다른 한 형식은 한국 건국후 정부에서 제창하는 각종 민속제와 민속문화제이다. 한국은 이런 형식을 통해 의식적으로 류실되여가는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한다. 본 지역을 사랑하는 것을 목적으로 각지마다 다 이런 문화계가 진행된다. 고대 소설에 나오는 “춘향전”의 주인공인 춘향의 고향에서는 “춘향관”을 구축하여 일년에 한번씩 “춘향제”를 거행한다. 민족영웅 리순신의 고향 온양에서는 리순신을 기념하는 “온양문화제가” 있다.
이밖에 또 광산전축제, 진도령등제, 강릉단오제, 안동민속제, 백제문화제 등 너무도 많은 민속제가 있다.
한국인들은 이런 문화전통을 “무형문화재산”이라 정했다. 국가급 무형문화재산만 해도 100여가지가 있고 지방무형문화재산이 200여가지가 있다. 민간문화는 대부분 다 망라되였다. 이런 민간문화는 문회제라는 형식을 빌어 전승되고 출연되여 박물관의 죽은 표본으로 변하지 않게 했다. 더불어 이런 문화제는 한국인들의 정신문화의 중요한 내용으로 고착되였다.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정은 너무 높다. 민속문화제의 많은 표현은 무료인것도 있고 또 입장료가 아주 비산것도 있다. 그런데 지어 소학생들마저 줄을 지어 입장권을 구입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매일 매일 입장권을 제한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을 때면 사람들이 너무 몰려 질서가 혼란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교육을 아주 중시한다. 한국인들이 중시하는 교육중에 한가지 중요한 내용인즉 바로 민족전통에 대한 교양이다. 한 중국관광자가 경주의 어느 한 편벽한 시골의 개인도자기제작박물관을 방문했다. 그는 그곳에서 적지 않은 젊은 어머니들이 먼 곳에서 자기의 애들을 데리고 와서 박물관의 문물에 대한 해설을 듣게 하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은 교양을 통해 한국 민족 력사에 대한 보통민중들의 자각적인 관심을 보여주었으며 후대들에게 문화계통의 주동의식을 보여주었다. 그 중국 관광자는 귀국후 아주 감개무량해 했다. 기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가는 곳마다에서 볼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이런 정형을 볼수 있는가? 중국에서 보게 되는 것은 실은 많지도 않은 박물관에 관람자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박물관에 진렬한 문물들은 먼지에 깔려 묵묵히 있을뿐 아무런 빛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간혹 민속전시를 하기는 하지만 입장권은 선물로 준것이거나 배당한것이다. 그나마 각 직장에서 동원하고 설득해도 정작 박물관을 찾는 사람은 별로 많지 못하다.
류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지
중국과 한국이 이와 같이 완전히 다른 현상의 배면에는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들의 부동한 심리상태를 설명하여준다.
본장의 첫 시작에서 인용했거니와 사람을 놀래우게 한 그 뉴스는 상업화조류의 급류를 설명하여줄뿐만아니라 사람들이 코밑의 실리에만 전진한다는것을 설명해준다. 이것은 우리 전통에 대한 무지이며 멸시이다. 수백년이 된 옛 건물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불과 색낡고 기우뚱 무너지는 낡은 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것이다. 또 명나라나 청나라 옛 성벽도 교통을 방해하는 흙더미로밖에 보이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오래된 사화, 전지, 꼭두각시와 같은 귀중한 민간문화유상의 존재는 그들의 눈에 락후하고 “봉건”적인 상징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것이다.
그리하여 대부분 전통문화를 두고 “봉건”이라 하고 “미신”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아편전쟁이후 중화민족은 부단히 좌절을 당했다. 결과 국민들로 하여금 하나의 굳은 관념이 형성되였다. 즉 전통문화는 중국이 락후하게 된 괴수이며 현대화의 가장 큰 장애라는 견해이다. 고혈강을 대표로 하는 일부 학자들은 “삼황오재”는 근거도 없는 전설에 불과한것이며 영광스런 중화민족의 조기력사는 모두 믿지 못할 엉터리라 력설했다. ”5.4”운동이래 로신으로부터 백양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지식인들은 몇대를 내려오면서 중국문화는 “려과성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고증했다. 즉 마치 모체에 에이즈바이러스가 있으면 그의 애들도 다 전염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로신은 청년들에게 중국 책을 읽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는 중국도서를 죄악의 전염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백양은 중국인들은 태여날때부터 된장독에 빠져있다고 갈파했다. 태여날때부터 불행한 중국인이라고 인식한 그에게 있어서 일생의 임무는 최대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것일수 있으며 철저하게 이 ‘바이러스”에서 리탈하는것일수 있다.
한차례 또 한차례 사회운동의 전파를 통해 지식인들의 사고가 이미 전 민족의 집단적 관념으로 고착되였다. 산해혁병때부터 1949년까지 중국인들은 한차례 또 한차례 “과거의 모든 것은 이미 어제 다 죽은것이요, 후의 모든 것은 비로소 오늘에 새로 태여나는 것이다”라는 환상을 버리지 못했으며 오랜 중화민족이 과거와 철저하게 고별하여 봉황의 열반처럼 새로 태여날것을 환상햇다. 모든 낡은 전통을 파괴한 중국인은 흰 백지에 다시금 그림을 그려야만 가장 새롭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 중국인들은 조상들이 남겨준 유물을 파괴할 때 마음아파한 것이 아니라 외려 통쾌함을 느꼈다. 20세기 50년대초 전국 범위내에서 성벽 허물기 운동을 벌렸다. 도시 주민들은 “대중들이 즐기는 의무노동방식”으로 “사회주의 조국에 이바지한다는 아름다운 리상을 안고” 보수도 바라지 않고 야근, 특근을 했다. 결과 같지 않은 시간에 수천개나 되는 옛 성벽을 다 허물었다. 당시 어떤 사람은 고궁의 성벽도 허물어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1958년 “북경시 정체규혁설명”에 이런 서술이 있다. “북경 옛 성과에 대하여 철저하게 개조해야 한다. 옛 도시의 제한을 철저하게 타파하고 그 성과의 속박을 철저하게 타파해야 한다. 고궁도 개조해야 하며 성벽, 담벽 등은 일률 허물어야 한다. 성벽을 허문 다음 강을 따라 제 2순환로를 신축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이 기획이 철저하게 실시되지 못했다. 그렇지 않을 때면 지금의 관광객들은 자금성 성벽을 보지 못할것이요, 루각과 호성하를 보지 못할것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편격적인 반성은 문화대혁명기간에 귀신에 홀린듯 고봉에 달했다. “5.4”때부터 1949년 그리고 문화대혁명 때까지 한세대 또 한세대 중국인들은 점점 더 전통과 고별했다. 신 중국이 성립된 이후에 교육을 받은 몇세대들이 배운것이라면 중국 력사상 가장 위대한 력사적 전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농민봉기라는 지식이였다. 이밖에 다른 모든 것은 다 어두운 색채를 딴것이라는 결론 이다. 4서5경과 같은 독초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북경 옛 성은 “완전히 봉건통치자들의 의지에 따라 봉사할수 있다. 북경의 중요한 건물은 황궁과 절당이며 이 또한 황궁이 중심이 되였다. 황궁밖에 한겹 또 한겹 성벽을 쌓았다. 이것은 봉건제왕들의 유아곡존과 봉건통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을 표현했으며 농민 “봉기”를 방어한다는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60살 좌우의 성급간부나 40~50살에 나는 지식청년,그리고 금방 사회에 발자국을 내디디기 시작한 20대 청년들이 이제는 우리 나라 사회발전의 3세대 주요구성원이다. 이들은 다 이런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중학교과서에 선정한 몇편 고문이 이 몇세대의 사람들의 전통에 대한 모든 개념으로 되였다. 공자, 맹자는 이 몇세대의 안목에 낡은 교조적인 개념을 전달하는 늙은이에 불과하다.”충효인의 장유존비”같은 것은 다 봉건도덕의 내용이다. 조상에 제시를 지내는 것은 구린내나는 봉건미신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경극, 콘극,지방극 등은 무어라 중얼거리는지 알아듣지 못할것들이며 “4유8덕”이거나 “리학” “심학”같은 것은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다.
때문에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부유해진 농민들이 우선 먼저 백년이라는 나이테를 늘인 옛 집을 허물고 보기 흉한 시멘트양옥을 짓는지 이해 할수 있으며 몇 세대로 물려내려온 가장집물을 훌훌 던져버리고 복합한 가구를 사들이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리해할수 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시장, 현자,진장들이 문화보물을 제멋대로 파괴하고서도 아무런 죄악감을 느끼지 못하는지 리해할수 있다. 그들은 의려 후대를 위해 복을 쌓는것이라고 오인하고 있은 것을 리해할만하다. 공안기관에서 문물밀수를 타격하는 일을 일반 절도 사건보다 더 중시하지 않는다.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전통 명절분위기가 점점 희미해지고 가장 들썩하게 지내던 명절도 점점 그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 이상하게도 성탄절 같은 서양명절을 더 열성으로 맞고있다. 그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성탄이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13억 중국인중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자기네 민족이 얼마나 엄중한 손실을 겪고 있는지 의심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자손만대에 엄중한 시행착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운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가 이미 우리의 선조들이 용서할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두드려부신 그 후과
최근 민간문화를 만구하는데 주력해온 풍기재가 기자의 취재를 접수할 때 이런 마음 아픈 이야기를 했다.
지금에 있어서 우리의 제일 큰 문제는 전통문화의 문맥이 이미 단절되였다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중 중국 문화 전통에 대한 파괴는 전대미문이다. 이 문화를 다시 이어가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내가 북경에서 한 외국인과 사귀게 되였다. 그는 북경에서 이미 60년이나 거주한 사람이다. 그 외국인은 나에게 자기는 중국에서 5대(1대를 10년으로 계산)나 되는 중국사람들을 알게 되였다.
그런데 후위 세대들은 앞의 세대들보다 점점 못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사람들은 문화인이다. 그가 지적한 것은 지식적 시야, 심도, 학술수양, 개인매력 등이다. 50년이래 우리는 중서를 통달한 대사가 나타나지 못했다. “5.4”운동시기의 문화분위기는 이미 끊어졌다. 중국문단은 시비와 흑백만 남아있다.
풍기재의 말은 전통을 파괴하고 소멸한 것은 우리 이 민족문화의 어깨에 내린 상처라는 것을 제시하여준다.
전통을 마멸하고 포기한 첫 후과는 민족자비감의 형성이다.
중국 국문이 렬강의 대포로 열린후 서방인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는 맹목적이고 자고자대하던데로부터 급기야 맹목적으로 자비하기 시작했다. “문화바이러스론”이 바로 이런 자비감에 리론적인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원래 중국인은 유전자로부터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오인한것이다. 때문에 외국은 모든 방면에서 선진적이며 중국은 매사에서 락후하다는것이다.
매일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면 양복을 받쳐입은 유럽과 미국의 정치가들의 왕공들이 긴 장포를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원탁회의를 여는 장면이며, 아프리카 국가원수들이 록색장포를 입고 타국을 방문하는 장면이며, 인도총통이 두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코기리를 앞세워 방문객을 환영하는 장면이며, 일본 녀성들이 그 복잡한 화복을 입고 거리에서 총총걸음을 제우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몇 개 되는 세계문명의 계승자들은 다 자기의 헌명한 문하표지가 있다.
그러나 력사가 가장 오랜 중국만이 국가례의때 모든 것은 “국제표준”을 그대로 옮겼다. 자기 민족의 복장이 없으며 자기의 독특한 색채가 없다.
전통을 마멸한 두번째 후과는 민족발전에 립각점을 세우지 않고 사회륜리가치가 엄중하게 혼란하다는 것이다.
후인지선생은 “한 사람이 과거를 잃었다면 기억이 없는것이나 다름이 없다. 기억이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발전비전을 담론할 여지도 없다. 한 민족으로 놓고 보아도 이와 같다. 그 민족의 문화유산을 료해하지 못한다면 계승할것이 없게 되며 또한 발전할수 없다”고 했다.
“문화대혁명”의 아름다운 꿈이 파멸된후 우리는 하루아침에 우리에게 혁명적격정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전통의 안받침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도 자기를 위하지 않고 전문 타인에 리롭게 한다”는 것은 너무도 숭고하다. “온순하고 량심이 있으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양보하는”것은 이미 력사의 쓰레기더미에 던져버려졌다. 도덕의 속박이 없는 정황에서 시장경제는 부패와 무질서의 도덕의 타락과 함깨 발전해왔다. 경제가 발달한 지역일수록 도적방지창문을 더 높게 달았다. 화학제를 넣은 살코기와 변질된 입쌀,세척분을 넣은 기름떡이 혼란한 틈을 타서 자기를 해치고 또 타인을 해치고 있다.
전통을 마멸한 세번째 후과는 청년일대들이 조상들이 물려준 귀중한 재부에 대한 감정이 결핍하다. 문화의 흐름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과정에 실현되는 것이다. 이는 일정한 환경과 조건이 수요된다. 청년일대는 전통문화를 접촉할 기회가 없다.전 통문화의 우미함을 체현할 기회가 없다. 그들은 서방의 애인절을 알분 중국에 7월 7일 오작교가 놓이는 7석절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가능하게 아는척하고 교향곡을 감상하지만 곤혹의 그 독특한 가락은 듣지 않으려고 한다. 청년예술가들은 첫 발자국부터 서방 선봉예술에 눈길을 돌리고 서방인의 구미와 취미에 영합한다. 그러나 전통을 찾는 사람이 많지 못하다. 청년일대와 전통문화의 생소감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계속 이렇게 나아간다면 종당엔 전통문화를 “타인의 문화”라고 볼것이다. 그때에 가면 전통문화는 완전히 멸망하게 되고 다시는 재생하지 못하게 될것이다.
한국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당신이 한국인들과 접촉할 때 가장 선명한 감각은 그들의 강렬한 민족자호감이다. 이 자호감은 국가경제건설의 성공에서 오는 일면도 있지만 다른 한면으로 본 민족 력사와 문화에 대한 자랑에서 온것이다.
사실상 본 민족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견해는 외국인의 시점에서 볼때면 지어 자고자대하고 있다는 의심도 들 정도이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력사를 담론할 때 한국인들은 얼음판에 박밀듯이 한민족이 첫 금속활자를 발명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한글을 발명했으며 일본왜군을 침돌시킨 거북선이 있다고 자랑하며 그들의 위대한 민족영웅 리순신,안중근을 자랑하며 그들의 동방 공맹 리퇴계, 리률곡을 자랑한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한국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우미하고 가장 창의력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가장 총명한 민족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혹시 한국인들의 자신감이 지나쳤다고도 할수 있겠지만 승인하지 않으면 안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은 력사문화전통을 리용하여 민족정신을 구축하는 면에서 확실히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을 다녀온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사회질서를 볼 때 주민들의 집에 도적방지 철분과 울타리를 친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정신면모를 볼 때 도덕 건설과 교육이 아주 성공적이였다는 것을 볼수 있을것이다. 오늘의 한국은 확실히 명실공한 “례의지국”이다.
유교전통은 한국 경제발전에서 아주 선명한 역할을 발휘했다. “한강기적”의 출현과 더불어 사람들은 점차 유가사회륜리가 사회발전과 진보에 대한 정면역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한국 지식인들은 전통문화가치와 도덕규범은 전반 사회의 조화와 단합에 리로우며 전 민족의 력량을 동원하여 국가의 부흥대업을 창출하는데 리롭다는 것을 의식했다. 현재 “유교전통은 한국이 신속하게 발전할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전 세계 한국연구자들의 공통한 인식으로 되였다.
중국인들의 론리에 따르면 성공적으로 현대화에 진입한 한국은 응당 성공적으로 과거와 손을 흔들어 고별한 국가여야 한다. 그들은 응당 한국인 고유의 격렬하고 과다한 방식으로 “봉건문화”를 철저하게 제거했어야 하며 완전히 새로운 면모로 출발한 탈바꿈으로 유미와 “궤도를 같이해야”했을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우리가 포기한 “봉건”과 “락후”한 전통을 보류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추석을 쇠는 열정은 한국을 가본 중국인들로 하여금 경이감을 금치 못하게 한다. 추석은 중국에서는 법정명절이 아니다. 이 명절을 지내는 분위기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날을 3일간 련휴로 정하고 전국이 일체적으로 이 명절을 지낸다. 추석이면 한국 전국에는 중국 구정에 출현하는 교통난이 출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귀향하여 조상에 제를 지낸다. 조상이 풍수를 보장해준것에 감사를 드리는것이다. 한국인들은 구정, 청명, 단오, 추석 등 전통명절을 성탄절과 같은 외국명절보다 퍽 더 중시한다. 그들의 맘속에 전통명절만이 진짜 “명절”이지 외국명절은 그저 “즐겁게 보내는”것에 불과하다.
한국인들은 “장유존비”를 아주 중히 여긴다. 가장은 가정에서 아직도 절대적 권위를 향유하고 있다. 일부 한국인들은 2월과 8월 초하루가 되면 중국에서 전파된 전통방식에 따라 문묘에 가서 공자에 제를 지낸다. 사람들은 유관을 쓰고 검은색 고대제복을 입고 공자와 맹자에 공손히 절을 올린다. 중국에서는 봉건시대의 현학과 서원이 벌써 가뭇없이 사라졌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281개 향학교가 있고 84개 서원이 있다. 그들은 이런 곳에 “충효교육관”을 설립하고 유학관련 학술활동을 전개한다. 한국에는 아직도 사회 공중도덕 면에서 중국 송대때 제출한 “팔덕”인 “효제, 충신례의,렴치”를 준수한다. 원 원나라때 중국의 “주자가례”가 조선으로 전파된이래 지금도 팔덕은 한국인들의 가정륜리의 규범기초로 되여있다. 몇천년이 되는 유교의 전통이 중국에서 단절된후 엉뚱하게도 한국에서 부분적으로 보류하고 있을것을 그 누군들 생각했던가. 일부 중국학자는 한국에 가서 유교의 풍운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혹시 일부 중국 독자들은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마치 서방의 독자처럼 생소함을 느낄수도 있다.백년전 우리의 조상들이 바로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상기하면 된다.서방의 일부 학자들은 한국을 “유교국가의 활화석”이라고 평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먼지가 가득 오른 전적내용이 한국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전 문화와 현대화는 상호 생의 관계가 아님을 증명하여주었다. 전통문화와 한 민족 전진의 장애가 아니라 이 민족의 현대화의 중요한 에너지이다.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한 민족이 자신있게 살려면 응당 자기 민족의 튼실한 기저가 있어야 하며 자기의 력사를 존중해야 하며 자기의 조상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인은 우리에게 한 국가의 현대화는 단순히 물질적인 진보에 의뢰해서는 안되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으로 풍부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빨리 빨리와 만만디
물론 한국인들은 선지선각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중국문화를 일부 보류하게 된 원인중 일부 원인은 음양이 도착된 덕분이다.
첫째: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국은 편벽한 위치에 처해있으며 수구세력이 중국보다 강대하다. 력사상 한국은 장기간 중국보다 락후했다. 중국에서 양무운동을 진행하고 새로운 군사훈련을 진행하면서 서방을 따라배우기 시작할 때 조선인은 아직도 페관쇄국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은 옛 전통에서 한발자국도 리탈하지 않았다. 중국력사상 아편전쟁으로부터 지식 엘리트들이 한차례 또 한차례 전통을 리탈하려는 사회운동을 발기했다. 그리하여 중국사람 두 뇌에 남은 전통의식은 아주 희미하게 되였다. 이에 비교할 때 조선은 망국의 아픔을 겪었으며 사회제도의 극변이 발생했지만 계통적으로 자신의 전통의식을 의식적으로 쇄신하지는 않았다.
기실 중국에서도 허다한 시골이거나 혹은 과거 번영을 이루었던 지역에 교통판도가 변화되면서 사각지대로 변했다. 이런 곳은 외려 민풍이 순박하고 전통문화기질이 대량으로 보류되여 있다. 례하면 광동, 복건 교접구역의 객가인들이 집거하고 있는 지역의 문호상태가 한국과 상사하다.
둘째: 한국이 일본에 의해 합병되였을 때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강박하여 한국인들의 민족풍속습관과 언어문자를 말살하고 전부 일본화시키려 했다. 이는 외려 자기 민족 전통을 수호하려는 한국인들의 강렬한 자각성을 환기시켰다.한국이 독립한후 민족주의는 민족정신을 새로 고양하는 중요한 기차로 되였다. 민족자존은 또한 국민교육의 중요한 내용으로 되였다. 민족의 전통과 특점은 한국인 민족자원의 주요한 래원으로 되였다.
중국과 한국을 비교할 때 전통문화에 대하여 부동한 선택과 실험을 진행했다 지난 세기 60~70년대 한국경제 발전초기 한국의 지식인들도 전통문화에 대하여 심각한 반성과 격렬한 비판을 진행했다. 적지 않은 저명한 학자와 간원들이 한국인들에게 전면적으로 전통을 포기할것을 호소했다. 전통문화는 현대화의 장애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가 신속하게 발전함과 대량 외국으로 유학 갔던 한국인들이 국정을 주최하게 되였는데 이들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동서방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 및 우렬을 가릴수 있었다. 그리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전면적이 훼멸을 피면하게 된것이다.
한국인들도 비물질 문화유산에서 일정한 굽은 길을 걸었다. 20세기 60~70년대,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한국도 중국과 같이 비물질 문화유산의 류실 현상이 출현되였다. 이 때 일부 선각자들이 제때에 대성질호를 했고 이에 한국 사회가 신속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10여년만에 비물질유산보호사업이 세계의 앞장에 섰다.
지금 중국인들도 지난 세기 60~70년대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전통문화를 대하는 방면에서 굽은 길을 걸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민간으로부터 정부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각성하기 시작했으며 부동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번개불에 콩 볶아먹는 듯한 그 민첩한 동작에 비할 때 중국의 움직임은 너무도 “만만디”이다.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지식인들이 문화유산을 합리하게 리용한다면 경제발전을 추동할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허다한 지구에서는 문물고적의 상업가치를 단순하게 리해하고 잇다. 허다한 지방에는 명인의 엣 집과 문물고적을 “수건리용”중에 되는데로 문물의 분포구조를 파괴하고 있으며, 옛 건물을 새 건물로 수건하고 있으며, 고태가 의연한 건물을 우습광스럽게 새로 고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매체와 사뢰지명인사들이 지하문물을 보호할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방정부는 행동이 아주 느리며 조치가 효과적이 못된다. 2001년 중국에서 가장 영향이 있는 “남방주말”지에 신강 타크라마칸의 엄중한 도굴현상을 보도했다.이것은 사회의 광범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였다. 그런데 2003년 당지의 도굴현상은 점점 더 창궐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했다.신강고고 연구소 장옥충 부소장은 “다 도굴해갔다”라는 한마디로 상황의 엄중성을 표달했다.
점점 더 많은 지방에서 유형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이미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속문물에 관해서는 아직 사려의 범위에 들지도 않았다. 수십개 대학에서는 중문학부의 민속과를 취소하려고 한다. 일본 문부성은 소학생 재학기간 꼭 능극을 한번 감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노르웨이정부는 모든 노르웨이인은 15살이전에 꼭 전통문화기예 하나를 장악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우리 나라 비물질 문화유산보호는 아직 기본상 민간의 자발상태에 처해있다. 그 보호 력은 아주 미약하다.
한 방면으로는 아주 급급해하는 현상이 있고 다른 한방면에는 몇천년 “일관제”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현상이다. 혹시 우리가 계속 이 속도로 각성한다면 그 각성은 기실 아무런 의의가 없다.
중국인들이여,빨리 빨리 각성하라,하루라도 소 잃은 외양간을 빨리 고쳐라!
선명한 대조
중국의 발전중에 어떤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인가? 삼협땜건설이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며 서부개발도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자기 고속도가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이 아니라 교육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고속도는 그 해에 효과를 볼수 있다.당지의 GNP를 몇포인트 올려줄수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것이 아니며 그 효과는 토목공정항목보다는 퍽 늦다. 그러나 주저하다싶이 교육은 한 세대 지어는 몇세대의 자질을 결정하는것이다. 때문데 교육에 문제가 발생되였다면 그것은 국가의 근본과 원기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된다.
유엔주재 BBC기자가 2003년 9월 20일에 보도한데 따르면 유엔관원은 중국교육상황을 엄하게 비평했다. 중국은 공공교육경비가 세계에서 가장 적은 나라의 하나일뿐만 아니라 교육문제에서 “빈곤인구를 기시”한다고 지적했다. 즉 빈곤군체가 담당할수 없는 고액의 학비를 수금한다는것이다. 중국인의 교육지출이 적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말등구역에 처해있다. 지어는 우간다보다도 적다.
교육에서 중국과 한국의 기점은 같다. 1945년 한국의 문맹률은 78%나 되였다. 중국과 거의 맞먹었다. 량국은 당시의 경제상황도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1951년부터 1996년간 한국 인구중의 대학생비례는 37%에 달했다. 이것은 미국과 호주를 초월하여 세계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인구당 대학생 비례가 5%도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하류군단에 속한다. 한국은 이미 문맹을 퇴치했다. 세계에서 식자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런데 중국은 아직도 문맹이 2.2억이나 된다.
“중국교육과 인력자원문제보고”는 우리 나라 25살이상 국민 평균 교육접수년한이 초중 2학년수준에 이르렀다고 썼다.한국에 비하면 4년이나 뒤떨어진것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저명한 교육대국으로 급부상하여 전국의 4분의1이 되는 인구가 학생이 아니면 교원이다. 가령 교육을 위한 봉사기구와 관련산업을 포괄한다면 거의 절반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으로 된다. 한국교육의 각가지 주요 지표는 이미 세계에서도 앞자리에 선다. 그런데 중국의 교육은 지금도 9년 보급 제에 머물러 골탕을 먹고 있다. 빈곤 지구의 실학률이 아주 높으며 교원들의 월급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한다. 빈곤대학생이 대학에 붙었지만 경제여건으로 학교로 가지 못하는 실례가 너무도 많다.
교육이 빚을 졌기 때문에 그 후과는 이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비교적 높은 국민 자질은 경제건설중에 거대한 역할을 발휘했다. 바로 그것이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것이다. 또한 한국이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아시아 금융위기를 모면한 국가로 되였다. 한국은 지식경제령역에서 점점 더 큰 우세를 취득하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 특허권은 일본다음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매년 특허를 14만건이나 신청한다. 그런데 인구가 한국의 수십배나되는 중국은 일년에 겨우 1만 3000건에 지나지 않는다. 일인당 평균을 따지면 세계적으로 말단자리에 처해있다. 우리 나라 저학력 인구는 가면 갈수록 취업난의 압력을 받고 있다. 2001년 우리 나라 초중졸업생 진학률은 52%이다. 말하자면 절대 우의 초중생이 직접 취업에 뛰여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혹은 집에서 취업을 이런 해마다 저학력 인구가 루적되면 발전이 아주 빠른 중국제에 가면 갈수록 무거운 열쇠를 채워주게 된다.
2001년 스위스의 한 국가관리 개발연구원에서 발표국제경쟁력보고를 보면 중국의 국민자질, 과학기술과 국가경제력이 지속적으로 하강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자질은 1998년 제24위에서 29위로 밀려났고 과학기술은 원래 13위에서 일락위로 떨어졌고 국제경쟁력이 24위에서 31위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은 우리 나라 교육이 빚을 졌기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부동한 교육발전의 길(1)
1. 정부 투입의 차이
중한교육을 대비해 볼 때 우리의 교육발전에 확실히 반성할바가 있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다.
중국발전의 첫째로 되는 문제는 국가의 투입이 엄중하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중국의 일인당 평균 교육투입은 세계에서 장기간 락후한 수준에 머물러있다. 이것은 이미 다 주지하는 사실이다. 지어는 발전도상국에서도 중국정부의 교육투자는 역시 가장 적은 국가의 하나이다. 인도보다 적고 필리핀보다도 적으며 비르마과같은 빈궁한 국가보다 더 적다. 지어는 허다한 아프리카국가보다도 적다.
2000년”전 세계 교육보고”를 보면 1996년 세계에서 소학생이 향수하는 국가교육투자와 그 나라 평균 국민생산 총액비례의 평균치는 13%이다. 전세계 127개 국가중에서 그 평균치보다 적은 국가는 10개 국가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 우리 나라가 포함되여 있다. 우리 나라의 비례는 겨우 6%밖에 안된다.
중국교육중에 존재한 근심어린 문제를 살펴본다면 정부의 투입이 적은 것이 그 매듭이다. 9년제 의무교육을 보급하는데 어려움이 첩첩하다. 빈곤지구의 학생들이 류실되고 있으며 교원의 월급이 체불되고 있으며 대학생이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현상이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귀납한다면 기실 한가지 원인인데 그것은 돈이 없기때문이다.
세계의무교육사에서 중국처럼 농촌의 교육경비를 농민들이 자부담하는 나라가 출현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희망공정이란 자선활동으로 상담부분의 의무교육경비를 해결하는 나라가 없다.
“교육으로 나라의 진흥을 추진한다”하는 슬로건을 내건국가로서, 경제가 신속하게 발전하는 국가로서, 유구한 문화 전통이 있는 대국으로서 이런 현상의 출현은 그 어느 시점에서 말해도 사람들을 설득할수 없다.
한국은 이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일찍 1948년 대한민국이 금방 성립되였을 때는 그 어디나 페허였고 그 어디나 볼품없이 파괴된 상황이였다. 한국정부는 우선 교육을 앞장세운다”는 사회발전전략을 제정했다.
장기간 발전도상국가운데서 한국정부가교육에 투입한 비례는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한다. 학국은 교육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개인투자를 창도했다. 개인투자와 정부투자가 각각 절반씩 차지했다. 이런 배경하에 한국의 공중교육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례는 3.8%좌우를 조사집계한데 따르면 이 비례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발전도상국가운데서 두번째 자리에 뿌리내렸다. 한국정부는 이 비례에 만족한 것 이 아니다. 지난 세기 90년대에는 한국정부에서 1991년부터 2001년까지 해마다 국민생산총액에서 0.1%씩 교육경비를 증가한다고 규정했다.
2001년의 집계에 의하면 한국의 개인교육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례가 2.9%나 된다. 이것은 세계에서 제1위를 자랑한다. 공사교육투입을 합치면 GDP의 7.3%가 된다. 이것은 덴마르크(7.17%)를 바짝 따르는 세계2위이다.
한국은 한때 중국보다 더 락후한 국가였다. 그러나 한국은 건국후 교육이 줄곧 중국의 앞장에 섰다. 조선전쟁중에 한국의 대부분 학교는 포화에다 재더미가 되였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중단되지 않았다. 맑은 날 야외에서 교학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풍경이였다. 전쟁결속후 한국교육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였으며 신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지난 세기 50년대 한국경제는 별로 언급할만한 성취가 없었다. 교육은 그러나 싱싱한 발전을 가져왔다. 각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대폭으로 증가 되였다. 1960년, 겨우 8년이나마나한 시간에 소학생, 중학생과 대학생의 수자가 전쟁이 금방 결속되였던 1952년에 비하여 52%, 90%와 97%나 증가되였다.
20세기 60년대 후기 한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한국의 교육은 더 신속하게 발전했다. 지금 수자적으로 볼 때 한국의 교육발전중 그 어느 한가지 지표든 다 발전중 국가에서는 최고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각 학교의 진학률은 서방발달국가와 상당하다. 어떤 학교는 지어 서방발달국가를 초월했다. 이로 볼 때 한국위 교육발전수준은 당시의 경제발전수준을 훨씬 앞서 달렸다는것을 알수 있다.
한국정부가 교육을 중시했다는 것은 부단히 교육을 중시했다는 것은 부단히 교육을 개혁해왔다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수치나 진행되여 그 차수를 놓고 보면 세계에서 따를 국가가 없다. 이것 역시 한국교육의 질이 부단히 바약함에 있어서의 중요한 에너지였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마다 한번이상 혹은 몇번씩 이나 교육개혁을 추진하였다. 지금 한국은 제 7차 교육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 대강을 수정한지 3년이 된다. 이에 투자한 경비가 한국 화페로 50억원이된다.
현재 우리나라 가장큰 문제인 교육문제를 젤 좋게 보내... 물론 교육을 중시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제도가 수시로 바뀌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 암튼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중국의 문제를 잘 인식한 달통한 학자인거 같네요. 간혹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이 있어서 열이 받기는 햇지만... 이런 찌나인들이 많이 나와서
제발 우리 대한민국을 따라하지 마라.. 물론 따라한다고 너희 지나가 우리나라처럼 될리 만무하지만 그래두 따라하지 마라.. 니네는 그냥 지금 니네 모습이 좋아.. ㅋㅋ 그리구.. 너는 삼황오제를 아는 놈이 기자 조선을 언급해? 삼황중에 중국최고의 제왕 복희가 팔괘를 만들고.. 그리구 결정적으루.. 그 복희가 동이족
잘 읽었습니다.중화 특유의 오만함이나 한국에 대한 무지한 면은 있지만 그 부분들을 제외한다면;;여러가지로 괜찮은 분석인 것 같네요.특히 역사를 기억하고 살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야말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고 문화재보호도 더 필요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겠죠.
첫댓글 평소 몰랐던 장점되는 점은 유감없이 발휘하고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이 뭔지 스스로 깨닫고, 외국인이 우리를 보는 관점도 연구해 보고, 그들의 잠재된 사상까지도 읽어 봅시다..이게 다는 아니겠지만 서두....
이작자의말같은건들을가치도없네요.글군데군데보면 한국에대해선 애정이라는건 눈꼽만치도없지요.이런글을읽어봐야 안좋은 자학만남습니다.서울더러 손바닥만한작은지방이라니..지들도시중에서울을능가할도시가어디있는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연꽃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열린 시각으로 세계와 우리자신을 바라볼때 진정한 발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대학교육은 아직 썪은 물이 많이 고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진정한 정보네요~^^ 다른나라시각에서 보는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전 크기와 인구수의 대국이기보다. 잘나가던 시절의 중국과 일본의 거만함과 주변국을보지않는 편협한시각을 지니지 않는.. 장,단점의 글속에서 진실을 읽고, 편협하지 않으며, 주변국들에게 포용력을 지니는 한국인들이 사는 한국이 되었음 하네요..^^
적어도 인구 수로 따진다면 1억은 되어야 합니다...
과거 우리 정치인들이 놀지만은 않았다는게.....
현재 우리나라 가장큰 문제인 교육문제를 젤 좋게 보내... 물론 교육을 중시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제도가 수시로 바뀌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 암튼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중국의 문제를 잘 인식한 달통한 학자인거 같네요. 간혹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이 있어서 열이 받기는 햇지만... 이런 찌나인들이 많이 나와서
하루빨리 깨끗한 중국, 믿을만한 중국, 성실한 중국, 정직한 중국 만들어 주시길.. 이제 한국에 피해는 그만 주고 도움좀 줄때 되지 않았나.
울나라 아직도 썩은물 많습니다. 아직도 갈길이 먼데 중국은 오죽하겠어요.. 핀란드 정치 TV에서 봤는데 엄청 부럽더만... 우리도 늦기전에 얼렁 정치판이 깨끗해 지도록 노력합시다.
좋은글을 잘읽었습니다. 이정도 글을 한국인이 포용하지못한다면 선진국이될 국민적자질이 부족하다는 반증일것입니다. 대국출신의 유학생답게 넓게보면서 각론에도 철저한글이라고봅니다.
이 글 쓴 중국인, 너무 우리나라에 대해, 우리 민족에 대해 모르는게 많습니다. 중국식으로, 중국식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보고 현재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입장에서 어이없는 부분을 이루어 말할수가 없군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중국인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는지 잘 알겠군요. 후후.
뭐 외국인이 우리보다 정확하게 우리를 인식하고 있을리는 없는거고, 지나인의 관점이 어떤건지 알 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지나인 특유의 대국사관이 있어 간간히 어이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글이라고 판단됩니다.
잘 읽었습니다.중국이 암울하게 느껴지네요.
잘읽었습니다..전반적으로 좋은글이었습니다..다만...내심 들어나는 중국인들의 오만함이 눈살을찌푸리게 만드는군요... 어째...중국에 뒤쳐지기라도 하는날엔...중국인들은 지금 우리가 중국보다 우월했다는걸 잊어버리고 우릴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팍듭니다..
확실히...중국에게 언제나 우위에 있게끔 대비를 해야겟군요...
제발 우리 대한민국을 따라하지 마라.. 물론 따라한다고 너희 지나가 우리나라처럼 될리 만무하지만 그래두 따라하지 마라.. 니네는 그냥 지금 니네 모습이 좋아.. ㅋㅋ 그리구.. 너는 삼황오제를 아는 놈이 기자 조선을 언급해? 삼황중에 중국최고의 제왕 복희가 팔괘를 만들고.. 그리구 결정적으루.. 그 복희가 동이족
인거 알어 몰라?
간만에 긴 글 한번 읽었네요. 이게 끝은 아닌 것 같은데 여건이 되시면 다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시간 반동안 정독을 하였네요. 읽을만한 가치가 있네요. 여러가질 알게 되었습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잘 읽었습니다.중화 특유의 오만함이나 한국에 대한 무지한 면은 있지만 그 부분들을 제외한다면;;여러가지로 괜찮은 분석인 것 같네요.특히 역사를 기억하고 살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야말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고 문화재보호도 더 필요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겠죠.
잘읽었습니다. 중국인의 입장에서쓰여진 글이기때문에, 우리나라에대한 단점들이 있지만, 그역시 심각히 왜곡된것은 아니라보여집니다. 또한, 대부분의 우리나라에대한 좋은 이야기들은 다시한번 저스스로한테 문화유산과 민족에대해 다시금 생각하네 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한국인들은 얼핏하면 세계에서 자기네 무엇무엇이 으뜸이라고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 => 니들만하겠냐..;
좋은 글이네요... 간만에 긴 글 읽었습니다. 간간이 잘못 쓰여진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글이네요..
이글 맘에 안듬. 손바닥만한 고궁을 잘 관리한다구? 지네는 대국이구? 웃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