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삶의 현장
‘목사님, 독감 걸려 예배 못 나갔어요.
코로나 때도 괜찮았는데 감기 기운이 오래가네요.
감염이 무서워 자녀들도 못 오게 했어요.
장영자 할머니도 아직 혼자 교회 가는 것 어려워해요.
웬만하면 같이 가자는 전화였는데 못 갔어요.’
‘밥맛없고 끼니 챙겨 드신 것 만만치 않은데 걱정이네요.
푹 쉬시고 빨리 회복하도록 기도할게요.’
전화를 끊고 본 죽에 들렸다.
자전거로 배달을 갔다.
아파트 문고리에 걸고 문자를 남겼다.
‘와~ 권사님 춥네요.
따뜻한 야채 죽 걸어 놓고 갑니다.
맛있게 드시고 힘내세요.’
‘목사님! 죽이 없어요?’
‘권사님, 12층 문고리에 없어요?’
‘목사님! 11층이어요.’
‘아이고, 착각했어요.
안수집사님 댁이 12층이지요.
목욕 다녀온 여자 두 분이랑 엘베 탔는데
그들 수다 떠는 소리에 더 올라가 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목사님! 가져왔습니다. 잘 먹을게요.’
‘예, 권사님 놀랐네요.’
생애 첫 배달 실수였다.
방심하면 엉뚱한 길로 빠져 일을 어렵게 만듦을 깨달았다.
다음날 새벽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성탄과 새해맞이를 시샘함 같았다.
창문 열고 얼굴 내밀었다.
매섭고 혹독한 추위였다.
함박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가로등이 더 환하게 빛났다.
1층 수도 계량기와 변기 동파가 문제였다.
기도 마치고 안수 집사님과 눈을 쓸었다.
귓등이 얼었다.
콧물이 났다.
손가락이 깨질 것 같았다.
종이컵에 카피를 타 드렸다.
아침이 깨어났다.
여전히 어머니 안부를 물었다.
생일 파티에서 든든히 먹어 잘 주무셨다는 반응이었다.
손녀가 큰돈 썼다고 힘을 줬다.
주일 오후 응급실 통해 입원한 박 권사님 소식이 궁금했다.
허리 통증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수술 앞둔 전화 목소리는 괜찮았다.
5인실에서 불면증으로 다른 사람들 잘 자는 것을 부럽게 여겼다.
혈관 찾기 어려워 대바늘 주사가 곤욕이었다.
금식하며 혈당은 4번 체크하고 다른 검사도 만만치 않았다.
노인 일자리, 간병인, 향후 요양병원 치료에 걱정이 쌓였다.
서둘러 밥 한 술 뜨고 조대병원으로 갔다.
5301호 병실까지 무사통과였다.
커튼 사이를 살피는데 마지막 창가였다.
‘오매 날이 찬디 목사님 오시오.
돈도 없는디 뭔 딸기를 사오셨소.
봉투는 안 받을라요.
가지고 가씨오.’
두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목이 메었다.
남편 떠나보낸 곳, 허리 수술받은 병원,
멀리하고 싶은 데 또 입원한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담당 진료 의사가 폭행 사건으로 3개월 정직을 받았다.
수술비도 만만치 않아 울며 겨자 먹기 식이었다.
걷지도 못하고 숨도 못 쉴 형편이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동네 병원만 좋은 일 시켰다.
결국 국소 마취로 생살 뚫어 신경 눌린 왼쪽 고장 난 곳을 고칠 거였다.
충장 서림으로 갔다.
대형 서점에 손님 셋이었다,
‘달걀과 닭, 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책 찾는데 없다.
신간 코너에서 정신과 의사(윤홍균)의 ‘자존감 수업’을 골랐다.
어린 시절 마음이 여리고 편도선으로 결석이 잦았다.
걸핏하면 우는 울보였다.
머리는 평범하고 야무 지도 않고 재주, 자신감, 끈기도 없었다.
주변에서 걱정했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의사가 된 내용이었다.
자존감 회복 위해 엄청나게 팔린 책이나 별 감동 없이 봤다.
‘세이노의 가르침’ 빨간색이 눈에 띄었다.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Live thicker than blood.)
저자 세이노? 일본인? 번역자가 없어 들췄다.
명예, 인기 부질없는 것으로 신원 밝히지 않은 세이노가 필명이었다.
경영, 투자, 사업가지만 얼굴을 알리지 않았다.
세이노?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 No라고 말하라(Say No)’는 의미였다.
두꺼운 책(735면)이 7천2백 원!
인세 수입 포기하고 사후에는 지정한 자선단체에 기증해 놓았다. 출
처만 밝히면 카페 글을 그냥 사용하게 뒀다.
별난 저자의 책을 샀다.
부스럭거림 없는 도서관에서 쉽게 빨려 들었다.
비위 맞추거나 눈치 보지 않은 독설의 경험담을 쏟았다.
마비된 줄 모르고 눈 감은 삶의 구석을 바늘로 찔러 자각시켰다.
‘연놈들, 미친 새끼, 닭대가리, 대갈통을 톱으로..
모가지를 비틀어.. 가슴팍을 절개해.. 평생 그 모양 그 꼴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삶을 부끄럽게 여기고 엎어버려라.’
몰상식하고 듣기 싫은 말의 연속이었다.
차가운 글,
눈을 감고 싶었지만 전환점을 기대하는 심정임을 알았다.
‘사람에게 투자하라.
닥치는 대로 배워라.
자기 계발하라.
몸값 높여라.
사고방식을 고쳐라.
지금(Just now) 행동으로 옮겨라.
당장 뛰어나가 정글 속에서 홀로서기 할 힘을 갖춰라.
망년회보다 직원들 케이크 선물로 가족과 지내게 하라.
부자 되려면 가까운 고객인 가족부터 만족시켜라.’
1955년생 세이노!
순자산 천 억대 부자로 매년 십억 원대의 소득세를 냈다.
실향민 의사 장남으로 공부보다 아버지 가르침을 귀하게 여겼다.
부친이 전 재산을 사기로 날리고 사망하여 생활고에 시달렸다.
고 3 때 건강과 가난으로 휴학하고 사업에 실패, 4년 만에 졸업했다.
군대에서 부동산 업무와 도서관장을 맡았다.
영어에 몰두하여 미 8군 내의 분교를 다녔다.
차고에 방 만들어 과외, 번역, 보따리 장사로 학비를 댔다.
음악 취미로 청혼한 여인과 가정을 꾸렸다.
10년간 일, 공부에 몰두하여 자산을 모았다.
외환, 경매, 주식으로 자산을 증대시켰다.
아내가 ‘생기는 건 돈밖에 없네’할 정도였다.
학연, 혈연, 지연, 정치적 배경 없이 일궜다.
독서, 영화, 음악 감상을 즐겼다.
가르쳐 깨우치며 문제 해결 좋아하고 술 접대 자리를 꺼렸다.
피보다 진한 삶의 소유자였다.
2023. 12. 23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