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녁이다. 그냥 저녁, 영원한 저녁이다.
해를 따라가서
같이 저물어버리고 싶은 저녁이다.
굳이 쓰자면
수릉 C2H5OH
산소와 수소가 부둥켜안고 있는 집에
탄소가 와서 엉겨
수소는 5개가 더 늘어나고
탄소는 도플갱어 하나가 더 분리된 이야기.
2
취하는구나.
술은 들어오고,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기름을 녹이고
내 몸 속을 돌아다니는 오토바이 한 대를
서서히 녹이는구나.
급발진하고 싶은 1단 기어
내 섞어가는 오토바이를 나는
보고만 있구나.
백미러 한 개가 녹고
기름통 뚜껑이 녹고 있구나.
3
저녁이다. 밤무대마저 거절당한
삼류 가수의 심정이 자꾸만 생각나서,
그 심경이 폐를 뒤적이며 다시 뒤적이는 저녁이다.
먼저 가서 울기 위해 새들은 바다로 날아가고
우와아아 저녁이다. 그냥 저녁. 저녁으로 들어가
저녁에서만 살고 싶은 저녁이다.
4
한번 들어가자, 애인아. 한번 들어가면
술잔이 계속 늘어나서, 술잔이 계속 늘어서서
되돌아 나올 수도 없고, 나가려 하지도 않는
그런 생의 술집이 있을까마는
술은 아직도 내 몸속에 서 있는
눈사람을 다 녹여 먹고
내가 아닌 술이 되어 우는구나.
나가라 하지도 않고, 더 있을 수도 없는
생의 그런 술집이 있을까마는
내가 아는 먼 마을에 눈이 그치듯
술이 술을 더하고 불러내,
당신의 눈빛마저 다 녹여 먹기 전까지는
애인아, 한번 가자.
네가 다시 눈을 뜨듯 이 저녁 첫 등을 켠
저 술집.
[밤의 화학식], 문예중앙,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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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화학식 / 성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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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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