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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레드벨벳이너무좋아여ㅜㅜㅜㅜㅜ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김재규 재판정 최후진술中
김재규는 누구인가?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 후배(현 경북 구미시) 이면서 육군사관학교 동기(2기)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으로 재직중이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살
10.26사건
(현장검증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김재규)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경 종로구 궁정동 안가,
중앙정보부장이자 박통의 왼팔로 불렸던 김재규가
박 대통령과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등을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
거사 이후 그는 자신의 근거지인 중앙정보부가 아닌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와 함께 용산의 육군본부로 향했다.
사건 당일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의 수사요원에 의해 체포됐으며
내란목적 살인, 내란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980년 5월 24일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났다.
10.26사건은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우발적이었고, 준비가 엉성했다고 보기에는 치밀했다.
- 백동림, 당시 합동수사본부 수사 1국장 -
(박정희와 차지철, 그리고 김재규의 모습)
그는 왜 박정희를 쏘았나?
1. 분노에 의한 우발적 행동이다?
; 평소 박정희의 편애를 받던 차지철이 자신보다 한참 아래에 있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월권을 일삼자 박통이 이를 묵인하자 김재규는 이를 매우 괘씸하게 생각했다고한다. 또한 민주화시위에 대한 온건했던 입장인 김재규와는 달리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 정도를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 대원 100만-200만 정도를 죽인다고 까딱있겠습니까"라고 하는 등 매우 공격적이었던 사람으로, 평소 추구하던 사상이 달라 갈등관계에 있었던 차지철을 죽이고, 뒤이어 박정희도 쏘았을것이라는 설. 그러므로 차지철을 죽인것은 계획적이었지만, 박정희를 죽인 것은 우발적이었다는 것.
2.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위한 계획적 거사인가?
; 김재규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는 박정희 정권에 염증을 느껴 독재 종식을 위해 박정희를 살해했다는 설
실제로 재판이 진행될 당시 김재규가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함.
71년 대선때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국민에게 약속하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가 약속을 어기고
유신을 선포했고, 김재규는 부하들 앞에서 박정희가 다 망쳤다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 이요,
두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 입니다.
세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 입니다.
네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 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 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 이었습니다. "
-김재규 1심 최후진술中
"박 대통령 각하는 나에게 동향 출신으로 은인이며 상관이다. 친형제 간도 그럴수 없을 만틈 가까운 관계다. 그러나 많은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대통령 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김재규 최후 진술中
김재규는 왜 육본으로 향했나?
김재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거사 이후 엉뚱하게도 자신의 근거지인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향했다
만약 김재규가 거사후 중앙정보부로 향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도 중론이다.
암살장소인 안가는 중앙정보부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었으므로 부장인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이 대통령을 시해한 사실을 은폐하고 불순세력의 소행으로 몰아가 국무위원과 장성들을 깨끗하게 속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시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후에 사태 수습을 빌미로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써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육군본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체포되면서 사태를 장악하지 못했다.
이는 그가 우발적으로 살해했음을 뒷받쳐주는 증거가 됐으나, 김재규는 이와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는 하늘의 명령에 따라 많은 원수를 만들었다. 10.26일 혁명은 도덕성을 가지고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내 혁명을 수행하면서 민주회복을 시켰으니 그런 관점에서 내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통령을 죽였다고 하지만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는가”
-김재규 옥중 면담록中 일부
그를 향한 엇갈린 평가
'김재규가 만약 박정희를 쏘지 않았더라면 유신정권이 계속 유지되어 더욱 큰 악행을 낳았을까?'
'반대로, 만약 박정희가 총탄이 아닌 피플파워로 물러났고 5공청문회와 같은 '유신청문회'로 파멸했다면
지금과 같은 향수어린 "박정희 신화"는 없지 않았을까?'
그가 주장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 은 도리어 10.26 이후 전두환이 합동수사본부장이 되면서
또 다른 독재를 낳는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민주화를 원했던 재야인사 및 민주운동가 단체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엇갈리는 편.
그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암흑기 속에 유신의 독재를 종식시킨 희망의 주역, 독재 속에 신음하는 민중을 구해내고 독재자를 몰아낸 영웅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 또한 박정희 정권의 수뇌부 중 한사람이자 중앙정보부의 수장으로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자이며, 민주화와는 상관이 별로 없는 이유로 박정희를 살해해서 결과적으로는 박정희를 국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심판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10.26은 김재규의 분노에 의한 우발적 살해였다는것이 이제까지의 중론.
허나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김재규 평전 출간이 되고있음.
나는 혁명은 결행하였으나 혁명과업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하여 수행되었으며,
국민 여러분 이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사형장으로 가기전 김재규가 남긴 마지막 유언
그는 어리석은 살해범인가? 민주화를 갈망했던 혁명가인가?
김재규 최후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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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현대 사건중에서 10.26에 매우 관심이 많은 편인데
김재규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진행될지 매우매우 관심이 많은 사람이야
예전에는 김재규가 부정적으로만 평가되었다면 요새는 김재규평전이 출간되기도 하는등
이전에는 상상할수없었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상황임
여시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사실 김재규의 최후진술론을 들어보면 이사람이 정말 우발적 살해범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더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
하지만 박정희의 심복으로 한평생을 같이 갔던 사람이니 온전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는 사실 힘들지.......
여튼. 음.. 한번쯤 같이 봤으면 좋겠어서 써봤어
문제시 빨리 고침!
첫댓글 잘 모르지만 박정희 죽인거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뭐 잘 죽인거같름..안죽었으면 박정희도 전두환같은 평가받았을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잘 죽인거같음! 어차피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지모르는거니...그냥 박근혜가 세습독재했을수도 있공ㅎㅎ
음.. 물론 난 정치성향은 진보쪽에 가깝겠지만 '잘' 죽였다고 하기엔 좀 어감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 땐 마냥 독재자를 죽여서 멋진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또 다르게 보이네.
나는 피플파워로 내려앉히려면 시간이 훨씬 더 걸렀을거란 생각에 김재규가 죽인게 신의한수라고 여태껏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전두환이 뒤이어나온거랑 박정희향수병 뭐 이딴것들때문에 생각이 바뀜
쨌든 독재자를 처리?? 한건 잘한거지만 그뒤에 더 쓰레기같은놈이 나온게 문제였지...
독재를 막기위해서였다지만 이 다음이 전두환이옇ㅇ지
여시야 박정희가 즐겨보던 사극에서 21살의 여자를 청와대에 초대한다는데 그 여자가 누구얌? 심수봉 이현란 아닌거같은데
그래 내가 궁금한건 여시에 다 있어서 내가 여시를 못 끊어 ㅡㅠ.ㅜ..... 고마으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