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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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約 (미래의 약속) 2
옛날에 비하여 우리의 생활조건과 삶의 질은 얼마나 저하하고 악화되었는지 모른다. 많은 인간이 선호하는 아파트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 수 있었으며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인간들의 세멘트로 만들어진 주택과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망은 우리의 이빨이 먹혀들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굴을 뚫어 요행 통행루트를 개척했다 하더라도 식량은 견고한 쌀통이나 냉장고에 들어있기가 일쑤였다. 하여 기껏해야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의 시궁창에서 상한 음식이나 먹게 되었으니 그 참상이 오죽하리오.
그러니 돌이켜보면 150여세대(약 30년)전에 일어났던 새마을 운동이야말로 우리의 생존에 괴멸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농약남용과 중금속오염으로 인한 들쥐의 수난도 수난이었지만 집쥐가 가장 많은 타격을 입어왔다. 난민양산은 물론이거니와 저 미개한 들쥐로 전락한 쥐도 많았으며 교활한 곰쥐에 빌붙어먹는 것들도 많았으며 시궁쥐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지키려다 백이숙제처럼 아사한 동포도 기백만은 넘을 것이니 실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궁쥐에 불과한 것들이 자존심, 지조운운에 실소를 터트릴 독자가 있을까 싶어 설명하는데 믓 쥐들 중에서도 지능이 가장 높은 게 바로 우리다. 시궁쥐는 최소한의 예의범절과 공중도덕과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다.
길에서 늙은 쥐를 만나면 길을 양보하는 것은 물론이며 식량이 생겨도 늙은 쥐에게 우선권이 보장되는 수준이니 어떤 면에선 땅에 떨어진 말세의 인간세계보다 훨 낫지 않은가 말이다.
옛날 인간들에게 10계가 있었다지만 오늘날의 쥐가 인식하고 있는 계율은 무려 100계에 다달을 만큼 고도화된 문명을 자랑하고 있다.
주거형태만 하더라도 부부방과 육아방, 식량창고와 화장실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며 어떤 암컷이든 어미를 잃은 새끼쥐를 보면 기꺼이 거둬들여 친자식과 똑같이 키워주는 미덕이 있다. 진실로 쥐들에겐 애초에 고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말도 십중 두셋은 알아들을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아이큐가 3,40정도는 될 것이라는 인간의 연구기록도 있다. 계란을 깨트리지 않고 두 마리 쥐가 운반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한 마리가 네발로 계란을 끌어안고 발랑 누우면 나머지 한 마리가 꼬리를 물고 끌고 가는 것인데 등이 아프거나 망가질 텐데도 보통 손발이 척척 맞는 게 아니다.
또한 대서양에선 쥐들이 협력하여 해물을 잡아먹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잠수능력을 가진 1중대가 물속으로 잠수하여 조개나 갑각류를 잡아 올리면 2중대가 껍질을 벗기거나 깨트린다. 그럼 아무 수고도 않는 3중대가 먹는데 1,2,3중대의 역할이 바뀌는 경우란 거의 없다.
잠수쥐는 아무 이득도 반대급부도 없이 수고만 하는 것인데 서열이 낮아서도 아니고 강압에 의해서도 아니니 정녕 불가사의한 희생정신인 것이다. 어쩌다 잠수쥐가 죽어버리면 2중대나 3중대에서 아무 원칙도 없이 그 자리를 이내 메운다.
터무니없는 희생정신의 사례를 또 하나 들자면 1926년 코펜하겐에서 있었던 실화인데 들끓는 쥐에 고민하던 선원들이 배를 밀봉하고 청산가스를 주입하면 쥐들이 깨끗이 박멸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선원들과 과학자들은 어림없는 착각이란 걸 알고 아연했으니 가스가 주입되고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쥐들이 가스파이프로 줄을 이어 파고드는 바람에 주입관이 쥐들의 시체로 막혀버려 더 이상의 가스주입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5%가량의 쥐의 희생으로 95%의 쥐가 끄떡없이 살아남았다.
아아~ 그러니 한도 끝도 없는 천적으로부터의 위협과 기아선상의 식량사정으로 인한 극심한 노동, 끊임없는 질병으로부터의 위협, 그리고 계속 자라나는 앞 이빨을 갈아둬야 하는 스트레스의 질곡에서 자유로웠다면 우리는 훨씬 더 고도의 문명을 발전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거나 메가1세같은 위대한 선지자나 로렉스같은 메시아를 우리에게 보내준 조물주의 은총에 감격감격할 따름이다.
제2장. 出安山記
우리 종족의 위대한 선지자 메가1세가 태어난 것은 인간들 달력으로 1994년 10월경이었다. 경기도 안산시 고잔벌 붉은섬마을의 유서깊은 조루집안인 조루16세의 9남매중 세째로 태어난 메가1세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조루16세의 일생에 걸쳐 태어났던 162마리의 자식중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 즉 3개월을 생존했던 52마리 형제중 28번째 서열로 태어난 메가는 임신기간이 3일이나 모자랐다고 한다.
그걸 두고 메가1세를 음해하는 자들은 엄마가 간통을 했다느니 아버지 이름이 조루라서 그렇다느니 험담을 하지만 모두 근거없는 썰임을 나 요안은 보증하는 바이다. 어쨌거나 초산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모친은 조루16세의 네 번째 부인이었다) 어찌나 난산이었는지 메가1세는 사산하는 다른 형제와 얽혀서 그것도 거꾸로 자궁을 나오는 바람에 심각한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결함이란 다름이 아니라 심각한 목뼈골절인지 디스크인지로 인해 고개를 좌우로 돌릴 수 없는 마비 증세와 더불어 유전인지 팔자인지 모를 심한 사팔뜨기 눈을 가진 장애자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자나 깨나 천적을 경계해야 하는 슬픈 숙명의 쥐 종족으로서는 그 장애는 거의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경계해야 함에도 그의 목은 요지부동이라 몸을 돌려야만 보고 싶은 곳을 볼 수 있었을 뿐더러 눈마저 사팔뜨기이니 정면에서 오는 적을 피할 재간이 있겠는가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흘겨본다는둥 인상이 더럽다는둥 건방지다는둥 어른 쥐로부터 구박을 받기는 또 그 얼마였던가? 심지어 차라리 천적에 식량으로 제공하자는 의견도 있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리오.
인신공양, 아니 서신공양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거나 중죄를 지은 쥐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인데 그 이유는 천적에게 제공하는 대신 천적이 배가 부를 동안 다른 쥐들은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단순논리 외에도 천적의 사냥감각을 둔화시켜서 다음 사냥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게끔 유도하는 심모원려가 담겨있다.
악독한 천적중 일부는 식량이 제때 공급이 안 될 경우 무서운 살상본능이 살아나서 식량목적 외에 분풀이로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서신공양이란 그런 참극을 방지하기 위한 우리 종족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지혜의 소산인 것이다.
어쨌거나 믓 위인들이 그러하듯이 큰 재목이 될 사람은 으레 어릴 때 그런 고난을 겪게 마련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신의 가호와 모친의 결사적인 보호로 인해서 메가1세는 다행히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다.
첫 출산이어서 그런지 모르나 그녀는 엄청난 태몽을 공개했는데 쌀가마니가 가득 쌓여있는 곳에서 수염 난 흰쥐(흰쥐는 우리 종족에게 산신령 비슷한 비범한 초서로 인식되고 있다)가 나타나더니 목자가 씀직한 자(尺)를 던져주더라는 것이다(인간들 전설에선 죽은 시체를 흰쥐가 자로 재면 부활한다는 설이 많다).
정말인지 아닌지 메가를 살릴 의도에서 지어낸 거짓말인지 당시로선 설이 분분했지만 후세에 와서 보면 그녀는 진실을 말했던 것이 틀림없다.
비록 유아기에 도태되진 않았다하나 믓 쥐들이 보기엔 너무도 멍청하고 모자라보이는 메가1세라서 제명 껏 살리라고 기대한 쥐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제 명껏이 다 무엇인가? 족보에 오르는 성인식 때까지도 살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믓 쥐들의 예상을 깨고 그는 기적과도 같이 당당히 살아남았다.
물론 소년기를 보내면서 메가에게도 많은 위험이 닥쳐왔었다. 두 형제가 김씨네 야산에 살고 있는 저 가증스런 족제비에게 먹힐 때만 해도 메가도 같이 있었는데 의심 많은 족제비는 메가의 그 기묘한 태도(꼿꼿한 목)와 대담함(사시로 인한)에 쥐 같지 않은 쥐인 메가를 포기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쥐 같은 쥐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으므로..
그리고 안산시 고잔벌을 영토로 하고 있는 송골매의 레이다에도 걸렸던 적도 있었으나 경험 많은 송골매는 메가를 한눈에 농약,혹은 중금속에 오염된 쥐라고 판단하고는 메가 대신 그 옆에 있던 정상적인 쥐(메가의 사촌)를 그날 아침의 식사로 선택했던 것이다.
또 생후 20일깨는 그 동네에 군림하고 있던 마이콜이란 들고양이와 정면으로 마주친 적도 있었다. 고양이와 마주치면 대개의 쥐는 일순간에 최면상태에 빠져 무력해지게 마련이었지만 메가는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이콜앞으로 지나가고 말았던 것인데(실은 사시라서 정면의 고양이를 못 본 것인데도) 마이콜은 너무도 충격을 받아 한동안 자신이 늙었음을 한탄했다던가?
ㅡ 계속 ㅡ
첫댓글 즐~~~~감!
즐감
오늘도 비가 많이 올듯..잠수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