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靜寂 ㅡ Ⅰ』
입센의 '민중의 적'은 노르웨이의 온천 마을 이야기입니다.
마을의 유일한 의사 스톡만은 온천수가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마을 신문에 알려 개선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시장을 비롯한 마을 유지들도 그의 발견을 반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오염된 온천을 고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고, 온천을 찾는 관광객이 끊기면 마을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힙니다.
시장인 그의 형은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를 막으려 하고, 처음엔 그를 지지하던 신문사와 상인 조합, 그리고 마을 사람들까지 하나둘 등을 돌립니다.
결국 마을 전체회의에서 스톡만은 다수결로 "민중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돌팔매를 맞으며 집으로 쫓겨납니다.
스톡만이 옳았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진실이 알려졌을 때 누가 손해를 보는가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온천으로 먹고사는 자신들의 생계와, 오랫동안 마을을 이끌어온 유지들의 체면 앞에서,
진실보다 익숙한 질서 쪽에 서는 것을 택합니다.
극의 마지막에 스톡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홀로 서 있는 자"라는 말을 남깁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이익을 위한 다수의 거짓, 정의를 위한 소수의 진실. 당신이라면 어느 편에 서겠는가' 라는 뜻이겠지요.
140년 전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이야기지만,
다수가 진실보다 안온한 질서를 택하는 이 풍경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반복되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책을 읽는 분이라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민중의 적'은 ㅡ
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릭 입센의 희곡으로 연극에 관심있는 분들께 익숙하며
여주인공 노라가 남성에 종속된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는 과정을 묘사해 여성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인형의 집'도 입센의 작품이지요
『靜寂 ㅡ Ⅱ』
회사에 다닐 때 부서마다 저울이 하나씩 있었다.
잘잘못을 재는 저울이 아니라 누구 편에 서야 하는지를 재는 저울이었다.
평소에는 다들 그런 저울이 없는 척 살았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승진자 명단이 붙는 날이면 그 저울의 눈금은 유난히 선명해졌다.
어느해 겨울, 나는 부장의 결재 서류에서 중요한 내용이 틀린 것을 보고 직접 알렸다.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회식 자리에서, 부장은 그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먼저 꺼냈다. 나이가 드니 이런 실수도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함께 웃었다. 그리고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이상하게도 내가 그 웃음의 대상이 된것 같음을 느꼈다.
이후로 나는 회의 시간에 말을 아꼈다. 틀린 것을 보아도 내가 관련된 일이 아니면 그냥 지나쳤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 여겨서가 아니라, 말을 하고 난 뒤의 그 정적을 다시 견디고 싶지 않아서였다.
세월이 흘러 부장은 정년퇴임을 했고, 나도 몇 해 뒤 그 회사를 떠났다.
지금도 가끔 그 회식 자리의 웃음소리가 떠오른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다들 그저 오래 알던 쪽, 익숙한 쪽으로 몸을 기울였을 뿐이었으니까.
가끔은 그 정적을 한 번 더 견뎌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첫댓글
비겁한 운명론자인 저는
"정적"을 "정적"으로
읽었네요.^^
어쩌면 세상은 거대한
연극무대 이기에,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함에
있어, 옳고 그름에 앞선
상황과 해석의 방향이 각기
"다름"을 인정하기 까지
오래걸렸네요.
" 이해와 용서는 신의 영역"
인간은 다만 행 할뿐인 것을
헤아리게 되자 조금 마음이
편해진 요즈음이네요.
기력이 쇠하여 자꾸
앉고 누울자리만 살피는
노년기라서 일까요.ㅎ
그저 쉽고 편한길로 자꾸
비켜 서게 되네요.ㅎ
해량하소서~
척하면 척이네요.
맞아요, 세상은 연극입니다.
그것도 무언극이 아닐까 해요.
기력이 쇠하기도 하고 , 그보다는 세상의 법칙이겠지요. 아무래도 편한쪽이 나을테니까요, 무슨 해량은 ~
그리고 공연한 수고를 덜기위해 정적은 한자로 표기했슴.
혜량? 해량?하소서. 난 정말 혜량 해량 차이를 잘 몰러유, 설명좀 해줘유
@둘째 혜량(惠諒):살펴서 이해하다
해량(海諒):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양해함.
@물그림자 고맙습니다. 비슷해 보이네요 ~
@둘째
반가워요~ 둘째님^^
저는 혜량 할터이니
님은 해량 하소서~ 찡긋^.~
@지는해
ㅎ 덕분에 열공했어요 ㅡ근데 예상했던것 처럼 크게 다르진 않네요 ~~
해량(海諒) 과 혜량(惠諒)
모두 국립국어원 상담 사례에서 편지에 쓸 수 있는 말로 인정하고 있어,
문맥에 따라 둘 다 사용 가능
미묘한 차이ㅡ
혜량(惠諒)은 '남이 헤아려 살펴서 이해함'을 높여 이르는 말로,
사극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굽어살피소서'라고 아뢰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에 가까움.
즉 상대의 '헤아림'과 '이해'를 구하는 쪽에 무게가 있고
반면
해량(海諒)은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달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잘못이나 결례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분위기가 조금 더 짙음
실용적으로는ㅡ
일상적인 편지 말미(가령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함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에서는 두 단어 다 무방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답변.
다만 두 단어를 혼동하거나 정확한 쓰임을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
굳이 구분해서 쓰고 싶으시다면 —
단순히 "제 사정을 헤아려 달라"는 뜻이면 혜량,
"제 잘못이나 결례를 너그럽게 봐 달라"는 뜻이 강하면 해량이 조금 더 결에 맞음
아무튼 짜다리 달라 보이지 않은데 공연히 복잡하기만 함 ㅉㅉ
@둘째
어익후~
섬세하시고 꼼꼼하신
둘째님 덕분에 저도
새삼 공부가 되었네요^^
막연하게 사용하던
단어 였는데 이참에 확실
정확한 어원을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아침바람이 선선해서
딱 좋군요.
무더위 후에 달달한
온도에 흠뻑 취해서
아~ 참 좋구나~
이맛이야~ 그랬답니다
ㅎㅎ
오늘도 열심히 잘
화이팅 입니다^^
조직에 몸담았을 때만
있는 줄 알았던
그 저울은
이 나이 먹어도
아무 곳에서나
불쑥 튀어
나오곤 합니다..
중심을 잡는다고
버팀을 하다보면
어느새 양쪽은 각각의 무게를 가지고 있고
생뚱맞은 중심에서
외로운 자신을 보곤 하지요..ㅎ
둘째님 글은
시사하는 바가 있어
늘 재미집니다..ㅎ
새겨 읽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두어달 전에 저울 이야기를 했는데 또 저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진부하지만 해량 혜량 해주셔요. ^^
우리 모두가 그런 세상에서 살았었죠.
진실이 이익 집단에 묻혀 왜곡 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잣대로 계량되는 기운 저울 속에서
허우적 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모두 이해 되기도 하고..
용서도 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세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용서도 되는 시간 ㅡ 한동안 생각했어요.
제 생각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머뭇거리다 간단히 답글만 드렸습니다, 해량,혜량하세요 ^^
@둘째 복잡한 이해 관계 속에서 살다가..
이제 은퇴를 하고 보니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이 들어 적어 봤네요.
가해자가 되어 남에게 아픔을 주기도 했고..
피해자가 되어 억울한 일도 있었죠.
은퇴를 한 지금은 그저 좋은 생각만 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해야하는데 겁이 많아 침묵하며 속만 끓이기도 합니다.
한 때 불의를 보면 못 참았던 제 성향도 이제
뒤에서만 통탄하다가 언뜻 내 비치기도 합니다만 행여 불이익이 두려위 얼른 수습해 버리는 겁쟁이가 되 버렸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때문에 더 안위에 신경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부장님이 중요한 것 틀렸었다면 속으로는 고맙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암튼 웬만한 건 눈 감고 지나가는 데 차차 익숙해 졌습니다. 1, 2 좋은 글 잘 읽고 공감하며 갑니다.
위 김포인님의 댓글
시간이 흐르니 이해 되기도 하고 용서도 된다는 의견이 많은 것을 뜻하는것 같아요.
본문은 단지 하나의 예일뿐 저도 눈 질끈 감고 지낸답니다.
카렌1님, 긴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