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풍자공상환타지
未約 (미래의 약속) 4
‘나 이제 알아 혼자된 기분을 그건 착각이었어 믿을 수 있니..’나중에야 서울에서 유행하는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라는 노래라는 걸 알았지만 당시에는 혹여 미친 쥐가 아닌가 싶을 만큼 생경한 멜로디였다.
가락3세는 메가를 보자, 거침없이 말을 걸어왔다. 한동안은 심한 방언과 사투리 때문에 의사소통이 힘들었으나 쥐들이 늘상 그러하듯이 오래지 않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며 대화가 가능해졌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조루17세”
“몹시 허기가 지는데 먹을 것 좀 나눠줄 수 없겠느냐?”
“뻔뻔스럽게도 그런 말이 나와! 험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당장 꺼져! 우리 동료들에게 걸리면 아주 재미없을걸. 대체 무엇을 염탐하려고 우리 동네에 온 거야?”
“나는 첩자가 아니라 지치고 늙어서 죽어가는 방랑자일 뿐이란다. 나를 도와준다면 네게 바깥세상의 엄청 재미나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다”
“곰쥐들의 사기협잡 솜씨가 보통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가락3세는 길게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아아~ 집시인 내가 제왕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제왕인 내가 집시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뜬 구름잡는 헛소리였으나 메가는 그 뇌까림에 뭔가 특이함을 느꼈던 것 같다.
이때, 멀리서 [쿠르르르]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늙은이, 아주 멀리서 온 모양인데 그럼 저렇게 천둥이 치는데 비가 왜 안오는지 알고 있어?”
“저건 천둥소리가 아니라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이니라”
“전철이라니?”
“기차와 비슷한 것인데 인간들이 타고 다니는 것이란다”
사실 메가는 기차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서 어른들 말로도 저 소리는 천둥소리였다. 그런데 구름도 없이 하루 수십 차례씩 들리는 비도 안 오는 천둥이란 아무래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좋아, 함 신기한 이야길 해봐, 먼저 기차랑 전철부터..”
결론부터 말해서 왕년에 인간세계에서 있었던 ‘천일야화’비슷한 일이 붉은섬 마을에서도 있어났던 것인데...
사실 가락3세는 워낙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으나 천부적인 재담솜씨를 지니고 있었던 곰쥐였다. 그는 본래 미국의 곡물수송선에서 태어나 일본의 고베항을 거쳐 인천항까지 흘러온 다국적 쥐였다.
그런데 오렌지 상자에 잘못 들어갔다가 하역되어 서울의 강남에 있는 백화점까지 가게 되었다. 백화점에서 탈출하여 가락동에 흘러가 고작 3세대의 시간만에 쿠데타로 그곳의 정권을 잡고 2세대간 군림하다가 복고쿠데타로 실각하여 구사일생으로 망명길에 올라 1세대정도의 여행 끝에 이곳 고잔벌까지 흘러온 쥐였다.
그 파란만장한 서생역정은 고작 중앙동, 상록수정도의 세상이 천하의 전부인양 알았던 우물 안 개구리에게 쇼킹한 일이었다.
더구나 쿠데타니 실각이니 하는 것들은 고작 촌로 5마리의 부족에 불과한 이곳 문명수준에 비하면 상상을 절하는 말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이 붉은섬부족은 정치라는 개념조차도 모르는 촌무지렁이 부족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시간도 안되어 메가는 가락3세에게 완전히 매료당해 조과부네 논에 있는 짚 낱가리로 가락3세를 안내했다.
낱알이 잘 털리지 않아 이미 많은 쥐들이 분탕질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기아를 면할 수 있는 곳인데다 메가의 식량보조로 인해 가락3세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차렸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한 메가의 욕심에 식량원조는 점점 늘어났다.
온갖 종류의 혼혈로 이루어진 서울암쥐의 아름다움과 지성과 교양이야기, 고베암쥐의 헤픔과 방중술과 뼈가 녹는 연애이야기엔 침을 질질 흘릴 수밖에 없었고, 오렌지쥐족의 이야기엔 속이 쓰렸고...처음엔 음담패설로 시작된 천일야화였다.
사실, 가락3세는 생존을 위해 식량 확보를 위해 메가의 환심을 사려고 실제보다 몇배 부풀려서 허풍을 친 것이지만 메가는 다른 쥐들보다 집중력이 몇 배 더 높았으므로 그의 말을 모두 소화해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를 알면 열을 유추해내기까지 하는 뛰어난 자질을 보였던 것이다.
때문에 가락3세는 메가의 가능성을 알아채자, 이내 열렬한 스승으로 변신했다.
그는 자신이 그리 오래 못산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기에 진정으로 이 싹수가 보이는 쥐를 통해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루려했으나 이루지 못한, 실제와 동떨어진 이상을 구현시키려는 집착에 빠졌던 것이다.
그는 메가에게 ‘시대가 달라졌다. 쇄국주의와 고립주의는 멸종의 지름길이며 오직 개방과 개혁,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만이 살 길’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모든 쥐 종족이 대동단결하면 인간들도 전혀 두려울 게 없다고 부추겼다.
단결은 그럼 어떻게 하는가? 단결은 오직 정치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럼 정치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바로 힘이다, 힘을 확대재생산하여 대의명분을 앞세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나아가 신의 이름을 팔면 삽시간에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세뇌시켰으며....
덧붙여서
자신이 이곳으로 오다가 직접 본 사실을 토대로 이곳도 두세대가 지나기 전에 개발이 시작되고 끝내는 초토화 될 게 명백하다. 그러니 믓 세력을 규합하여 서울로 가라.
그리고 중심부인 가락시장에 입성하여 나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나의 이름으로 정권을 탈취하라. 내 이름만 대도 옛날 자기의 부하들로 이루어진 일당백의 친위비밀결사가 적극 나설 것이니 거사만 일으키면 무조건 99%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부추기고 세뇌시켰다.
가락3세는 메가가 후일 서울의 가락에 입성하면 자신의 손자인 가락5세가 낳은 딸들 중 둘을 첩으로 삼는 것을 허락한다는 언약까지 하여 사춘기인 메가의 허파에 바람을 잔득 집어넣었다.
정권만 잡으면 수백 마리의 암쥐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하렘을 가질 수 있고 보기 싫은 쥐를 마음대로 죽일 수 있으며 서울에선 흰쥐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암흰쥐의 그 맛이란 깨물어봐야 안다는 말로 아직 동정인 메가를 뜨겁게 달구어놓았다.
더구나 가락동 전역을 해방구로 만들고 인간에게 호된 맛을 보여주고 타협을 하면 천적이 없는 영원한 쥐들의 지상낙원을 만들 수 있다고까지 비약했다.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판단한 가락3세는 보름 후부터 본격적인 밀봉교육에 들어갔다.
권력장악의 비결과 권력의 유지방법, 포섭 세뇌하는 방법, 대중의 인기를 얻는 방법, 신의 대리인으로 행세하며 우상화하는 비결, 비밀경찰 조직과 운영법, 반대파의 제거수단에 대해서 치밀하게 교육을 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평생에 걸쳐 얻은 여러 가지 노하우를 열심히 전수했다. 즉 트럭을 타는 법, 도시에서 물을 얻는 법, 수도꼭지 사용법, 냉장고속의 음식을 홈쳐먹는 방법, 격투의 비결, 암놈을 유혹하는 비결, 심지어 방중술까지..
그 원리나 물리학상의 법칙을 메가로선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으나 방법만은 꼼꼼히 기억해두었다. 가락3세는 인간들의 약점과 쥐덫의 종류와 쥐약의 종류와 해독법까지 알려주었고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우리의 무기는 이빨이다. 물어뜯으려는 결의만 보이면 백이면 백 인간 쪽이 도망가게끔 되어있다. 더구나 들쥐중의 일족인 등줄쥐에겐 유행성출혈열이라는 인간들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거의 핵폭탄과 다름없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메가의 과대망상을 한껏 부추겼다.
그들은 소위 궁합이 썩 잘 맞는 사제지간이었으나 이 세상에 끝나지 않는 잔치란 없다고 했다.
메가가 가락3세를 만난지 어언 30일째 되던 날이었다.
메가가 가락3세를 찾아가자마자, 뒤이어 조루16세와 그 형제 자식들 십여마리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얼마전부터 식량이 축나고 메가의 행적이 수상해서 뒤를 밟았던 것인데 메가가 변명할 사이도 없이 무지막지한 이빨로 메가를 물어뜯어 팽개쳤다.
기절했다가 얼마후에 깨어난 메가는 그들이 피투성이가 된 가락3세의 시체를 신속히 매장하는 것을 보았다.
이어 조루16세의 냉혹한 얼굴이 다가왔다.
“곰쥐와 교섭하는 건 반역쥐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메가는 너무도 큰 충격에 아무소리도 할 수 없었는데
“당연 우리 부족에서 추방하여 밖으로 내쳐야 옳지만 네 어미를 보아서 덮어두겠다”
메가가 변명을 안 함에 조루16세는 관용을 베풀기로 한 것 같은데
“단, 이시간부로 너와 나는 의절이다. 너는 이제부터 조루집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다시 우리집 부근에서 눈에 띄면 너를 고양이밥으로 던져버리겠다!”
그리하여 메가는 엄마나 누이등과도 만나지 못한채 조루집안에서 축출되었고 동시에 그의 소년시절도 지나가버렸다. 후일 메가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가락3세가 한달만 더 살았어도’하는 탄식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음을 모르는 쥐는 없을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았던 곰쥐의 위상이 오늘날 이처럼 개선된 것은 실로 가락3세로 인한 것이다. 아무러나 그 참담하고도 가혹한 유년기가 메가의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불문가지다.
집에서 쫓겨난 메가는 가장 취약지구인 마을의 변두리에 있는, 전에는 돼지우리였다가 지금은 왕겨나 나무단을 보관하는 창고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곳엔 성범죄 관련으로 쫓겨난 [도네]라는 쥐와 너무 가난하여 콩가루집안이 된 출신인 [망통]이라는 쥐가 선점하여 살고 있었다.
모두 메가보다 연상이었으나 의지할 데 없이 동네쥐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던 도네와 망통으로선 동지가 생긴 셈인지라 메가를 환영해주었다.
그러나 여러 편의를 봐주는 더부살이 생쥐계급도 없었고, 바로 20미터밖의 야산엔 족제비굴이 있는 죽음 일보직전의 환경이었고, 먹이 역시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이상을 투자해야만 겨우 풀칠할 정도인 최악의 생활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는 먹이에 별로 연연하지 않았다.
선천적인 작은 체구 때문이기도 했고 주위에 별로 동요하지 않는 천성때문이기도 했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몽상과 공상에 빠지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무릇 쥐나 인간이나 최악의 상황에 처하면 유일한 낙이 현실도피적인 몽상과 공상이긴 하지만 그러나 메가의 경우는 그 정도가 지나쳤던듯 하다.
자나깨나, 먹이를 먹는 순간에도 가락3세의 그 환상적인 이야기를 재삼재사 곱씹어 상기하곤 했던 것인데 그것이 발전하자, 쥐가 가진 지능의 한계로 당연한 결과가 초래되었으니..끝내는 가락3세의 이야기들을 제멋대로 편집하고 각색하고 왜곡했으니 가득이나 과장된 가락3세의 말이었는데 어떻게 되었겠는가?
메가에게 있어 서울은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의 땅이었고 자신이 가기만 하면 온갖 신나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으며, 옛날의 가락3세 가신들이 후계자인 자신이 권토중래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며,
고독에 몸부림치는 수많은 암쥐들이 눈이 빠져라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며, 고통에 신음하는 천하의 모든 쥐들이 자신의 출두를 학수고대할 텐데...
메가는 실로 잠시동안에도 기와집을 백채도 지었다가 허물곤 했던 것이다. 외국 어딘가의 동키호테 따위는 저리가라였다.
한편, 도네와 망통으로선 메가가 미친 쥐로밖에 달리 해석이 되지 않았다. 밤낮 히죽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는가 하면 비분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부르르 떨지를 않나, 게다가 부실한 영양에도 불구하고 늘 힘차게 발기한 메가의 생식기는 또 얼마나 가관이었겠는가?
하지만 메가의 그 특이한 태생과 몇 번의 신화적인 구명도생 설화는 이미 어떤 경외심을 심어준 터였는데 간혹 메가가 뜬금없이 얼토당토않은 말을 뇌까리는 게 무조건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무엇인가가 분명 있었다.
인근 동네밖에 모르던 깡촌의 무지렁이였던 도네와 망통으로선 서울이야기나 고오베항, 미국이란 나라를 마치 눈으로 본듯이 말하는 메가를 차츰 달리 보기 시작했고...
가신,쿠데타,하렘,비밀경찰등등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메가가 정말 신통력을 가진, 신의 계시를 받은 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메가는 벌써 집권을 위한 심복 만들기 공작에 들어갔던 것인데...신뢰를 얻기 위해선 뭔가를 보여줘야 되는 법. 메가는 어느날, 마을 변두리의 정씨네집으로 도네와 망통을 데리고 갔다.
그집에 사는 두루라는 쥐일가가 외출하는 것을 것을 알고 간 것이었는데 반시간도 안되어 냉장고 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떡과 생선과 계란까지 배터지게 포식하고 달착지근한 막걸리로 목까지 축였으니 도네와 망통은 꿈이 아닌가 싶어 몇 번이나 꼬집어봐야 했다.
후일 그 보복으로 쥐덫과 쥐약에 두루일가 열댓여마리가 영문도 모르고 줄초상이 나긴 했지만 그일을 계기로 도네와 망통은 메가의 똘마니가 되었다. 메가는 그들에게 정식직함을 붙여주었는데 도네에겐 중정사령관, 망통에겐 기무총장이란 직책이었다.
문법에도 안맞는 직함이긴 하지만 중정이나 기무가 무슨 뜻인지 도네와 망통은 인식할 지능이 없었으며 메가도 마찬가지였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