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루밤...” –성 테레사 수녀-
토요일 주말 저녁 K 와 나는 강동역 근처 천호동 콜라텍에서 춤추고 있다. 요사이 신종 코로나 인지 뭔지로
온 나라가 난리법석이지만 이곳에서 춤추는 사람들은 그런 전염병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듯하다.
블루스와 지루박이 끝나고 오랜만에 탱고가 흘러나올 때 우리 둘은 동시에 플로어 를 벗어나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곳 저곳에서 댄스를 즐기는 몇몇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K 와 나도 둘 다 지독한 댄스매니아 다.
시간만 되면 거의 주말마다 서울시내 변두리 이곳저곳의 카바레나 콜라텍에서 주로 사교춤을 춘다. 솔직히
나의 춤은 K 에 비해서는 훨씬 못하다. K 가 플로어에서 어떤 여자와 LOD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춤추는 모습을 보노라면 말 그대로 K는 한 마리의 물 찬 제비다.
현재 K 의 직업은 무직에 가까운 반백수다. 예전에는 이곳저곳에서 직장생활도 해보았고 자영업에 가까운
작은 사업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까지 큰돈을 벌어 본 적은 없는 듯하다. 어쩌다 그와 어울려 술이라도
한잔하는 날이면 술값은 거의 다 내가 지불한다. 그의 주머니 사정은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얼마 되지 않는 수익이라지만 점차 댄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여성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댄스홀 한구석에서 개인레슨을 해주고 받는 강습비로서 용돈을 벌어 쓴다. 한때는 적지 않은 수강생들이
있어서 수입이 괜찮은 적도 있었지만 요새는 불황이라 이마저도 시원찮단다. 나는 K 의 성이 '강’ 이라는 것
은 알고 있지만 이름까지는 모른다.
그는 항상 자신을 K 라고 부르기만을 바란다. 우리는 춤을 추면서 댄스동호회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이다. 나이는 60대 초반 정도 되었으니 분명 나보다는 연하임에 틀림없다. 가끔 K 는 처음 댄스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춤과 관련된 자신의 에피소드를 나에게 말해 주곤 한다.
흰 와이셔츠와 짙은 색 넥타이 그 위에 검정색 조끼를 걸치고는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세련되지 못한 의상
이다. 얼굴도 자세히 보면 주름살이 제법 있어서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다. 얼마 전 K 에게서 직접들은
얘기다. K 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인 20대 후반 시절 첫 직장을 가진 직후 직장동료들과 회식할 기회
가 있었다. 몇몇이 2차로 들린 곳이 서울역 근처의 나이트 클럽식 카바레라는 곳 이었다.
그곳이 맨 처음 그가 춤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는 곧 사교춤에 흠뻑 빠져들었다. 흔히 춤에 열중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도 춤을 좀 더 잘 추기 위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지루박
과 블루스 등 사교춤은 물론 댄스스포츠 열 종목과 살사와 알탱 까지 소위 댄스계에서 유행하는 거의 모든 춤
을 두루두루 섭렵하였다.
오로지 춤 하나 만을 가지고 겨룬다면 대한민국의 그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을 정도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그저 춤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하지만...
K 는 제법 춤에 일가견을 가지기 시작한 30대 중반 때 어느 날 을지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춤 실력도 결코 K 에 못지 않았다. 당시 동대문시장의 어느 의류상가의 매점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그녀는 주로 주말이면 춤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서울 시내 유명한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를 자주 출입하고
있었다. K 와 동갑내기인 그녀는 당시 가냘픈 몸매에 뛰어난 춤 실력과 호감가는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로즈' 라고 불리는 그녀를 만나는 순간 한 눈에 반해버린 K 는 춤을 핑계로 그녀와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에서 밤늦도록 춤추고 늘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그녀는 그 당시 이미 한번 결혼 경험이 있는 이혼녀로서 쉬는 날이면 뭐 특별히 할 일도 마땅치 않아서 취미
겸 소일거리로 춤을 즐기고 있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으며 누구의 제의랄 것도 없이 혼인신고도 없이 동거를 시작했고
정식 결혼식까지 치르지는 못했지만 사실 상의 부부가 되었다. 그 후 둘 사이에 자식도 하나 생겼다.
그러나 함께 살다 보니 불안정한 직장을 가진 K 의 소득은 변변치 않았고 돈과 자식 양육문제로 둘 사이에 말
다툼이 잦았다. 급기야는 서로치고 받는 일까지 이르렀다.
얼마 전 K 는 대화 도중에 갑자기 내게 자신의 입술가에 흐릿하게 남겨진 상처 자국을 보여 준 적이 있다.
언젠가 헤어지기 직전 K 와 로즈 는 둘이 집에서 술을 한잔 마시며 얘기를 하다가 로즈 의 남자친구 문제로
싸움이 번졌다. 급기야는 서로 치고받고 하던 중에 로즈 의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로 갑자기 얼굴 안면을 강타
당한 후에 생긴 상처 자국이라고 말한다.
결국은 헤어져 지금은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K 와 그녀는 자식 문제로 아직도 간혹 서로 연락은 취하고는
있다. 그녀가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혼자
살아가기에 바쁘고 벅찬 인생이니까...다만 그녀가 지금 서울시내 어느 일식집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는 것
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계속)
첫댓글 재미 있네요 ㆍ
고마워요``
윈드님 작가이시군요!!!
예전에 잡지에서 읽었던
연재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내용이 궁금합니다.
빨리
다음 편으로 넘어갑니다.
작가 뭐 별거 있남요. 누구든 글 쓰면 작가죠.
그림 그리는 사람이 화가 이듯이...
근데 한때는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전문작가를
생각해 본 적은 있었어요.
지금은 글보단 가끔 춤추는 게 더 재밋어요. ㅎ~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개...
이어지는 내용이 기대됩니다.
과찬이시지만 듣기는 싫지
않네요. ㅎ~
춤의 흐름과 시대변화를 보는 듯...재밉게 지내세요
재밋게 지내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