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K형! 힘내세요!!
K형! 오늘따라 형이라 부르고 싶네요.
기쁜 성탄절, 마음 편히 보냈는지요.
저는 축하 예배 후 초대받아 갔어요.
두 분 장로님과 함께 해물찜 먹었네요.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고 들어왔어요.
진즉 편지 쓰고 싶었지만 한 해가 저물어 가네요.
사실, 형에게 보이지 않은 빚을 지고 살았어요.
농어촌 선교회 첫 제주도 목회자 부부수련회 초청 건으로요.
결혼식 마치고 제주도 신혼여행 가는데 폭설로 공항이 마비되었어요.
다음을 약속하고 부곡 하와이로 발길을 돌렸지요.
그러다 교회 개척 후 제주도 땅 밟을 기회가 없었어요.
아내와 여행 약속이 요원하게 되었는데 농선회 무료 초청으로 갔어요.
개회 예배 설교 시간!
형이 일자무식의 할머니를 전도하여 일꾼 세운 말씀 기억나세요.
눈물 글썽인 목소리는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가슴 끓게 만들었어요.
이튿날, 만장굴 다녀오다 살포시 손잡아 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지요.
그게 고마워 한참 지난 뒤 빚 갚으려고 농선회로 후원금을 보냈네요.
금년 성탄절 연보(125만 원)도 송금했어요.
한파에 힘겹게 농어촌교회 지키는 목회자들 위해서요.
난방비 지원으로 미리 광고했지요.
작은 교회 연로한 분들이 정성으로 모았네요.
생각지 않은 손길도 보탰어요. 권사님 일하는 식당 사장님,
제 지인들, 어머니 집 사랑방에서 화투 친 분들의 판돈도 들었어요.
또 97세 권사님 요양 보호사가 성탄 예배 함께 참석하여 드렸어요,
K형! 누구보다 교단 사랑하는 마음 뜨거웠지요.
재단 설립의 산파 역할을 했고요.
교단 위상 높이기 위해 공고(功苦) 하게 다졌지요.
또 바르고 건강하게 세우려고 부단히 애썼고요.
하지만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하다 밉보인 건 사실 같아요.
교단지 통해 말도 안 되는 해괴한 논리로 융단 폭격 맞았지요.
과장, 허위, 인신공격이 도를 넘은 것 아니어요.
막무가내로 쓴 억지 주장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괘씸죄의 대가가 너무 컸는데 아프지 않았나요.
정말 억울한 일 아닌가요.
그런 조롱과 멸시를 떠안고 그 수모 어떻게 견뎠어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형을 모르는 것 같아 더 화가 났어요.
저도 신문사 요청으로 2년간 목양 수필 쓴 것 알지요.
그런데 일방적으로 그만두게 만들었어요.
그래도 제주도 교단 행사장에서 편집국장이 취재하는 것 봤어요.
내심 반가워 먼저 인사했는데 소 닭 보듯 지나쳤어요.
그 순간 민망해 혼났네요.
작은 교회 목회자의 서러움으로 여기고 신문사 글 절필했어요.
그런 인격으로 형을 공격한 심정 이해가 되었어요.
상황을 직시하며 도울 기회 엿보다 농어촌 선교회 정기 총회에 참석했네요.
그냥 한자리 채워 힘 실어 드리려고요.
하지만 형이 공개적으로 드러내 세워줘 참 부끄러웠어요.
개회 예배드릴 때 대방교회 두 목사님 간구는 애절했고요.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42:1-5)
군살 없는 엄 목사님의 설교는 갈한 영혼의 생수였지요.
무엇보다 회계 보고에 마음이 동했어요.
평소 지론대로 ‘천 원짜리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말
실감 났어요.
매년 농어촌 교회 건축, 권역별 순방 지원, 미 자립 교회 자녀 장학금..
보이지 않은 손의 헌신과 희생에 눈물이 고였어요.
감동 그 자체였어요.
농어촌교회 건축 때마다 형의 현장감 넘친 신문 기고문은 감초였지요.
먼저 눈길 머물러 빠짐없이 읽었어요.
왜 그리 잘 쓰나 봤더니 부친이 독서광이란 사실 뒤늦게 알았어요.
어쩌면 서울의 금수저 출신인 형이 부러웠어요.
그보다 흙 수저로 자처해 시골에 묻혀 뿌리 내림이 더 대견스러웠고요.
‘2만 8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대신인의 프런티어 정신 맞지요.
건강한 공동체로 하나 된 농선회를 이끈 모습에 존경이 갔어요.
귀한 사역에 손을 담그고 싶은 감동을 먹었어요.
전형적인 시골교회에서 열방을 향해 이어간 현장 보고 놀랐어요.
40년 목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냈더라고요.
선교와 구제, 영혼 구원에 힘쓴 강소형 교회의 모범적인 모델이었어요.
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교회였어요.
융숭한 대접 받고 내려오는 중에 형의 감사 전화는 행복 플러스였어요.
몸에 밴 섬세한 배려가 묻어남을 느꼈어요.
후배 사랑하는 법을 한 수 배웠어요.
지난날 사라실 교회와 진도 옥대중리교회 건축할 때 일이 생각났어요.
황 목사님과 방문하여 자원봉사자 위해 밥 한 끼 대접한 것 말이어요.
그 순간도 놓치지 않고 전화 목소리 들려줬잖아요.
K형! 교단 총회에서 부 총회장으로 등 떠밀려 나갔지요.
흔들림 없이 차분한 어조로 정견 발표할 때 울림이 컸어요.
서두에 ‘본질에는 일치를, 비 본질에는 자유를’
그 적합한 표현이 아직 가슴 한편에 남아 있네요.
형의 논리와 사고력은 탁월했어요.
K형, 우리의 만남 오래되었지요.
기억하세요.
지방 노회 체육대회에서 축구 한 일요.
형처럼 저도 풀백이었어요.
둘 다 운동 감각은 무뎠지만 신나게 뛰며 헛발질했지요.
인천에서 격려차 들린 고 선배님 말이어요.
돼지 한 마리 값 후원하고 갈 때 미안했어요.
왜냐하면 밝은 교회에서 교단 총회 할 때
그분 고급 승용차 진입을 막았거든요.
그 성깔에 고성을 질렀잖아요.
총회 마치고 교단 개혁 위해 교회 신보에 기고까지 했어요.
34회 총회 같아요.
그때 형에게 자문을 구한 일이 기억나네요.
작년 이맘때 어머니 천국 가셨지요.
어려운 일 극복하며 그립지 않던가요.
어쨌든 한 해를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고
또 한 해 선물 받아 다시 시작하게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창조적인 삶으로 계속 나아가길 응원할게요.
두서없이 쓴 글 혜량해 주세요.
사랑해요. 형! 힘내세요.
2023. 12. 25 저녁 광주서 아우 쓰다.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