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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페 게시글
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감성사전 / 이외수
동산 추천 0 조회 58 15.03.26 18:2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감성사전 / 이외수

 

 

달팽이

 

한여름의 고독한 여행자. 그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집을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여행자.

 

 

 

  

 

 

호롱불

 

초가삼간 토담 벽에 펄럭이는 세월이다.
세월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이다.
어머니 귀밑머리에 스며드는 놀빛이다.
천년을 침묵으로만 다스려 온 설레임의 불꽃이다.
겨울밤 심지가 타 들어가는 아픔으로 피워 올린 그리움이다.
흥건한 눈물이다

 

 

 

 

눈보라

 

겨울이 깊어지면 바람의 함성을 타고 수 천만 마리의 백색 나비 떼가
어지럽게 난무하며 마을에 출몰한다. 눈보라다.
때로는 길이 막히고 통신이 두절된다. 시간도 깊어지고
그리움도 깊어진다.

 

 

 

 

진눈깨비

 

저물어 가는 겨울 풍경 속으로 쏟아지는 비창이다.
세월의 통곡이다. 목메이는 그리움이다. 쓰라린 아픔이다.
부질없는 사랑이다. 회한의 눈물이다. 시린 뼈의 신음이다.

 

 

 

 

사랑

 

반드시 마음 안에서만 자란다.
마음 안에서만 발아하고 마음 안에서만 꽃을 피운다.
사랑은 언제나 달디단 열매로만 결실되지는 않는다.
사랑에 거추장스러운 욕망의 덩굴식물들이 기생해서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려 할 때 샘물처럼 고여든다.
그 샘물이 마음 안에 푸르른 숲을 만든다. 푸르른 낙원을 만든다.
온 천지를 둘러보아도 사랑의 반대말이 없으며 온 우주를 살펴보아도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는 낙원을 만든다.
사랑은 바로 행복 그 자체이다.

 

 

 

 

달맞이꽃

 

밤에만 핀다. 어둠 속에 흩어져 있는 달의 비늘이다.
그리움의 편린이다. 눈 뜨는 사랑이다. 수절 같은 슬픔이다.

 

 

 

 

이슬


새벽에 내린다.
만물이 깊이 잠든 안식의 새벽에 소리 없이 내려와 꿈을 적신다.
신의 서늘한 입김이다. 생명의 속삭임이다.
사물들의 표면에 닿아 물방울이 되고 물방울은 땅에 스미어
옹달샘을 만든다.
옹달샘은 그 흐름을 다하여 바다에 다다른다.
이슬은 바다의 투명한 미립자다. 모든 생명의 기원이다.

 

 

 

 

구름


때로는 하늘을 떠도는 풍류도인이다.
허연 수염을 나부끼며 세상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때로는 슬픈 영혼의 덩어리다.
암회색으로 온 하늘을 지우고 깊은 우울 속에 빠져 있다.
때로는 범람하는 비탄의 강이다.
하늘 전체를 통곡 속에 잠기게 한다. 
온 세상을 적시는 눈물로 소멸한다.

 

 

 

 

호수

 

고여 있는 슬픔이다. 고여 있는 침묵이다.
강물처럼 몸부림치며 흐르지도 않고 바다처럼 포효하며 
일어서지도 않는다.
다만 바람 부는 날에는 아픈 편린처럼 쓸려가는 물비늘.
기다림 끝에 흘리는 눈물들은 기다림 끝에 흘리는 눈물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호수가 된다.
온 하늘을 가슴에 담는 사랑이 된다.
 

 

 

 

 

가을

 

영혼마저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제일 먼저 가을이 온다.
고난의 세월 끝에 열매들이 익고 근심의 세월 끝에
곡식들이 익는다.
바람이 시리고 하늘이 청명해진다.
사랑은 가도 설레임은 남아 코스모스 무더기로 사태지는 언덕길.
낙엽이 진다.
세월도 진다. 더러는 소리 죽여 비도 내린다.
수은주가 떨어지고 외로움이 깊어진다.
제비들이 집을 비우고 국화꽃이 시든다.
국화꽃이 시들면 가을이 문을 닫는다.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무서리가 내린다.
가을이 끝난다. 가을이 끝나도 외로움은 남는다.
 

 

 

 

 

낙엽


수확의 가을이 끝나면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자신들의 시린 발목을 덮는다.
바람이 불면 세월의 편린처럼 흩날리는 갈색 엽신들.
모든 사연들은 망각의 땅에 묻히고
모든 기억들은 허무의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다.

나무들은 인고의 겨울 속에 나신으로 버려진다.
낙엽은 퇴락한 꿈의 조각들로 썩어가지만
봄이 되면 다시금 푸르른 숲이 된다.
숲의 영혼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들국화


기러기 울음소리가 하늘을 청명하게 비우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달빛을 눈부시게 만들면
바람에 실어보낸 그리움의 언어들은 그리움의 언어들끼리 모여
달빛에 반짝이는 詩가 된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안타까운 사랑도 
아무리 벽이 높아 닿지 못할 사랑도
가을 들녘에 모여 꽃이 된다.
바람이 전하는 한 소절의 속삭임에도 물결같이 설레이며
흔들리는 꽃이 된다.
이름하여 들국화다.

 

진실한 자는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고,
눈물이 남아 있는 자에게는 고통을 굳게 껴안을 
순수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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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3.27 14:53

    첫댓글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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