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도 이미 최씨가 돈을 요구하리라고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라며 최고 삼백만 원 내에서 해결을 해보라고 지시를 한다.
세 번째로 기철이 최씨와 마주 앉은 것은 다시 이틀 후
이번에도 최씨가 먼저 전화를 했다.
회사 측에서는 최씨가 돈을 요구하고 또 최씨의 행색이 서울에 올라올 차비까지 없는지는 몰라도 무척 궁해 보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에서 돈을 뜯어내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이 확실해 급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시일을 끌고 최씨를 급하게 만들어 회사의 결정에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기철을 보자
“사람이 이야기를 했으면 답이 있어야 하는 아니야?”
하고 최씨가 큰 소리를 낸다.
“큰소리 치지마세요. 이 일은 회사에서도 협의를 하고 결론을 내야 할 사항 아니에요.”
“그걸 결정하는데 무슨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려?”
최씨가 다시 큰 소리를 내자
“회사 일이 많고 바쁜데 최씨 건 만 이야기 합니까?”
기철이 이렇게 면박을 준다.
“좋아! 그럼, 이야기가 어떻게 됐어?”
최씨가 다소 숙그러든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요.”
“뭐야? 누굴 갖고 노는 거야? 내 이야기를 듣고 가서 이틀 만에 나타나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최씨가 다시 언성을 높인다.
“흥분하지 말고 이야기 하세요. 아직 최씨가 얼마를 요구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먼저 얼마를 주겠다고 하겠어요. 화내실 일을 가지고 화를 내세요.”
최씨의 모든 행동이 연극을 하는 것 같아 기철은 차분하게 말한다.
기철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분을 죽인 최씨가
“나야 많이 주면 좋지.”
하고 능글맞게 웃는다.
기철의 말에 돈을 주겠다는 뉘앙스가 있어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막연히 말고 정확히 말해보세요.”
“최소한 오백만원은 받아야겠어.”
“참!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시네. 오백만 원이 누구네 집 개 이름이에요. 그렇게 쉽게 말 하시게.”
이렇게 이야기하며 기철은 속으로 ‘그 돈이면 당신이 정말 감사원에 고발했을 때 사건 무마용으로 쓰고도 남을 돈이야.’ 하고 생각을 했다.
물론 최씨도 그 돈을 다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회사의 태도를 보려고 던진 말일 것이다.
“그 이하로는 절대 안 돼”
최씨가 버틴다.
“그래요?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도 회사에서는 최씨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성의를 표시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할 수 없죠. 그리고 최씨가 이 건을 미끼로 회사에 돈을 요구한 것 모두 여기에 녹음했으니, 우리도 출력 인부 명단과 이것을 가지고 검찰에 최씨를 고발하겠어요.”
하고 기철은 일어서며 녹음기를 보여주었다.
녹음기를 보자
“너 정말 이런 식으로 할 거야. 이건 사생활 침해야.”
히고 최씨가 소리를 지른다.
“내가 언제 최씨의 사생활 침해를 했어요. 이건 단지 최씨와 내가 한 말을 녹음한 것뿐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최씨를 고발할 수가 있어요.”
최씨는 난감한 모양이다.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준비하리라고 생각 못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는 잘못하면 돈커녕 형사 처분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출력 인부는 대영에서 만든 것이니 나는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 수 있지만 녹음된 음성은 자기 음성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박과장! 앉아요. 우리 이러지 말고 오늘은 결말을 냅시다.”
하며 기철의 손을 잡는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대영과 협상을 해서 돈을 빨리 받아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럼, 회사에서는 얼마나 주겠어?”
그 말에 기철은 못 이기는 척 앉으며
“글쎄요? 한 백만 원 정도면 내가 회사에 이야기해 보지요.”
“그 건 너무 작아. 아무리 그래도 백만 원이 무어야. 누구 떡값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백만 원이나 받는데 떡값이라뇨? 그렇게 많은 떡값도 있어요?”
“그래도 백만 원은 너무 작아. 아니 그것으로는 안 돼. 나 혼자도 아니고---”
“회사에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백만 원 정도이예요. 그렇게 아시고 어떻게 하실지 결정해서 연락주세요.”
하고 기철이 다시 일어섰다.
“박과장 너무 하는 것 아니야?”
“내가 너무 하는 것이 아니라 최씨가 너무 많이 요구하는 것이지요.”
하고 돌아서려는 기철을 최씨가 잡는다. 기왕에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결말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내가 그동안 박과장에게 말한 것 같이 내 형편이 말이 아니야. 허리도 다시 아프고 지난번에도 이야기한 것 같이 지금 나는 서울 갈 차비도 없는 사람이야. 기왕에 돈을 주기로 했다면 늙고 병든 사람 돕는다고 생각하고 회사에 잘 말해서 한 삼백만 원만 받게 해줘.”
그동안 그렇게 큰소리치던 사람이 이제는 구걸하는 사람과 같이 사정을 한다.
어찌 보면 정말 늙은 사람이 이러고 산다는 것이 안 됐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남에게 기생하여 살려는 그 행위는 용서가 안 된다.
그러나 협상을 너무 오래 끌면 안 좋을 것 같아
“윗분들에게 보고해 보지요. 하지만 백만 원 정도면 모를까 더 이상 얼마를 더 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전무가 말한 협상 금액을 생각하며 기철은 이렇게 말했다
“최소한 이백만 원은 되도록 해줘. 아니 백만 원도 작아. 그러니 백만 원만 더해줘. 안 되면 오십만 원이라도.”
“지금 누구에게 맡겨 놓은 돈 찾으세요. 얼마 얼마를 더 달라고 조르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형편이 딱해서.”
이제는 애걸하는 것처럼 부탁한다.
이제 돈 이야기가 나오고 회사에서도 돈을 주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된 최씨가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이제는 한껏 저자세로 부탁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최대한 노력할 테니 너무 많이 바라지 마세요.”
다음 날 돈 백 오십 만원을 가지고 기철은 최씨를 만났다.
최씨가 적다고 못 받는다고 하는 것을 기철이 어제 최씨의 말을 듣고 최씨의 형편을 생각해서 윗사람들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회사에 이야기해 억지로 오십만 원을 더 받아냈으니 최씨가 안 받으면 기철로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최후의 통첩인 것처럼 단정을 지어 단호하게 말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최씨는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우거지상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처럼 백오십만 원을 받았고 기철은 최씨에게로 부터 원판과 사진을 모두 돌려받고 이것을 빌미로 다시 같은 행동을 하면 형사 처분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까지 받았다.
헤어질 때 최씨가 고맙다고 했다.
돈이 많아서 고맙다는 것인지 돈을 받게 해줘서 고맙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기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는 별 사람이 다 있다.
그렇게 협상을 하는 동안 진천 저수지 터널에 추가로 시행한 크라우팅 공사도 끝났다.
그리고 그해 인사철에 기철은 차장으로 진급을 했다.
첫댓글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합니다.
무혈님!
지키미님
덕암샘님!
감사합니다. 장마철입니다 비 피해 안 생기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