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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안 ... 바다로 가는 길
* 아버지의 도시 - 정영주
그때는 묵호의 모든 것이 그랬다.
묵직한 검은 슬픔들이 상한 오징어 다리로
길고 가느다란 골목길을 여기저기 흘러다녔다.
검게 그을은 도시의 벽들 사이로
오징어 먹물들이 서서히 번져가는 걸 보며
내 희디흰 몸뚱어리로 곧 검어질 거라는,
아이들은 어달리 선창가에서 흘러나오는
꽁치비늘에 도배된 채 눈빛만 검게 빛났다.
아랫도리를 벗고 뛰노는 아이들은 유난히 검고 반짝이는
붕알 하나씩 달고 다녔다.
아랫도리를 잃은 도시.
그곳은 아버지의 도시였다.
수년 만에 바람이 전해준 주소도 없는
동해 한 끄트머리에서의 재회(再會)
그건 기쁨이 아니라 다시 막힘이라는 걸
바람만 무성한 문짝도 없는 집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막막함과 비틀거림으로 어둠 속에 다시 갇히는,
아버지는 늘 갇힘이었다.
떠나가는 바람의 감옥.
묵호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유난히 검었다.
온 도시를 석탄가루로 분칠하는 재앙의 바람.
너무 일찍 어둠을 가르쳐준 그 도시는 어쩌다 한번
비 온 뒤 아침이면 흰 이빨을 보이며 웃는 검둥이마냥
잠깐잠깐 웃어 보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 것이다.
넘쳐나는 바람과 햇빛과 도망 나온 가난 때문에
그래도 묵호의 거리는 금방 건져올린 생선만큼이나
아직은 팔팔하고 젊을 거라고.
어린 시절 오징어 뒷다리처럼 질기게 버텼던
삶의 뒤쪽으로 아직은 먹바람이 불고 있엇다.
* 우회전은 없다 - 정영주
길을 놓친다
길이 길 위에서 증발된
집으로 가는 길이 늘 허공인지
좌회전을 두 번 하고
세 번 할때까지도 집이 우회전이라는 걸 잊는다
하기야 집 안에서도 집을 잃을 때가 있다
내 안에서도 나를 잃을 때가 있다
집에 대한 칩이 다 닳아진 건 아닐까
우회전 신호나, 오른쪽 대문이나,
오른쪽 갓길이나, 오른발 근처에서 밟힌
어떤 생이 깊은 함정은 아니었을까
올무를 피하듯이 우회전을 감지하지 못하는
몸의 기울기에 마음이 와락 넘어진다
좌회전 신호에만 푸른 신호등이 켜질 때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 집에서 멀어진다
근원에 닿기 위해 목마른 것인지 모른다
언 강을 에돌아 가는 강물처럼
에돌아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끔 길들이 사라질 때가 있다
선연히 보이다가도 순간 좌회전으로 묻히는 우회전들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그래서일까, 청각이 길을 내는 대로 몸이 기울어지는 일이.
* 안개도시 - 정영주
정오에는
햇살에 내장까지 투명하게 찍혀지는 도시다.
오후가 되면 습기가 천천히 온 도시를 화장하고
밤이면 이따금 건물도 사람들도 안개에 실명되고 만다.
자욱히 안개비가 내리면 도시는 출렁거리고
사람들은 배가 되어 노(櫓)없이 흐른다.
실종의 도시.
제일 먼저 가로등이 제 시력을 잃어버리고 허둥대며
몸 낮춘 빌딩들은 아랫도리부터 차근차근 잘려 나간다.
사람들도 부분부분 해체되었다가 이어진다.
호흡이 조금씩 안개에 감금되고 있다.
부드러운 폭력이 온 도시를 점령하고
신선한 밤의 정령들은 어김없이 안개에 밀려 쫓겨나고 있다.
이런 날엔 간혹 보이는 거리의 패싸움도
술꾼들의 아우성도 몽땅 안개에 저장되어 버린다.
도시는 푹 젖어서 꾹 짜내면
그 자리에 고인 호수가 된다.
코 앞에 보도블록이 다 일어나 조각배로 떠 다닌다.
흐르는 도시.
때로는 흐르다 안개가 되어 다시 찾아오는
이곳 사람들은 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는 떠나오면서
그곳 안개에 갇힌다. 뒤돌아선 채,
* 어달리 아이들 - 정영주
묵호에 사는 아이들은
늘 새벽잠을 빼앗긴다, 해초 이파리 같은
막 건져올린 햇덩이가
먼저 지글지글 바다를 태우고
뒤척이는 아이들은 눈꺼풀이 데인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비비며 아이들은
탱탱 불은 고추를 휘어잡고 바다로 내달린다
그곳에 닿기도 전에 아이들은 실오줌을 싸대고
파도는 하얀 거품을 튀기며 아이들의 아랫도리를 훔쳐댄다
어달리 선창가에 경매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뛰쳐나가 흥정하는 사람들의
가랑이 사이로 고기를 낚는다
길고 가는 꼬챙이로
생선들의 눈알을 찍어 잽싸게 끌어당기면
꼬물꼬물 따라오는 오징어 꽁치 명태들……
아이들의 어장은
늘 선창가에서만 펄떡거린다
갈고리에 서너 마리씩 꿰인 고기들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두 눈은 화등잔(火燈盞)
둥근 불빛으로 튀어나온다.
* 금목서 - 정영주
- 어머니를 보내며
금목서가 왜 쓰러졌는지 모른다
쓰러지면서 진저리치며 터지는
꽃들의 아우성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문득, 그제서야
오랫동안 내가
창문을 열고 뜨락에 나간 적이 없음을 알았다
오래전부터 주인의 손을 타지 않은 나무의 목마름이
쓰러지면서 울음향기를 게워냈는지 모른다
사랑이나, 그리움 같은 거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라 비웃은 죄를
금목서는 자신이 자기를 베어 흘린 눈물의 전언으로 내게
건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한번도 심장 깊숙이
들여놓지 못한 세상의 깊고 축축한 것들
금목서 어느 날
주인도 돌아보지 않는 빈 정원을 지키며
지킴이로 세웠던 버팀목, 쓸모없이 커가는
제 하중으로 밀어버리고 바닥에 툭 목숨을 놓는다
어떤 시위일까
맨발로 뛰어나가 금목서 옆구리에
열손가락 깊게 넣고 아픈 향기를 맡는다
다 버리고 눕는 일이 그토록 독한 전언이라면
그 잘린 향에 감전된 채
내 갈빗대 옆으로 스러져 누워도 좋으리라
몸 던져 우묵히 패인 흙구덕
잔뿌리 모조리 일으켜 허공에 내던져진 짓무른 속살
피 뚝뚝 흘리는 황금벚꽃들이 이빨 덜덜 떨며
젖은 땅에 누워 차디찬 관의 즙을 짜는 구나
사랑이
사람에게나 나무에게나 버팀목이 된다는 걸
어디서 배웠는지 쓰러져서야
내게 가르치는 구나
* 물고기가 되는 꿈을 꾸었다 - 정영주
잘 닦아논 유리창에
발바닥을 올려놓는다
갈라터진 발바닥 문신이 찍어놓은 물고기 한 마리
풀쩍 날비늘로 유리 바닥을 꿈틀거린다
내 안에 비릿한 것들이 일시에
발 아래로 쏟아져 푸들푸들 지느러미가 되고 있다
내 생 어느 굽이가 깊은 심해였을까
불투명한 유리 바다에 검은 인주처럼 찍힌 섬
지금 나의 안과 밖은 심해처럼 검푸르다
누워서 바다에 든다
금방이라도 퍼덕이며 튀어오를 것 같은 허공의 바다
싱싱하고 아릿한 비린내가
내 생의 발바닥을 타고 파도처럼 쿨렁거린다
잠시 물고기가 되는 꿈을 꾸었다
무심히 뻗은 발이 어항을 차고
굳은 발바닥 각질 속으로 파고드는 깨진 유리 파편들
그 유리 조각 속에
지느러미로 퍼덕이는
그리고 하염없이 바다로 내달리는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내 절망이 그토록 푸르르고
싱싱한 비늘을 달고 있었다
* 슬픔 말려내기 - 정영주
잠글 수 없다
지워지지 않는다
풀린 슬픔
파워 핸들처럼
손만 갖다대면
제멋대로 움직인다
눈물 방울들이,
차라리 속빗장을 열까
잠가 두었던
차마 꺼내기 두려운 것들
맘껏 쏟아내 보일까
한 사나흘
실컷 서러워한 뒤
천천히 지겨운 눈물
햇빛에 말려야겠다
* 어달리의 새벽 - 정영주
묵호는 검은 고래다.
새벽마다 허옇게
바다를 벗겨내는 어부들이
선창가에 비릿한 욕지거리를 잔뜩 풀어놓으면
고래 입 같은 아가리 배(船)에서는
온통 욕지기질로 헐떡이는 생선들......
경매가 시작되면
선창가는 거대한 고래의 뱃속이다.
부시시 무너지는 어둠 속에서
퍼덕거리다 뒤로 나자빠지는 그네들의 흥정
독한 비린내까지 경매로 팔려나가면
묵호는 체증에 걸린 고래 뱃속을 빠져나간다
오징어처럼 먹물을 뒤집어쓰고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파장의 도시 ---
하루를 새벽에 몽땅 떨이해 버리면
그제서야 졸음은 해일처럼 몰려온다
지난 밤
오징어 배에 수없이 켜놓은 알전구로
눈이 먼 어부들, 이제
눈꺼풀 안쪽에 비친 햇덩이가
200촉짜리 집어등만큼 뜨겁다
*어달리 : 강원도 묵호항(현재는 동해시)에 소재한 선창가 마을.
* 뼈마다 눈부신 - 정영주
- 어머니를 보내며
어머니가 지상의 길을 툭 내려놓으니
하늘이 대신 어머니 길으 간다
그러니 뼈마다 눈부신 것이다
손으로 어머니 마른 몸을 더듬으며
자식들에게 길을 내던 곳을 찾아 나선다
어머니 몸에 난 길이 다 소금길이다
여기저기 허옇게 각질이 피어나 있다
평생 어머니 몸은 염전이었다
맨발로 당신을 밟으며 수레를 돌리고
살과 뼈를 다 부숴 소금밭을 일궈 들이던 방주
내 손바닥이 어머니 몸에 쑥쑥 빠진다
깊고 마른 뼈들의 골짜기
어머니는 마른 가시손을 자꾸 내젓는다
그 가시에 울컥, 목젖이 찔린다
뼈마디 마디에서 서늘한 종소리가 난다
맑을수록 추워져 어머니 뼛속에 들어가 운다
나 또한 그 뼈에서 떨어져나온 새끼뼈였으니
그 골수에서 흘러나온 진액을 남김없이 받아 마셨으니
축축한 어머니 젖가슴에 손을 넣고
온기의 뼈를 찾는다
지상을 건너뛰며 에미와 자식으 갈라놓는 마지막 다리
가장 빛나는 돌을 찾는다
* 새들의 토지 - 정영주
하늘이 난자당하고 있다
지상을 맨발로 차고 오르는
수천 수만의 가창오리떼들
그 발길질에 놀란 하늘
홀해로 갈라졌다가 다시 고인다
사람의 땅을 떠메고 올라가 쌓는
새들의 토지
삽으로 푹푹 퍼서 던져올리는 검은 흙덩이마냥
새들이 공중에 쩍쩍 달라붙고 있다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저 거대한 노동
강물을 거스르며 빠른 물살로 튀어오르는
새들의 비상을 보다가
우리의 노역이 하찮은 것을 본다
소리의 물결 하나가
바람으 밀고 남아 있는 진흙뻘을 들어올린다
새들의 번지점프가 일제히 시작되고
출렁이는 하늘이 새들의 대지인 듯 와락 펼쳐진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오후
날개도 없이 공중으로 번쩍 들리는
나를 보고 있다
흙으로 빚은 한 마리 새
* 몇 번 죽을 수 있을까 - 정영주
발바닥이 꿈틀한다
신발의 면적만큼 밟았는데
왜 뱀이라고 느겼을까
소름의 촉수로 몰려드는 피
찰나에 몇번이라도 죽을 수 있겠다, 싶은
가마 속
뱀의 혀로 낼름거리는 불꽃을 보다가
도기들의 몸뚱이를 칭칭 감아가며 물어뜯는
천이백도 불의 이빨을 보다가
뒷걸음치는 그 찰나에 밟아버린 뱀의 허리
보는 것도 독 없이는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까
가마 곁에 뜨뜻이 누워
마악 몸을 푼 누렁이
주먹만한 새끼들 젖 물리는데
그 비릿한 어린것들 삼키러 온 뱀을
겁도 없이 왈칵 밟아놓고 공포에 먼저 물린다
독사에 물린 것처럼
불의 전갈에 쏘여 제물이 된 몸뚱이, 천형의
도기들을 본다
독기 없이 저리 순연히 불구덩에 들어설 수는 없을 터
한 목숨 저리 처연히 수천번씩 죽을 수는 없을 터
* 아버지의 도시 - 동아일보
난산(卵山)에 가서 (정영주)
지는 해가
소나무 가지 사이에 걸려
빠지지 않는다
나무들 뜨거워
온몸 비틀지만
해는 꿈쩍도 않는다
붉은 알을 낳는 해
나무들 뿌리째 흔들어 태우고
하늘은 온통 하혈이다
-<아버지의 도시>(실천문학사) 중
짧지만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이 시는 일반적인 상징체계를 무너뜨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징 의미로 형상화되었다. 지금껏 우리가 여성보다는 남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온 소나무는 물론 강한 남성의 상징인 태양까지도 이 시 속에서는 여성화되어 있다. 놀라운 상징 의미의 전복이다.
해는 여성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소나무 가지 사이에 걸려 빠지지' 않고, 그 뜨거운 행위에 나무들은 '온몸을 비틀지만 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태양은 강한 에너지가 다소 폭력적으로 분출되는 기존의 상징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하지만 3연에 이르면 태양은 더없이 강한 여성적 이미지로 바뀐다. '붉은 알을 낳는 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인 것이다. 이제 모성을 갖춘 태양은 숲을 통해 에너지를 번식하고 숲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삶을 재생하려 한다. 그리고 그 숲에는 밤과 낮이 공존한다.
광주에 실존하는 지명이기도 한 난산(卵山)의 뜻과 맞물려 절묘한 시각적 효과까지 얻으며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의 '번식을 위한 행위'를 보는 듯한 이 시는 여성과 남성 안에 공존하는 아니무스와 아니마의 차원을 훌쩍 뛰어 넘어 성의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게 한다. 늘 이분법으로 나뉘는 우리들의 의식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어디 그뿐인가. 오랜 세월 동안 회의 없이 남성의 상징체계 안에서 절대적 상위 의미로 군림해 온 하늘마저도 여성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풍기는 '하혈'이라는 시어를 통해 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그 모호함으로 인해 의식을 차단하던 세상의 야문 매듭들이 헐거워지는 듯한 기분이다.
사물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힘. 세상의 관념에 묶이지 않는 힘. 자신의 시각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거나 위험을 감수하는 힘. 그것 또한 어둠이 내리는 숲 속에서 건강한 삶으로 인도되는 한줄기 광선을 찾는 에너지가 아닐까.
* 서평/詩로 복원해낸 유년의 추억 - 세계일보
"그때는 묵호의 모든 것이 그랬다// 묵직한 슬픔들이 상한 오징어 다리로/ 길고 가느다란 골목길을 여기저기 흘러다녔다/ 검게 그을은 도시의 벽들 사이로/ 오징어 먹물들이 서서히 번져가는 걸 보며// 아이들은 어달리 선창가에서 흘러나오는/ 꽁치 비늘에 도배된 채 눈빛만 가늘게 빛났다"(''아버지의 도시1''에서)
정영주(51.사진)의 첫시집 ''아버지의 도시''(실천문학사)에 흐르는 추억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어떤 기억이 머릿속에 음각되어 지워지지 않는 한 과거는 늘 현재형으로 몸을 바꾼다. 정영주는 강원도 춘천과 묵호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전남 광주에서 다시 터를 잡고 살면서 1999년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시단에 나와 오랫동안 가슴속에 삭여온 기억들을 시로 녹여내기 시작했다.
첫 시집은 성장기에 만난 ''아버지의 도시''에서 출발해 ''오월의 신부''로 정착한 광주를 거쳐 다시 유년의 안개도시를 섭렵하는 추억여행의 기록이다. 그 현재형 추억 속에는 가난과 오월의 아픔, 축축한 안개와 삶에 대한 연민이 따뜻하게 녹아들었다.
유년의 도시는 "오후가 되면 습기가 천천히 온 도시를 화장하고/ 밤이면 이따금 건물도 사람들도 안개에 눈이 멀고" 마는 곳이었고, "자욱히 안개비가 내리면 도시는 출렁거리고/ 사람들은 배가 되어 노 없이" 흐르는 곳이었다. "묵호는 집집마다 벌떡벌떡 일어서는/ 파도 하나씩 키우고 살았"고 "아무리 소금을 뿌려도/ 펄펄 살아나는 가난"이 지배하던 곳이었다. "그해 여름/ 석탄과 바다와 파도뿐인/ 묵호에서 광주까지 시집온 그녀에게/ 제일 먼저 달려든 것은 붉은 꽃들"이었고 "오월의 신부가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문 밖의 남편을 사랑하는 일"뿐이었다. "한 천 년 우주 모서리 불빛"이었던 "천 도 이상 불가마에서나 구워질 수 있는 과거"를 시인은 시로 복원해낸 것이다.
그는 "막사발같이 투박하고 거친 내 언어들이 풀리면서 상처에 이제 막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며 "새살로 돋은 시어들이 튀어나가 세상의 가난한 한 모서리라도 따뜻이 감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후기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