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BS1 <예썰의 전당> [55회] 신사의 품격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2023년 6월 3일 방송 다시보기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화실에서
순례자 작품 앞에 서있는 르네 마그리트, 1967년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Attempting the Impossible)', 1928년
철학자로 불린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는 일상에서 접하는 친근한 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현실 감각을 뒤틀었으며, 팝아트라는 새로운 사조를 창출했다. 대표작은 〈길 잃은 기수〉, 〈이미지의 반역〉, 〈인간의 조건〉, 〈빛의 제국〉, 〈투시도-다비드의 마담 레카미에〉 등이 있다.
르네 마그리트, ‘피레네 산맥의 성(The castle in the pyrenee)’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 요새 모양의 성이 육중한 바위 정상에 솟아있고, 그 바위는 해변 위로 무중력으로 떠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바위가 갖는 속성인 무거움, 육중함을 공중부양으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디자인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Clear ideas(Les idees claires)', 1958년
https://tv.kakao.com/v/438536779
르네 마그리트, ‘겨울비(골콘다:Golconde)’, 1953년
르네 마그리트가 1953년 그린 작품으로 중절모에 레인 코트의 신사가 떼로 등장한다. 작품에 중절모에 코트 차림의 사내가 공중에 일정히 떠 있는데, 영화 매트릭스(영화)의 스미스 요원의 무한에 가까운 복제가 이 작품의 영향을 받고 탄생한 장면이라는 설이 있다.
르네 마그리트, ‘집합적 발명(L'invention Collective), 1934년
르네마그리트, '기쁨의 원리', 1937년
https://tv.kakao.com/v/438536566
르네마그리트, '기쁨의 원리', 1937년 작 초상화의 의뢰인
'쾌감의 원칙(에드워드 제임스의 초상)The pleasure Principle. Portrait of Edward James, 1937년
'순례자', 1966년
골콩트 & 데칼코마니(Golconde & Decalcomanie)
'The Great War(La Grinde Guerre)', 1964년
일반적으로 '인어'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생각되는 인간의 상체와 물고기의 하체를 그리지 않고 역으로 인간의 하체와 물고기의 상체를 그렸다.
권오광 감독의 영화 돌연변이의 모티프가 되었다. 이 영화의 해외판 제목도 그림과 같다.[2] 네덜란드의 방탈출 게임 Rusty Lake 시리즈에서 이를 오마주한 생물체가 등장한다. 노 스트레이트 로드의 두번째 보스인 버츄얼아이돌 사유의 오류가 난 모습이 이것처럼 상체가 물고기에 하체는 인간이다.
The Gerat War(La Grande Guerre), 1964년
'Man in a Bowler Hat', 1964년-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는다-르네마그리트
'삶의 예술(The Art of Living)', 1967년
'인기의 파노라마(Popular Panorama)', 1926년-바다 밑에 숲 밑에 도시
'명상(Meditation)', 1937년
https://tv.kakao.com/v/438536543
르네 마그리트, ‘사람의 아들(Le fils de l'homme)’, 1964년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친숙한 대상을 생소한 배경에 배치하거나 말과 이미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양자의 괴리를 드러내 보는 이들의 현실 감각을 뒤흔드는 작품들로 유명하다. 마그리트는 화가보다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헤겔, 베르그송, 하이데거 등의 철학서들을 탐독하고 그 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나는 회화를 이용하여 사유를 가시화한다.”라는 말이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가 될 듯하다.
'The therapeutist', 1937년
'정지된 시간(Time transfixed.La Duree poinadee Date)', 1938년
르네 마그리트, ‘연인’
정장을 입고 흰색 천으로 얼굴을 덮은 두 사람이 입술을 맞추고 있는 그림이다. 조금은 섬뜩하고 기괴하다. 위의 그림 외에도 바리에이션이 있다. 해석을 떠나 그 자체의 기괴함으로도 미적 가치가 있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얼굴에만 천을 두르고 입을 맞춘다. 이런 비상식적인 발상에는 기괴한 가치가 있다.
사랑의 본질과 한계를 묻는 그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입을 맞추고 있지만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상대가 두른 천에 키스하고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상대의 맨얼굴이 아니라, 상대가 두른 천이 아닐까? 당신의 연인이 뛰어난 가수라고 치자. 당신은 가수의 목소리에 반한 것일까, 사람 그 자체에게 반한 것일까? 그에게서 목소리를 걷어내고도 당신은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당신은 상대 그 자체에 반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가진 면모들에 반한 것이 아닐까? 위 그림의 연인은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천 너머 서로의 자아는 사랑하지 못하고 입을 맞추고 있다.
모든 그림이 그렇듯 해석하기 나름이다.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 남부 지역의 공업 도시 에노 레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양복 재단사이며, 어머니는 모자 상인이었다. 그는 〈팡토마〉 같은 범죄모험영화와 탐정소설, 에드거 앨런 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등이 쓴 소설을 매우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14세 때 어머니가 강에 투신자살을 하면서 유년 시절은 끝이 났다. 그는 어머니의 시체를 건져 내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으며, 어머니의 얼굴을 덮은 드레스 자락의 이미지는 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평생 영향을 미쳤다(이 이미지가 〈연인〉이라는 작품에 투영된 것이 아니냐는 비평이 있었으나 그는 부인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는 르네와 다른 두 아들을 데리고 샤를루아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고전을 공부했으며, 18세 때부터 브뤼셀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회화를 공부했다. 이 시기에 그는 인상파와 입체파 양식의 회화를 시도했으며, 그래픽 아트를 배웠다. 졸업한 후에는 포스터와 광고 디자인 등 상업 미술가로 일했는데, 이 무렵까지는 화가가 되겠다는 대단한 열정을 품지는 않은 듯하다.
르네 마그리트, ‘천취실, 1952년
르네 마그리트, ‘사랑의 노래, 1962년, 종이에 과슈, 26.7x35.5cm
'The blow to heart(Le coup au coeur)', 1952년
'The tomb of the wrestlers', 1960년
'The flash(L'eclair)', 1959년
'공포의 동반자(The Compannipns of Frar)', 1942년
르네 마그리트, ‘길 잃은 기수’, 1926년
르네 마그리트, ‘길 잃은 기수’, 1940년
르네 마그리트, ‘길 잃은 기수’, 1948년
1922년은 마그리트에게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그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였던 마리 조르제트 베르제와 결혼했으며, 그해 시인 마르셀 르콩트가 보여 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 복제화에 큰 충격을 받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키리코는 건물 풍경, 버려진 광장, 잘린 고전주의 시대의 조각 등을 기묘하고 음울한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초현실주의를 예고하는 작품을 제작한 인물이다. 마그리트는 한동안 광고 디자인으로 생계를 꾸렸으나 1926년 브뤼셀의 라상토르 화랑과 계약하면서 회화 작업에 집중적으로 몰입했다. 그해 그는 60여 점의 작품을 그렸고, 초현실주의적 작품 〈길 잃은 기수〉(1926, 같은 제목으로 1948년에 더욱 정돈해서 그린 그림도 있다)로 주목받게 되었다.
1927년부터 3년간 마그리트는 파리에 머물며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등 초현실주의자들과 깊은 우정을 쌓았으며, 초현실주의 운동에도 가담했다. 초현실주의 그룹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근거로 하여 무의식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기법으로 자동기술법과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을 창안했다. 데페이즈망이란 ‘추방’이라는 의미로, 사물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추방하고 이질적인 환경에 배치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물의 원래 의미, 즉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고, 보는 이들의 감각의 심층부에 충격을 준다. 이는 종종 19세기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 중 ‘해부대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이 만나듯이 아름다운’이라는 구절로 표현되곤 한다.
마그리트는 1930년 브뤼셀로 돌아와 여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3년간은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에도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계속 참여했다. 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 충격을 주었고, 그럼으로써 관람객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이미지의 반역’, (La trahison des images)’, 1929년
예컨대 대표작 〈이미지의 반역〉에서 그는 우리의 언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작품에는 파이프가 하나 그려져 있고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쓰여 있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 글은 언어와 이미지의 실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그림은 사물을 아무리 사실적으로 재현하더라도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일 뿐이다. 또한 단어 역시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의 본질을 내포한 것은 아니며, 다만 대상을 지칭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 ‘파이프’와 ‘파이프라는 단어’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음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 ꡶)’, 1933년, 캔버스에 유채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Ⅱ(The Human Condition Ⅱ)‘, 1935년
'유크리트의 산책', 1955년
또한 미술의 환각법을 이용해 실제와 환영에 대한 상호 관계도 탐구했다. 예컨대 〈인간의 조건〉에서는 화면 오른쪽에 바다 풍경을 그린 캔버스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 화면 속 그림의 소재가 되는 바다 풍경, 즉 창밖의 바다 풍경은 캔버스 속 풍경과 합쳐져 있는 듯 배치되어 있다. 창문을 통해 외부(바다)와 내부(캔버스 속 바다)의 접점,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인식 체계를 다시 숙고하게 만든다. 〈폭포〉, 〈인간의 조건 2〉, 〈해 지는 저녁〉 등에서도 그는 ‘그림 속의 그림’을 제시하여 우리가 믿고 있는 인식 체계의 불완전함과 그 경계의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말년에 그린 〈백지 위임장〉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혹은 두 차원의 경계가 완전히 혼란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말을 타는 여인과 그녀가 지나가는 숲의 나무들 중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경계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 말을 탄 사람은 나무를 가리고 나무는 여자를 가린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 능력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 ‘백지 위임장(The blank signature. La Carte Blanche)’, 1965년
르네 마그리트, ‘백지 위임장‘을 사용한 그룹 스틱스의 앨범 〈더 그랜드 일루전〉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The empire of lights)’, 1954년
〈빛의 제국〉과 같이 언뜻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개념들이 한 공간, 하나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도 있다. 〈빛의 제국〉은 일견 밤의 풍경으로 보이지만, 그 위의 하늘은 낮의 하늘이다.
“이 풍경은 우리에게 밤에 대해, 낮의 하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내 생각에 낮과 밤의 동시성은 우리의 허를 찌른다.”
마그리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현상, 기존의 상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를 표현한 것과 달리, 일상에서 접하는 친근한 사물을 통해 현실 감각을 뒤트는 실험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극히 사실적인 표현으로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투시도 Ⅱ: 마네의 발코니Perspective Ⅱ: Manet's Balcony', 1950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그리트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몰두하게 되었다. 〈투시도-다비드의 마담 레카미에〉처럼 사람이 앉을 자리에 관을 놓는 충격적인 작품을 그리기도 했으며, 마네와 르누아르풍의 작품을 제작하는 실험도 했다. 그러나 1940년대 후반 다시 원래의 양식으로 돌아와 더욱 세심하고 기묘한 장면들을 그려 나갔다.
1960년대에는 미국 순회전을 가졌으며,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리면서 당대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그리트는 1967년 8월 15일 로테르담의 보이 망스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던 가운데, 브뤼셀 자택에서 사망했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수많은 현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팝아트라는 새로운 사조를 창출한 젊은 미국 예술가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196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기수들도 그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제프백, 스틱스, 잭슨 브라운 등의 뮤지션들이 그의 작품을 앨범 재킷으로 사용했으며, 영화 제작자들, 미술가, 광고 제작자들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러면서 그의 작품들은 현대인에게 매우 친숙한 이미지가 되었다.
'대화의 기술(The art of conversation.L'Art de la conversation)', 1950년
'대화의 기술(The art of conversation.L'Art de la conversation)', 1950년
'대화의 기술(The art of conversation.L'Art de la conversation)', 1950년
'유령의 성(Le chateaus hante)', 1950
'세기의 전설(The legend of centuries)', 1950년
'여행의 추억(Memory of a journey.Souvenir de voyage)', 1955년
'공간의 소리(The voice space(La Voix des airs'), 1928년
'공간의 소리(The voice space(La Voix des airs)', 1928년
'망원경(The Telescope)', 1963년
'들판으로 나가는 열쇠(The Key of the Fields)', 1936년-창밖의 들판으로 가려면 저렇게 창문을 깨야함
'여행의 기적(Memory of a journey)', 1955년
'자연스러운 만남(Natural Encounters)', 1945년
르네 마그리트, ‘믿을 수 없는 거울(The felse minor)’, 1928년
현실을 떠나고 싶은 눈에 세상 대신 구름이 가득히 담긴 것 같다. 만화경사륜안보다 더 신비스러운 눈이 클로즈업된 그림이다. 홍채가 하늘로 구성되어 있다.
르네 마그리트, ‘기억’, 1942년경, 수채, 35x26cm, 개인소장
르네 마그리트,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르네 마그리트, ‘올마이어의 성(Almayer's folly:La folie almayer), 1951년
'Personal Values., 1952년
개인적 가치. 하늘 벽의 방에 침대보다 큰 빗과 장롱만한 컵 등 크기가 왜곡된 물건들을 볼 수가 있어. 사용자의 가치에 따라 크기가 정해진다.
'선택적 친화력(Elective Affinities)', 1933년
효과적인 친화력. 친해지려면 알부터 새장에 가둬 키워야 된다? 쨌든 키잡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작품인 것 같다.
'La Clairvoyance', 1936년
통찰력. 알을 보고 새를 그리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어. 알을 천리안으로 보는 것 같아(Clairvoyance).
르네 마그리트, ‘심금(The heartstrings)’, 1960년
르네 마그리트, 헤지테이션 왈츠' 1950년
르네 마그리트, 인간 혐오, 1942년
'Alice in Wondernaland.lice au pays des merveilles', 1945년
'The happy hand', 1953년
'The Labours of Alexander(Les Travaux d'Alexandere)', 1950년
'The mysterious barricades(Les barricades mysteriouses)', 1961년
르네 마그리트, '향수(Homesickness)', 1940년
'내세(來世:The Hereafter'), 1938년
'신의 응접실(God's Salon)', 1948년
르네 마그리트, '혼돈의 향기(The Perfume of Abyss(Le Parfum de L'Abime))', 1928년
'아른하임의 영토(The Domain of Arnheim)', 1938년
.아름다운 포로(The Fair Captive)., 1947년
'아름다운 포로(The Fair Captive)', 1947년
'유혹자(The Seducer)', 1953년
'풍경(Landscape)', 1920년
벨기에의 마그리트 화폐 앞뒷면. 골콩드 & 데칼코마니 요소도 볼 수 있다. 2001년까지 사용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55회] 꿈의 세계를 그리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김영은, 청아출판사),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