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남마담이 올린 K 사장 냉동화물 손상 사건 중에 잠시 바나나 운송 이야기가 나와 이 글을 쓴다.
1994년 4월에 나는 냉동화물선을 탔는데 그 배는 주로 바나나를 운송했다.
그 배, Mistrau호의 선주는 일본 겐류 쉬핑이었다.
세계 주요 바나나 수출국은 동남아는 필리핀, 중남미는 에콰도르, 콜롬비아가 유명하다.
상품명은 Del Monte, Dole, Chiquita가 대표적이다.
첫항차 선적지는 콜롬비아 뚜르보(Turbo)라는 항구였다.
나는 그때까지 냉동화물선 기관장 경험은 있었지만 바나나 운송은 처음이었다.
바나나는 자신이 없어 안 나가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냉동화물선 경험 있는 기관장을 구하지 못해
"승선하고 있는 1등기관사가 잘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부추기는 바람에 나가게 되었다.
Mistrau 호가 뚜르보 항에 입항하기 전에 전 선원들은 서약서에 서명을 해서 선장한테 제출했다.
[ 나 (직책) (성명)는 Mistrau호에 승선하고 있는 동안 마약 및 밀항자에 관한 어떠한 행위도 관여하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습니다. 겐류쉬핑 사장 귀하. 년 월 일. 서약인 (성명) 서명 ]
콜롬비아는 마약밀매로 아주 악명높은 나라였다. 그래서 콜롬비아에 입항하는 모든 외국 선박 선원들에게 서약서를 받는다고 했다. 짐을 싣고 출항할 때는 외항에 닻을 내려 선저에 다이버가 들어가서 부착물이(마약) 있는지 수색을 마친 후에 출항을 했다.
바나나 운송지침서는 이랬다. (Delmonte)
1. 바나나 적재 6시간 전에 화물창 온도를 섭씨 13도로 예냉을 하고 적재 완료 후에는 36시간 이내에 섭씨 15도 이하로 낮출 것.
2. 운송온도는 섭씨 12.8도 ~13.2도를 유지하고 이산화탄소(Co2) 농도를 0.2% 이하로 유지할 것.
바나나는 선적 2~3일 전에 따서 파란 상태로 선적하는데 나무에서 딴 후에도 후숙(後熟)하는 과일로 장기간 운송이 어렵다.
운송 온도가 12.8도씨 보다 낮으면 이른바 '감기'가 들어 거뭇거뭇 상하고 15도씨 이상으로 올라가면 가스를 발생해 화물창 전체의 바나나를 노랗게 물들인다. 노랗게 익은 바나나는 Consignee가 가져가지 않는다.
이산화탄소 함유랑은 통풍기를 돌려 조정하는데 대기 온도에 따라 화물창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므로 그것도 까다롭다.
뚜르보 항에서 바나나 48boxs X 3463 Plts, (166,224 boxs)를 싣고 출항했다. 화물창 온도는 자동온도 기록지에 16개의 선이(4개의 화물창에 각각 4개의 센서가 있음) 서서히 일치하며 13.2도씨로 합쳐지며 일직선을 나타냈다.
나는 그 동안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입술이 부풀어오르고 물집이 생겼다.
북쪽으로 올라가니 또 걱정거리가 생겼다. 덴마크 북단 (북위 57도)스카게라그 해협을 돌아올 때는 대기온도가 8도씨로 떨어졌다. 대기 온도가 더 낮으면 화물창에 냉기가 아닌 온기(溫氣)를 불어넣어야 할 판이었다. 목적항인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위치는 북위 59도 53분, 동경 30도 13분이었다. 대기 온도가 얼마나 더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화물창 히팅 장치를 점검해보니 장기간 사용하지 않고 정비도 하지 않아 스팀 히터는 녹이 슬어 다 삭았고 온풍 팬 모터도 8개 가운데 5개가 작동하지 않았다. 곧 상트페테르부르그 입항이라 수리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신실한 믿음도 없으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도하는 수밖에...
발트 해를 지나 핀란드 만으로 들어서자 한낮의 대기온도가 13도씨로 올라갔다. 좋은 기회다 싶어 화물창 카버를 개방하고 바나나를 점검하니 노랗게 물이 들기 시작하는 바나나가 5박스나 나왔다. 모두 들어냈다.
무사히 접안을 하여 하역작업이 시작됐다. 인부들은 낮에만 하역작업을 하고 오후 6시만 되면 화물창 카버를 닫았다. 러시아는 그때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민들은 아주 살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러시아 마피아 행동대원들은 매일 배에 드나들며 상륙하라고 선원들을 부추겼다. 선원들은 좋아라 했지만 나는 또 걱정이 태산같았다. 하역 기간이 길어지니 그 동안 날씨가 추워져서 바나나가 감기가 들지나 않을까 싶어.
다행히 아무런 문제없이 바나나를 다 풀고 꼭 열흘 만에 상트페테르부르그 항을 출항했다.
그런데 출항 후에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로 골탕을 먹었다. 덴마크의 칼운드 보그(Kalund borg)라는 곳에서 벙커링을 했는데 그 기름 속에 박테리아가 발생했던 것이다. 필터에 곰팡이가 생성하여 자꾸 막히는 바람에 그 기름을 다 사용할 때까지 생고생을 했다. 뒤늦게 샘플을 보내 봐야 배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기름 속에도 미생물이 산다는 것을 그때 처음 목격했다.
그리고 냉동컨테이너로 화물을 운송할 때는 선적 시부터 하역할 때까지 컨테이너 내부 화물 온도가 자동 기록지에 기록되어 있다.
운송 도중에 냉동컨테이너에 고장이 있었다면 이 기록지에 온도가 다 나타나 있고 운송하는 선박에서 매일 두차례씩 온도 검사를 하고 첵크 리스트에 상태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육상 창고에 입고하기 전에 반드시 그 온도 기록지를 확인하게 되어 있다.
Shipper인 K 사장님이 먼저 그것부터 확인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