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역사는 소설보다 더욱 드라마틱하다'라는 신조를 갖고 사는 사람인지라 흔히 말하는 전쟁 소설이란 것들도 잘 읽지 않습니다. 어렸던 중학생 때에는 그래도 열심히 읽었지만 진짜 전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멀어지게 되었지요.
그런데 요즘 자꾸 이른바(물론 그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설을 이런 식으로 일컫지는 않는 걸로 압니다만 편의상) '한국형 테크노 스릴러'소설들과 '타임슬립'소설들이 범람하고 있더군요.
전자는 대체로 한국이 개입된 가상 전쟁 시나리오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유명한 '데프콘'으로부터 시작해서 '남북', '동해', '제3차대전'등등이 있고, 후자의 경우는 현재의 한국의 인원이나 장비가 과거로 가서 역사를 홀라당 바꾸어 버린다는 스토리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서'제808포병대대', '한제국 건국사', '1904대한민국'등이 있더군요.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들을 통해 '밀리터리'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이런 소설들을 꽤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적어도 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우선 이들 소설들이 암암리에 전쟁을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행위인 것처럼 묘사하는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예전에 퍼온 데프콘 평 마따나 우리의 주변국들과 우리와의 전쟁은 마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라도 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세계 유수의 군사강국들의 힘이 집결되어 있는 동북 아시아를 살아가는, 그리고 제대로 된 전쟁사를 배우지 못한 한국의 젊은 밀리터리 매니어들에게 상당히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죠. '데프콘'의 예를 들어보면 한국이 중국, 일본, 미국을 상대로 잇따라 싸워 그때마다 대승리를 얻어내고 그 과정이 작가의 엄청난 군사 지식적 권위로 합리화 됩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솔직히 말도 안된다는 것은 이 소설의 작가들을 포함해 해당 국가들의 밀리터리 밸런스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상식'에 속합니다. 게다가 이들 소설은 대체로 외국의 밀리터리 밸런스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도 낮은 이해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족이지만 바로 여기서 한국형 테크노 스릴러 소설의 두 번째 문제점이 드러나는데, '리얼한 워 게임의 활자화'라고 볼 수 있는 테크노 스릴러 본연의 기능이 무시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타임슬립 소설들도 문제는 비슷합니다. '한제국 건국사'나 '1904 대한민국' 같은 경우 그 타임슬립의 시점 자체가 조선의 국운이 극도로 쇠락한 시기이던 고종 시대인 걸로 되어 있고, 1904대한민국 같은 경우 현재의 한국 전체(!)가 그 시대로 옮겨가는 식으로 설정이 되어 있더군요. 그렇게 되면? 결국은 '21세기의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조선이 오욕의 일제 식민지배를 없던 것으로 하고 외국과의 전쟁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맹주가 된다'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역사에 대한 자위일 뿐입니다.
이 외에도 '인간 생의 본질적 의미탐구'나 '언어적 미학의 추구', '보편 타당한 가치의 추구'같은 문학 본질적 가치가 너무나 배제된 것도 이런 류의 소설들의 문제점입니다만 어차피 이런 책들이야 '문학'이 아니라 '(대체)역사'라고 주장하면 거기에 대하여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런 소설을 써대면서 일본이나 중국이 '추한 한국인'이나 '지팡구'같은 책을 써댄다고 욕할 자격이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이런 소설들에 얼마나 가치를 부여해주어야 되는 걸까요? 제가 정말 여러분께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상당히 두서없게 적었지만... 군사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커져가는 '전쟁'이라는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서, 전쟁 자체에 대한 예술적인 논의나, 전쟁문학에 대한 논의는 너무 부족한 듯 하여 이렇게 몇 자 적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첫댓글분명, 처음에는 그러한 소설의 작가들이 당시 일어나던 "일본 때리기식 소설 & 만화"(남벌, 파이어데이, 97 대침공 류)의 기류에 편승해서 만들어낸 것 정도로 생각했고, 더 나아가 극우주의자들이 술마시고 놀다가 아예 책으로 자신들의 술자리 이야기를 정리해서 펴낸 것 정도로 생각되었습니다.
오늘날, 새로이 나온 "제2차 한국전쟁"이던가요... 제가 좋아하고 크게 신뢰하던 "모 잡지"마저도... 그 소설과 그 소설의 작가를 마치 한국의 톰 클랜시 혹은 그 이상의 인물인양 찬양하고 그러한 찬양을 거의 두페이지에 걸쳐 할애한 것 보고는... "허거걱!"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지팡구나 침묵의 함대의 경우 (사실상 극단적으로 대립되어지는 예지만) 동년배 혹은 친구의 형태로 등장하는 두 캐릭터가 서로 다른 마음과 다른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다른 길, 즉 대립되어지는 길을 가지요. 하지만, 데프콘 등에서는...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일본인들은 일본인들끼리... 가는 길이 완전히
첫댓글 분명, 처음에는 그러한 소설의 작가들이 당시 일어나던 "일본 때리기식 소설 & 만화"(남벌, 파이어데이, 97 대침공 류)의 기류에 편승해서 만들어낸 것 정도로 생각했고, 더 나아가 극우주의자들이 술마시고 놀다가 아예 책으로 자신들의 술자리 이야기를 정리해서 펴낸 것 정도로 생각되었습니다.
오늘날, 새로이 나온 "제2차 한국전쟁"이던가요... 제가 좋아하고 크게 신뢰하던 "모 잡지"마저도... 그 소설과 그 소설의 작가를 마치 한국의 톰 클랜시 혹은 그 이상의 인물인양 찬양하고 그러한 찬양을 거의 두페이지에 걸쳐 할애한 것 보고는... "허거걱!"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신뢰를 점차 잃어만 가는 연말이기에... 이제는 그렇게 놀라려고 하지도 않지만 말입니다.
글고 지팡구 12권... 정말 짜증나게도... 안나오고 있데염...
솔직히, 우리나라 극우주의 작가들이... 부디 지팡구(& 침묵의 함대) 작가 정도의 반만이라도 따라잡는다면... 저도 더이상 그들에 대해서 하마평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팡구나 침묵의 함대의 경우 (사실상 극단적으로 대립되어지는 예지만) 동년배 혹은 친구의 형태로 등장하는 두 캐릭터가 서로 다른 마음과 다른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다른 길, 즉 대립되어지는 길을 가지요. 하지만, 데프콘 등에서는...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일본인들은 일본인들끼리... 가는 길이 완전히
정해져 있습니다. 말 그대로, "국가유기체론"(국가는 그 하나로서 살아있는 생명체다라는 논리)을 극우적으로 집대성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