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을까, 누군가에겐 행복한 고민이고 누구에겐 처절한 고민입니다.
‘보릿고개’가 옛말이 된지 오래이지만 아직도 끼니 해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제 먹는 건 즐거움의 하나입니다.
어디서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 속에 맛집을 찾는 노력조차 행복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한 고민을 실행하는 방식에도 연령층별로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MZ세대 중에는 맛집 탐방을 주제로 하여 맛집 순례 중간에 근처 가볼만한 곳을 탐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와 반대로, 아버지뻘 되는 우리 또래는 문화유적지나 자연경관이 좋은 곳을 중심으로 가볼 곳을 정한 뒤 근처 맛집을 검색합니다.
맛집을 찾아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같지만 무엇이 우선인지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가볼 곳을 먼저 정한 뒤 근처 특산품이나 맛집을 찾아봅니다.
여행은 그러하지만, 출장길의 식사는 동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을 택합니다.
대구 출장 3일에는 주로 사무실이 있는 엑스코 근처에서 식사를 했는데 최근에 바뀌었습니다.
사흘 중 하루는 북구 구암동에 있는 화개장터가마솥국밥을 찾습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칼국수도 7천원~9천원 하는데, 돼지국밥도 7~8천원 하는데 여기는 소고기국밥이 단돈 6천원입니다.
11시 40분만 되어도 자리가 없기 때문에 보통 11시 반에 도착하도록 구미에서 출발합니다.
이날만큼은 아침밥도 다른 날보다는 1시간 이상 이른 7시쯤 먹습니다.
국밥을 먹고는 꼭 2통을 포장해 나옵니다. 어머니께서 워낙 좋아하셔서입니다.
한 통은 제 출장기간 동안 같이 먹고, 한 통은 주말에 드시라고 냉동실에 넣어둡니다.
한 통에 만원인데 4그릇은 너끈히 나옵니다. 6천원의 행복, 만원의 행복입니다.
저는 이리 잘 먹고 다니지만, 제 파트너인 공단 직원은 그렇지 못합니다.
격무에 쫓겨서 식당에 먹으러 나가는 시간을 아끼느라 도시락을 싸 왔음에도 일에 치여 먹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PC 작업하면서 초코파이와 우유 한 잔으로 한 끼를 때우는 모습을 보면 참 마음이 짠해집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흔히 하는 말이지만 이들에게는 먹을 자유, 먹을 시간마저도 사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일의 꼭지수가 많아졌음에도 인력 충원이 따라가지 못하니
매년 업무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일이 몰리다보니 52시간제의 굴레 때문에 조기 출근해 일 하거나(9시 이전에는 일해도 52시간에 산입이 안 되니...),
시간 카운트가 안 되는 병역특례요원용 PC를 서로 다투어 이용하고,
52시간에 포함 안 되는 원격 접속하여 집에서 새벽시간, 주말에도 일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얼마 전부턴 어차피 밤 11시 넘어 퇴근이니 선택근로제로 서류상으로는 11시에 출근하는 걸로 하여
2시간의 컴퓨터 사용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정치꾼들은 폼 나게 ‘저녁이 있는 삶’을 강조하지만,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오죽했으면, 공단 본부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제가 “직원들이 저녁이 있는 삶 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주말이라도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까지 했겠습니까?
일조일석에 바뀌진 않겠지만, 52시간제를 현실화해야 합니다.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위정자들, 관련 고위 공무원들의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됩니다.
바뀔 정부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제 소중한 파트너인 공단 직원들이 최소한, 가져온 도시락 까먹을 시간만큼은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들이 현재의 힘든 순간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흔들리는 것은(모셔온 글)========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던 시절.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얘야,
물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는 것은
물결 때문이지, 불빛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 아니다.
자연이 만든 물결 때문에,
자신을 의심하지 말거라.
흔들리는 물결이 아닌,
잔잔한 호수 속에 비친
온전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렴.
그것이 진정한 너의 모습이란다.
-----정한경의 <안녕, 소중한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