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건국 2년 …… 국민소득 : 65$
01.06 제1회 고등고시 실시
01.12 미 국무부 장관 딘 G. 애치슨, 한국은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애치슨 라인) 밖이라 언명
02.10 국무회의,「매주 수요일 술․쇠고기 판매 금지령」의결
02.16 이승만 대통령 도일(渡日)
03.13 국회, 내각책임제 개헌안(제1차 개헌안) 부결
03.27 남로당 총책 김삼룡(金三龍)․이주하(李舟河) 검거
▲ 왼쪽이 김삼룡. 오른쪽이 이주하
04.01 경부선 철도 야간열차 운행
04.03 이범석 국무총리 사임
04.07 대한정치공작대 사건 발생
김성수 · 조병옥 등이 북한 간첩과 접선하여 정부 전복을 꾀하였다는 사건. 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을 획책하기 위한 성격이 더 강하다.
04.10 농지개혁 본격 개시
지방방송국설치법 공포
국회의원 104명, 조병옥(趙炳玉)을 국무총리에 추천하는 연서를 경무대(景武臺)에 전달
04.12 보스턴 마라톤 대회 제패(함기용(咸基鎔) 1위, 송길윤(宋吉允) 2위, 최윤칠(崔崙七) 3위)
04.21 신성모(申性模),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
국회, 국가보안법 개정안 통과(국가보안법 제2차 개정)
국내외에서 국가보안법이 인권을 유린할 소지가 크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그에 대한 유화책으로 개정됨.
① 단심제 폐지 ② 소급효 폐지 ③ 구류 갱신 제한
04.29 국립극장 개관
05.25 보험 회사「조선생명보험」,「한국생명보험」으로 개칭
05.30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율 91.9%
전체 210석
대한국민당(이승만 지지파)
24석(9.7%)
민주국민당(야당/보수우익정당)
24석(9.8%)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이승만 지지 정치 단체)
14석(6.8%)
기타
148석(71.7%) |
06.01 6년제 초등의무교육 실시
06.07 북한, 당국에 남북 총선거 제안
06.10 북한, 당국에 조만식(曺晩植)-김삼룡․이주하 교환 제의…곧이어 남․북 당국 간 협상 시작
북한의 이러한 위장 평화 공세는 남한 당국자들의 방심과 그에 따른 안보 해이를 야기함. |
06.11 소설가 채만식(蔡萬植) 사망(향년 49세)
06.12 한국은행 발족…중앙은행 역할 담당
06.14 대한민국, 유네스코(UNESCO) 가입
06.19 제2대 국회 개원(의장 신익희, 부의장 장택상(張澤相)․조봉암(曺奉岩))
06.23 조만식-김삼룡․이주하 교환 무산
06.25 북한 전면 남침 개시…6.25전쟁(한국전쟁) 발발
▲ 1950년 6월 28일 서울 시내에 진입한 북한 인민군 전차.
06.2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한국군 원조 및 북한 도발 무력 제재 결의
미, 해․공군에 한국 전선 참가 명령(06.30 미 육군 파병 명령 07.03 미 해병대 파병 명령)
06.28 국군, 서울 한강 인도교 폭파…퇴각 군인․피란민 등 최소 500여 명 폭사
수도 서울 함락
07.01 미군 지상군 선발대 부산 상륙
CRIK 원조 도입 시작
한국민간구호계획. 전시에 필요한 구호 물자를 원조하였다. |
07.02 세계 36개국, 대한 군사 지원 성명 발표
07.07 유엔군 결성…한국군, 유엔군에 편입
유엔군 통합 사령부 창설
07.08 대한학도의용대 결성
학도병이 모여 결성한 의용 결사대. 2만 7,700명이 실전에 참가하였고 20만 명 이상이 후방 선무 공작 · 치안 유지 등의 활동을 수행하였다. |
07.12 한-미 대전 협정(「재한 미국 군대의 관할권에 관한 한-미 협정」) 체결
재한 미군의 범죄 행위에 대한 재판권을 미군에 이양. 불평등 협정 |
07.15 한국군 작전지휘권(이후 작전통제권) 유엔군 사령관에 이양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효로 “한국군 작전통제권”으로 불리게 되었다. 평시작전통제권과 전시작전통제권으로 나뉜다. |
07.20 인민군, 대전 점령
07.31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군 통합 사령부에 한국민 구호 요건 결정 요청 결의
08.01 대구매일신문 창간
08.03 유엔군, 워커 라인(마산-왜관-영덕을 잇는 방어선) 구축
08.18 정부, 임시 수도 부산으로 이전
08.22 국민병 소집 개시
09.15 인천 상륙 작전 개시
▲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이 점령한 인천 옐로 비치(Yellow Beach)에 도착한 수송선에서 보급품과 탄약 등을 하역하고 있다.
▲ 맹렬한 함포 사격!
09.16 낙동강 전선서 유엔군 총반격 개시
09.26 서울 탈환…09.28 완전 수복
▲ 정부의 서울 환도 기념식에서 중앙청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09.28 이승만 대통령 이북 진격 언명…09.30 미 제8군 사령관 월턴 H. 워커(Walton H. Walker) 중장, 38선 돌파 명령
09.29 정부, 서울 환도
10.01 동부 전선 육군 제3보병사단, 38선 돌파
10.07 유엔 총회, 유엔군의 38선 이북 진격 지지 및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 설치 결의
유엔군의 한반도 38선 이북 점령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한 기구. 대한민국 정부 역시 독자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하는 등 북한 지역에 대한 통치권 행사에 혼선이 뒤따랐다. |
10.18 국군 평양 입성
10.25 중국 공산군, 한국전 참전…제1차 공세 개시(~11.05)
10.26 국군, 압록강변(초산(楚山))에 도달
11.06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중국 공산군 월경(越境) 공식 발표
11.10 육․해․공군 합동 헌병대 발족
11.11 부역자처벌특별조치령 공포
인민군 점령 당시 부역자 9,900여 명 검거. |
11.24 유엔군, 크리스마스 공세 개시…중국 공산군의 반격으로 실패
11.25 인민군․중국 공산군, 제2차 공세 개시(~12.15)
11.28 서부 전선 유엔군, 청천강 이남으로 후퇴
11.30 동부 전선 유엔군, 함흥-흥남 선으로 후퇴
12.01 유엔 총회, 유엔한국재건단(UNKRA) 설치안 가결(12.02 발족)
12.05 유엔군, 평양 철수
12.08 유엔군 통합 사령부, 유엔군의 38선 이남으로의 퇴각 명령
12.14 유엔총회, 유엔한국정전위원단(이란․인도․네덜란드) 설치 결의
12.23 미 제8군 사령관 월턴 H. 워커 중장 전사…후임에 매튜 B. 리지웨이(Matthew Bunker Ridgway) 중장 임명
12.24 서울 시민에 대피령 하달
흥남 철수 작전 완료
▲ 흥남을 탈출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있는 이북 피란민들
12.31 인민군․중국 공산군, 정월 대공세 개시…유엔군, 평택-안성-장호원-원주-원포리 선(금강 이남)으로 후퇴(~01.15)
첫댓글 가만히생각해보니 리지웨이중장은 2차대전때 유럽에서 싸웠던사람같은데;;
2차대전때 유럽에서 싸우던 인물 중 상당수가 한국전쟁에도 참여했죠.
만약 여순 사건을 계기로 군내 공산주의자 숙청이 없었다면 한국 전쟁 발발과 함께 한국군은 철저하게 내부에서부터 궤멸 되었겠죠. 그리고 중공은 민족의 원수...
중공만 안끼어들었어도 ㅠ
북한왈 : 미국은 민족의 원수
김거북/ 뭐 사실 남한이냐 북한이냐의 입장에 따라서 민족의 원수가 중공이 될수도 있고 미국이 될수도 있지만.. 지금 북한 돌아가는 꼴을 봐서는 북한을 살려줬고 아직도 살려주고 있는 중공이 더 심각한 민족의 원수가 되는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그때 공산주의자 떨거지 한 놈을 마저 숙청했어야 5.16 따위의 비극이 안 일어났을텐데 말이죠. 씁씁.
그 사람 이름이 박 모라고 하더군요. ㅇㅇ
이승만이 농지개혁법(비록 유상몰수 유상분배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긴 하지만)을 1년만 늦게했어도 박헌영의 주장이 사실이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죠. 이승만이 어쩔수 없이 농지개혁법을 했다치더라도 토지개혁의 영향이 결과적으로는 매우 컸죠. 박헌영이 이걸 간과해서리...
민족의 원수는 일제 새끼들!!!(어...)
이거슨 진리. 이게 다 왜놈 때문이다.
당시 대전에서 미군이 북한군을 얕보다가 조선의용군 출신의 북한정예인민군에 완전 당했죠. 옛날에 얼핏 들은거지만 독립운동과, 중일전쟁, 국공내전으로 10년이상 전투만 해왔던 조선의용군은 당시 무기를 제외하고 세계최강의 군대였다고 들은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