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상의 깊이를 탐색하는 울림의 시조
-최은희 시조집 『신논현역 7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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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시인의 시조집 『신논현역 7번 출구』는 단순히 아름다운 언어와 전통적 형식의 시적 성취에 그치지 않고, 사회학적·철학적 맥락에서 다양한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는 깊이를 갖추고 있다. 이 시조집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서 사회적 현실, 역사적 기억,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해 성찰한다. 따라서 이 작품집은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모순, 인간 실존의 문제와 본질을 탐구하며, 사회학적·철학적 의미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최은희 시인의 시조집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사회적 다양성과 인간의 연결성이다. 「뉴욕 5번가」나 「울란바타르, 메모 하나」와 같은 시들은 현대 사회의 다문화적 환경과 그 안에서 형성되는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시인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고 연결되면서도, 그 속에서 공유되는 보편적 감정과 인간적 연대감을 발견한다. 이는 현대 사회의 다문화적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글로벌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이 증대되고,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이 한 공간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최은희 시인의 시조는 이러한 문화적 충돌과 융합의 장에서 발생하는 인간 경험을 시적으로 탐구하며,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연결과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사회학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타자성(the Otherness)’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와도 연결된다.
또한 시인은 다양한 공간적 배경을 통해 문화적·지리적 경계를 넘나드는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인간 사이의 보편적 유대감을 강조한다. 이러한 접근은 ‘다양성 속의 연대’라는 사회학적 개념과 맞닿아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의 상호문화적 교류와 이해의 중요성을 재조명한다.
최은희 시인의 시조집에서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시간과 기억이다. 시인은 개인적 기억과 역사적 사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신논현역 7번 출구」와 같은 작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주제는 철학적으로 ‘시간’과 ‘기억’에 대한 존재론적, 현상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현대 철학자들, 특히 베르그송(Henri Bergson)이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사유에서는 시간이 단순한 선형적 흐름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측면으로 여겨진다. 최은희 시인의 시조들은 개인의 경험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묘사하며, 시간과 기억이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부모님 묘역에서」와 「이방인의 집」 같은 작품은 기억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는 철학적으로 ‘기억의 윤리’에 대한 논의와도 연결된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인은 개인적 기억과 역사적 사건을 연결하며, 기억이 어떻게 현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윤리적 기억의 철학적 논의와 맞닿아 있으며, 기억이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윤리적 행위와 결합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은희 시인의 시조집은 문화적 정체성과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마두금」과 같은 시는 전통적 문화 요소가 현대의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전통과 현대성의 조화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연결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의 집’으로서의 언어 개념에 따르면, 전통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존재 방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최은희 시인의 시조들은 전통적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주제와 감성을 녹여내며, 전통과 현대 사이의 긴장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이는 인간의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임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사회학적으로, 시조집은 전통 문화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이해되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문화사회학에서 논의되는 ‘문화적 재구성’의 과정과도 연결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통이 단순한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적 상황에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동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최은희 시인은 전통 시조의 형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개인과 집단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최은희 시조집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다. 시인은 자연의 세밀한 현상과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지를 탐구한다. 「게르에서 별 줍기」와 「구름, 털갈이하다」 같은 시들은 자연 현상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상호작용하는 주체로 재현한다. 이러한 주제는 생태철학적 논의와 깊이 연결될 수 있다. 생태철학에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조집에서 자연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일부로서, 인간의 내면적 성찰과 생태적 조화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통로로 작용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공존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생태철학적 입장과 맞닿아 있다.
최은희 시인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감정이 어떻게 반영되고 조화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며, 자연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이러한 시적 탐구는 현대 사회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철학적·사회적 논의와도 연결된다.
최은희 시인의 시조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던지며,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성찰한다. 「골든타임」과 같은 시는 인간의 생사 간의 경계에서 시간과 운명의 문제를 다루며, 인간의 취약성과 강인함을 동시에 탐구한다. 이는 사르트르(Jean-Paul Sartre)나 카뮈(Albert Camus)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다루는 실존적 질문들과 연결된다. 최은희 시인의 시조들은 삶의 불확실성과 무의미함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지를 탐색한다. 시인은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삶의 다양한 면모와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탐구한다. 이는 실존적 불안을 넘어서 자기 존재를 긍정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최은희 시인의 『신논현역 7번 출구』는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자연과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집이다. 시인은 시조라는 전통적 형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다양한 철학적·사회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시는 인간 존재의 본질, 시간과 기억, 문화적 정체성, 자연과의 교감 등 다층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제공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자연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재인식하게 한다. (북리뷰: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