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응 成樂鷹(1914 ~ 2001)】 "무산자 정치 교육과정을 개설, 항일의식 고취"
1914년 5월 25일 충남 아산군(牙山郡) 도고면(道高面) 시전리(柿田里)에서 태어났다. 1930년 3월 예산공립보통학교(禮山公立普通學校) 재학 중 충남도지사로부터 학력 우수자로서 장학금과 표창을 받았다. 1932년 비밀결사 반제국주의동맹반(反帝國主義同盟班) 결성에참여하였다.
1932년 2월 13일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 재학 중 유동태(柳東泰)와 함께 조상환(趙相煥)의 소개로 신대성(申大成)·서승석(徐升錫)·주기승(朱基昇) 등을 만나 서울 경운동 자신의 하숙집에서 비밀결사 반제국주의동맹반을 결성하였다. 일종의 독서회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서 조상환과 함께 정치부를 담당하였고, 유동태·서승석은 조직부를 맡았다. 이후 이들과 함께 『무산자정치교정(無産者政治敎程)』을 교본으로 삼아 공부하였다. 이는 1928년 12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정치비서부에서 조선 문제에 관한 결정을 채택한 이후 1930년 6월부터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이 추진되자, 보성고보 동급생들과 함께 일제를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독서회 형태의 비밀결사를 조직한 것이다. 나아가 동료 학생들과 함께 비밀리에 무산자 정치 교육과정을 개설하여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32년 2월 27일부터 시작된 동대문경찰서 경찰들의 대대적인 체포 작전 때 붙잡혔다. 그 해 4월 한전종(韓琠鍾)·신대성·조상환·유동태 등 30여 명과 함께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33년 8월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총포화약취체령 시행규칙 위반 등으로 1년 6개월 만에 예심이 종결되어 경성지방법원에 회부되었다. 재판에 회부된 지 1년 2개월이 지난 1934년 10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100일 본형 산입),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