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청화 스님
꽃에는
꽃이 없다
나에게도
나는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하늘 뿐, 하늘 뿐
그러나 하늘에는
하늘이 있다
꽃도 되고
나도 되는 하늘
묘라고 묘한
그 하늘이 있다
#청화 스님은?
1962년 출가. 1977년 <불교신문>,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청평사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역임. 지금은 정릉 청암사에 주석하고 있으며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산문집 <돌을 꽃이라 부른다면>, <향기를 따라가면 꽃을 만나고>등이 있다.
[출처] 선지식을 찾아서]청암사 주지 청화 스님, 현대불교 '11.03.09 15|작성자 이래춘
<비어 있는 채로 가득 찬 저 하늘처럼>
봄이 오면 마당에 꽃이 핍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며 '꽃이 피었다' 하고, 또 저마다 '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주 자연의 법계를 바라보면, 꽃도 나도 따로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꽃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어디에도 '꽃'이라는 실체는 없습니다. 흙과 물, 햇살과 바람, 시간과 공간의 수많은 인연이 잠시 모여 꽃이라는 이름을 이루고 있을 뿐입니다. 나 또한 인연 따라 잠시 화합한 존재일 뿐,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라는 실체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인연 따라 생겨난 모든 존재는 공(空)합니다. 그러나 공은 결코 허무를 뜻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열린 자리입니다. 텅 비어 있기에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무엇이든 피워낼 수 있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우주적 시야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하늘입니다. 그러나 그 하늘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꽃이 피어날 수 있게 하고, 내가 태어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존재의 바탕입니다. 꽃도 되고 나도 되는 하늘, 비어 있으면서도 만물을 쉬지 않고 낳고 기르는 그 불가사의한 생명의 자리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합니다. 참으로 비어 있기에 참으로 충만하며, 아무것도 붙잡지 않기에 모든 것을 품어내는 자리입니다. 이 시는 꽃과 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꽃도 나도 결국 그 하늘에서 와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하나의 인연임을 노래하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