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위인전이 아닙니다. 누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말하려고 쓰인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약하고 의욕도 없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니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고넬료가 나오는데 그가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가로 접근하기보다는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이방인인 그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로 접근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땅끝과 이방인에 대한 구원에 있습니다(행1:8). 지역적으로 볼 때는 땅끝이고 대상으로 볼 때는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 가라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과 하나님의 꿈에 맞는 충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꿈을 심어 주십니다(창세기 12:3). 그들을 통하여 온 인류가 구원과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스스로가 선민사상과 우월주의로 하나님의 꿈을 꺾어버리고 이방인을 개 취급하니 하나님의 구원과 복이 전파될 리 없습니다. 헬라인들이 예수님 만나기를 청할 때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24)라고 하시며 벽을 뛰어넘는 선교가 하나님의 영광이고 밀알같이 죽는 십자가가 있을 때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꿈에 충성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막16:20).
본문은 고넬료가 아닌 교회가 바뀌고 베드로가 바뀐 사건입니다. 이들은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선민사상에 막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의 막혀 있는 것을 뚫어 주시고 흘러넘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의 깨끗함은 악당과 불순물을 제거하고 나만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약 악을 제거하는 것이 깨끗함이라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은 인과 법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인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존재라 율법이 우리에게 절망을 줍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죄와 절망을 깨달을 뿐이지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복음은 은혜의 법칙입니다. 죄인이 깨끗할 길이 없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그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셔서 구원받음을 가능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들어야 율법이 완성되고 원인이 없는 우리에게 원인을 주셔서 우리의 구원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구원과 깨끗함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것, 이게 은혜의 복음입니다.
악을 정죄하고 제거하면 되는 줄 아는데 하나님은 그들의 죄도 씻어 주시고 건져내십니다. 교회가 할 일은 어떤 사람을 악으로 바라보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깨끗하게 씻어 주고 구원해 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넬료를 건져내심은, 하나님의 은혜 사건의 출발이고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고넬료와 베드로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유대인의 경건은 성전과 율법입니다. 성전과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만나심으로 경건의 방법이 성전과 율법에서 구제와 기도로 바뀐 것입니다.
계명의 완성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이것을 또 기도와 규제로 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기도고 이웃을 만나는 방법이 구제입니다. 구제는 물질만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이게 율법이요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율법의 조문을 따지거나 건물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경건의 방법이 기도와 구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통해 성전과 율법의 시대에서 기도와 구제의 새로운 시대를 여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편견과 선민사상이 남아 있어 이방인을 개로 여기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편견을 깨신 것입니다. 그가 기도할 때 먹지 못할 것들이 들어있는 보자기가 내려옵니다. 이들에게는 먹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깨는 게 더 어렵습니다. 먹는 것이 고통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순종을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깨끗하다고 하는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며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정통입니다. 하나님 보고 잘못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16). 베드로는 자기 고집과 확신이 너무 강한 사람입니다. 아직 더 깨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고집이 잘 안 깨집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하시면 깨끗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저런 사람을 건지냐고 분노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고넬료에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옳다는 걸 인정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베드로도 기도하고 고넬료도 기도했습니다. 기도와 기도가 만났을 때 역사가 벌어집니다. 원인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이 원인을 심겨 주셔서 결과가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인이 되려 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거두는 것이 없는 헛된 인생입니다.
기도 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모든 사역은 기도했을 때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축복된 만남을 열어 주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 좁아집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키십니다. 더러운 것을 먹으라 하실 때도 있고 가기 싫은 곳을 가라 하실 때도 있는데 순종할 때 삶의 영역이 넓어지고 만남의 역사가 벌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