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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독후감
작가 헤밍웨이 작품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 아카데미상,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역작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일대기를 쭉 읽다 보면 작가로서 갖출 작품 창작에 대한 욕구가 대단했었다는 사실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 작품의 소재 또한 그가 직접 전쟁에 참전 한 뒤 그의 경험을 살려 소설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과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초점은 남녀주인공인 프레드리 헨리와 캐서린 버클리의 사랑이야기로 되어 있다. 먼저 우선 줄거리를 소개하면 헨리는 1차 대전 중 미국인으로서 이탈리아 군대에 자원 입대하여 영국 출신 간호사인 캐서린(캐서린은 그를 만나기 전에 다른 애인이 있었는데 전쟁에서 전사 한 뒤에 사랑의 상처를 입은 후 전쟁터로 온 여인)을 만나 사랑을 느끼는데 전쟁 중 중상을 입은 후 그녀의 치료로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 사이 그들의 사랑도 무르익고 그녀는 헨리의 아이를 임신한다. 다시 부대로 복귀한 헨리는 전선에 재배치되지만 후퇴 명령을 받고 후퇴하던 중 적의 공격으로 부대에서 이탈되어 있다가 헌병부대에 의해 '부대포기'의 죄목으로 간부들을 무조건 사형하기 직전에 탈출에 성공하여 캐서린을 찾아간다. 캐서린을 데리고 스위스로 도주에 성공한 그는 스위스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그녀의 제왕절개 수술 실패로 아이도 죽고 그녀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비를 맞으며 걷는 헨리의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이 작품이 헤밍웨이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헤밍웨이가 전선에서 부상을 당한 것이 1918년이고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29년이다. 거의 10년이다. 그는 어떠한 이유로 10년 전의 아픈 기억을 작품으로 나타내려 한 것일까. 이 작품의 주제를 말하려면 논평부터 들어가는 것이 순서에 맞을 듯 싶다. 우선 세 가지로 나누어서 1) 이 글의 제목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2) 주인공 헨리는 어떤 사람인가. 3) 아기와 캐서린의 죽음은 통해 작자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를 중심에 두고 풀어나가면 이 글의 주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1차 대전에 병사로 참전했던 헤밍웨이의 나이는 겨우 열 아홉이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가장 갈등하는, 젊음이 들끓는 시기. 헤밍웨이는 전쟁을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의 벽을 알게 된다. 그토록 호탕하고 남성다움의 상징이던 그가 불을 켜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전쟁이 그에게 남긴 가장 큰 상처일 것이다. 그의 생애를 통해 나타나는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이 아마도 이 시기에 태동해 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은 그의 그러한 신념이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평화를 갈망하는 그의 생각은 또 다른 그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노인과 바다>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그럼 헤밍웨이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헨리는 어떠한 사람인가. 작품을 읽다보면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그가 나약하고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술이나 마시고 여자랑 얘기하는 것이 작품의 첫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액면 그대로만 본다면 그는 전쟁과는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미국인으로서 자원입대를 통해 전장에 뛰어들었다는 사실만 봐도 이러한 생각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작품 전반을 통해서 전투를 단 한번밖에는 치르지 않았다 그것도 참 어이없이 훈장을 받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는 이렇듯 전쟁에 뛰어들긴 했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전투와 동떨어진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냉소적이고 상당히 주관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 것이 사실이다. 친구들과도 그가 먼저 나서서 만나거나 하지 않고 그는 항상 초대를 받는 입장이다. 우연찮게 만나야만 동료들을 만나는 그의 모습은 주관적인 인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헨리는 객관적인 인물로 보인다. 헤밍웨이의 뜻에 따라 강하진 않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자면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같은 부드러움으로 대표되는 카리스마가 아닐까. 전쟁 문학의 백미라고도 일컬어지는 카포레토의 퇴각 장면에서 그가 보여준 냉정함과 침착함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충분한 증거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그가 나약한 인간이었다면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그 누가 그를 믿고 따르겠는가. 하지만 그의 병사들은 끝까지 그를 믿고 의지했다. 이러한 병사들의 행동은 깊은 신뢰감이 있어야만 가능한 행동일 것이다. 그럼 헤밍웨이는 왜 캐서린과 아기를 죽여야만 했을까. 시대적 상황이 전쟁으로 설정되어 있는 만큼 그것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았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이 작품을 썼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사실은 으레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다보면 알게 모르게 주관적인 입장이 가미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감정은 절제하고 오로지 독자를 위해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문체나 사건의 흐름이 지극히 객관적이다. 작자는 전쟁을 의인화하여 캐서린과 아기에 부합시켰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아픈 것이다. 헨리가 캐서린을 사랑하는 의미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캐서린의 죽음은 일반적인 전쟁 소설이 그렇듯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전쟁 속에서는 아름다운 사랑조차도 불행해진다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은 불행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 전쟁에 대한 큰 비판인 동시에 완벽한 비판인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캐서린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헨리와 캐서린의 사랑이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사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개의 사랑에서 보여지는 견제라거나 질투, 의심 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쟁 중에 꽃피는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럼 캐서린이 잉태한 아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대개 아기라고 하면 희망이나 새로움 등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자는 작품에 등장하는 아기에게는 암울한 의미를 부여했다. 캐서린이 전쟁을 뜻한다면 캐서린이 낳은 아기도 역시 전쟁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아기까지 죽임으로써 주인공인 헨리에게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다. 헤밍웨이가 이 글을 쓸 때 물론 2차 대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기는 이 글을 쓰고 있던 때에 앞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또 다른 전쟁에 대한 일종의 경고일 것이다. 헤밍웨이는 그 둘을 죽임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상에 이별을 고하는 듯했다. 한참 후 병실을 나와 병원을 뒤로하고 빗속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라는 마지막 몇 문장을 서른 세 번이나 퇴고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별로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는 이 문장에 그만큼의 투자를 했다는 것은 절망과 희망을 절묘하게 섞으려 했던 작자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헨리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전쟁 중이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리라는 희망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비를 맞는 것은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씻어버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결말이 암울하다라는 것은 이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작품의 주제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 싹튼 사랑을 통한 전쟁의 무의미함에 대한 역설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다. 엽총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안타까운 생의 마감을 뒤로하며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