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2:1~12)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 (5절)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의기투합하여
예전 자신의 영토였던 길르앗 라몬을 되찾는 전쟁을 하자고 한다.
그 일을 결정하기 전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아보자고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 약 4백명이다.
문제는 그들이 우상이 창궐하던 시절부터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진실성, 정통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규정된, 제도권의 규칙과 직책자들. 또는 군중.
어떤 결심을 앞두고 그것이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절차이자 방법일 수 있다.
문제는 아무도 시비 걸 수 없는 그 방법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안정성과 위험성의 공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니, 잘못된 결정을 하면 더 위험해진다.
4백명의 선지자들은 아마도 생계형 선지자였던 것 같다.
생계형 선지자. 생계형 목자. 생계형 정치인. 생계형 군인....
‘생계를 유지할 책임, 생계를 유지할 기본적 본능, 피치못할 사정’,
그런 것과 ‘생계형’과는 큰 괴리와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생계형을 비판하는 것을,
생계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연약함, 책무 등을
폄훼하는 건조하고 잔인한 행위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생계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생계형의 안일한 불의의 길을
택하지 않고 험난하지만 진리의 길 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이 걸어야 할 길이기도 하다.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인생을 생계형으로 정한 것은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넌 것과 같다.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그리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긍휼히 이해되지만
모든 것이 선한 것도 아니고, 용납되는 일도 아니다.
생계형들은 진실보다 현실의 이익을 쫓으니 매우 위험하다.
생계형들은 매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 본문에서 절대 다수의 생계형 선지자들이
환심이 있는 쪽인 ‘찬성표’를 던지는 와중에
시드기야는 철 뿔을 가져와 왕과 많은 군중 앞에서
그냥 찬성표가 아닌, 매우 지나칠 정도로 시각적 퍼포먼스를
보이면서까지 찬성표를 던진다.
이쯤 되면 ‘괴물’ 수준이다.
아무리 생계를 위해서라는 변명을 해도
이미 단지 그런 수준이 아니라 지극히 악한 수준에 이르렀다.
반면 진실을 쫓는 사람들은 때로는 멈칫하고 주저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동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비협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연하다. 진실에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지면 심사숙고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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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 에세이에서 나온 말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결핍 이면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지식의 결핍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할 때
하나님 말씀이 짐으로 느껴지지만,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묻게 되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시키시든 기쁘게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침묵하시고, 징계하시고,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하실수록
하나님이라는 이미지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을 속일 수 없다.
며칠 전, 나의 인생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그보다 하나님은 더욱 사랑이 많으신 분이지만
그 주인공의 행동과 사랑의 마음을 시각화해서 마음에 품기로 정했다.
그 모습이라면 너무나 포근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온몸과 생명을 바치기까지 아들에게 참혹한 전쟁,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보호, 수호하는 모습. 그래서 아들에게는 참혹한 인생의 현실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을 지니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거.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느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조금의 고통도 당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독생자 예수를 희생시키기까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험난한 인생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온몸으로 지켜주십니다. 주님, 제가 그런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양정환, 처남을 주님께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치유의 기적이
베풀어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양정환과 소통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이 그의 온몸과 영혼을 감싸게
해 주십시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