幸田文(일본)의 ‘가을비’
남에게 선물을 받고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테지만 유난히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이를 두 셋 알고 있다. 바로 며칠 전에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 내가 누구에게 선물을 준 게 아니고 서로 주고 받고 하는 것을, 나도 아는 이들이고 해서 우연히 곁에 있다가 보게 되었다.
선물을 받는 이는 무척 기뻐했다. 겉으로만 그러는게 아니고 진심으로 좋아했다. 받은 쪽이 그렇게 좋아하니까 준 쪽도 기뻐했고, 곁에서 보고 있는 나까지도 마음이 흐뭇했다.
얘기는 이것뿐이지만 내 마음에 뭔가 남는 게 있었다. 복이라는 것 -- 선물 자체가 하나의 복이겠지만 그것을 기뻐하는 마음속에는 더 큰 복이 깃들어 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그 천심이 이미 복일 수밖에 없다. 티 없는 천심으로 기뻐해주었기에 마음의 복이라고 할까? 그런 또 하나의 복을 제자에게 돌려 준 것이다. 물질의 복을 마음의 복으로 갚는다는 것, 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내 마음 속에 그런 여운이 남았다.
마침 그 자리에서 내게 사인을 청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사절을 했으련만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어리둥절하여 사인 펜을 들었다. 그러자 뭔가 한 마디 곁들여 달라고 했다. 덕담처럼 쓴다는 게 御多幸 (다행을 빕니다.)였다. 둘째 청에도 역시 같은 말을 -- 그런데도 써 놓고 보니 이쪽은 多幸이 아니고 御多福이 되어 버렸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젊은 여성에게 오따후구(御多福)라니 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오따후구는 복과 덕을 상징하는 무용에서 사용하는 가면의 이름이다. 이마가 높고 양쪽 볼이 튀어나와서 못 생겼다는 뜻으로도 사용한다.-해설)
머릿속에 복이라는 말이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런 글자를 써버렸나 보다. ‘복’이라는 글자를 복과는 반대로 써 놓고 도리어 상대에게 불쾌감을 준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나라로 이사 온 지 반 년, 여기 와서 살아보니 비로소 가을비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물론 도코에도 가을비는 내린다. 늦가을 초겨울에 때때로 한바탕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비인데, 도코에는 이미 모든 것이 성급해지고 소란해져서 계절까지도 두루뭉수리가 되어 버려서 폭풍우 이외의ㅡ 바바람 같은 건 애당초 관심 밖의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가을비란 한갓 먼 옛날 얘기--, 메이지 태생이 나 자신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을비구나 하고 기억에 남은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인지 나라에서 가을비다운 가을비를 만나니 감동이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아무리 나이들고 늙어도 이렇게 마음에 꼭 드는 신선한 가동의 순간을 만나게 되는가 보다.
개였다 흐렸다 하던 날씨가 오후 두 시 반쯤해서 때마침 개였던 푸른 하늘 북쪽에 검은 구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풍진 벚나무에 아직 푸른 잎도 남아 있고 누런 잎도 있지만 붉은 잎이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다. 봄에는 그윽한 연분홍 꽃을 자랑하던 나무다. 단풍졌다고 해서 볼썽 사나운 붉은 색이 될 리는 없다. 볕에 비추어 보면 분홍에 상냥함을 잔뜩 안은 곱다란 단풍잎이 된다. 이따금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진다. 혼자 차지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벛나무 단풍, 그러는 새 검은 구름을 퍼지고 남쪽엔 한줄기 가느다란 햇볕이 남고, 뭔가 수상한 날씨다. 추수가 지난 넓은 들에선 바람이 일고 금새 소리치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조금 전까지는 벛나무 단풍을 보고 있었는데 이 어인 냉기, 이 어인 빗줄기, 주위는 삽시간에 변모하고 쓸쓸한 적막감만 감돈다.
나는 우산을 받쳐들고 다시 빗속을 나섰다. 합성섬유를 바른 우산이 쏟아지는 빗방울에 탁탁 울렸다. 바람은 세지 않지만 무참히도 색색으로 떨어진다. 우산대를 잡은 손끝이 시리고 웬일인지 외로움이 스며들어 사람이 그리워진다.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서 이 외로움, 그리움이 일흔이 되고 처음 느끼는 가을비의 정감인가도 싶어 차마 소홀히 뿌리칠 수 없다. 그저 혼자 그렇게 서 있다.
이윽고 비는 개이고 저만큼 빗나갔던 햇볕도 다시 돌아오고 아침에 핀 산다화가 꽃잎에 물방울을 안은 채 늠름하게 서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나라의 만추의 가을비가 아닐까 보다.
말하자면 이 가을비는 종잡을 수 없는 변환자재(變幻自在)의 비, 자신을 마음 속을 들여다 보게 하는 비, 그런 비다. 마음 속에 그리던 비를 만났다는 기쁨에 가슴이 설레인다.
비가 왔다고 좋아하다니, 그 속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이것도 분명 즐거움의 하나요 선물을 기뻐한 그분처럼 상대편에게나 곁의 사람엑 복을 주는 그런 점잖은게 아니라고 나이들어 하나라도 기쁠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비록 오따후꾸라고 쓰는 실수를 저질렀을 망정 나 자신도 역시 복된 인간이라고 스스로 축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