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른골트 오페라 <죽음의 도시> 후기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준비한 정기공연 중 하나인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 오페라를 보고 왔습니다
공연후기를 쓰려고 하니 쓰기 전에 이번 공연처럼 머릿 속이 복잡했던 적이 없어서 좀 두서가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이 메이저 리그가 아닌 마이너 리그 상징주의 오페라를 과감히 정기공연으로 올린 국립오페라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2시간 30분동안 관객들이 혼연일체되어 공감하기보다는 내내 이해를 하고 해석을 해야 해서 좀 편하지 않은 감상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오페라가 왜 잘 상연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파울역의 테너와 마리, 마리에타 역의 소프라노가 엔간한 실력과 체력이 아니고서는 소화하기 힘든 오페라이고 1막~3막까지 계속 고음의 향연이라고 할 만큼 아리아나 레시타티보가 벅찬 오페라더군요
1막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파울의 오래된 가정부 브리기타는 임은경 메조소프라노가 안정된 성량과 연기로 극을 잘 열어주어서 기대감이 확 올라왔습니다 그 기대감은 곧 물음표로 변했는데, 파울역의 로베르토 사카와 마리에타역의 레이첼 니콜스가 1막 내내 관객을 혼돈과 의아함 속으로 밀어넣었죠
일단 테너 로베르토 사카는 파울이라는 배역을 끝까지 끌고 가기에는 너무 나이든 테너여서 호흡도 성량도 미치지 못했어요 1막 비교적 초반에 음 이탈이 한번 있었는데 설마 하며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1막 마지막 무렵에 한번 더 이탈을 하는 거예요 이런 큰 공연에서 주역가수에게 일어날 것라고 예상하지는 못한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마리에타역의 레이첼 니콜스가 더 심했는데 그녀는 젊고 싱싱하고 성량도 큰 보이스였지만 내내 질러대는 고음이 너무 머리가 아프게 들리는 스타일의 노래를 했습니다 감성제로의 고음 아리아로 정말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죠
1막에서 가장 시그니처 아리아인 'Gluck, das mir verblieb" 가 나올 즈음에 다들 기대하는 아리아인데 그녀는 질러대고 파울과 듀엣의 부분에서는 파울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어후 큰일이다 싶은 생각과 망했다는 감정이 교차하는데 연출의 묘도 부족해서 원곡 오페라가 그렇게 구성되어있었겠지만 보통 시그니처 아리아가 나오면 잠시 관객이 호응의 박수를 주는 타이밍이 있을 법한데 이번 오페라는 그런 연출의 묘가 전혀 없어서 더욱 관객은 극에 함께 하기 어려웠죠 참 박수가 인색했던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습니다
그나마 2막에서 삐에로 프릿츠역할의 양준모 바리톤이 부른 Mein Sehnen, mein Wahnen 이 가장 들을 만 했어요 양준모 바리톤 특유의 울림있는 목소리로 무대를 꽉 채웠는데 역시 박수로 공감을 표현할 타이밍이 전혀 없이 그 다음으로 몰아쳐 가는 연출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커튼콜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사람이 대사없이 마임으로만 연기한 마리의 영혼 역할을 한 배우였어요 아무런 대사나 아리아없이 몸동작만으로 마리의 감정을 훌륭하게 표현한 것에 관객들이 큰 박수를 보낸 것 같습니다 주역 가수들에게 인색한 커튼콜이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의 무대 세트와 오케스트라 연주는 언제나처럼 볼거리도 많고 음향도 안정적이었어요
다만 극을 풀어내는 연출이 관객의 공감과 이해가 닿기에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반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말 내내 기대가 안되었는데 3막 마지막부분에서 파울이 죽음의 도시 브뤼헤를 떠나기 전 죽은 부인 마리를 이제 영원히 마음 속에 묻기로 하면서 부르는 아리아(1막의 마리에타의 아리아와 같은 곡)에서 제가 눈물이 왈칵 올라왔어요
정말 이 아리아만큼은 로베르토 사커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을 준비하는, 스스로의 가수 인생의 마지막을 다하는 듯한, 또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에 최선을 다해 온 힘을 다해보고 싶은 절규같은 그 아름다운 음성(오늘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에 울컥했어요
그 마지막의 감동이 없었다면 오늘 오페라 감상은 정말 길이 남을 나쁜 기억이었을 을 텐데 드라마 라는 것은 결국 세세한 분석보다는 감동의 크기라는 말이 다시금 상기되었습니다
이 오페라를 다시 한번 꼭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물론 다른 연출, 다른 캐스팅으로요 ㅎㅎ
오페라를 준비하는 단체입장에서는 이 모든 일이 무척 어려우리라 짐작되지만 오페라를 사랑하는 관객입장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완성도 높은 무대에서 큰 감동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늘 상연하는 단골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한 국립오페라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