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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만반(多然滿盤)의 보름달 축시(祝詩)
음력 8월은 중추(中秋)이고 백로(白露), 추분(秋分)의 절기가 있다. "어정 7월 동동 8월"(경기)이니,"어정 7월 건들 8월"(강원)이니 하는 말대로 7월에 이어서 8월도 농촌은 다소 한가한 편이다. 음력 8월이면 벼는 추수하는 수확기를 맞이하고, 콩이나 고구마·깨 등의 밭작물도 열매나 뿌리가 영글어 간다. 밤·대추·사과·감 등이 익는 좋은 계절인 8월의 대표적인 명절로는 한가위가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언제나 가윗날 같아라(多然滿盤)"는 말처럼 가을 수확을 앞둔 농심(農心)의 풍성함, 넉넉함, 여유의 달이 8월이고 한가위는 바로 농심의 극치가 되는 명절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고 하듯이 날씨도 계속 청명하고 계절도 서늘하여 한반도의 산하는 이때에 한참 좋은 시절이 되기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주기화(週期化)하는 중요한 틀이 되는 것으로는 초하루, 보름을 기준으로 하는 보름주기(15일)와 정기장시(定期場市)의 설장일(設場日)을 기준으로 하는 5일주기, 일요일을 중심으로 하는 7일주기 등이 있다. 최근에 도시·산업사회에서 형성된 월급장이들의 7일주기를 논외로 한다면, 민속사회에서 짧게는 5일주기, 길게는 보름주기가 일상생활 속에서 율동적으로 순행된다. 각종 명절이나 중요한 제의가 주로 초하루 보름에 행해져서 달이 사라졌다 다시 재생하는 초하루와 달이 최대로 차오르는 보름날은 신성한 날, 중요한 날로 인식되어 왔다. 해(日)와는 달리 달(月)은 주기적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차오른다. 달이 이지러진 그믐과 다시 살아나는 초승은 달의 죽음과 재생의 극점으로 설날처럼은 몸과 마음을 절제하는 의례나, 조상님이나 웃어른께 의례를 바치는 날로 우리 민속에서는 이날을 중요시하여 명절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보름달은 초하루와 반대로 달이 완전하게 차오르는 상태로 밝음·광명·젊음 등을 상징한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처럼 보름달의 풍속은 초승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단적이고 적극적이며 활기찬 신명풀이의 성격을 지닌 민속들이 많다.
기왕에 달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이야기를 더하고 한가위 이야기로 넘어가자.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달(음력)이 해(양력)보다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일상생활에서 달이 가지는 영향력은 해에 못지않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음력도 양력과 동등하게 자연과학적인 이치를 토대로 한 독자적인 합리성을 지닌다. 달은 조수의 변화와 어류의 생태와 관계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생리주기와 일치한다. 바다의 썰물과 밀물이 달의 이울어지고 차는 주기와 일치하기에 간만의 차를 고기잡이에 이용하려면 자연히 달의 변화를 터득하고 있어야 한다.
달의 주기는 조수 뿐만 아니라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준다. 초승게는 살이 빠지고 보름게는 살이 찐다. 음력의 주기에 따라 게잡이의 일정이 잡히게 마련이다. 또한 음력으로 매달 같은 날에 여성들의 생리현상이 일어난다. 달의 주기는 생리 리듬의 주기와 일치한다. 여성들의 생리주기가 결국 잉태시기를 결정하므로 생산주기나 다름 없으며, 이 주기는 곧 사람의 태생을 결정짓는 주기가 된다. 전통사회에서 음력을 생활화하고 생년월일을 음력으로 파악한 것도 달과 같은 자연현상의 주기와 사람의 생리주기를 포괄적으로 인식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최남선은 정월 보름과 추석을 우리 농촌 본위의 2대 명절이라고 했다. 설은 신년의 매듭이니까 당연히 큰 명절이고, 이 설을 빼면 사실 우리 농촌 본위로서는 추석과 대보름은 양대명절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보름이나 추석은 다 보름달을 상징으로 삼은 큰 명절이다. 오늘날에는 설과 추석이 음력으로 공휴일로 돼있고 실질적으로 추석과 설이 민족대이동일이라고 일컬을 만큼 민족의 2대 명절로 압축되었다. 추석은 추수감사제의 뜻이 깊으며 지방에 따라서 조상과 함께 성주신·토지신 등에게 풍년을 감사하는 제를 지내는 곳도 있다. 추석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려보면, 신라 유리왕 때에 7월 16일 부터 추석날 까지 왕도(王都)를 2부로 나누어 길쌈내기(積)를 해서 추석날 그 성과를 심사해서 진 편은 이긴 편에 주식(酒食)을 내고 "회소회소"하며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서도 추석을 "농촌에서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을 삼는다"고 적고 있어 추석이 큰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계속적인 농사일에서 간헐적인 생일구실을 하는 명절은 그 계절 아니면 먹기 힘든 시절음식과 설빔·단오빔·추석빔의 새옷, 더불어 즐기는 민속놀이가 한테 어우러져 한바탕의 축제를 이룬다. 한가위날의 음식.추석빔.민속놀이는 명절의 분위기를 한층 돋운다.
추석의 시절음식이나 제사 상차림도 수확의 계절답게 풍성하다. 이때는 햅쌀로 밥을 지으며, 떡도하고 술을 빚는다. 송편 속에는 햇콩으로 만든 고물이나 참깨.밤.대추 등을 넣는다. 햅쌀로 빚은 술을 신도주(新稻酒)라고 하고 추석 차례나 손님을 청하여 대접할 때도 이 술을 쓴다. 동국세시기에 추석의 시절음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술집에서는 햅쌀로 술을 빚는다. 떡집에서는 햅쌀로 송편을 만들고, 또 무우와 호박을 섞어 시루떡도 만든다. 또 찹쌀가루를 쪄서 반죽하여 떡을 만들고 삶은 검은 팥, 누런 콩의 가루나 깨를 바른다. 이것을 인절미라 한다. 또 찹쌀 가루를 쪄서 계란같이 둥근 떡을 만들고 삶은 밥을 꿀에 개어 붙인다. 이것을 율단자(栗團子)라 한다. 또 토란단자도 있는데 율단자를 만드는 방법과 같다."
이러한 한가위의 시절음식은 어떻든 먹을 것도 풍부하려니와 그것이 다 신선하고, 또 풍성한 마음과 좋은 기후가 어울려서 더욱 미각을 돋군다. 추석빔은 때때옷의 설빔이나, 처음으로 여름옷을 입는 단오빔과 같이 정갈하게 손질하여 차려입는다.
추석은 전국 어디에서나 2,3일 놀고, 음식과 술도 즐기며 여러 민속놀이가 벌어진다. 대표적인 추석놀이로는 중서부지방의 소놀이, 중부지방의 거북놀이, 경기 강원 이북지방의 사자놀이, 호남의 강강수월래 등이다. 영호남에서는 농악이 성하고, 지방에 따라 각종 씨름대회, 소먹이놀이, 소싸움과 닭싸움 등이 추석무렵에 놀아져 명절의 분위기를 더한다.
추석 이삼일 전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서 잔디를 베고 잡초를 제거하는 벌초(伐草)가 있고, 호남지방의 '올베심리'와 영남의 '풋바심'의 풍속도 있다. 이 풍속은 벼가 다 여문 무렵, 또는 다여물기 전에도 잘 여문부분을 골라서 베어다가 조상에게 바치고 집안식구들이 다모여서 회식을 하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도 그랬듯이 추석에도 날씨로 농사점을 친다. 또한 여름이 다 가도록 농사에 바빴던 일가친척들이 추석 무렵에 만날것을 약속하고 양편의 중간지점에서 서로 만나보는 "반보기" 풍속도 있었다. 양쪽에서 나온 사람들은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서로 음식을 권하며, 소식을 묻고 하루를 즐기다가 저녁에 각기 집으로 돌아간다. 겨우 한나절 정을 나눌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온보기'가 못되고 '반보기'라고 한다. 우리 한민족은 추석에 혈연적인 제의(조상제사)를 핵심으로 해서 부모 자식간이나, 친척, 어릴때 고향친구까지 보름달 아래서 만나 정담을 나누고 유대를 다지는 기회를 가진다. 이러한 명절은 여러 민속놀이를 통해 휴식을 제공하여 다음 생산활동을 촉진하고, 어떤 형식을 통하든 조상을 비롯한 여러 신령을 받드는 것이 한국전통사회의 통성이다. 명절날의 만남과 모임,놀이판을 통하여 마을사람들이 한 마을, 한 고을에 산다는 지연적 결속과 이웃과 이웃이 같은 일, 같은 뜻으로 어울리는 사회결속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정월보름놀이가 농경의 예축의례와 관련이 있고, 단오놀이가 농경의 성장의례라고 한다면 추석의 모든 풍속은 감사의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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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자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8월八月
추석秋夕
이 달 15일을 우리 나라 풍속에서 추석 또는 가위[嘉俳]라고 한다. 신라 때부터 있던 풍속으로 시골 농촌에서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삼는데 그것은 새 곡식이 이미 익었고 가을 농작물을 추수할 때가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날 사람들은 닭을 잡고 술을 빚어 온 동네가 취하고 배부르게 먹으면서 즐긴다.
경주 지방 풍속에 신라 유리왕 때 여섯 부(部)를 둘로 똑같이 나누어 두 편을 만들고 왕녀(王女) 두 사람을 시켜 각각 부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편을 갈라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여 밤 을야(乙夜 : 이경)가 되어 파했다. 이렇게 8월 보름까지 하여 그 간의 길쌈한 공의 많고 적음을 이 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우아하여 뒷 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노래를 지었는데 그 노래를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풍속에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제주도 풍속에 매년 8월 보름날에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좌우로 편을 갈라 커다란 동아줄의 양쪽을 서로 잡아당겨 승부를 겨룬다. 이 때 줄이 만약 중간에서 끊어져서 양편이 모두 땅에 엎어지면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다. 이를 줄다리기[照里之戱]라고 한다. 이 날 또한 그네도 뛰고 닭잡기놀이[捕鷄之戱]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참조.】
十五日東俗稱秋夕 又曰嘉俳 肇自羅俗 鄕里田家爲一年最重之名節以其新穀已登西成不遠 黃鷄白酒四隣醉飽以樂之
慶州俗新羅儒理王時中分六部爲二 使王女二人各率部內女子分朋 秋七月旣望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乙夜而罷 至八月望 考其功之多少 負者置酒食以謝勝者 於是歌舞百戱皆作謂之嘉俳 是時負家一女起舞歎曰會蘇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名會蘇曲 國俗至今行之【見輿地勝覽465)】
濟州俗每歲八月望日男女共聚歌舞分作左右隊曳大索兩端以決勝負 索若中絶兩隊?地則觀者大笑以爲照里之戱 是日又作?韆及捕鷄之戱【見輿地勝覽466)】
46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 풍속조(風俗條)
경도잡지(京都雜志)
중추 中秋
이날은 속칭 추석(秋夕)이라고 하기도 하고 가위[嘉排]라고도 한다. 내 생각에?삼국사(三國史)?에 “신라의 유리이사금이 왕녀(王女) 두 사람을 시켜 6부의 여자를 반으로 나누어 거느리고 7월 보름부터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여 을야(乙夜: 밤 9시~11시)가 되어 파했다. 이렇게 8월 보름까지 하여 그 간의 길쌈한 공의 많고 적음을 보아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했다. 이 때 노래와 춤 등 온갖 놀이를 다하였는데, 이를 일컬어 가위라고 했다. 이 때 진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우아하였다.”고 하였다.
俗稱秋夕又曰嘉排 按三國史新羅儒理尼斯今使王女二人分率六部女子自七月望集大部之庭績麻乙夜而罷 至八月望考其功之多少負者置酒食以謝勝者於是歌舞百戱皆作謂之嘉排 是時負家一女子起舞歎曰會蘇會蘇其音哀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중추(中秋)
중추일을 ‘가배’라고 칭한 것은 신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달에 만물이 성숙하고 또 중추가절이라고 칭하므로 민간에서는 제일 중히 여긴다. 이날 아무리 궁벽한 시골의 가난한 집이라도 으레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먹는다. 안주나 과일도 분수에 넘치게 가득 차린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라.”는 말도 있다.
사대부 집에서는 설, 한식, 중추, 동지를 사명일(四名日)이라고 하여 묘제(墓祭)를 행하는데, 설이나 동지 때 혹 행하지 못하더라도 한식과 중추 때 행하며 한식보다는 중추 때 많이 행한다. 유자후(柳子厚)243)가 “병졸과 노복과 품꾼과 걸인 모두가 부모 묘를 찾게 되었다.”고 말하였는데, 오직 이 날이 그러하다.
嘉排之稱昉於新羅 而是月也百物成熟 中秋又稱佳節 故民間最重 是日雖窮鄕下戶 例皆釀稻爲酒殺鷄爲饌 肴244)果之品侈然滿盤爲之 語曰 加也勿減也勿 但願長似嘉排日
士大夫家以正朝寒食中秋冬至四名日行墓祭 而正至或有不行者惟寒食中秋爲盛 而寒食又不如中秋之盛 柳子厚所謂?隸傭?皆得上父母丘墓者 惟此日爲然
243) 유자후(柳子厚)는 당나라 말기 문인으로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이다. 본명은 종원(宗元)이고 자후는(子厚)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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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