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정미의병기(후기의병)때(원주진위대의 민긍호정교가 군대해산령을 거부하고 무기고를 부수고 거의함) 제천에 진입한 의병진이 40여 의진입니다.
의병을 진압하고자 일본군이 제천으로 진입할 때 ,여러 의진은 최초의 연합작전을 폅니다.윤기영은 천남 뒷산에 매복하고 ,민긍호는 남쪽에 매복하엿다.오경묵과 정대무등의 부대는 서울고개에 매복하고 ,이강년이 이끈 병력은 '조을치'(조리재)쪽에 매복하였고 ,저항없이 제천에 입성한 일본군을 저녁부터 기습하였는데,이강년이 인솔하던 병력은 아사봉 뒤로부터 역습하여 일본군의 뒤를 쳐서 4시간이 넘는 접전이었다. 일본군 5명을 사살하고 13명을 부상시켯죠...유명한 '천남전투'입니다.그 직후 평창 주천으로 진주한 의병진은 김상태의병장등의 추대로 운강 이강년을 대장으로 추대하엿고 비로소 '호좌의진'이 탄생하게 됩니다....
다음 산행하실때는 먼저 자료좀 구하시고...산과 고개에 얽힌 의병들의 투혼..외로운 고혼(孤魂)을 생각하시어 묵념한번 올려주시길 바랍니다...독립군은 산과 고개에서 전투를 안했지만, 전국의 산과 고개는 의병들의 원혼이 서려있는곳이죠..
태백산과 일월산의 신돌석,김도현 의병장
소백산맥과 화악산의 이강년과 김상태
지리산의 문태서와 고광순의병장
백두대간 ,지맥,정맥 등반하시는 분들이 수백만명이나 되는데....산행까페나 등산모임,산악회,등산전문잡지의 기자...산이나 여행 전문기자들은 역사를 하나도 모르고관심도 없고...나몰라 합니다....
겨우 100년전 역사를 우리는 다 잊어 버렸습니다.
역사를 우리가 잊어버려놓고...관심도 없어놓고...역사를 왜곡하는 일본놈과 중국놈들을 욕하는 것은 모순이죠...
의병정신선양회,백두대간 의병전쟁 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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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출신 김상태(나중에 영월군 김삿갓면 옥종리에서 성장)의병장이 천남전투후 주천에서 의병진이 유할때 제천,청풍,단양,영춘의 4군(1907년도엔 영춘,청풍군이 있었음)을 이끌고 참석하여, 의강년의병장이 대장을 맡아 줄것을 강권했죠...그래서 주천강가에 단을 쌓고 여러 군사들의 군례를 받은 것이 1907년 8월 19일입니다.유인석의진의 '호좌의진'을 계승하였고....그후 수차례 소백산의 죽령,풍기,순흥,고치령,마구령,다리안,베틀재등을 넘어다니며 전투를 했습니다.
금성령,가리점,배음치,영춘,보산,유치전투,최가동,비마,조전등등을 ..죽령과 고치령과 마구령을 추운겨울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행군한것은 국권을 수복하기 위한 의병혼의 몸부림이죠...
위내용을 안 가르쳐준 무능한 공무원을 탓하지 마세요...선생님이 인제 알았으니...주민들께 가르쳐 주십시요...
영춘 보발출신 원도상 선생님과 김상태 의병장의 원혼이 아직 영면하지 못합니다...이유는 우리가 100년전의 역사를 잊어버렷기 때문이죠....
영춘면과 단양군은 영춘면소재지,보발리,유치,베틀재,마구령,고치령등에 안내간판을 세울 의무가 있고....주민들은 관청에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의병전쟁과 독립전쟁에 투신한분들이 제발 '미친놈'이 안돼게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010-2799-5670
첫댓글 10일날 영주 부석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마구령을 넘어 영월과 단양의 경계지점인 의풍리로 도보답사를 갈 계획입니다..김상태의병장 체포지도 한번 보구요.
11일이 김상태의병장 추모제를 지낸다고 하는데....김삿갓면 마을자치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삼척김씨문중이 참석한다더군요...
참 안타깝습니다.서울에 '순국선열유족회'와 '의병정신선양회'가 있는데....아무도 모르더군요...이강년의병장 증손자들이 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삼척김씨후손들은 관심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후손이 관심 없으면...영월군청과 문화원이라도 관심을 갖고 연을 만들면 되는데....6.1일이 '의병의 날'입니다....국가 기념일이죠.....
지자체에서 돌아가면서 하니까...나중에 영월군에서 몇년뒤에 주최를 해도 되는데.....예산은 행안부에서 내려보냅니다....
돈으로 해결되는게 아니고....관심과 열정만이 해결해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