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할까?>
[1] 1999년, 베다니출판사에서 발간된 책이 한 권 나와 신학적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적이 있었다. 저자는 이 모 목사인데, 책 이름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 이렇게 끊어라』이다. 이는 당시 풀러신학교의 실천신학교수였던 피터 와그너에게 뿌리를 두고 매릴린 히키가 발전시킨 것을, 저자가 책으로 출간해서 한국에 소개한 것이다.
내용은 죄 많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3대까지 흐르므로 우리 대에서 기도로 끊어 줘야한다는 가르침이다.
[2] 과연 이것은 성경적으로 근거가 있는 가르침일까 아니면 비성경적인 가르침일까? 이것이 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이들의 논리가 있다. 그 근거 구절은 렘 31:29절이다.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이것은 선조의 죄를 자식에게 물을 수 없다는 얘기다.
[3] 겔 18:20절의 내용도 흡사한 내용이다. “범죄하는 그 ‘당사자’(신 교수 수정역)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죄를 지은 당사자가 벌을 받을 뿐 아들이 그 죄악의 대가를 지불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주장과 상반되어 보이는 성구도 있다.
[4] 이는 가계저주론자들이 즐겨 내세우는 출 20:4절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이 미워하는 자의 죄를 삼사 대까지 갚으신다는 내용이다.
[3] 다시 말해서, 자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 대한 분노를 그 당사자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자손 삼사 대에 걸쳐 쏟아 부으실 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가 크고 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떤가? 가계저주론자들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하지만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임을 놓쳐선 안 된다.
[4] 우리가 구약시대처럼 그리스도와 상관없던 시절이었다면 모를까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 더는 ‘종의 멍에를 지지 않도록 자유함을 주셨다’(갈 5:1). 그리고 주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6)고 말씀하셨다. 선조들의 죄가 후손들에게 대물림 된다거나 그들의 죄의 대가가 후손들에게 지불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죄에 종노릇 하거나 조상들의 죄가 대물림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5] 그렇다면 후손들이 선조들의 죄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단 말인가? 정말 그럴까? 그게 맞다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맥스 쥬크와 조나단 에드워즈 가계의 두드러지는 대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맥스 주크라고 하는 사람의 5대에 걸친 후손 540명과 그 후손들과 혼인관계를 맺은 169명을 포함하여 약 1,200명 되는 주크 가문의 사람들의 행적이 밝혀졌다.
[6] 1,200명 중에서 300명은 유아시절에 죽었고, 440명은 나태 또는 퇴폐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몸이 망가지고 병약하게 살았으며, 310명이 극빈자, 130명은 범법자, 60명은 절도범, 7명은 살인자였다. 그들 중 50명의 여자들은 방탕한 매춘부로 악명이 높았다. 단 20명만이 직업기술을 배웠는데, 그중 10명은 교도소에서 배웠다.
반면, 조나단 에드워즈가 세 살을 떠난 지 약 140년이 지난 후 그의 일가는 1,400명 이상으로 성장했다.
[7] 에드워즈 가문에 속한 1,400명 중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285명이었고, 그들 중에서 13명의 대학총장과 65명의 교수가 배출됐다. 목사, 신학자, 선교사가 된 사람이 100여명, 변호사가 된 사람이 100여명, 그리고 판사가 된 사람이 30명, 부통령 1명, 상원의원 3명, 국회의원 다수, 외교관 다수, 주지사 3명, 시장 3명, 군대장교 75명, 작가 60여명, 철도회사 책임자 50명, 금융기관장 여러 명, 광산주 여러 명이 나왔다.
[8] 이 얼마나 현저하게 두드러지는 대조의 현상인가? 조상 한 사람의 삶이 그 후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순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최고의 실례이다.
그런데 ‘가계에 흐르는 축복과 저주 이론이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면 이건 도대체 어떤 경우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명쾌하게 정리해보자. 지금부터의 설명이 진짜 중요하다.
[9]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조상들의 죄나 죄의 대가가 후손들에게 대물림 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죄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그런 환경 속에서 악영향을 받다 보니 부모의 모습을 닮아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을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술주정꾼 부친 밑에서 자란 아들이 술주정꾼이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 자연스런 현상 아니겠나.
[10]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인하여 우리 개인의 모든 죄가 사함 받고, 선조들로 인한 저주에서 해방됨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조들이 잘 살지 못한다면 후손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배워서 징벌 받을 수 있는 길로 갈 확률이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오늘 내 모습은 미래 내 자녀들의 모습과 같다'는 이 속일 수 없는 역사적 교훈과 진리를 되새기면서, 하루하루 천국 백성답게 경건한 삶을 잘 살아가는 선조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