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받으신 예수님 사계절의신앙손희송 p57-61
예수님은 세상 구원이라는 당신 사명을 본격적으로 수행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면서 준비를 하십니다. 40일이 다 지났을 때 악마가 나타나 예수님을 유혹합니다(마태 4,1-11 참조). 그 유혹은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사명과 관련된 것입니다. 사탄은 우선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바꿔 보라고 요구합니다. 빵으로, 곧 물질과 돈의 힘으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라는 유혹입니다. 악마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봐라, 예전에 모세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빵과 만나를 내려 주지 않았던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마땅히 허기진 백성을 배불리 먹여야 하지 않는가? 사실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통치자들은 백성들이 빵을 배불리 먹으면 통치에 성공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어서 악마는 성경의 말씀, 곧 시편 91편의 11절과 12절의 말씀을 인용해 가면서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보호해 주실 테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기적에 힘입어서 자신의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입증하여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라는 유혹입니다. 악마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봐라, 예전에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을 벌였을 때, 주님께 청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함으로써 야훼가 진정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1열왕 18,20-40 참조)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엘리야처럼 기적을 일으켜서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해야하지 않을까?’
세 번째로 악마는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과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영화로 백성의 마음을 휘어잡으라는 유혹입니다. 악마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봐라, 지난날 다윗과 솔로몬이 거대한 왕국을 수립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여서 다른 백성들의 부러움을 사지 않았던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라면 마땅히 그런 권세와 영화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악마는 예수님께 직접적이며 노골적으로 악을 행하라고 유혹하지 않습니다. 그럴듯한 논리로, 합리적이며 효과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선택하라고 제안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제안은 당장에 필요한 것들 때문에 하느님을 덜 중요하게 여기면서 옆으로 제쳐 놓거나 혹은 도구처럼 이용하도록 유인합니다.
이미 첫째 유혹에서 그런 점이 분명하게 나타나지요.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고 그러므로 빵은 중요하지 않느냐?’ 매우 합리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빵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칫 빵이 절대화되고,ㅍ빵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생각, 정신적 가치를 무시한 경제 제일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빵이나 재물을 하느님 자리에 놓으려는 유혹에 대응하십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테 4,4).
둘째 유혹도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필요하면 당신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하느님께 기적을 요구하는것은 그야말로 큰 유혹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그분의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느님을 나의 일꾼으로 삼아 내뜻과 욕망을 채우려는 잘못이요 불신앙적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두 번째 유혹에 대처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마테 4.7).
세 번째 유혹도 매우 현실성 있게 들립니다. 십인십색의 사람들, 변덕이 심한 군중, 쉽게 끓고 쉽게 식는 백성을 결속시키려면 신앙만으로 가능할까? 사랑, 용서, 희생을 내세우는 신앙은 너무 무력하지 않은가? 세속 통치자들처럼 강력한 힘과 화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느님의 백성이 든든하게 결속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교회 역사에서는 ‘신앙의 무력함’을 세속적 수단과 권력을 통해 확고하게 보호하려는 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로써 신앙이 변질되고 질식될 위험에 처하고는 했습니다. 하느님보다는 세속 권력과 영화에 기대려는 유혹은 반드시 큰 폐해를낳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심각한 유혹을 “사탄아 물러가라”는 말씀으로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그러고는 신명기 6장 1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분명하게 선을 그으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어떻게?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악마의 집요한 유혹을 이겨내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신앙 여정 곳곳에서 하느님보다는 재물
과 권력에 더 의지하려는 유혹,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까지도 마음대로 이용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일편단심’으로 하느님께 굳은 신뢰를 갖고 그분 말씀에 의지할 때 교묘하고 끈질긴 유혹의 목소리를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유혹을 피해 갈 수는 없지만 유혹을 받는 중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 스스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당하여 힘겨워하는 우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히브 2,18).
*노자의 인간관계 5계명 (따뜻한 편지 2529)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자 제자백가의 시초 격인 ‘노자’가 유랑의 길을 떠나며 쓴 도덕경에 다음과 같이 ‘인간관계론’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첫째, : 진실함이 없는 말을 늘어놓지 말라.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사람을 추켜세우거나
머지않아 밝혀질 감언이설로 회유하면서 재주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뢰를 받지 못하여 사람 위에 설 수 없게 된다.
둘째, : 말 많음을 삼가라. 말은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 말없이 성의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신뢰하게 된다. 말보다 태도로서 나타내 보여야 한다.
셋째, : 아는 체 하지 말라.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너무 아는 체 하기보다는 잠자코 있는 것이 낫다. 지혜 있는 자는 지식이 있더라도 이를 남에게 나타내려 하지 않는 법이다. 넷째, :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돈은 인생의 윤활유로서는 필요한 것이나, 돈에 집착하여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다섯째, : 다투지 말라. 남과 다툰다는 것은 손해다. 어떠한 일에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자기주장을 밀고 나가려는 사람은 이익보다 손해를 많이 보는데 다투어서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진실 없는 말을 많이 하고, 유난히 아는 체하고 돈의 노예가 되어 다툼을 일삼는 것.
누구나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저 중 한 가지쯤은 해봤을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본능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행동을 인지하고 바꿔나간다면
더 큰 성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마라. – 셰익스피어 '리어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