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볼 일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런다고 집사람하고 말다툼 같은거나 하구선 무작정 나온게 아니다. 집에 있으면서도 찌는 더위에 참다 참다 더는 못 참겠기에 나선거다.
여느 때 같으면 집을 나서기 전 샤워도 하고 로션도 바르고 나름 칠보단장을 하고 나 나섰건만 오늘은 그야말로 그냥이다. 컴 앞에 앉아 있다가 에잇! 하고 나 입던 잠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나서 반바지에 티셔츠만 갈아 입었다. 정돈되여 있지 않는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 쓰는건 잊지 않았다. 그래도 남들한테는 최소한의 예의는 갗춰야지 할게 아닌가. 어디로 가서 뭘 할지 나도 모르기에 현관문을 나서며 뒤호주머니를 두두르니 손지갑이 잡힌다. 오른촉 앞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으니 5배원 짜리 동전 하나가 날 반기고... 최소한의 준비물은 갗춘 셈이다.
전철을 타니... 이건 그야말로 집과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경로석 가장자리는 텅텅 비어 있으니... 혹여 어느 아낙이 저만치서 내 몰골을 훔쳐 보고 있지나 않는가 해서 두루 살펴봐도 지들도 더워서인지 내 시야에는 씨알도 안 보이니 더는 뭘 바라리...
둥지를 틀었다. 핸드포을 꺼내 페더링을 하고 나 아이패드를 작동 시켰다. 블루터스도 작동 시켜 이어폰에 팟케스트와 연결 시켰다. 물론 눈 앞에는 시시각각 움직이는 주식시세를 보면서...
집에서 6백여 미터 떨어져 있는 거여역에서 탔다. 종점을 한정거장 지나 온 터라 경로석은 나만을 위한 독방이나 다름없다. 이젠 시간만 보내면 된다. 지난해 이맘 때쯤에도 난 정처없이 이리 떠났다. 멀게는 온양, 춘천 까지도 갔었고 친구가 사는 인천도 다녀왔다. 이 보다 가까운 용문, 문산, 여주 등도 다녀 왔다.
시원하다. 반소매와 반바지만을 입은 노출된 내 살결 위로 차갑게 다가오는 찬공기는 언젠가 어떤 여인과 만나 맛있는 색스를 하고 나 들이키는 시원한 청량음료수 딱 한잔의 뒤끝이라고나 할까? 넘 좋타. 마냥...
갑자기 전화다. 딸이 전화 한거다. 더위에 뭘 하시며 어찌 지내시냐고 묻는다. 집에서 에어컨 틀어 놓고 지내는게 돈이 아까울 것 같아서 전철을 타고 경로석에 앉아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보고 있노라고 말할려니 어쩐지 쪽 팔리는 느낌이다. 그냥 밖에 나와 친구랑 만나서 당구나 치고 있노라 했다. 나이 먹었어도 그래도 애비이거늘...
그나 오늘은 어딜 가나? 거여역에서 탔는데 벌써 마장역 까지 왔나보다. 이미 군자역을 지났다. 어딜 가지? 그냥 끝까지 타고 갈까? 끝이 어디지? 김포공항? 종점은 아니잖어? 거기까지 지금부터 얼마나 걸릴건가? 한시간? 지금이 3시가 다 됐으니 돌아오면 빨라도 6시네?
조금 전에는 없었는데 저만치 검정 썬그라스를 쓰고 있는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가 자꾸만 날 쳐다보는 듯하다. 썬그라스에 가려져 정확하지는 않치만 분명 날 쳐다보나 보다. 그럴지도... 그럴께 몰골은 나이든 할애비 인것 같은데 반바지에 반셔츠 하며 핸드포을 매만지는 솜씨가 여간이 이니게 보이니 약간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친구 전화다. 어디냐? 전철안이다. 어디 가는데? 나도 몰르것다. 뭔소리? 나도 모르것당께? 장 마감이 다 되가는데 너는 어찌하고 있나 해서 전화했다. Jyp는 아직도 안 산거니? 정말 사야하는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