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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老年期) 잘 죽는다는 의미(意味)는 무엇인가?] “죽음은 생애(生涯) 끝의 최악(最惡)의 사건(事件)이다!”어떻게 하면 최고의 삶을 살아갈까 ? 어렵게 간신히 늙어버린 내 몸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 아무도 죽음과 죽어 감을 피할 수없는 현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잘 죽는 기술(art of dying)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때다. 잘 죽는다(die well) 혹은 잘 죽어감(well dying)은 까다로운 주제처럼 들리지만 내가죽으 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고통 없이 잘 죽을는지, 하루 이틀 앓다가 죽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 다. 그리고 내 영혼은 어디에서 머물까?. 이런 의문은 인간존재의 궁극적인 물음들이 아닐 수없 다. 옛부터 죽음자체는 금기시 되는 주제이다. 죽어감과죽음은 아마도 마지막 금기시 되는 단어 중에 하나다. 새 생명의 탄생은 아름답고 축하 할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두려 운 나머지 애써 모르는 체 하려 한다. 사망을 자연적 죽음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편안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실제다. ‘필립 아리에스 (Aries, 2004)’는“인생은 비누거품과도 같은 것, 삶과 죽음은 하나로 묶인 것” 이라고 했다. 삶과 죽음은 단막극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로서 살아가는 것, 죽음 이후의 삶도 바로 지금부터 대비 하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잘 죽는다.’는 의미는 뭔가? 좋은 죽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좋은 죽음을 준비 할까? 간단히 말해 좋은 죽음(good death)이란 삶의끝을 잘 받아들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 에 대한 후회나 스트레스 받지 않고 조용히 떠나는 것이다. 후회 없이 편안하게 죽는 것, 두려움과 불안감에 싸여 죽는 것이 아닌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 지 않고 존엄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Miller, 2014) 그런 점에서 잘 죽는 것도 존재의 죽음(being mortal)이요,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아우구 스투스 황제’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른 인간이었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 란 긴 죽음에 불과하다”하다고 말했다.(니체, 2010, 178) 그러면 인간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 내 죽 음의 과정을 어떻게 관리할까? 늙으면 힘겹게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자기 몸을 끌고다니지않 다가 잘 죽는 것이 큰 축복이 아닌가?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은 자신들의 가족에게 사랑의 선물이 아닐까? 독일사회학자 ‘바우만(B auman, 1992)’에게 있어서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것은 바로 삶을 이해하는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잘 죽기는 일종의‘죽음의 기술’이다. 잘 죽는 것은 신성한 권리이며 존재의 기술이아 닐 수 없다. 따라서 이글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 즉 피할 수없는 죽음의 성격이 확정성, 불가변성,무규 정성의 운명론적 대상이지만 우리가 소원하는 ‘좋은 죽음’이 무엇인가를 문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서 우선 잘 죽는것의 의미를 찾아보고 이어 좋은 죽음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하는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과연 죽음 앞에서 어떤 초연한 모습을 보일까?하는 내용으 로 구성하였다. 실제로 우리가 소원하는 대로 잘 살아갈지라도 언젠가는 죽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앞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 할때 남은 삶이 더 진지해지지 않을까? 하는 동기에서 기술하였 다. 1.잘 죽는 것의 의미(意味)란 무엇인가? 세상이 좋든 싫든 모두가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 죽음의 필연성을 잊고 사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는 자연스런 죽음(natural death)이 점점 어려워지 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사망자 중에 5명중 1명만이 순수한 자연사로 죽는다. 좋은 죽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항상 실존적 고통과 연민이 남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나 문제는 존엄하게 죽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다. 존엄과 죽음은 같이 있다. 모든 사람은 좋게 죽을 가치가있다. 좋은 죽음은 믿음과 가치에기 초해 존엄 있게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결말 없이 죽지만 잘 죽는것은 인생의 끝자락 에서 만나는 현실적 현존의 문제다. 죽음에는 긍정 부정이 동시에 작용한다. ‘에피쿠로스(Epicurus)’는 죽음 자체는 아무것도아 니라고했다. 죽음은 기대감의 상실을 가져오기에 허무와 절망일뿐이다. 죽음이 오는것은 매 우 폭력적이고 내 의사와 무관하게 생명을 앗아간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 놀라움, 신비감, 초월적인 의미를지닌다. 하루를살 아가는 것도 죽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선물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이 거룩한 시간이고 이별의 순간이다. 탄생과 죽음은 자연스런 삶의 일부로써 인생의 성장과정으로써 이해된다. 곧 죽음조차도 인 간의 성장과정이다. 이와 관련해 근대사회에서는 죽음의 유형을 개인의 죽음(나의 죽음), 사회적 죽음, 자연적죽 음, 갑작스런 죽음, 관리 통제되는 죽음. 행복한 죽음 등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국 UCLA ‘죽음학’ 교수인‘Shneidman(2007)’은 사람이 자연사, 사고사, 자살, 타살(살인 )의 4가지 형태로 나누고 ‘좋은 죽음’의 기준 내지 ‘최적의 죽음’(optimal dying)에 대해 10 가지를 제시한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1)자연적(natural)죽음으로 어떤사고, 자살, 타살이 아닌 정상적 노화에 의한 천수를 다한죽 음이다. 흔히 천수를 다하고 죽었을 때 ‘호상’(好喪)이라는 의미 같은 것이다. 죽어가는 현장에서 비 극과 희극이 교차하지만 연명치료 없이 세상을 떠나는 죽음도 이에 해당된다. 2)성숙된(mature)죽음으로 70세 이후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병 같은 뇌질환 없이 맑은 정신 을 유지하다가 죽는 것이다. 죽는 것이 겁나는 것이지만 병원에 가는 일없이 맑은 정신을 유지하다가 2,3일 앓고 죽는형 태다. 노년 후기를 살아간다면 그냥 내 침대에서 어느 날 깨어나지 않는 것,그것이 성숙된행 복한 죽음일 것이다. 3)예측되는(expected)죽음으로 사고와 같은 갑작스런 죽음이 아니라 질병으로인한 시한부 생명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죽는 경우다. 예를 들어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환자가 4-5개월 생존하다가 죽는 경우다. 몸은 의사에게 맡 기고 목숨은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4)명예로운(honorable)죽음으로 실패 없이 혹은 어떤 상처 없이 가족과 사회에 기여하고죽 는 사람들이다. 죽어감 혹은 죽음에서 자기 삶을 다시 돌아보고 가족 간, 이웃 간 사랑하고 나누고 떠나는것 이다. 수많은 죽음 중에서도 험하게 죽지 않고 ‘품위’ 있게 죽는 것이다. 5)준비된(prepared)죽음이다. 자신의 가치와 명예를 지키며 자기가 하고 있던 일을 잘 마무 리하고 죽은 것이다. 준비된 죽음은 설사 치명적인 병이 들어도 겁을 먹거나 두려움 없이 자기 할 일을 다 해놓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 같은 것이다. 유언장을 써 놓거나 장례절차까지도 당부하고 죽는것이다. 6)나이 들어 죽어 감을 순수이 받아들이는 것, 죽음을 겁내지 않고 초연하게 영광스럽게 당 당하게 받아들이는 죽음이다. 수술, 방사선 치료 등 적극적 치료(cure)가 아닌 돌봄(care)을 택해 존엄하게 죽음을 받아들 이는 것이다. 7)문명화(civilized)된 죽음이다. 생명의 한계를 직시하고 꽃을 사랑하고 그림과 음악등의취 미생활을 하다가 여유롭게 열린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글쓰기, 문화예술을 즐길 때 치매 등 정신적 질병없이 죽을 수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치 매 싹이 자라지 않도록 하다가 죽는 것이다. 8)세대전승(generative)의 죽음이다. 혈육의 계승, 삶의 지혜, 가풍등을 후손들에게 가르치 고 죽는 것이다. 가풍 내지 노인들의 지혜를 후손들에게 잘 전승할 때 가족 전통은 물론 인간 공동체를 이루 는 힘이 된다. 9)후회(rueful)없는 죽음이다. 죽음에 임박해 후회한들 소용이 없지만 지난생애를 돌아보며 후회나 슬픔 없이 죽는 것, 하던 일을 잘 끝내고 죽는 것이다. 가능하면 “If only”(이랬으면 좋았을 턴데)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 이 죽는 것이다. 10) 평화로운(peaceable)죽음이다. 죽으면서 가슴에 독을 품지않고 떠나는 죽음이다. 아니 면 고통(pain) 없이 죽는 것이다. 고통은 중병환자의 70%가 경험한다. 신체적 상실 없이 자유의지 속에 가족 및 이웃들의 사 랑을 받으며 미련 없이 평화롭게 죽는 것이다. 기타 우리가 볼 수 있는 죽음의 형태는 또 있다.이를 테면 좋은 죽음에 대비되는 개념으로(1 )안타까운 죽음이 있다. 이런 죽음은 가족과 같이 못한 죽음, 무의미한 치료를받다가 고통중 에 죽는 죽음, 준비 없는 죽음이다. (2)부정적 죽음이 있다. 이는 집이 아닌 병원, 호스피스병동, 요양원등 공공시설에서 외롭게 허망하게 죽는 것이다. (3)나쁜 죽음이 있다. 이 죽음은 자살 하거나 갑작스런 사고 혹은 고 독사, 무연고 사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죽음보다 나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 가 많다. 2.좋은 죽음을 어떻게 만들까? 우리는 큰 고통 없이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 것을 원한다. 아래 ‘나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의 미에서 ‘좋은 죽음’ 만들어가는 몇 가지만 우리 생활 속에서 찾아보자. 1)고통 없이 길게 앓지 않고 가족들 곁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거두는 죽음이다. 가족은 첫 사랑의 둥지들이고 또한 마지막 이별하는 사랑의 식구들이다. 집에서 가족들의보 살핌을 받다가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이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 두렵고 외롭지만 따뜻한 주위 사람들 옆에서 위로를받으며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평화로운 죽음, 수용하는 죽음, 천수를 다한 죽음이다. 그런 점에서 가족들은 환자가 자신의 침대에서 평화롭게 죽도록 돕는일이다. 마지막 임종시 가족과 같이 있을 때 평화와 온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2) 나이와 관계없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지성과 직관 모든 신체운동 명상과 기도를 통해 건강한 노년을 보내다가 건강하게 죽는것이 다. 물론 안정적으로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조차도 암과 같은 질병을 오래 안고 살아가다가 갑자기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적당한 운동과 영양섭취, 건강 검진 등을 통해 건강을 최대한 유지하다가 적절한 치료 없이 죽어가는 것이다. 농담이지만 “9988, 2,3,4” 즉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고 죽는 것이다. 이런 죽 음은 단지 슬픈 일도 아니고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 3)가족과 이웃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죽음이다. 죽음에는 본인 가족은 물론 주변 인물들이 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어떤 것을 남기지 않고 떠나지만 많은 기억을 남기고 죽는다. 사회적 차원에서 죽은 자와 산자의 관계는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자기 가치를 인정하 고 용서와 관용, 사랑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죽는 것도 큰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내가 죽으면 가족들 이웃들은 그는 “열심히 살았어!”하며 기릴 것이다. 좋은 죽음으로 세상 을 떠날 때 고인에 대한 약력, 일상의 기억과 추억을 기리게 된다. 4)수많은 질병은 물론 치매, 알츠하이머병을 피하는 ‘품위 있는 죽음’이다. 속된 말로 노망이 들어서 똥오줌 가리지 못하는 상태를 피하는 죽음이다.당신이 80-90살을 살면서 벽에 똥칠하며 살아보라. 기저귀를 찬다고 생각해 보라. 치매를 앓다가 죽으면 가족들에 대한 영원한 수치다. 물론 현재 85세 이상 노인들의 46%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다. 3명중 1명이 치매로 고생하고 있으니 장담 할 수 없는 일이다. 치매는 경제적 손실, 믿음의 손실, 희망의 손실, 신뢰의 상실, 사회적 손실을 겪는다. 치매는 온 집안을 황폐화 시킨다. 5)갑작스런 사고, 심장 마비 등을 대비한 임종 없는 죽음을 피하는 일이다. 이른바 ‘덜컥 죽음’을 대비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갑작스런 사고를 대비해 의료기관및 전담 의사를 정해 놓는 것은 물론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다. 밖에 나갔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죽을 수있는 ‘객사’를 피하자는 말이다.좋은 죽음에 관계 없이 갑작스런 사고로, 심장마비로, 뇌졸 증으로 임종 없이 죽을 수있도록 늘 대비하는 일이 다. 6)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의지에 따른 죽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엄이 내재돼 있고 타인이 아무리 끔찍한 짓을 하더라도 빼 앗을수 없는 권리다. 장기간 불치병에 고생하는 사람의 죽음/죽어감을 놔두는 존엄사를 인정하는것 이다.(페터 비에리, 2014)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수명연장의료기술에 의존하지않고 자기 생명의 선택권을 인 정하는 추세다. 의사들 역시 가족들의 의사를 물어 심페소생술 등을 포기하는 이른바 ‘관리 되는 죽음’으로 유도할 수 있다. 말인즉 나쁜 죽음을 피해야 한다. 나쁜 죽음은 도저히 회복 될 수 없는 환자에 대한 수술, 불 필요한 투약, 약에의한 안락사를 당하는 것이다. 약물의 부작용, 메스꺼움, 구토등의 고통속 에 죽어가는 것이 나쁜 죽음이다. 7)정신이 맑을 때 유언장써놓기, 의료지시서 작성, 유산 분배, 장례기획, 장기기증 여부등을 명확히 해 놓는 것이다. 유언의 표시는 구두 유언, 공정성 유언(2명이상 증인 변호사 공증필요), 자필증서 유언(내용 전문, 작성 년 월 일, 주소, 성명 날인 등)으로 하고,그리고 유언내용은 임종방식에서 생명보 조 장치 사용여부(의료지시서 작성), 장기기증 등을 표시하며, 장례식은 장지, 규모, 시신처리방법(매장/화장)을 당부하고, 금융자산 정보로는 신용카드,연 금증서, 부동산 권리 등을 표시한다. 마지막으로 유산분배 문제로써 자녀 가족에 대한 재산 분배 방식 혹은 사회 환원 여부 등을 명확하게 해 놓는 일이다. 8)종교적으로 구천을 떠도는 죽음이아니라 천당극락으로 안착하는 믿음이 확고한죽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이승과저승을 떠도 는 죽음이 아니라 신의 인도를 받는 죽음이다. 종교는 죽음으로 오는 불안감을 극복하고 영 원한 천국(극락)으로의 안내를 임무로 한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다음 영생’의 믿음을 갖고 죽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스티븐 케 이브(Cave, 2012)’는 영원, 영생, 불멸의 꿈을 강조한다. 제일 중요한것은 영혼으로서 살아 남기다. 영혼을 믿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삶을포기하고 영적인 차원의 미래를 기대하게 마련 이다. 3.당신은 죽음 앞에서 두려움 없이 편안(便安)한가? 이상의 내용들은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웰 빙(well-being)개념 혹은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를 넘어 요즘은 잘 죽자(well-dy ing)는 것, 다시말해 지금까지는 잘 사는 것이 강조되었다면 현재의 트렌드는 생이 끝나는 순간에 잘죽 자는 것이 강조되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것은 그저 노년기 심심풀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에 대한 각자의 수용(death acceptance)적 태도를 중시하게 되었다. 죽음의 문제는 남아있 는 삶의 질을 좌우하고 각자 삶의 불변의 초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 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전문가 ‘아이라 바이오크(Byock, 1998)’는 “당 신은 죽음 앞에서 진정 편안합니까?” 묻는다. 또한 말을 바꿔서 “당신은 지금 몇 살입니까?” 혹시 노년후기인 7080+이상을 살아간다면 당신은 “이 험한 세상에서 참 애썼다.”. 다행히 8090세를 살아간다면 죽음의 계곡에 들어섰다는 기분도 들만 하다. 80+ 이상 나이에는 삶과죽음에 영향을 미치는 퇴행성 질환, 암, 알츠하이머병, 심혈관 질환, 치매 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20세기 후반부터 의학적, 심리학에서 주의 깊게 다뤄지는 분야가 ‘ 죽음학’(Thanatology)이다. 죽음은 의학적 철학적 사회학적 영역의 인간 실존의 문제다. 정상적인 이성애자라도 나이 들면 점차 병든 몸, 장애가있는 비정상적인 몸으로 변하면서결 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또한 죽음 직전에 어떤 최종 시험에 맞딱드릴 수 있다. 비이성적인 영역이지만 천국이 아닌 징벌로써 지옥을 생각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죽음 이후의 삶은 과연 존재할까?”하는 의문도 생길것이다. 궁극적 관심으로 죽 어서 내 영혼은 어디로 갈까? 하는 의문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가 소멸하는것은 확실한 데 그러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명료화 하기란 쉽지 않지만 플라톤(2008)은“육체가 소멸하더라도 영혼은 불멸하고 영원히 남아있어야 한다.“고 결론 냈다. 불가에서는 죽어서 내세에가서도 윤회생사(輪回生死)가 계 속된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되는 것을 의미한다. 카톨릭에서는“죽음을 두려 하지 않도록 애쓰라!” 라며 죽음이 곧 사랑하는 아버지 품에 다시 안기는 것으로 해석한다. 덧붙이면 당신이 운 좋게 8090까지 살아 왔다면 죽음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 필연적으로 죽 음이 곧 닥칠 것이니 그렇다. 그렇다면 잘 죽고 싶지 않은가?. 아무도 고통 없이 죽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실존적 종말을 맞기위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죽음은 가족들에게 거대한 슬픔일 수있지만, 그러나 가족 들에게 부양의 짐을 덜어주는 죽음일수도 있다. 특히 희귀한 난치성 질환자 한 명만 있어도 가세(家勢)가 기울고 가족해체나 파탄 등으로 이 어질 수 있으니 그렇다.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가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고령화 사회로 변하면서 보다 좋은 죽 음을 만들어 갈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죽음의 준비교육으로 웰다잉 체험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잘 죽도록 하 기 위한 국가수준의 대책도 필요하다. 연명치료의 법제화, 완화치료제도(호스피스), 간병인 에 대한 보험적용 등 복지정책도 뒤 따라야 할 것이다. 인간 삶의 조건에대한 광범위한 제도적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 으로는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걸 절감하며 남은 생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으로써 잘 죽을 수 있도록 임종 시까지 자율, 자립의 준비, 신을향해 열 심히 기도해야 옳을 것이다.<우정 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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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타 서설이 와이리 길어 ~ 고냥 사람답게 살다 사람답게 죽으면 됑걸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