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 문학동네
뉴욕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벌어지는 외지인의 이야기는 나 같은 이민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뉴욕이라는 장소, 익숙하지 않은 공간, 나의 이해 밖에서 일어나는 삶의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밀어낼 수도 내 안으로 흡수할 수도 거기에 순순히 섞일 수도 없는 존재, 순간순간. 작가는 이야기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유학 후, 어렵게 직장을 얻은 친구 집을 방문한다. 공간과 시간,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친구는 나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하다고 해서 비슷해질 필요는 없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이혼 후, 뉴욕 영어학원에 다니는 46세의 여인이 겪은 짧은 이야기. 마마두라는 세네갈 청년과의 관계를 그린다. 마마두는 자신이 원하는 삶과 부친의 희망 사이에 갈등한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장미의 이름은 어떻게 불려도 장미이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극작가 학생인 그녀는 이명증 치료 중에 도망치듯 뉴욕으로 간다. 몇 년에 걸쳐 만났던 로언과의 관계는 시들어지고 뉴욕의 코로나가 막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간다. 듣고 말하는 능력이 모자라다고 해서 낯선 장소를 더 낯설게 만드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궁전을 떠나기로 한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
작가는 뉴욕의 문인 행사에 대타로 참석하게 된다. 아들의 직업에 그리 관심이 없어 보이는 83세의 노모가 동행을 하겠다고 통보한다. 호텔에서 우연히 어머니 앞으로 온 1955년 뉴욕 소인의 편지를 접한다. 어머니의 서사는 어떤 것일까?
늙으면 뇌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과 속도가 달라져서 성질이 급해진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199
어떤 헌신은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된다. 210
"살다 보면 그럭저럭 알게 되는 이야기라는 뜻이야. 책이란 게 다 그렇지" 223
우리의 삶은 어쩌면 모두 이민자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언어가 다르지 않더라도 누구나 상대의 마음을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상대의 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곳에서나 영원히 거할 수 없고, 어떤 사람과의 만남/관계도 내가 원하는 만큼 지속시킬 수 없다. 누구나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모두 이민자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영주권을 받고 시민권을 소지했다고 할지라도 과거의 회상해서 현재에 살아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