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밀양 도중에(密陽途中)‘ 한시(漢詩)편 1.>
경남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밀양시는, 1995년 밀양군과 통합시를 이루었다. 부산과 대구간의 교통의 요지이며, 도내의 주요 곡창지대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유물·유적이 많아 영남지방의 일일관광지이다. 면적 799.01㎢, 인구 107,896명(2015년)이다.
밀양시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일찍부터 인간의 거주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밀양은 삼한시대에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던 곳으로 비정되고 있다. 신라 때에는 추화군(推火郡)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고치고 밀진현(密津縣)·상약현(尙藥縣)·오악현(烏嶽縣, 烏兵縣)·형산현(荊山縣)·소산현(蘇山縣)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에 들어 995년(성종 14)에 밀주(密州)로 개칭했다. 고려초에 오악현·형산현·소산현은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이 되어 창령군·청도군과 현풍현·계성현(桂城縣)·영산현(靈山縣)·풍각현(豊角縣)을 속군현으로 포함했다.
1275년(충렬왕 1)에 군민의 모반 사건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부(鷄林府)에 병합되었다. 후에 현으로,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곧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 1518~22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별호는 응천(凝川)·밀산(密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대구부 밀양군, 1896년에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8년에 군의 중심지인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밀양읍으로, 1989년에 밀양시로 승격되어 밀양군에서 분리되었다.
1) 밀양 도중에[密陽途中] 이성함과 이별하며(別李聖涵) / 이진상(李震相 1818∼1886)
凝川城外路將分 밀양성 밖의 갈라진 길에서 헤어져야하는데
心緖依然落葉紛 낙엽이 날려도 마음속의 생각은 의연하다.
湖山遊玩還多事 호수와 산을 노닐며 즐겨도 되레 번거로워
只合携書卧白雲 오직 책을 잡고 흰 구름에 누웠어라.
2) 밀양 도중에[密陽道中] / 이헌경(李獻慶 1719∼1791)
落日春愁生短笳 해질녘 봄날 시름 속에 짧은 피리소리 울리고
古堤楊柳不勝斜 오래된 제방의 버드나무는 구부러져 가누지 못하네.
江飛白鷺蕭蕭雪 강가에 백로 날고 쓸쓸한 눈발 날리니
縣出紅桃片片霞 나무에 매달린 붉은 복숭아 점점이 노을일세.
北客未離彈鋏舘 북쪽 나그네와 헤어지지 못해 칼자루를 두드리는데
南歌多在捲簾家 주렴 걷은 집에서 울리는 남녘 노래 뛰어나네.
鍾山萬里難回首 만 리 종산(鍾山) 돌아보기도 어려워라
各是風波海一涯 각자 모두 먼 바닷가의 풍파 속이었으니.
[주1] 탄협(彈鋏) : 칼자루를 두드린다. 탄협가(彈鋏歌)는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것으로, 객이 주인을 풍자하여 대우를 구하는 뜻이다.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에 “제 나라 사람 풍환(馮諼)이 가난하여 맹상군(孟嘗君)에게 의탁해 있었는데 채소 반찬만을 먹게 하였다. 풍환이 기둥에 기대서서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긴 칼을 찬 사람아 돌아갈지어다 식탁에는 고기반찬이 없구나.[長鋏歸來乎食無魚]’ 하였다.” 한다.
[주2] 종산(鍾山) : 종산은 중국 강소(江蘇) 남경시(南京市) 동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육조(六朝) 송(宋)나라 때 주옹(周顒)과 공치규(孔稚圭)가 은거하던 곳이다. 주옹은 나중에 세상에 나가 회계군(會稽郡)의 해염현령(海鹽縣令)으로 있다가 임기가 끝나 도성으로 가는 길에 종산에 들르려고 하자 공치규가 북산이문을 지어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은자가 은거하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3) 밀양 도중에 느끼는 바가 있어[密陽道中有感] / 이로(李魯 1544∼1598)
極目荒墟烏鵲稀 황폐한 터를 바라보니 새들도 드물고
凄凄寒日慘斜暉 썰렁하게 추운 날씨 해 저무니 서글프네
繁華盛事還如夢 번화하고 성대했던 일 도리어 꿈만 같아
獨立蒼茫淚未晞 창망하게 홀로 서 있으니 눈물이 마르지 않네
4) 밀양 도중에[密陽途中] / 오횡묵(吳宖默 1834- ?)
如駒流序自推遷 망아지가 지나가듯 흐르는 절서는 오고가고 하는데
行役空仍一慨然 공허한 여행길에서 자주 탄식하누나.
閱盡閒忙人孰是 한가하고 바쁜 속에도 무엇이 옳은 일인지 세월 다 보내다
過經苦楚客堪憐 고초를 겪으니 나그네 심히 애처로워라.
山粧霜染楓初艶 서리 물든 산이 고운 단풍으로 단장했는데
馬趂宵闌月復圓 저물녘 밤에 말을 타고 달리다보니 달이 다시 둥글어졌네.
旅感還將秋興看 다시 바라본 가을의 흥취가 나그네 감응을 일으켰으나
偸生可證惡因緣 구차하게 살다가 결국 나쁜 인연이 되었음을 깨닫노라.
[주] 투생(偸生) : 구차하게 산다는 뜻으로, 죽어야 옳음에도 죽지 않고 욕되게 살기를 꾀함을 이르는 말.
5) 밀성(密城) / 이식(李植 1584∼1647)
曠野隨山曲 빈 들판 가로질러 산굽이 돌아드니
虛樓逼水陰 물가에 바짝 붙어 서 있는 텅 빈 누각
東南專勝絶 동남쪽 산수(山水)를 독점한 절경
今古幾登臨 사람들 얼마나 올라와 굽어보았을꼬
野聚多荒塢 보루(堡壘) 많이 황폐해진 들판의 촌락이요
官租半栗林 세금 반절 감당하는 밤나무 숲이로세
欲窮風土異 특이한 풍토 샅샅이 살펴보려 하니
羇恨轉相侵 나그네의 한스러움 점점 더 스며드네
7) 순행 중에 밀양의 강을 배로 건너다가 흥취를 기록한다[巡渡密陽江舟中記興] / 남용익(南龍翼 1628∼1692)
嶺南形勝嶺南樓 영남의 아름다운 형승(形勝) 영남루(嶺南樓)
樓下長江百丈流 누각 아래 긴 강은 일백 장(丈) 길이로 흐르네.
江上數村桃萬樹 강 위의 두어 마을엔 만 그루 복사꽃 활짝 피니
夕陽吹笛臥孤舟 석양에 피리소리 외딴 배에 누웠노라.
8) 밀양의 동헌에 매화가 처음 피어서 오 교수 및 성주가 시를 지었으므로 차운하다[密陽東軒梅花初開吳敎授及城主有詩次韻]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雪裏誰誇庾嶺梅 누가 자랑하였나 눈속에 핀 유령의 매화가
南枝開了北枝開 남쪽 가지 다 피고 북쪽 가지 피는 것을
凝川二月看春信 응천의 이월달에 봄 소식을 보았으니
莫問花魁材不材 매화가 좋고 안 좋고는 묻지를 마소
一元消息訪寒梅 일원의 봄 소식은 찬 매화를 찾아왔건만
却恨東風未放開 동풍이 꽃 피우지 못한 게 도리어 한스럽네
擁鼻忽然逢粲者 갑자기 코를 엄습한 매화 향기를 만나니
從敎桃李不時材 도리는 쓸데 없는 물건이 되거나 말거나
[주] 유령 매화(庾嶺梅) : 유령은 산명(山名)으로 특히 매화(梅花)의 명소라서 일명 매령(梅嶺)이라고도 하는데, 이 유령의 매화는 남쪽 가지에서는 지고 북쪽 가지에서는 피곤 한다고 한다.
<경남 밀양부(密陽府) ‘길손의 감회‘ 한시(漢詩)편 2.>
경남 밀양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점, 보물 7점, 사적 1, 중요무형문화재 1점, 천연기념물 2점, 중요민속자료 1점),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9점, 무형문화재 3점, 기념물 13), 문화재자료 43점이 있다. 삼한시대부터 농경문화를 꽃피웠으며,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많은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다. 선사시대 유물·유적으로는 하남읍의 남전리지석묘군, 삼랑진읍·초동면·상동면·산외면 등의 고인돌군, 무안면의 석기와 토기, 부북면의 고분군, 활성동 고분 등이 있다. 삼국시대 것으로 알려진 추화산성은 둘레가 약 715m의 석성으로 성내에는 우물 2곳·성황사·봉수대 등의 터가 남아 있다.
9) 밀양 누선 운[密陽樓船韻]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擊罷空明信所如 맑은 물결치는 강물에 가는대로 맡겨두노라니
玲瓏小閣合仙居 영롱한 작은 누각에 신선이 모여 살고나.
茜裙影亂穿霞鶩 빨강 치마 어릿거리는 그림자 사이로 노을 속 따오기 떠가고
簫鼓聲驚蹙浪魚 퉁소 북소리에 놀란 물고기가 물결 일으키며 사라지네.
坡老海中誇亦得 바다에서 동파 노인이 뽐내며 자랑하고
杜陵天上語非虛 천상의 두보 또한 헛말하지 않겠구나.
較來蓮葉差誰勝 연잎과 견주어 봐도 누가 더 뛰어나다 하리까.
閑臥宜觀玉字書 한가로이 누워서 주옥같은 글을 본다네.
[주1] 격파공명(擊罷空明) : ‘공명(空明)’과 ‘유광(流光)’은 소동파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계수나무 노와 목란 상앗대로 맑은 물결을 치며 달빛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도다.[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한 데서 온 말로 '밝은 달빛이 비친 강물'을 형용한 것이다.
[주2] 하목(霞鶩) : 하목은 낙하고목(落霞孤鶩)의 준말이다. 낙하는 지는 놀을 말하고 고목은 외로운 따오기를 말한다. 당(唐) 나라의 문장가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지는 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긴 하늘과 한빛일세.”한 말이 있는데 아름다운 표현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10) 누선운[樓船韻] / 김륵(金玏 1540∼1616)
探奇誰道入山居 누가 특별히 도(道)를 찾으려고 산으로 들어가리오만
最愛樓船任所如 사랑하는 누선을 타고 흘러 가는대로 맡겨 두자.
移渚老虬愁劈霧 늙은 용이 근심스런 안개를 뚫고 물가로 왔는데
橫灘懶鴨怯呑魚 여울을 가로지르던 느긋한 오리는 물고기를 삼키네.
魂交太乙凌靑葉 하늘의 신과 영혼을 교감하니 청엽(靑葉)을 업신여겼고
夢接君平駕紫虛 꿈에서 만난 군평(君平)은 자줏빛 하늘에 올랐다한다.
若使快舒沿泝興 만약 물을 거슬러 올라가다 유쾌한 흥이 일더라도
長天爲紙詎能書 넓은 하늘을 종이 삼아 어찌 글을 쓸 수 있으랴.
[주] 군평(君平) : 한(漢) 나라 때 은자인 엄준(嚴遵)의 자. 그는 성도(成都)에서 점을 쳐서 생계를 이으며 하루 생계가 마련되면 발을 내리고 손님을 받지 않고, 노자를 읽고 책을 썼다고 한다.
11) 사월 초하룻날에 응천(凝川)의 누선(樓船)에 있는 시의 운을 차운하여 주인에게 남겨 주다.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仙能居處我能居 신선이 사는 곳에 내 능히 살겠거니
一棹飄然興自如 한 삿대 표연하여 흥 절로 일어나네
醉味君應知酒德 취한 맛은 그대 응당 취한 뒤에 알리니
天機吾欲問濠魚 천기를 내 한번 호어에게 물어보리
坎流到底無非樂 고이거나 흐르거나 그 모두가 즐거웁고
榮悴看來摠是虛 꽃이 피고 시들음도 그 모두가 헛것이네
共倚水軒豪氣發 물가 누각 기대 서자 호탕한 기운 솟아
春愁付與老中書 봄 시름을 모두 늙은 중서에게 부치누나
[주1] 응천(凝川) : 밀양(密陽)의 고호이다.
[주2] 호어(濠魚) : 호수(濠水)에서 사는 피라미로, 한가롭게 노니는 물고기를 말한다.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와 호숫가 봇둑 위를 걷다가, “피라미가 나와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군. 피라미는 참 즐거울 거야.” 하니, 혜자가, “자네는 피라미가 아닌데 어떻게 피라미가 즐거울 것이란 것을 아는가?” 하자, 장자가,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가?” 하니, 혜자가, “나는 자네가 아니라서 본시 자네를 알지 못하네. 자네도 본시 피라미가 아니니 자네가 피라미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네.” 하였다.
[주3] 중서(中書) : 붓의 이칭(異稱)이다.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에, “모영이 여러 차례 중서령(中書令)에 제수되어 상(上)과 더욱 친하게 지내자, 상이 일찍이 중서군(中書君)이라고 불렀다.” 하였다.
12) 밀양 작은 누각의 운[密陽小樓韻] / 이석형(李石亨 1415∼1477)
點點峯巒地盡頭 점점의 뭇 봉우리 땅 끝 지점에 있는데
水從千澗作江流 물 따라 천 시내가 모여 강물을 만드네.
不緣尊酒如淮在 아무런 이유 없이 회수에서 술잔 잡고 있다가
肯被風情似越留 즐거운 풍취에 얽매여 머무를까 두렵구나.
[주] 회수(淮水) : 중국 대별산맥에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홍택호 등을 지나 양자강에 들어가는 길이 560km 강이다. 여기서는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밀양강을 일컫는다.
13) 들풀[野草] 당시 밀양에 소작인을 만나려가다가(時作密陽覲行) / 홍직필(洪直弼 1776∼1852)
我愛野田草 내가 사랑하는 들 풀
經秋自放花 가을을 지나 절로 꽃이 피네
無人解幽賞 그윽이 감상할 사람은 없고
霜露護天葩 서리와 이슬이 아름다운 꽃을 보호하네.
14) 밀양에 다다라 길 가운데서 잠시 쉬면서[赴密陽試道中] / 박희문(朴希文 1586~1659)
炎程何事苦奔馳 더운 여름에 빨리 달리니 어찌 괴롭지 않으랴
従此吾行可已而 이로부터 나는 가던 길에서 멈추고 쉬게 되었다.
不知今日同行友 오늘 함께 동행 하던 벗을 생각지 못했으니
孰得歡欣孰失悲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랴.